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의 길을 떠나 세계를 방황, 브라질에 자리 잡은 그는 전쟁과 나치에 대한 공포, 친구와의 이별에서 오는 고독감, 미래에 대한 불안, 창작력 고갈 등으로 자살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1942년 2월 22일 "친구들이여, 잘 있게. 기나긴 밤이 지나고 자네들이 여명을 다시 보게 되기를 바라네. 너무나도 참을성이 없는 나는 자네들보다 먼저 가네"라는 말을 남긴 채 부인과 함께 자살했다.
- 서문
비범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비범한 운명을 추구하므로 자 신의 차원을 초월하려고 하는 그의 본성에는 영웅적으로 사는 것 혹은 니체의 말을 빌리면 "위험하게" 사는 것이 유기적으로 걸맞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내재한 강한 요구에 의해서 완강하게 세계에 도전한다. 천재적인 인물이라는 그의 내면적 소명이 마지막 힘의 발현을 위해서 불의 시련까지도 신비하게 갈망하므로 그의 수난에 궁극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폭풍우가 갈매기를 가지고 놀 듯이 그의 세찬 운명은 그를 보다 강하게, 보다 높게 밀어올린다.
영웅이 아닌 사람, 보통 사람은 수난을 스스로 이해할 안목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진짜 영웅이 겪는 비장한 수난만큼이나 대단하다. 어쩌면 보다 감동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사람이란 그런 수난을 혼자서 감내해야만 하며 예술가들처럼 고통을 작품이나 혹은 지속적인 다른 어떤 형태로 변용시키는 축복 속의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불행의 손길은 대상으로부터 극도의 긴장, 마지막 가능성을 빼앗기 전에는 물러나지 않는 예술가의 가차없는 비정함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좀처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연약하고 무력한 영혼을 망치질로 단련하여 딱딱하고 견고하게 만들어놓기 전까지는, 부모와 선조들로부터 그녀의 혼 속에 불어넣어진 모든 위대한 것을 억지로 끌어내서 눈에 보이는 구체적 실체로 만들어놓기 전까지는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또 아직 한 번도 자기가 누구냐고 물어본 적이 없는 이 여자는 고통 한가운데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는 순간 마침내 변신한다. 외적인 힘이 끝을 고하는 바로 그때, 시련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무엇인가 새로운 것, 위대한 것이 내부에서 시작됨을 감지한다.
오만하고 동시에 감동적인 말이 그녀의 놀란 입에서 갑자기 흘러나온다 "불행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고통을 통해서 그녀가 살고 있는 하찮고 평범한 생이 후세에 하나의 보기가 된다는 예감이 그녀를 엄습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다 높은 의무를 인식하면서부터 그녀의 성격은 그 자체를 초월하여 성장한다. 필멸의 형태가 부서지기 직전에 예술 작품, 영원한 예술작품은 이루어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 평범한 여자가 생의 최후의 시간에 마침내 비극의 척도가 되고 운명처럼 위대해졌기 때문이다.
- 어린 소녀를 결혼시키다
자기 자식에 대한 실망이 그녀(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카산드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 예언자.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해서 예언하는 힘을 잃고 트로이 함락 후 살해됨)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녀들은 모두 어머니의 본성 가운데 가장 고유한 힘인 끈질긴 인내, 서서히 확실하게 계획하고 관철하는 의지, 포기할 줄 알고 현명하게 자제할 줄 아는 능력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모두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 따위는 언제라도 파괴할 듯한 태세였다. 진지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순간의 만족을 위해서 애쓰는 소인들이었다.
"사랑하는 딸아, 매월 21일에는 행동 지침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내 소원을 생각하여 꼭 지키도록 하여라. 부탁이다. 네게서 걱정되는 점은 다름이 아니라 네가 기도와 독서를 게을리 하고, 경망하고 태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신과 싸우거라 -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너로 인해서 마음 졸이는 이 어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온 세상이 딸의 승리를 환호하는 동안, 이 늙은 여인은 교회에 가서 그녀 혼자만이 예감하는 재앙을 막아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 침실의 비밀
마리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 침실의 에피소드는 모든 외적인 사건들보다도 강하게 권위를 안에서부터 분해시켜 붕괴를 가져왔다. 겉으로 드러나는 공공연한 이유들을 끌어다 붙이는 것은 거의 언제나 비밀스러운 운명이며, 세상사는 개인의 내적 갈등의 반영일 뿐이다.
아주 작은 동기에서 엄청난 결과를 전개시키는 것은 위대하고도 기묘한 역사의 가려진 비밀 중 하나이다. 또 이 경우 한 남자의 잠정적인 성적 장애로 인해서 온 우주가 뒤흔들린 마지막 사건도 아닌듯하다.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의 성적 불구, 그를 거기서 구해낸 여인 드라가 마신에 대한 그의 성적 예속, 두 사람의 암살, 카라조르제비치의 즉위, 오스트리아와의 적대 그리고 세계대전, 이 역시 빈틈없이 이어지는 눈사태의 결과이다. 역사라는 거미집에서 시작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다.
-국왕 부처의 초상
루이 16세는 신경질적인 소심함만을 극복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대체로 그는 말하기보다는 읽기와 쓰기를 더 좋아했다. 책은 말이 없고 재촉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루이 16세는 (믿기 어렵겠지만) 책 읽기를 즐겼고 많이 읽었다. 또 서류와 가계부를 나무랄 데 없이 잘 정리했다. 매일 저녁 분명하고 둥글둥글한 글씨체로 거의 서예 작품처럼 깨끗하게 그날 그날의 생활을 가엾도록 무미건조하게 ("사슴 여섯 마리 쏨", "하제 복용" 등) 일기장에 적었다. 이 일기는 세계사의 참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모조리 간과해버려 그야말로 비애감을 자아낼 정도이다. 그는 세관원이나 관리에 안성맞춤인 사람으로 독자성이 부족한 보통 지능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 트리아농 성
하늘거리는 손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의 관을 잡았다. 뜻밖의 선물쯤으로 여기면서. 인생이 까닭 없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사람들이 운명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에는 은밀한 값이 매겨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마리는 그 값을 지불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의 힘으로는 조화시킬 수 없는 두 가지를 조화시키려고 했다. 곧 다스리면서 즐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왕비로서 남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때그때의 기분을 무작정 좇고 싶어했다.
- 자각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감격적이며 감동에 가득찬 이 말이 갑자기 그녀의 편지에 나타났다. 조언자들, 어머니, 친구들은 수십 년 동안 그녀의 고집스런 영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가르치기 힘든 그녀에게 너무나도 이른 시도를 했던 까닭이었다. 고통이야말로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간에게 최초의 참된 스승이 되었으며, 배우기 힘든 그녀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떤 최초의 상대였따.
그녀는 지금껏 인생을 가지고 장난 - 전혀 애쓸 필요가 없었다 - 만 해왔다. 인생과 맞서서 싸울 필요도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강한 자극을 받자 모든 에너지가 총동원된 것이다.
"불행해지면 불행해질수록 진실한 친구에게 마음속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 친구가 마지막으로 나타나다
- 전쟁으로의 도피
집단으로서의 민중은 논리적이며, 정확한 사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인가 본능적인 것, 동물적인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민중은 사고력 대신에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본능이라는 것은 틀리는 법이 없다.
- 마리앙투아네트 홀로
왕비의 열정이 파멸 직전의 이 순간보다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애인의 추억과 항상 피를 통하게 해주려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실의 문장인 백합 문장을 새긴 반지 대신에 페르센가의 문장을 새긴 반지를 끼고 있었다. 페르센이 그의 손가락에 왕비의 말이 새겨진 반지를 끼고 다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또 한 번 사랑의 표시를 보낼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에 그녀는 글씨가 적힌 문장을 뜨거운 밀랍에 눌러 그 누른 자국을 페르센에게 보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 자국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여기 동봉하는 압형을 지난 겨울 브뤼셀에서 나를 찾아왔던 분께 전해주세요. 그리고 그분께 그 글귀가 지금보다 더 가치가 있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고 말씀해주세요."
프랑스 왕비 자신이 하찮은 스웨덴 귀족의 문장을 새겨넣고, 100만 개의 장신구 중에서 유일하게 감옥 속에서까지 손가락에 간직하던 반지에는 무엇이라고 새겨져 있었을까? 그것은 다섯 개의 이탈리아어 단어로서 죽음을 목전에 둔 지금 이전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모든 것이 나를 당신께 인도합니다(Tutto a te mi guida)."
- 만가
오래 전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소식을 듣는다고 해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 브뤼셀에 도착하자 그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누이에게 썼다. "내 전 생애를 의미하는 사람, 내가 항상 사랑해온 그녀, 결코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사랑해온 그녀,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했던 그녀, 내게 그녀가 어떤 존재인가를 더욱 더 새롭게 느끼도록 해주는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아, 하느님,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이렇게 벌하시는 것입니까? 무슨 일로 내가 당신의 노여움을 사야 합니까? 그녀는 이제 살아있지 않다. 나의 고통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내가 살아나갈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역자 후기
당시 독일 문학은 현실 세계에 대한 어두운 비판을 일삼는 자연주의에서 벗어나 그 반동으로 신낭만주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빈 사람다운 서정성과 우울, 섬세한 감각은 그러한 사조와 잘 어울렸다. 그의 문학 세계는 후고 폰 호프만슈탈이나 릴케의 시, 니체의 철학,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소설 '감정의 혼란', '아마크', '낯선 여인의 편지' 등은 모든 이국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 심층 심리를 묘사했는데 내용 면에서도 재미가 있어서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그는 천재들의 창조력을 악마적인(damonisch) 것이라고 부르고 그러한 악마적인 힘이 천재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보여주는 전기를 썼다. '악마와의 싸움'에서는 횔덜린, 클라이스트, 니체를, '세 사람의 대가'에서는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를, '생명의 세 작가'에서는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