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네티즌들이 열광했다던 ‘무비픽션’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책을 펼쳤다. 어떻게 영화와 소설을 접목시켰는지 궁금했던 나는 새로운 장르 개척이라는 저자의 용기있는 도전에 작게나마 힘을 싣고 싶었던 것이다.

‘제이리스트:전달자’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어지럽힌다는 명목으로 영화가 금지된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본청에 근무하고 있는 ‘오 제이 현수’라는 주인공이 불법경로로 영화가 유통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복제물 제이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이내 복제물 제이를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이어져갔다.

영화가 금지된 세상 속에 비춰진 40여 편의 영화장면은 본 적이 있는 영화임에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렇게 낯선 배경과 상황을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머리 속은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처음에는 책의 배경에 심취되어 모르고 있었으나 읽다보면 ‘맞다, 이 장면!’ 이런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던 것. 어떻게 보면 진부한 SF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가진 이 소설의 묘미는 곳곳에 숨어있는 영화장면 찾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무미건조한 문체 속에서 미래 사회의 어둠을 담고 있기에 즐겁고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입하며 정신없이 내달릴만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인간 복제가 가능해진 미래 사회에서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상황. 나 자신조차 사실과 거짓을 구분해 내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 참 나약하게만 보인다. 여느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제이는 매력적이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조차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한없이 약한 존재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결국 현실과 공존하면서 허구와 사실에 연속점에서 창조되는 것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도 진실이 무엇인지 애매하기만 하다. 

영화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하는 나로선 이보다 더 좋은 장르가 없을 것이다. 무비픽션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어떤 매력이 숨어있나 찾는 즐거움도 크다. 공상과학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조금은 진부한 내용이기는 했으나 분명 독자를 책의 마지막까지 이끄는 독특함이 문장 속에 녹아있다. 머리 속으로 바쁘게 영화 장면을 기억해 내려는 억지스러운 상황마저 벌어지는 이 소설의 힘은 예전 좋았던 영화가 생각난다는 점이다. 비단 이곳에서 언급한 영화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무궁무진한 내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일말의 도구로 사용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물론 책에 나온 영화를 따라가기 바쁘겠지만, 책을 덮은 후는 다르지 않는가. 명작들을 다시 보는 재미난 일을 하고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8월 베이징 올림픽으로 세계의 이목을 주목시킨 중국. 그 축제의 한 가운데 우연찮은 계기로 나는 참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중국땅을 밟았고, 그곳 사람들과 눈을 맞췄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들의 선한 눈빛과 친절한 말투에서 예전에 막연하게 듣고 생각하던  중국의 모습과 다름을 느꼈다. 사기치려는 사람들과 지저분한 거리 속에 소매치기가 기승하는 곳은 적어도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느낀 긍정적인 중국인들의 모습은 짧은 단상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기에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한 권으로 읽는 중국인의 실체’는 이러한 부수적인 나의 경험과 함께 좀 더 객관적으로 중국인을 바라볼 기회를 줬다. 막연하지만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중국인들의 진짜 마음은 어떤 것일까. 꽤나 두꺼운 책의 분량에 압박이 심했지만, 한 장씩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주로 저자 콩젠이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일본인과 자신이 자라고 많은 시간 함께 생활했던 중국인들을 비교하고 있었다. 비교하는 방식이 때론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기에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동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저자도 중국인의 본연에 깔린 민족성을 감출 수 없었을 터이니, 다소 편협된 시각도 엿보게 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중국인의 실제 모습을 담으려 애쓴 노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인들의 짝퉁 문화를 소개하는 저자의 솔직함에서 왠지 안도했다고나 할까. 치부로 여겨질 자신들의 단점도 낱낱이 공개하려는 콩젠의 용기에서 어느 정도 객관화된 진실에 가까이하고 있음을 느꼈다. 더구나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서 중국인들을 표현하려 애쓰기에 이 책은 딱히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중국은 혼란의 시기를 넘어 도약의 시기로 나아가고 있는 중임을 느꼈다. 베이징 올림픽을 치루면서 미약하지만 세계인의 마음 속에 그네들의 강렬한 문화를 심게 되었고, 세계 속에 하나되어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이면에 어떤 의도를 깔았건 간에 두 마음을 품고 살지 않는다는 이 책의 저자의 말을 따르자면 중국인들은 대단한 열정가임에 틀림없다. 잘못된 열정은 자칫 화를 부르는 일이 발생하지만, 그들의 정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는 격려를 아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베이징은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때는 지금과 또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되길 기대해 본다.

 

화요일의 동물원.

예전 ‘미술관 옆 동물원’이란 영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기에, 제목만으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빛바랜 기억 너머의 동물원은 마구 뛰어다니다 엄마 손을 놓쳐 울며 찾던 곳, 처음 본 신기한 동물들이 많은 곳, 때론 무섭게 생긴 동물들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려버린 곳이었다. 그곳은 이렇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추억과 함께 내 가슴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다운 풍경이 깃든 동물원을 나는 지금 만나러 간다. 어린 아이와 같은 설렌 마음으로...

오랜만에 만난 동물원은 새롭다. 동물들이 너무나 크게 접사된 모습이기에 낯선 느낌이 강렬한 것이다. 각기 다른 동물들의 표정에서 그네들의 삶이 살짝 엿보는 기분. 바로 이 책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점이다. 더불어 저자는 그것이 인간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짤막한 글로 대신하고 있다. 동물 모습의 사진과 에세이가 절묘하게 들어맞는 부분에서 연거푸 감탄해 본다.

흔히 책이라면 활자를 통해 뜻을 전달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걸로만 한정되어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동물의 표정을 잡아 새로운 방식으로 감흥을 일으킨 여러 권의 책이 나왔다. 그러면서 비단 활자뿐만 아니라 사진, 그림을 통해서도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화요일의 동물원’은 동물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삶의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힘들 때 손 잡아주고, 어려울 때 위로해 주는 따뜻한 배려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만물이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시간에 쫓기다 보면 당연한 진리를 놓치고 사는 순간이 많다. 그리고 어려울 것도 없는 사실이 때론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며 문득 스치는 많은 생각들, 당연하게 여겨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 것들을 나는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껏 내가 걸어왔던 인생의 발자국들을 돌이켜 보는 일을 따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 ‘화요일의 동물원’이 지친 삶에 위안을 주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심스럽게 정의를 내려본다.

“희망이 뭐냐고요?

두려움까지도 꼭 껴안고 놓지 않는 거죠.” 

                                      ---두려움 뒤에는 희망, 6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