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노트북 형태로 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지구 항목에는 고작 '대체로 무해함'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두꺼운 책에도 비슷한 표현을 쓸 수 있겠네요. 사실 제가 6권 세트를 먼저 읽어보고, 선물로 주기 위해서 합본을 구입했는데 - 선물받은 친구가 두께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이게 뭐냐고 비명을 질렀지만 뭐, 대체로 무해합니다. 표지도 따로따로 된 것 보다 예쁘고, 소장 가치도 있을 것 같네요.

단점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각이 좀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것? 도대체가 진지한 것은 거의 -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 없고 가끔은 이야기가 엉뚱한 진창으로 빠져서 허우적대니 기분이 확 나빠지려 하다가도, 말이 안되는 우연과 기가 막힌 상상력에는 또 감탄하게 되고 말이죠.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이 '42'라는 대목에서는 눈물 쏙 빼도록 웃어 제꼈습니다. 이런 황당하고 유쾌하면서 질 나쁜 농담을 만들어 내다니, 어쩌겠어요. 그러려니 해야지.

배송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우왕ㅋ굳! 인터넷으로 뭘 주문해서 이렇게 빨리 받아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치 우주에서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어이없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다른 책과 함께 주문했는데, 이 아이들만 작은 전용 상자에 담겨서 커다란 스티커로 싹 포장되어 있더군요. 어쩐지 그렇게 완벽에 가까운 상자를 뜯는다는 게 바보짓처럼 여겨져서, 그냥 그대로 둘까 하는 충동에 휩싸였지만 - 과감하게 스티커를 찢어 발기고 책들을 꺼내 보았습니다. 깨끗하고, 글자도 크고, 작가가 대충 수다를 떨어 놓은 서문도 마음에 들어서 가슴이 뛰네요. (한마디로 아직 서문만 읽었다는 한심한 이야기) 이 책 다섯 권만 있으면 은하계 히치 하이킹도 문제 없는 것입니까? ......확인 후에 지구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