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산티아고 900km를 걸으면서 여정과 그 동안 살아온 나날을 정리하는 생각들을 담은 책.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40세를 넘기고 타인이 보기엔 안정적인 삶을 구축하여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작가는, 문득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변화시켜보려 긴 여정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자신도 900km를 그냥 걷기만 하는 여정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가늠하지 못하고 무작정 떠났지만, 완주 후에는 그보다 값진 얻음은 없었노라라고 이야기했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하여 몇 일만에 완주 하겠다는 계획은 겪어보니 헛수고였다. 맑은 날이 있고, 비오는 날이 있고, 바람많은 날이 있고, 눈오는 날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의 컨디션이 다르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떤 숙소에서 머물게 될지 몰라 어떤 날은 계획보다 더 많이 걷는 날이, 어떤 날은 계획에 터무니 없이 덜 걷는 날이 있었다는 것이다. 목표지점이 뚜렷하고,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조금 빠르거나 느릴지라도 그건 목표달성에 있어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느릴 지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어나가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훌쩍 떠나와 무작정 걷고 보니, 완주 했을 때에는 몸무게가 10kg정도 빠져 있더란다. 그것은 삶의 무게, 그동안 흘린 눈물의 무게라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 얼마나 큰 응어리가 가슴속에 담겨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걷는 동안 무척 많은 눈물을 흘렸다. 육체의 고달픔을 핑계로 애써 참아왔던 가슴 속 여림을 터뜨렸을 것이다.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잡아왔던 것들을 툭 내던져 버렸을 때의 후련함 섭섭함일까 ?
작가가 만난 사람들 중 혼자 산티아고 길을 걷던 프랑스인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집은 프랑스에 있지만 여기저기 걷는 것을 좋아해서 일년동안 집에 있는 날보다 떠도는 날이 더 많다는 할머니는, 산티아고 걷는 길에 들른 카페에서도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다른 반찬 없이 그것도 걷던 길에서 향이 좋아 뜯었다는 허브잎을 잘게 부셔 밥에 섞어 먹으며 한술 뜰 것을 권유했다는 모습. 내가 본 것이 아닌데 할머니의 얼굴과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무 욕심이 없는 모습, 그저 자연이 만든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소박함, 처음 본 사람에게 볼품없지만 자신이 가진것을 나누려는 친절. 나이가 들었을 때 내가 가지고픈 미래상 이었다.
70년을 사는 솔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40년을 살고나서 더이상 살수 없는 솔개는, 뭉툭해진 부리를 쪼아 빠지게 한 다음 새 부리가 나면 발톱을 뽑아내고, 발톱이 나면 깃털을 하나하나 뽑는 6개월의 고통의 시간을 견딘 뒤 새로운 솔개로 태어나 30년을 더 산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하고, 짧은 시간에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면 그 대가로 불안과 질투를 얻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삶의 긴 여정을 바라보고 매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때로는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겪어내면서, 외롭지만 멈출 수 없는 나만의 여행기를 만들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