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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의 경계 미학과 그리움의 존재 방식”

이번 박일만 시인의 시집 『사랑의 시차』는 화성시에 있는 ‘제부도’를 중심으로 기존의 섬의 의미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기의로 의미를 창출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가진 섬은 실상 섬과 섬의 「간격」으로서, 이를테면 “대부와 제부 잇는 길/섬과 뭍이 그리움을 밀고 당긴다”라는 것이며, 서로 만나지 못하는 ‘외진 몸과 몸’을 이어주는 것은 그리움이다, 라는 지표를 설정해서, 이를 통해 그리움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이덕규(시인)
그에게 건너가는 사랑의 거리와 깊이를 가늠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어서 시인은 섬과 뭍 사이를 떠돌다 또 다른 섬이 되었다. 바다가 몸을 열어 길을 이어주는 제부도는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사랑을 찾아 건너고 싶은 환상의 섬. 그러나 사랑은 늘 어긋나는 ‘아침과 저녁’의 “시차” 때문에 끝내 만날 수 없다. 생을 거듭 거듭 살아도 섬과 뭍처럼 떨어져 서로를 바라만 보아야 할 뿐, 그리움이 찾아 헤매는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하여 기적처럼 나타난 바닷길 위에는 사랑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뒹구는 수많은 ‘돌멩이들의 눈물’만이 흥건하다. 시인이 섬과 뭍 사이를 오가며 관찰자로서 그려낸 이 시집 속의 지극한 풍경과 서사는 마지막 사랑을 불태우며 서해를 넘어가는 일몰처럼 처연하다. 지구에 목을 매단 채 수평선을 밀고 당기며 끊임없이 맴도는 달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밀물과 썰물’의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정겸(시인)
시집 『사랑의 시차』 갈피 속에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근원적 고독이 서려 있다. 시편의 모티브가 된 제부도는 밀물 때 끊어졌던 바닷길이 썰물 때 육지와 이어지는, 신기루가 나타나는 화성시 서신 소재 섬이다. 육지와 간격이 넓어 쉽게 다가갈 수 없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만남과 이별의 공간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해당화 꽃잎보다 더 붉은 사랑이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피어나는 하얀 물꽃 같은 그리움이 있다. 이를 긴밀한 언어로 자아낸 『사랑의 시차』 행간을 들여다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태양과 바다, 갯벌과 모래, 바람과 파도, 다문다문 떠 있는 고깃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함께 품고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는 섬. 섬 안과 섬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애환이 깊이 배어있는 이 시집은 읽는 이들의 가슴에 정확히 닿아 있다.


사람과 사람
관계를 생각했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선은 무엇일까 떠올렸습니다.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 갔습니다.
섬과 뭍을 잇는 길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
하루 두 번 긴 숨결이 나타나서
사람의 가슴을 보여줬습니다.
그곳을 향해 많은 날을 달려갔습니다.
수없이 달려서
지금 이곳에 당도했습니다.
섬과 뭍 사이에는
선천적 그리움이 잠겨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그리움입니다.

2023년 가을
박일만

시인의 말 | 5


1부 간격

간격 | 13
직선화법 | 15
서신 지나며 | 17
따라오는 손 | 19
궁평리에 가면 | 21
전곡항 | 23
물결 | 25
푸른 경계 | 27
새벽 바다 | 29
매바위 | 31
폭풍오기 前 | 32
포도 | 34
바닷길 | 35


2부 첫 몸

첫 몸 | 39
바다 산책 | 40
섬매화 | 42
풀꽃 | 43
찻잔 | 45
사랑에 빠질 때 | 46
사랑 1 | 47
사랑 2 | 48
깊이 | 49
차이 | 50
비, 바다에 와서 | 52
떠도는 섬 | 54
떠도는 바닷새 | 56
풍장 | 57


3부 섬

섬 | 61
꽃등대 | 62
해당화 | 63
동백 울타리 | 64
커피 | 65
관심 | 66
빛의 거리 | 68
남과 여 | 70
예보 | 71
안부 1 | 72
안부 2 | 73
안부 3 | 74
안부 4 | 75
안부 5 | 76


4부 사랑의 시차

섬에 새긴 얼굴 | 79
해안선 | 81
부재 | 82
남겨진 포도알 | 84
바닷가 코스모스 | 86
저무는 포구 | 88
노을 | 90
검은 꽃이 피었습니다 | 91
살곶이 무덤 | 92
기다리며 | 94
끈 | 96
제부도, 그때 | 98
아! 제부도 | 100
사랑의 시차 | 102
해설 | 해안의 경계 미학과 그리움의 존재 방식 | 권성훈 | 1046

건널 수 없었네
그 선 자주 몸 바뀌어

너울에 이끌려 도착한 발걸음
외면한 채
저편에서 마음만 보내왔네

끊기지 마라!
탄력 잃은 수평선은 미련의 그물만
깁고

끝내 떠날 가슴을
오래 오래 안았던 억센 기억

깊이를 알 수 없는 섬의 생각이
물 위를 배회하던 바닷새를 꾸역꾸역
뱉어낼 때마다
작은 새는 날개에 온 힘을 주어야 했네

이쪽과 저쪽을 가늠하는 푸른빛이
마음을 켜드는 길

비켜 날아가는 새의 가슴에 새겨진
암초 같은 속앓이로는
끝내 이을 수 없었네
그 경계선

바닷물이 당도하여
새들의 여윈 그림자마저 지워 버렸네

멀고도 가깝게 팽팽해지는
당신과 나 사이의 푸른 선
- 「푸른 경계」 전문



바다가 몸을 가르며
길을 냈다

언젠가
당신은 저 길을 따라왔고
다시
마음을 재촉하며 떠났다

물 나간 자리에서
돌멩이가
알몸을 드러내며 울었다
죄인처럼 혼자 눈물 흘렸다

섬과 뭍 끝자락에 서서
신호를 주고받던 깃발이
살아온 생을 나무라듯
나를 향해 나부꼈다

길은 비어있고
우리의 흔적은 지워졌고
빈자리가
저의 옆자리를 돌아보며 울었다

당신은 아침이었고
나는 저녁이었다
- 「사랑의 시차」 전문



섬의 뼈인 양
나무끼리 붙어 살았습니다
낮이면 밤새가 깃을 접고
밤이면 밤새가 날아다녔습니다
울타리 안이었습니다
한 번도 섬 밖을 날아보지 못한 새는
섬 안에서 살았습니다
한 번도 섬 밖을 나가보지 못한 여자는
울타리처럼 속울음 참았습니다
새도
여자도
동백 숲에서 살았습니다, 붉게 울었습니다
꽃？떨군 죄로
동백도 섬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그리움입니다
- 「동백 울타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