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 우먼을 읽은 지는 한달 정도 지났는데, 리뷰는 이제서야 쓰게되었다.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을 때보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이 훨씬 아련하게 남는 소설이었다.

고학력에 젊고 능력있는 에일리아는 같은 직장의 상사인 잭과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잭은 가정이 있고, 둘은 불륜이라는 관계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된다. 잭에게는 아들 윌리엄이 있는데, 윌리엄은 보모와 에일리아, 친엄마의 보호아래 생활을 한다. 에일리아는 윌리엄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미 에일리아,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이해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을 열기는 쉽기가 않고 매번 상황이 꼬인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윌리엄이 감기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면, 모든게 그녀의 잘못이 된다. 에일리아가 낳은 아기의 사망으로 인해 그녀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지게 되고 윌리엄과 전처가 더욱 부담스럽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잔잔하지만 감정표현이 섬세하게 그려진 영화일 것이라 예상이 되었다. 책은 여성작가 특유의 조심스러움과 섬세함으로 복잡한 에일리아의 감정을 선명하게 그려내었다. 나의 상황은 아니지만, 부족함없는 에일리아가 겪는 아픔과 가족들간의 갈등들이, 그리 평범하진 않더라도 누구난 겪는 갈등과 아픔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과, 수십년을 따로 살다가 만난 사람들이 공존하는 특이하고 신기한 공동체이다. 직장, 취미활동, 학원 등 우리는 공동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고 만나지만, 개인적으로 가족이야말로 관계와 갈등을 제대로 겪을 수 있는 공동체란 생각이 든다. 

에일리아는 잭과 윌리엄을 사랑하지만, 가끔 어쩔 수 없는 질투와 외로움을 느낀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왠지 이해되었다. 유부남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던 불같은 사랑과, 윌리엄을 보면서 자신과 잭의 아이를 낳고 싶었던 마음, 아이가 없어진 것이 윌리엄 탓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미움과 질투, 무시할 수 없는 전처에 대한 열등감과 그러나 또 다시 사랑하는 아들 윌리엄.. 수많은 갈등과 슬픔을 겪어내며 그녀는 마침내 잭과 윌리엄과 그녀 세 사람이 가지는 가족의 의미를 깨달았다.

항상 삶에서 어떤 의미를 깨달을 때에는 시간이라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거나, 안된다고 좌절하는 시간의 반복이 계속되면 어느새 갈등이 풀리고 모든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내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가면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친구들과의 갈등, 가족들에게 미안함, 결혼과 남자친구, 직장 동료 복잡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는 나이지만, 이 모든것이 그대로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면 나도모르게 안정되어 있는 주변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적 읽었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약 10년이 지나고 다시 집어들었다.

윤동주의 이야기를 읽고나서, 중학교시절 접했던 고전문학을 다시 읽고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한자, 한 문장이 깊이감있는 문학작품들은 어릴적에는 그저 베베꼬인 말로 쓰여진 지겨운 글에 지나지 않았는데, 10년이 훌쩍지나 어느덧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로 다시 접하니, 그 가치로움이 새삼 느껴졌다.

편지형태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 책의 내용은,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사랑에 빠지는 감정,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드리기 힘든 절규, 현실을 직시하고 단념하고자 하는 이성, 로테의 약혼자를 존경하면서도 미워하는 이중성이 복잡하게 나열되어 있다.

중학생이 이런 감정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했을까. 그러니 재미가 없을 수 밖에.

현실을 잘 알면서도 감정에 치우치는 지금의 나도 아직 잘 모든 감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시절 이런 소설의 한 대목을 두고 저자의 감성과 글을 쓴 목적을 묻는 교육이 무슨 가치가 있을지 다시 한번 의문스러웠다.

소설의 첫부분에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나며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지날 수록 로테의 상냥함과 따뜻함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로테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베르테르는 늠름하고 남자다운 약혼자 역시 좋은 사람이라며 존경의 뜻을 표한다. 하지만 로테에 대한 마음이 깊어질 수록, 베르테르는 약혼자에 대한 질투심과 심한 절망감, 자괴감을 느낀다. 요즘 시대라면 어땠을까. 연애, 약혼, 심지어 결혼이라는 것까지 쉽게 번복할 수 있는 요즈음에는, 약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토록 절망하여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드는 주인공의 삶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당시, 괴테는 유부녀를 사랑하다가 실제로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와, 실연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니 믿기 힘든, 주인공의 나약한 정신력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그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생각인것 같다. 그 정도로 당시에는 서로 형식을 갖춘 만남에 대한 신뢰와 서약의 중요성이 지금보다 몇만배는 컸던 것이다.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삶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믿음이 너무나 쉽게 깨어지고, 서약의 불꽃이 한순간에 힘없이 사라지는 요즘시대에 우리가 느껴야할 믿음과 중요성이 아닐까.

비록 젊은 베르테르는 죽음이라는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의 슬픔을 남겼지만, 그의 사랑과 그 방법에는 내가 배워야할 진중한 면들이 많아 다시금 생각을 깊어지게 했다.

 

 

두번째 정이현 작가의 소설이었다.

사랑과 기초의 '연인들'은 임팩트는 없으나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가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이 소설을 그 뒤에 읽었으나, 알고 있기론 달콤한 나의 도시가 이전에 쓰여졌고, 정이현 작가를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리게 했던 작품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머 그냥 30대 커리어우먼들의 시크하고 가벼운 연애 이야기 쯤으로 생각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읽으면서 집중되었고 한번씩은 심장을 콕콕 찔렀다.

 

나는 사랑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 항상 궁금하고 어렵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안되는가,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안되는가, 여러사람을 만나는건 나쁜것인가, 직업은 어느정도가 적당할까, 가족관계는 어떤게 좋을까. 결혼은 나보다 1.5배 나은 사람과 하는것이 손해도 안보고 무시당하지도 않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며 0.5의 기준을 무엇일까. 사랑은 무작정 하는것이나 결혼은 점수를 재야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은 다를 수 있는 것일까. 누구나 하는 이런 고민들을 가끔 해보기도 하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머리 복잡하다고 털어버리기도 하면서, 나는 서서히 사랑을 배우고 있다.

 

서른이 지난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좋은 남자를 만나면서도 미래를 걱정하고,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면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것에 걱정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자의든 타의든 사랑과 이별을 반복했다. 나는 아직 그런 확신이 없는 생각들이 어지러운데, 그래서 조금 결혼을 천천히 생각하고 싶은데, 누군가는 그게 옳다고 하고, 누군가는 촉박하다고 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공감 되었다. 처음에 혼자로 등장했듯이, 마지막도 역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감정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주인공은 이것이 즐기고 있는 것인지,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완벽한 사람이란 것은 없는데,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해 할 수 있는 찰흙같은 적응력을 가진 나를 만드는 시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