흩날리는 꽃송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 마당에 뛰어노는 강아지, 그리고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이 모든 것들과 함께 한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강아지똥’, ‘몽실언니’로 잘 알려진 동화작가 ‘권정생’이다. 그의 일생을 돌아본 ‘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아저씨 권정생’은 그의 성품과 인생관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전쟁과 배고픔의 시대를 살아온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오늘의 안락함이 한없이 미안하고, 또 죄스럽다. 가난과 전쟁, 가족 간의 생이별 따위가 일상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숙연해지는가. 그는 피로 얼룩진 과거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었다.

6.25 전쟁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있던 2년 동안 거지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권정생. 그때 얻은 폐결핵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죽는 날까지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그가 쓴 작품들은 모두 육신의 고통과 싸워 이긴 결과물로 평가한다. 한 획 한 획 피로 쓴 글이라는 사실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평생 풀 한 포기 하찮게 여기지 않았던 고운 심성과 낮은 곳에서 자신을 임하게 하는 삶의 자세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인생의 한 자락을 찾은 느낌이다. 여러 책이 인기를 끌게 되어 편하게 살 형편이 되었음에도 그는 다섯 평의 흙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가난한 자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뿐이다.’라고 자신의 산문에서 밝힌 것과 같은 삶을 산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어린이들을 위해 쓰라는 유언을 남긴 채 하늘 너머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떠난 그는 피고름이 쏟아지고 끊어질 듯한 숨을 몰아쉬며 만들어낸 작품들로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빛이 되었다. 더 이상 아픔도 굶주림도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도하며 이념과 인종을 넘어선 사랑을 전해주었다. 

작은 씨앗을 뿌리듯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청빈한 삶을 살다간 그가 남긴 유언장을 보면서, 오직 한치 앞만 보고 내달린 오늘을 반성해 본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 때문에 일초도 참기 힘듭니다. 어서 모든 것이 끝났으면 하는데도 그것마저 마음대로 안 되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제발 너무도 아름다운 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제 예금통장은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미워하고, 그만 싸우고,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그런데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티베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꿈꾸면서, p222~223

 

누군가에게 갑작스레 듣게된 좋아한다는 말, 이내 떨리는 마음... 이런 첫사랑의 느낌이 가득한 스무살, 도쿄를 마주하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색다른 감성을 바라면서...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도 포함되었다는 이 책은 연도별로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졌다. 도시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도쿄에 상륙하게 된 다무라 히사오. 그의 10여년 간의 기록, 이른바 달콤한 청춘스케치이다. 막 상경해서 주소도 모른 채 전화번호 하나 가지고 친구 집을 찾아 마침내 보게 된 반가운 얼굴이 눈물날 만큼 기분좋은, 서툴지만 풋풋한 그런 만남이 가득한 책이다. 난생 처음 친구와 테라스에서 생맥주 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얘기하던 그때, 기분에 취해 친구 집에서 즉흥적으로 자고 갈만큼 자유로움이 가득한 그곳, 이 모든 시간과 공간이 젊음을 통로로 살아있었다. 두근거리는 청춘의 시작, 그 처음을 알리는 신호탄음이 책 여기저기서 터지는 듯하다.

청춘이란 이름으로 무모한 질주도 해보고, 그것에 취한 자유로운 행동과 어우러진 생각지도 못한 첫키스는 기분좋은 향기를 뿜어낸다. 거창하지 않아도 그들의 생활에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한번쯤 돌아가고 싶던 내 청춘의 그리피티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던 대학시절도 지나고 카피라이터로서의 사회생활을 그리고 있는 중반 이후부터는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평론가를 꿈꾸었던 다무라는 신광사의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광사 신입 때부터 이후 경력을 쌓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까지의 과정을 박진감(?) 넘치는 묘사로 표현되어 있기에,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고달픈 현실의 무거움과 함께.

존 레논이 사망한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음악을 사랑한 한 소년의 삶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오쿠다 히데오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내 삶을 돌아볼 기회를 준 느낌이랄까. 폭죽이 터지는 한 가운데 있다가 희열이 지나간 후에 연기만이 자욱한 곳에 남아 그 기분을 다시 회상하는, 내 삶에서도 반짝이는 한 순간을 기억하는 일 따위를 하게 한다. 그것이 인생의 암흑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임을 알기에, 지금 작게나마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맛있는 음식과 만날 때 가장 기쁜 것이 요즘 나의 생활이다. 뭔가 한 가지에 충족되지 않는 삶이라 그런지 먹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게 되었다. 때문에 살은 많이 쪘지만, 그것이 꼭 내 지난 날의 흔적(?)같아 전에 같지 않게 살찌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졌다. 이렇듯 팍팍한 시간을 달래주는 달콤한 요리는 언제나 나를 즐겁게 만든다. 짜증이 날 때 미각을 채우는 스파게티 한 가닥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던지. 사소한 행복의 출발점이 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달라진 점은 과거에는 스스로 해먹는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었고, 현재는 사먹는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것이다.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최고의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로 꾸며졌다. 그가 가진 초밥에 대한, 더 나아가 요리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진 삶의 이야기는 보지도 않은 그가 친근해질 만큼 솔직한 모습이었다.

장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확고한 그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막연하게 감만 겨우 잡고 있던 투철한 직업의식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한 분야에서 성공한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자신감이 넘치는 책이다. 또 그것이 결코 과장됨이 없는 사실이란 것도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다.

요리와 가장 친밀하게 맞닿은 것은 결국 사람이기에, 그의 요리에서는 특히 그런 관계가 부각된다. 처음 ‘스시 효’를 만들게 된 계기도 호텔 신라에서 일하던 당시에 고객과의 인연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으로 자본금을 얻고 내로라할만한 자리에서 고급 전문 음식점을 만들었다는 창업이야기가 그의 성품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정성이 맞닿은 손길은 또다른 관계로 다시 이어지게 되고 그것이 점차 우리네 정으로 쌓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귀한 인연이 함께이기에 그 역시 요리에 자신의 혼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고급 식당에서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마음껏 먹고 사는 사람이 부러워진다. 사실 이런 류의 고급 음식점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소수계층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뭔가 상대적인 박탈감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맛있겠다’와 ‘부럽다’를 동시에  말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 좀 더 빨리 달리고 싶어졌다. 어떤 의미에서건 그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