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 절약한 것이, 내일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것이다.

 니어링 니어링, 발음도 좋지. 오래 '지속 가능'했던 니어링 부부의 생활 방식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 절제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강의하고, 여행하고, 소소한 잔치를 벌이고 사랑하고! 멋지다! 진짜 고집있는 이상주의자라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는가.

 아무튼 다양한 책을 통해 이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지금까지 읽어 온 니어링 저서 중 나와 가장 '안' 맞는 책이다. 일단 남의 글 인용이 대부분이고, 그야말로 주제에 밀착한 '요리책'이다 보니 뭔갈 느끼기도 어려웠다.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긴 했는데, 이 중 몇개나 만들어 먹어볼 수 있을지. 헬렌 니어링조차 남의 요리법 보고 요릴 안하는 판에 말이야. 후훗.

 게다가 고기와 양념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늘 '소박한 밥상'을 차릴 수도 없다. 대신, 요리할 시간을 줄여서 번 시간으로 남편과 함께 책읽고 토론하고 일하고 삶의 터전을 가꾸는 건 얼마든지 할 생각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ㅁ 발췌 ㅁ

 

	적은 돈으로 사는 남자라면 식사도 소박하게 하라. 아내가 한 끼에 대여섯 가지의 음식을 준비하는 노고가 얼마나 큰지 알도록 하라. 푸짐한 한 가지 음식이 먹을 만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경제에도 더 보탬이 되는 것을 - 적은 돈으로 사는 방법 ways of living on small means  나는 음식을 식도로 넘겨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을 놓고 야단법석을 떠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 20세는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때 twenty is the greatest time in any man's life  기발한 착상을 갖고 도마질을 하며 온종일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결국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어 생을 마감하게 할 뿐이다. - 영양에 대하여 the boke of nurture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영양을 내자. 몸엔 비타민, 무기질, 단백질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고 적절한 식사법을 알아내서 꾸준히 실천하자.  나는 사람들을 먹이는 일을 아주 단순화해서, 먹는 시간보다 준비하고 만드는 시간이 덜 걸리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합리적인 식사의 요건이 될 것이다. 30분이나 한 시간 식사를 한다면, 음식 준비에 그만큼의 (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만 들이라. 소박한 음식으로 소박하게 사는 데 한결 가까워질 것이다.  굽기, 튀기기를 생략하면 냄비와 팬을 끝없이 닦아야 하는 고역도 줄어든다. 접시나 그릇 하나로 먹자. 음식 준비뿐 아니라 불필요한 도구와 그릇의 사용도 과감히 줄이자.  맛보다는 영양가가 우선이다.  우리 집 메뉴는 간단하지만, 매일의 패턴은 다양하다. 아침에는 과일 또는 과일 주스와 직접 키운 허브를 우린 차를 마신다. 점심 때는 야 채 수프에 삶은 곡물, 땅콩버터, 꿀, 사과를 곁들인다. 저녁에는 샐러드와 채소밭에서 따온 야채요리, 과일을 디저트로 먹는다. 매일 다른 수프를 준비할 수도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덤덤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여성이 지킬 자리가 반드시 부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요리의 즐거움을 만끽하라. 하지만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다. 나는, 요리에는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든지 음악이나 책에 몰두하고 싶다.  조리한 콩에서는 새싹이 트지 않는다. 조리는 파괴하는 것이요, 재로 만드는 것이다. 죽은 음식, 화장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반면 생과일과 생 야채는 햇빛으로 익힌 살아 있는 음식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조직으로 구성된 산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물 속의 살아 있는 조직과 인체의 조직 세포가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면, 건강을 주는 힘이 생긴다.  분명 인간은 육식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송곳니와 굽은 갈퀴가 있어야 먹이를 잡아서 찢을 수 있는데 인간은 그런 것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부드러운 손은 과일과 야채를 따기에 적당하고, 치아는 그것을 씹어 삼키기에 적당하다. - 존 레이, 본초론 historia plantarum  2차 세계대전 중 덴마크에서 긴급 배급을 시행하면서 1년간 고기를 배급하지 않았다. 그 해 덴마크는 세계 최저 사망률을 기록했고, 발병률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하지만 이듬해 다시 고기를 먹게 되자, 전쟁 전의 사망률과 발병률로 환원되었다.  동물 가운데 가장 강인한 축에 드는 황소, 코끼리, 고릴라, 하마는 모두 채식 동물이다. 낙타 역시 채식만 하는데, 인내심은 동물 중 으뜸이다. 말과 사슴 역시 뛰는 속도로 보면 동물 가운데 단연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우리는 동물을 인간의 노예로 만든다. 또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해서 동물의 노예가 된다. 목축업자, 우유 짜는 이, 양치기, 목동, 농부, 도살자 모두 가축의 시중을 드는 일에 관련된 노동을 한다. 키우고 돌보는 데 쓰는 시간과 노력을 더 나은 인간을 키우고 돌보는 데 쓰면 좋으련만.  "웨이터! 순대 좀 가져와요!" 라고 앨리스가 외쳤다. 앨리스는 한 조각 잘라서 레드 퀸에게 주었다. 그러자 순대가 말했다. "뻔뻔하기는! 내가 당신을 자른다면 당신이 얼마나 좋아할지 궁금하군!" - 루이스 캐럴, 거울을 통해서 through the looking glass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 bengamin britten이 <똑같이 해주리? Tit for tat?>라는 곡을 썼는데, 가사는 참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채식인 회의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물고기를 잡아 봤나, 톰 노디? 흐느끼는 토끼를 올가미로 잡은 적 있나? 산토끼 토끼야를 부르면서 불쌍한 토끼에게 총질을 해 봤나? 아니면 공중의 눈먼 새를 쏘아 보았나? 초목 우거진 숲을 살인자처럼 뚜벅뚜벅 걸어 깊고 좁은 골짜기를 지날 때 작은 생물이 자연에게 비명 지르는 소리를 들었나? "그가 온다! 달아나라! 달아나! 저기 그가 온다!" 나도 몹시 궁금하다네, 톰 노디. 그대 돌아다닐 때 도깨비가 가느다란 얼굴을 숙이고서 그대를 집으로 끌고 갈는지, 울타리를 넘어, 그대 무릎을 총으로 찌르며 그대 머리를 매달고서 말이지. 톰 노디, 그대를 고리에 꿰어서 차가운 선반에 걸어 놓을지, 거기서 그대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겠지, 그대 몸이 요리될 때까지!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할지라도, 남들처럼 먹으면서 살 필요는 없다 - 헨리 반 다이크, 인생이라는 학교 The school of life  인스턴트 음식은 좋은 먹을 거리가 될 수 없다. 이런 만화를 봤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우주선이 내리고 거기서 작은 초록 인간들이 내린다. 대장은 "이 혹성이 지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도록. 여기서는 숨을 쉬지도, 물을 마시지도, 인스턴트 식품을 먹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영양과 맛이 형편없는 걸레 같은 야채, 가루를 물에 녹여 만든 뒤 다시 냉동한 감자, 엄마라면 전혀 그렇게 만들지 않을 '엄마 손' 파이 등이 냉동 식품으로 팔린다. 아무리 솜씨가 없는 어머니라도 그 따위 음식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인스턴트 찌꺼기, 음식 범죄  정크 푸드를 먹는 사람은 온전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난 사람이고 맛의 유행을 좇는 사람.  아침 식사 breakfast 로 금식을 깬다 break fast  아침 식탁에 모일 때 어머니, 아버지, 자녀 모두 행복한 마음이어야 한다. 그것은 겸손한 감사의 원천이어야 하며, 우리의 가장 따뜻한 품성을 깨워 줘야 한다. 심술궂은 기분으로 식탁에 오지 않는 것을 습관으로 하라.  -솔론 로빈슨, 농부를 위한 사실들 facts for farmers  우리는 소로우의 "가장 좋은 아침 식사는 아침 공기와 긴 산책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줄기에서 갓 따서 향기롭고 맛 좋은 딸기 한 바구니 보다 더 우아한 아침 식사를 어찌 준비할 수 있을까. 이처럼 모든 것을 윤택하게 창조한 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는 은혜로운 식사가 또 어디 있을까. 이것저것 섞어 뜨겁고 기름진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가족에게 이렇게 간단하고 영양가 있고 시원하고 건강에 좋으며 철학적인 음식을 먹이는 이 운 좋은 이웃을 질투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 윌리엄 A. 앨코트, 젊은 가정 주부 the young housekeeper  내 생각에 훌륭한 수프는 모두 다진 양파를 기름에 볶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갈색이 도는 수프를 만들려면 기름에 양파나 마늘을 볶고, 다진 야채와 허브를 넣어 기름이 흡수되고 야채가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다. 거기에 끓는 물을 (사용한 야채 분량의 3배쯤) 부으면 수프가 된다. 내 비법은 처음과 마지막에 양파를 넣는 것이다. 먼저 양파를 기름에 볶는 사이 야채들을 자르고, 불을 끄기 5분 전 다진 생양파를 뿌리는 것으로 요리를 마친다. 매일 야채 수프 버터나 식용유 2-3 큰술 양파 다진 것 3개 감자 껍질 벗겨 깍둑 썰기 4개 당근 얇게 저민 것 4개 무 깍둑 썰기 2개 양배추 잘게 찢거나 다진 것 4분의 1통 토마토 주스 4컵 다진 파슬리나 골파 1컵  큰 냄비에 버터 or 식용유를 녹인 다음 양파를 넣고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볶는다. 야채를 넣고, 재료가 잠기게 물을 붇는다. 감자, 무가 익을 때까지 한 30분쯤 끓인다. 토마토 주스를 넣고, 수프 전체가 뜨거워질 때까지 가열한다. 다진 파슬리나 골파를 뿌려 상에 낸다.  기본적으로 야채를 준비, 조리하는 기술은 다음과 같다. 1. 다듬고 씻기. 나는 개수대나 식탁에 신문지를 펴고 야채를 다듬는다. 흙이나 자른 부분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퇴비더미에 던진다. 신문지를 재활용하고, 개수대와 하수구를 깨끗이 쓸 수 있으니 환경 보호에도 좋다.  잎이 있는 야채는 가능하면 흐르는 물에 씻는다. 야채를 오랫동안 물에 담그면 안 된다. 잎을 툭툭 털어 곧장 체에 받치거나 냄비에 담는다. 당근이나 감자는 물에 담근 채 손이나 솔로 흙을 씻어낸다. 2. 껍질 벗기기. 반드시 필요할 경우에만 벗긴다. 비타민은 껍질 바로 아래 있다. 가능하면 통째로 조리하는 게 좋다. 3. 냉수나 끓는 물의 양 조절. 야채는 물 속에 푹 담그면 안 된다. 가능하면 자체의 수분으로 익힌다. 기슴치, 양배추, 케일, 비트, 겨자잎, 근대, 무청은 두툼한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어 찌면, 잎의 수분만으로도 조리가 된다. 4. 적절한 온도로 적당한 시간 익히기 - 감자요리비법 뜨거운 물에 15분 간 삶은 다음 구우면 시간이 절반은 절약되고 훨씬  먹기 좋다.  오래 보관한 감자는 찬물에 넣고, 햇감자는 끓는 물에 넣는 것으로 조리를 시작한다. 물이 끓으면 따라내 수프 국물로 쓴다. 물을 넣지 않은 냄비에 버터를 넣고 삶은 감자를 넣는다. 뚜껑을 덮어 아주 약한 불에 올려 둔다.  작은 햇감자는 껍질을 벗기든 껍질째 굽든 오븐에서 꺼내 사우어 크림을 발라 먹는다. 아니면 차게 식혀 사우어 크림을 발라 먹어도 좋다.  양념은 요리사에게 결점이다. 어느 19세기 저술가는 "양념은 형편없는 요리의 피난처"라고 말했다.  실력 있는 요리사라면 요리의 결점을 감추는 향신료와 양념의 과도한 사용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요크셔의 농부는 도시에서 온 화장을 많이 한 부인을 보고 "퇴비가 저렇게 많이 필요한 걸 보니 척박한 땅인가 보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낭비한다고 관대한 게 아니듯, 절약한다고 해서 인색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이라고 해서 음식의 양도 적고 다양성도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알뜰한 것은 현명하게 구입하고, 잘 만들고, 남은 재료가 보기 좋게 식탁에 다시 나오는 것을 뜻한다. - 크리스틴 터훈 헤릭, 살림을 쉽게 Housekeeping made easy  절약을 가리켜 호사스런 검소함이라고 표현했다. 아껴 사는 가정이라고 해서 상스럽거나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오늘 절약한 것이, 내일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것이다.  무기력하게 한숨 지으며 연료와 식품비가 올랐다고 징징대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필품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 용감하게 적응하자. 연료와 식품비가 10년 전보다 두 배로 뛰었지만, 어떻게 각각 두 배로 절약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지 두고 보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 의무이다. - 레이디 바커, 요리 기본 원칙의 첫 번째 교훈 First lessons in the principles of cooking    빵은 무거운 음식이다.  모든 페이스트리는 혐오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페이스트리를 삼키고 한 시간 후 뱃속을 볼 수 있다면, 뱃속에 든 반죽 덩어리를 보게 될 것이다. ...체리 파이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은 버리는 것이다. - 윌리엄 A. 앨코트, 젊은 어머니 The young motter  굽는 음식은 보통 생명력 없는 것들을 섞은 덩어리다. 빻고 도정한 곡물과 소금, 이스트, 베이킹파우더를 섞어 오븐에 넣고 죽을 때까지 굽는다. 버터, 치즈, 잼, 꿀, 마요네즈 등이 뒤범벅되어 건강에 좋지 않다. 첨가물 없이, 빵 말고 아삭아삭한 샐러리나 래디시, 사과를 먹으면 안 될까?  중세의 가장 치명적인 병은 나병이나 성 안토니오열이 아니라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신체 물질대사가 잘 안 되는 데서 발생했다. - E. 파말리 프렌티스, 기근의 역사 Hunger and history  젤리, 커스터드, 트라이플과 미각에 쓸모없는 끝없는 예쁜 것들의 장난 - 닥터 윌리엄 키치너, 요리사의 경전 The cook's oracle  어느 귀족이 '당신네 철학자들도 진미를 먹습니까?'라고 트집을 잡자, 철학자 데카르트는 '신이 좋은 것을 바보들만을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쓰고 시고 짜고 맵고 얼큰하고 메마르고 화기가 너무 강한 열정적인 음식들은 통증을 일으키고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생기와 에너지, 활기, 건강, 기쁨과 유쾌함을 주는, 담백하고 심심하면서 실속 있고 먹을 만한 음식이 순수한 사람들에게 좋다 - 고대 인도 경전  양념은 거짓 허기를 유발한다.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든다.  당근, 비트, 사과 음료  당근과 사과를 잘 씻어서 길쭉하게 자르고, 비트는 껍질을 벗긴다. 이걸 주서기에 넣어 주스를 만든 다음 물병에 담으면 세상에서 가장 맛 좋고 영양가 높고 훌륭한 주스가 된다. 일주일에 한 번, 24시간 동안 금식한 후 일요일 저녁 식사 때 팝콘에 이 음료를 곁들인다.  들장미 열매가 주홍색을 띠고 단단하면 수확한다. 반으로 잘라서 칼이나 뾰족한 숟가락으로 씨앗을 빼낸다. (지루한 작업이니,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책을 읽어 주거나 음악을 연주해 줘야 한다)  들장미 열매즙은 아주 맛이 좋아서 나는 '요정 음식'이라고 이름 붙이고, 작은 잔에 담아 술처럼 상에 올린다. 여기엔 신선한 오렌지 주스 수십 배의 비타민 C가 들어있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며 노래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나라'가 들어간 책 두 권을 동시에 읽었다.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의 나라 없는 사람(A man without a country), 그리고 먼저 올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라 없는 사람이 왜 나라가 없는 사람인지는 책 중간에 나온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메시지도 비슷하다. '신중하게 살아라' 하는 경고, 인간에 대한 회의, 냉소적이고 직접적인 유머 (아, 이건 코맥 매카시와 다른 점),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낙관.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의사의 일화는 분명 황당한 비극이지만 그래도 인간이 멍청이들에 맞서 어떤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 현명해지자!

 책은 작다. 게다가 하드 커버가 책 두께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얇고, 그림도 넉넉히 들어가 있고, 문체는 활기차다. 내용도 마음에 드는데 특히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내가 어려서부터 생각해온 것과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대가족에 대한 로망도 새삼 부풀어오른다.

 내가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읽기 전과 읽고난 후의 내가 달라졌다고 느끼게 해주는 책', '발췌하고 싶은 문장이 가득한 책' 뭐 이런 건데, 그런 의미에서 아주 잘 읽은 책이다.

 

나라 없는 사람_커트 보네거트
A man without a country_Kurt vonnegut

선이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천사들이 마피아들과 함께 전선을 조직해 맞설 수 있다면!

어린 시절 내내 코미디에 귀를 기울이면서 출연자들이 어떤 농담을 하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맹세컨대 웃음은 안도를 갈구하는 영혼의 산물이다.

유머는 두령룸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사람이 좌절했을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반응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웃음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몇 년 전 재미난 TV 시리즈를 집필할 때였다. 우리는 매회 방영분에 기본적으로 죽음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죽음이라는 요소가 웃음의 불씨를 키운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박장대소했다.

얄팍한 웃음도 있다. 곤란한 주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얄팍한 코미디. 그에 비해 로렐과 하디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게 만든다. 그들의 농담에는 뭔가 뼈아픈 비극이 배어 있다.

아주 간단한 농담이라도 그 근원에는 두려움의 가시가 감춰져 있다. 예를 들어 '새똥 속에 든 흰 것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지면 방청객들은 순간 학교에서 시험이라도 보는 양 바보 같은 대답을 해선 안 된다는 두려우메 빠진다. "그것도 새똥이죠"라는 답을 들으면 반사적인 두려움은 웃음으로 바뀐다. 그건 결국 시험이 아니었던 게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주 합리적으로 보여서 우리 모두가 긴장 속에 사는 대신, 그렇다,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지어냈다. 덕분에 사람들은 모두 잘 지냈고 비참한 세상은 낙원이 되었다.

나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인 앰브로즈 비어스의 '아울 크릭 다리에서 생긴 일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을 읽지 않은 사람을 얼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프랑스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를 읽지 않은 이를 얼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위대한 책을 한 구절만 음미해보자. 토크빌은 백육십구 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 중 우리 미국에서만 돈에 대한 애착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한다고. 지금이라고 달라진 게 있을까?

백경, 허클베리 핀, 무기여 잘 있거라, 주홍 글씨, 붉은 무공 훈장 , 일리아드, 성서, 그리고 라이트 연대의 공격 (알프레드 테니슨)을 비롯한 인류의 위대한 문학은 모두 인간이란 얼마나 허접한 존재인가를 다룬다(이런 얘기를 남의 입으로 듣다니 퍽 다행스럽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히 망가뜨렸다.

미국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나처럼 담수인으로 분류된다... 우리 팀, 파이팅!

기독교라는 말이 사악하지 않다면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사실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똑같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어느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실현하고자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 그러나 마르크스가 그 말을 했던 1844년 당시, 아편과 아편 추출물은 누구나 복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진통제였다. 마르크스 자신도 아편을 복용한 적이 있다. 그는 아편을 먹고 통증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자 대단히 고마워했다. 마르크스는 그저 종교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지 그걸 비난하려던게 아니었다. 금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설명이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해 사회주의자들은 종교와 신을 부정하는 불쾌한 종자들이라고 주장해왔다.

촌뜨기 이상주의자, 파워스 햅굿. 그는 이 나라에 경제적 정의가 더 광범위하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좋은 나라를 원했다. 그뿐이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후 햅굿은 탄광 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자 형제들에게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를 결성하자고 주장했다. 또 1927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무정부주의자 니콜라 새코와 바살러미오 반체티의 처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햅굿의 부모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통조림 공장을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햅굿은 공장을 물려받자마자 그것을 종업원들에게 넘겨주었고, 얼마 후 공장은 파산하고 말았다.

 햅굿이 산업별노동조합의 간부로 일하던 중, 노동쟁의가 가벼운 싸움으로 번졌을 때 증언을 하기 위해 법정에 출두했다. 판사는 그를 보자 이렇게 물었다. "햅굿 씨, 나와주셨군요. 당신은 하버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처럼 버젓한 사람이 왜 그런 삶을 택하셨소?" 햅굿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그건 예수의 산상수훈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팀 파이팅!

 내 첫 소설인 '자동 피아노'는 스커넥터디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과학기술을 생략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은 섹스를 생략함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만큼이나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차 대전이 끝난 후 '병사의 고향'이라는 소설을 썼다. 병사에게 고향에 돌아와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 것이 어째서 무례한 일인가를 그린 이야기였다.

 전쟁 이야기를 가장 인상적으로 말하는 방법은 입을 다무는 것이다. 그러면 민간인들은 온갖 종류의 용감한 행위들을 상상하게 된다.

 물론 전쟁에 대해 입을 다무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차마 그것을 입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예 창작을 위한 충고>
 세미콜론을 사용하지 마라. 그것은 단지 글쓴이가 대학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며 노래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잠깐 마케팅의 원칙 하나를 소개하겠다. 책과 잡지를 사거나 영화를 보러 갈 정 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햄릿은 어머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다 휘장이 움직이자 그 뒤에 숨은 사람이 삼촌인 줄 알고 "좋다, 나도 이 우유부단함에 신물이 난다"고 외치며 검을 찌른다. 수다쟁이 폴로니우스가 쓰러졌다.

 폴로니우스가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며 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충고 -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마라. 그러나 인생에서 끊임없이 빌리고 빌려주는 것, 다시 말해 상호 호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만일 내가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 그곳 책임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이봐요. 대체 뭐가 좋은 소식이었고 뭐가 나쁜 소식이었소?"

 어떤 술꾼들은 분홍색 코끼리를 봤다고도 한다. (작가 잭 런던, 재즈음악가 선 라 등 많은 미국 문화인들이 알코올 중독에 빠졌을 때 '분홍색 코끼리'를 보았다고 고백한 것을 가리키며, 이는 '알코올로 인한 섬망증'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소문난 골초다. 담배를 피우다 죽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 담배의 한쪽 끝엔 불이 있고 반대편 끝엔 바보가 있는 것이다.

- 미국의 대가족

 여성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길 원한다.
남자는 많은 친구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화를 내며 덤비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이유는, 더이상 대가족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엔 남녀가 결혼하면 신부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고, 신랑 역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두고 멍청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극소수의 미국인만이 대가족을 이루고 산다. 나바호족과 캐네디 가문 정도다.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대개 돈이나 권력이나 섹스나 자녀 양육 같은 것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한다. 사실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만으론 사람이 너무 모자라!"

 내가 마술을 부릴 수만 있다면 마법의 지팡이를 흔들어 여러분에게 대가족을 선물하고, 여러분을 이보 족이나 (친척이 육백명) 나바호 족 또는 캐네디 가의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우리 모두 서 로 돕고 살 수 있는 큰 집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러다이트의 즐거운 나들이

 네드 러드라는 직물 노동자, 여러 대의 첨단 기계, 자동 직기를 때려부쉈다.

 빌게이츠는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변해야 하는 쪽은 빌어먹을 컴퓨터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의 땀과 노력을 통해 기적처럼 만들어가야 한다.

 타자기로 친 최초의 소설은 '허클베리 핀'이었다.

 우체국으로 들어가 다시 줄을 선다. 나는 창구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남몰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모르고, 아내는 안다. 그렇다고 어찌 해 볼 생각은 없다.

 집으로 향한다. 즐거운 나들이였다.
 전자 공동체에는 실체가 없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뭔가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다. 누군가 다른 이유를 대면 콧방귀를 뀌어라.

- 당신도 알다시피

 소아과 의사인 아들에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자 닥터 보네거트는 늙어빠진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정부 회사 대중매체 종교기관 자선 단체들이 아무리 타락하고 탐욕스럽고 매정하게 변했을지라도 음악은 여전히 경이롭고 아름답다. 내가 죽으면 묘비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지기를 바란다.

 그가 신의 존재를 믿는 데 필요했던 유일한 증거는 음악이었다.

 음악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음악이 없을 때보다 인생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블루스는 전세계인에게 돌아간 선물인 걸까? 내가 들어본 최고의 리듬앤블루스 연주는 폴란드 크라쿠프의 한 클럽에서 핀란드 출신의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연주한 것이었다.
 재즈 역사가이자 훌륭한 작가, 절친한 친구인 앨버트 머리가 한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 노예제 - 결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할 잔학 행위 - 가 번성했던 기간의 평균 자살율은 노예보다 노예 소유주 쪽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머리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노예들에겐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던 반면, 노예 소유주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노예들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함으로써 노인자살 충동을 떨칠 수 있었다.

 블루스는 우울증을 집 밖으로 날려버리지는 못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방 안 구석으로 쫓아버릴 수는 있다.

 오래전 내가 무척 순진했던 시절에는 미국이 정말 우리 세대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던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미국이 그런 나라로 변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권력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절대 권력은 우리를 절대적으로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권력에 도취된 침팬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총성과 함성이 사라진 죽음의 전쟁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땅을 깨끗이 씻어 신에게 바칠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을 정화할 수도, 봉헌할 수도 없다.
이곳의 전투에서 살아남거나 죽은 자들, 그 용감한 자들이
이 땅의 고귀함을 높이거나 떨어뜨릴
우리의 미천한 힘보다 월등히 강한 힘과 용기로
이미 이 땅을 정화하여 신에게 바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마크 트웨인과 에이브러햄 링컨이 필요하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미국 중부 시골 출신이었고, 둘 다 미국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비웃을 수 있도록 가르쳤으며 정말로 중요하고 도덕적인 농담들을 맛보게 해주었따.

 링컨은 멕시코 침략을 한 미국 군대 총사령관 포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엄밀한 조사를 피하려는 심산으로, 대중의 관심을 화려한 군사적 번영과 피의 소나기 위에 떠오르는 매혹적인 무지개로, 황홀한 파괴 충동으로 몰고 가는 뱀의 눈으로 돌림으로써 그는 전쟁에 돌입했다.

- 억측과 농담

 휴머니스트란 무엇인가? 그들은 사후에 받을 어떤 보상이나 처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대한 점잖고 공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노력한다. ...살아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미국 휴머니즘 협회 명예회장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로부터 완전히 이름뿐인 그 직위를 물려받았다.

 결국 책으로 묶었구나. 워낙 유명한 글이었으니 나올 법도 하지. 드라마 공부하는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다.

 

 드라마는 왜 꼭 재미있어야 하나

얼마전 누가 일본 드라마 단편 극본집 한 권을 주었다. 일본 드라마에 대한 심한 편견을 깨준, 진지한 철학이 담긴 드라마였다. 트랜디와 액션, 코미디, 섹슈얼리즘, 철학까지 포함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란 만드는 자다 .창조자란 뜻이다. 창조를 하지 않으면 그는 작가가 아니다.

드라마는 꼭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슬픈 재미, 아픈 잼, 배우는 재미 등등.

사람들은 요즘도 내게 말한다. 남들처럼 재미이ㅅ게. 그러나 나는 이전처럼 사양한다고 소리치지 않는다. 다만 배우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장점이 있다면 그걸 가진 채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우는 자세가, 내 것만을 고집하는것보다 ㅓ더욱 소중함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노르는 쉰이 넘은 나이에 자신이 체험한 지독한 사랑 얘기를 '단순한 열정'이란 책으로 펴냈다. 나는 그 책을 잃고 숱한 질문이 생겼다. 쉰이 넘은 나이에 앞뒤 분간없이 이렇게 무모할 수 있다고? 사랑은 단순한 열정에 불과하다고? 사랑은 습관처럼 반복되는 것이라고? 단순한 열정에 답하듯 쓴 '포옹' (필립 빌랭)까지 읽어야 나올 수 있는 질문이지만.

표민수가 노희경에게

배우와 스테프에 대한 존중. 배우들을 만나 세세한 버릇 하나하나까지 드라마에 풀어 넣는 일, 배우의 사소한 질문 하나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모습.. 어떻게 하면 배우와 스태프가 고생을 크게 하지 않으면서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살려낼 수 있을까, 대사 한 줄 쓰는 일에조차 그 생각을 놓은 적이 없는 당신이야말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작가다.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 조앤.

나문희가 노희경에게

너무 잘난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놀지 마, 희경씨
책 많이 읽어.
버스나 전철 타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
재래시장에 많이 가
그곳에서 야채 파는 아줌마들을, 할머니들 손을, 주름을 봐봐.
그게 예쁜거야
골프 치지 마. 대중 목욕탕에 가
우리 자주 보지 말자. 그냥 열심히 살자, 희경씨
대본 제때 주는 작가가돼, 희경씨

 

<미안한 아버지에게>

당신을 집으로 모시고 온 날부터 저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을 가지고 늘 하던 백팔배를 무려 세 배씩 늘려가며 절을 했습니다. 당신을 향한 참회가 백팔배로는 어림없다 여겼습니다.

하루는 절을 할 때 사용하는 염주를 내팽개치며, 마저 미워하고 말거야 소리치며 운 날도 있었더랬습니다.   그래도 다시 염주를 주워들고 당신을 이해하기 전엔 그 어디로도 당신을 보내지 않겠다고, 머리를 숙였더랬습니다.

하기 싫은 숙제 같은, 당신과 함께한 3년 반 세월이었습니다. 텃밭에 나가 같이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장미를 심고, 차를 마셨지요. 기꺼웠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무지도 당신과 화해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맥없이 엄마를 젤로 사랑했단 그 한마디에 좌초된 걸 보면.

이후 저는 종종 당신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만지고 했습니다. 삶을 물어가는 스승에게 '아버지와 화해하고 싶어요, 어찌하면 좋을까요' 했을 때 스승께선 암말 말고 손이나 잡아드려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손잡는 게 민망한 딸. 그래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30분 당신과의 어색한 손잡기가 시작됐습니다.

당신의 숨이 거칠어진 그 날은 제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소재로 쓴 <기적>이란 드라마가 나각던 날이었고, 숨이 멎은 순간은 첫 회가 끝나던 시간이었습니다. 드라마로 쓴다면 너무 작위적이라 믿지도 않을 일이지요. 마를 대로 말라 제 품에 안긴 당신이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고, 저는 '아버지 맘 내가 다 아니까, 이제 편히 가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한 서너 번 저도 아버질 참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게 지금 너무 위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