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중에서,

 

[한때 그는 용기를 다르게 상상했다. 어렸을 적 그는 용을 잡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그렸었다. 지금 그는 새로운 그림을 가졌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헬리콥터 안에서의 짧은 순간, 그리고 그 뒤로도 가끔씩 우리의 영웅벤은 이 과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연습을 꺼리는 것은 이 감정과 관련한 초기 경험과 관계가 있다. 우리르 최초로 사랑해준 사람들은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그만큼 되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받지 쉬운 면이나 불안들, 욕구들을 내비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연인으로서보다는 부모로서 알맞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좋은 의도로부터 가장 복잡한 결과를 낳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다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성인이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처음 읽는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바늘로 찌르듯이 설명할까.

"연인들"을 읽을 때는 연인들의 풋풋한 시작부터 행복의 절정에 다다르는 사랑, 차분하게 이별하는 연애기를 읽는 느낌이었다면, "한 남자"는 결혼 후 남자가 느끼는 감정과 그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고민들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내게는 "연인들"은 내가 겪어본 감정, "한남자"는 내가 걱정하고 있는 미래의 경험이었다. 내가 불안해 하고 걱정하는 부분들을 주인공은 똑같이 불안하고 걱정했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연애 시절의 사랑과 결혼 후의 사랑이 달라졌으며,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연애 시절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사회인으로서 몰지각한 사람으로 보일까 아내에게마저 조심스러우면서도, 욕망이 불타는 사랑과 평정이 유지되어야 하는 가정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그는 마침내 사람들이 말하는 용기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가 배워왔던 용기라는 것이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을 지키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사랑 역시 일처럼 연습이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생각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대단한 과제를 멋있게 해결할때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일들을 동료들과 어떻게 원만하게 푸느냐는 것이었고, 사랑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과 연인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혼돈하는 것이었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 용기있는 자가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고, 공주와는 항상 불타는 사랑을 하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싶은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 겠지.

 

실제로 어른들의 삶은 어린아이의 생각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평정심을 연습하는 삶이겠지. 이런 모든 생각들을 무척이나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나처럼.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U.S.J 는 토요일이라 무척 사람이 많았다. 한가지를 타거나 구경하는데 적어도 한시간 이상씩 줄은 서야 했다. 비록 나는 여행자라 시간도 많고 기분도 느긋해서 여유롭게 사진을 구경하며 기다렸는데, 습기가 많은 날씨에 앉아서 기다리지도 못해 힘들었던건 사실이었다.

줄을 한참서면서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냥 놀이기구에 탑승했다.

저 사람들은 왜 앞으로 가지 ? 친구에게 물어봤지만 우리는 서로 갸우뚱 할 뿐 이유를 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되었다.

U.S.J, U.S.H 에서는 요금을 좀 더 지불하면 새치기를 가능하게 하는 혜택을 준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당당히 돈을 더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지만, 기다리는 입장에선 다른 사람들을 전혀 고려 하지 않는 새치기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돈 앞에선 어떤 이유든지 타당해진다. 나 역시 다음에는 나도 돈을 더 내고 앞으로 가야지 라고 생각했으니.

그 사실을 알고나자 그 때 기분좋게 기다렸던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 알면서도 기다렸다면, 나는 뭔지 모를 허탈함과 자괴감이 들었을 것 같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분명 바른생활이라 배웠던 줄서기를 지키고 있으면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는것.

"바르다"라는 행동을 하면서 이건 더이상 "바른 일이 아닌 바보 같은 일 " 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일은 따라오는 혜택이 없다. 단지 수준 높은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자존감,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고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만이 따라올 뿐이다. 이런 마음조차 너무 과분해라며 아무 감동도 느끼지 않고 도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기부를 할때에도 내가 한 일로 도움받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감동하는 맛(?)에 계속된 기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너무나 바보같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 바쁜 세상에, 줄서는 시간이 어딨나며, 저 사람들은 나보다 바쁘지 않거나, 돈이 없거나 하니 그렇지. 전혀 죄책감없이 조금 더 지불하는 돈은 죄책감을 상쇄시키고 오히려 행동을 타당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이 된다.

앞서 읽었던 코너 우드먼의 자본주의.. 책이 생각이 났다.

이 음료를 구입하면 당신은 저 멀리 아프리카 죽어가는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립니다 ! 라는 문구에 파리가 붙은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찍어 음료 광고 옆에 붙여놓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 대형 브랜드, 시간 없으시죠 ? 돈을 조금 더 내세요 우리는 이런 선진문화를 가지고 있답니다 라며 어린 아이들이 많은 장소에서 돈을 더 많이 내면 기다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놀이동산.

우리가 앞으로 사는 사회는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인가.

나는 초등학생 때 바른생활과 대학생 때 과학기술과 도덕이란 과목을 좋아했다.

쉬웠다. 지키기만 하면 되니까.

나이를 먹어가며, 사회에 젖어가며, 이 두 과목은 살면서 지키기 가장 어려운 과목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두과목을 잘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높은 의식수준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게는 이런 높은 의식 수준이 가능할까?

 

도덕은 다른게 없이 한가지만 기억하면 되는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것'

덕을 쌓는다는 건 특별히 좋은 일을 많이 하는것보다 하고싶은 일을 억제하는 것이 아닐까.

코너 우드먼의 두번째 책,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를 읽었다.

 

첫번째 여행에서 저자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경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살기위해 사고 파는 것을 경험했다. 방법은 이 나라에서 구매한 어떤 물건에 값을 더 매겨 다른 나라로 가서 파는 기본적인 상술인데, 그는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경제의 힘이 수많은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노련한 상인들을 통해서 아직도 이루어 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러한 고전적인 방법이 전 세계 시장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두번 째 여행에서 코너 우드먼은, 과연 우리가 믿고 쓰는 브랜드가 얼마나 공정한 거래를 통해 우리의 손으로 상품을 건내어 주는 것인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얼마 전 이마트에 입점한 스타벅스를 지나치면서,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블랙빈이 추가된 음료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그린티 프라푸치노도 좋아하고 블랙빈도 좋아해서 맛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걸 마시면 어떤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자금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글귀를 보았다. 막상 마시지는 않았지만, 구매했다면 나는 시원한 음료와 함께 뭔지 모를 뿌듯한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타미라는 신발 브랜드는, 구매하면 ~%를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구호 작업에 기여한다는 광고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심플한 플랫 구두를 1분마다 몇 켤레씩 팔았고, 명품 신발을 사는 것보다 타미를 사면 뭔가 더 개념있는 사회인으로 인정받는 느낌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었다.

 

어떤 유명한 한 연예인은 자신이 한달 삼만원으로 어린 아이를 후원하는 제도를 도입한 단체에 가입하면서, 삶의 질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선사해주어, 요즘은 다른 나라의 한 어린이를 후원하는 시스템이 유행처럼 번져 이들을 돕고 있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수 있게 되었다.

 

모든게 나쁜걸까 ? 아니다. 모두 좋은 의도이고 모두가 좋은 일에 앞장서지 못하지만 참여 하고픈 마음으로 돕고자 하는 따뜻함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마음들을 가지고 정말 뜻깊은 일을 전달하는 손은 정말 깨끗한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는 유명 브랜들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본적이 있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해당하는 브랜드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정보를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객은 까다롭지만 소비자는 단순하다. 조금만 입맛에 맞추어주면 그 외 세부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바람처럼 휩쓸리는 것이 소비자구나, 나의 그런 무지함 때문에 오늘도 생명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희망이 존재한다.

해서는 안될 사업에 저항하여, 아직은 작지만 희망찬 움직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나 역시 '공정' 이라는 단어를 좀 더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뽑아든 책은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돈은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위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새겨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