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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앵두, 사라지다
소꿉놀이를 할 때에도 그녀는 공화 의식을 잊지 않았다. (부처나 죽은 사람에게 꽃을 바침)
- 벼랑 끝 꽃을 꺾다
지소태후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사람은 반드시 정도를 넘는 악을 가지고 있다'는 옛사람의 말을 다시금 상
기했다. 극명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파괴와 광기의 불온한 징후가 도사리고 있었다.
- 불모지에 머물다
더 이상 우울함에 빠져 밤을 낮 삼아 낮을 밤 삼아 지내며 육신을 혹사하고 음식을 기피하여 독주로 정신
을 혼탁하게 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모든 기억을 상실한다 해도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네가 네 아름다움을 잊지 않았으니 되었다.
소년의 이름은 사다함. 석가세존의 뜻을 따르는 성자 계위 중 둘째 지위를 이름으로 삼았으니, 사다함 향
이란 곧 뜨거운 불집과도 같은 욕망의 세상에서 감정과 의지에 의해 시시각각 엄습하는 번뇌를 끊어 버린
가장 깨끗하고 가장 맑은 어떤 순간을 일컬었다.
사다함은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그의 앞에서면 사람들은 찬연한 아름다움에 절로
마비되고 감염되어 삶과 죽음의 슬픈 경계와 불안마저 잊었다.
아름다움은 용서받는다. 아름다움은 구원한다.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몸은 마음의 현현이요, 마음이야말로 몸을 통해 명
백히 증명되는 것이었다.
옥진은 미실에게 스스로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축조할 것을 요구했다. 타인에 의해 변해서는 안 된다고,
한순간도 자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용양신 : 남색으로 주인 혹은 상관을 받드는 인물의 대명사
군주와 만인의 이상인 주나라 문왕과 무왕 때에는 간음이나 음란 같은 말들이 아예 없었다지요. 자연과 인
간을 옥죄는 어떠한 금기도 존재하지 않았죠. 그때 사람들이 타락하여 불행했던가요?하늘의 뜻을 거슬러
불벼락을 맞았나요? 노래가 넘치고 시가 쏟아지는 세상이었죠. 아무도 할 수는 있되 말할 수는 없는 고통
으로 구속받지 않았지요. 종형을 고통 속에 가둔 건 도덕과 계율이 아닐 거예요. 자물쇠도 열쇠도 없는 마
음의 감옥이겠죠.
불경에서 그리 읽었네. 착한 벗이 병을 낫게 한다고. 오오, 아름답고 현명한 나의 착한 벗!
무릇 부부란 겁의 인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겁이란 둘레 사십 리 되는 돌을 천인이 무게
삼 수 되는 천의로 삼 년마다 한 번씩 스쳐 돌이 다 닳아 없어지는 세월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시간으로 사
억 삼천이백만 년이나 되는 겁이 다시 쌓여 이루어지는 인연이 부부이니, 저에게 사다함은 이생에서 스치
다 만난 연인이 아니라 오랜 겁의 인연입니다.
- 파랑새의 노래
놓아주지 말았어야 했음을, 큰 욕심을 포기하기 위해 때론 작은 욕심에 기꺼이 매달려야 함을 몰랐구나.
미워하고, 싫어하고, 질투하고, 빼앗으려 덤벼야 옳았음을 몰랐구나. 내 어리석음으로 미실을 잃고, 무관
랑, 너를 죽였다.
- 갈망과 재앙
우륵은 일신의 광영을 위해 모국을 배신한 비겁자였다. 정벌당해 사라진 나라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고 춤
을 추겠는가. 하지만 늙은 악사는 악기를 끌고 귀순해 적국에나마 음악을 남겼다. 음악이 우륵의 진정한
모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잠깐 세상에 났다 사라지는 모든 이슬 같은 것들 속에서 유일하게 믿었던 불
멸이기 때문이었다. 만덕은 비록 비굴한 투항자의 몰골로나마 음악을 지키고자 하는 우륵을 스승으로 마
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사라질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사내들을 하나같이 무력하게 굴복시키는 자신의 육신에 대한 새퉁스러운 깨달음이 그녀를 악마적인 쾌감
에 젖게 했다. 자기가 가진 무기의 위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 무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이는 없
었다.
- 붉은 연못
남녀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할 때 상대의 몸을 해치지 않으면서 합궁하는 비술을 밝혀 놓은 <청성비록>,
항간에서 말하는 손가락 기술을 발전시킨 것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의 몸도 해빙기의 봄물처럼 풀리게
한다는 비급을 수록한 <대도현지>, 여기에 방중에서 나눌 향기로운 미어와 미태술을 밝힌 <청성옥방결>
까지.
감성이 예민한 사내는 선율로 녹이고, 순정한 사내는 의리와 약속으로 사로잡으리라. 그렇다면 강인한 사
내, 부족한 것이라곤 오로지 스스로 자아내는 것밖에 없는 부유천하의 황제에게는 정복의 열망을 돋우는
새로운 신천지를 펼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문은 언제나 절반만
열어 두어야 마땅하다. 문을 활짝 열어 보여 줄 수 있는 전부보다 훨씬 신비롭고 만족스러운 것이야말로,
애써 문틈을 비집어 드는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미실은 점차로 권력이 어떤 것인지 알아 갔다. 그것은 누군가를 제압하고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이
었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싫어 꺼리는 어떤 일을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힘없는 여인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숱한 일들, 자신의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는 선택으로 운명 속에 내동댕이쳐져야 했
던 기억이 그녀를 더욱 냉철한 권력가로 만들었다.
- 몽중설몽
미실이 그를 사내로 만들었다. 미실의 사랑은 설원의 성정에 드리워진 의혹과 불안의 닻돌을 끌어 올려 청
정한 밑바닥을 드러나게 했다. 설원은 더 이상 어깨를 구부리고 발끝을 보며 걷지 않았다.
미실은 그를 음악가로 만들었다. 자긍심을 되찾고 현세를 기꺼이 누리게 된 설원에게선 쉼 없이 음악과
춤이 흘러나왔다. 그가 만든 <사내기물악>은 화랑도뿐만 아니라 왕경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유행가가
되었다.
미실의 사랑은 결코 공평무사하고 공명정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편파적이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과
시했다. 자신에게 복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시비주비에게는
가차 없이 보복하였다. 정적이 생기고 비난을 받는 일을 개의치 않았다. 박애란 위선이거나 몽매에 불과했
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이미 세상은 불공평했다. 나고 살고 죽는 모든 일에서 그러했다. 어쩌면 천지를 주
관하는 신명까지도 아름답고 추하고 행복하고 불행한 일에 지극히 편벽되이 권력을 행사하기 마련이었다.
미실은 섣불리 반성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후회조차 그녀에겐 치욕으로 느껴졌다. 오직 자신의 마음이 흐
르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삶의 쪽배를 저어 가리라. 그것만이 그녀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 파란, 그리고
생지옥에서 며칠을 살며 줄곧 손가의 말을 떠올렸느니라. 조종하되 조종당하지 마라! 무릇 모든 싸움에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익을 따져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손가의 궁극적인 가르침이도다.
얻기 위해서는 기꺼이 잃어야 한다. 너와 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원화의 위를 내놓고 떠나리라.
- 남자의 사랑
선도의 수행법 중 하나인 인단법의 방중술에서 이른 대로 음양 교접술의 기본이 되는 자연의 기로 자신을
채우기 위해 몰두했다. 일광욕과 삼림욕으로 생명의 푸른 기운을 저장시키고, 경락을 알아 팔뚝을 비롯한
복사뼈 위의 삼음교 혈을 매만지거나 비벼 스스로 몸에 좋은 기를 많이 저장시키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회는, 사랑은 예고없이 들이닥친다. 준비하지 않고서야 그 기회를 살리고 사랑을 얻을 수 없다.
굳이 속이려 들지 않아도 속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속게 되어 있다.
시참 : 자기가 지은 시가 우연히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 것과 같이 되는 일.
아름다움이야말로 힘이었다. 아름다운 힘이었다.
육신의 아름다움이 삶의 꽃이라면 정신의 아름다움은 굳건한 뿌리와 같아, 문노를 기리며 탐내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문노는 다른 모든 사내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가 목적을 두고 구하는 바는 세간에서 귀히 여기는 것들과는
엄밀히 구분되었다. 문노에게는 출세의 욕망도 부귀영화의 바람도 없었다. 그는 다만 이름을 귀히 여기며
존엄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단련시켜 나갈 뿐이었다.
- 살아 있는 귀신
일찍이 한족에게 도교를 전수한 장도릉이 민중의 질병을 고칠 때 널리 현소를 적용했다는 기록이 있사옵
니다. 도교에서는 수련의 방법으로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중기진술(집단적인 성행위 방법)과 합기의 의식
을 거행하기도 했는데, 그 모두가 죄를 용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의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남녀 모두 삼 일간 목욕재계를 하고, 본의식에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 후 남녀
가 서로 짝을 이루어 합기를 하나이다. 하루 온종일 성교로써 음과 양의 기를 합하고 나누니, 장도릉의 의
식에 따라 병을 고친 민중들은 모두 그를 '장천사'라고 불렀다 합니다.
미실이 노자를 교주로 받들고 <도덕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은 도교를 들고 나오자 대꾸할 말이 없긴 했
으나, 사도황후는 그 교합의 의식이 아무래도 해괴하여 덥석 받아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위나라의 무제 조조는 도교의 방사(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를 가장 열성으로 불러모은 사람입니다. 조조
때의 유명한 방사로는 호흡법인 합기술과 힘줄, 뼈, 관절을 움직여 하는 도인술에 능한 감시와 여자와 성
교하는 가운데 양생하면서 기를 보존하는 방중술에 통달한 좌자, 곡식을 먹지 않는 수련까지도 능통한 극
검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이백 살까지 산 사람들이라 일컬어지옵니다. 무제는 이들을 자기 나라에 모아
두고 방중술을 배우며 효과를 경험했다 하옵니다.
- 만추
쥐코밥상 : 밥 한 그릇과 반찬 한두 가지만으로 아주 간단히 차린 밥상
무릇 색이란 육신보다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 할 것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고서야 몸이 열릴 리 없고,
진정으로 사모하고 갈구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합함에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옵니다.
장창화미의 고사가 가르치나이다. 한나라 시대 평양 사람 장창이 선제를 받들어 경조윤으로 일할 때, 도시
에는 도둑이 없고 시골에는 걸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장창은 유독 부부간의 정이 돈독해 아내를 위해
직접 눈썹을 그려 주곤 했답니다. 그리하여 장안에 장경조가 부인의 눈썹을 어루만진다는 이야기가 흉인
듯 샘인 듯 떠돌았습니다. 임금이 불러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장창이 무어라 대답했겠사옵니까?
장창이 말했답니다. 규방에서 일어나는 부부 관계는 눈썹을 그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라고. 현명
한 선제는 더 이상 그를 꾸짖지 않고 돌려보냈지요. 황제가 앞으로 배울 침실 생활과 방중술의 법도가 무
릇 이러합니다. 놀라지 마시고, 꺼리지도 마시고, 마음을 열고 음양의 이치에 순응하소서.
성교는 생활이면서 철학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곳에 양이 있고 등진 곳에 음이 있으니, 이로부터 덥고 추
운 날씨가 있고 정과 반의 속성이 있다. 음과 양은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니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은
모두 자연의 법칙에 위반되어 인간의 건강을 해하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고대의 성학자들은 색사가 일
상에 즐거움을 주면서도 또한 크나큰 재액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여 양생의 방법인 방중술을 중요시 여겨
강조했던 것이다.
음기를 거두어 기력이 백배 좋아지고 지혜가 날로 새로워지는 경지를 꾀하십시오. 양기의 보강에 집착하
지 말고 한껏 음기를 기쁘게 만들어 쾌락의 기운이 뇌를 보양하도록 하십시오. 질병이 사라지고 청춘이
지속될 것입니다. 마침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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