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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는 말로 독자를 그 여행길에 동행하기를 권하며 말문을 연다. 그의 책머리 중 첫 말이다. 수필을 쓰는 사진작가, 사진을 찍는 수필가, 그가 양호인이다. 둘 다 그저 여기로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 사진작가며 중견 수필가이다. 그에게 잡히는 사물, 사건은 일단 피사체로서 그의 렌즈에 붙잡혀 재탄생된다. 사진이 있는 그대로 그냥 찍는 것 같지만 사진작가의 눈에 들어온 피사체는 그의 사상과 관심에 따라 철저히 재해석되어 새로운 피사체로 살아난다. 이런 연유로 양호인의 수필은 일상을 말하되 그 속에 깊은 관조를 거친 차별화된 주제의식으로 다져져 있다.

오경자

오경자(한국수필문학가협회장)
‘글을 쓴다는 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는 말로 독자를 그 여행길에 동행하기를 권하며 말문을 연다. 그의 책머리 중 첫 말이다. 수필을 쓰는 사진작가, 사진을 찍는 수필가, 그가 양호인이다. 둘 다 그저 여기로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 사진작가며 중견 수필가이다. 그에게 잡히는 사물, 사건은 일단 피사체로서 그의 렌즈에 붙잡혀 재탄생된다. 사진이 있는 그대로 그냥 찍는 것 같지만 사진작가의 눈에 들어온 피사체는 그의 사상과 관심에 따라 철저히 재해석되어 새로운 피사체로 살아난다. 이런 연유로 양호인의 수필은 일상을 말하되 그 속에 깊은 관조를 거친 차별화된 주제의식으로 다져져 있다.

？？ 차 례
？？ 작가의 말
1. 가을에 핀 라일락
가을에 핀 라일락 … 14
가을, 이즈음에 … 18
흠집 … 21
달빛 … 26
순례길 … 29
때 … 34
반지의 제왕 … 37
그거면 다 좋다 … 42
속 빨간 무 … 45
2. 공짜는 없다
공짜는 없다 … 52
하마터면 … 55
간이 부은 것쯤 … 59
진달래꽃 … 64
새싹 … 68
국가관 … 73
총구 … 77
호로고루성 … 82
3. 나를 보는 나
나를 보는 나 … 88
향긋한 냄새 … 92
우산에 대한 소고(小考) … 97
허리띠를 졸라매고 … 101
두근두근 숲길 … 105
달리는 아이들 … 111
사람이 무서워 … 116
늙은 아카시아 … 120
머리카락에 대한 소회 … 124
4. 무밭의 파수꾼
무밭의 파수꾼 … 130
그것만이 내 세상 … 135
엄마의 밭담 … 139
기생충 … 143
그들이 옷을 벗으면 … 148
형 … 151
프로방스의 떠돌이 … 155
5. 작은 반란
작은 반란 … 160
옛날이야기 … 164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 … 169
시집가고 장가간다네 … 174
곰배령 … 177
목소리 … 182
신세계 … 185
스터디 카페 … 189
그해 겨울 … 194
시나리오 … 199
6. 파인더로 보는 세상
수만 번의 속삭임 … 204
천변 우정 … 207
돌아온 삼각대 … 213
원대리 습격 사건 2 … 220
산포리 서정 … 227
사랑의 색 … 232
비 오는 거리 … 236

나를 보는 나
오랜만에 맞은 토요일이다. 아직 겨울의 잔재가 아주 물러간 것은 아니지만 제법 햇살이 따사로워짐을 느낀다. 우선 거실에 놓여 있던 화분들이 베란다로 옮겼는데도 살 만한지 한껏 물을 올리는 것을 보면 봄이 코 밑까지 오긴 온 모양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밀려 놓았던 글쓰기에 공을 좀 들여 볼 요량으로 책상에 앉았다. 지난 수업 시간에 발표한 글을 손을 좀 볼 생각이었다. 수필용 파일을 찾았다.
아뿔싸! 파일박스가 통째로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에 있겠구나 싶어 쏜살같이 주차장으로 갔다. 호기롭게 자동차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깨끗하다,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 아차! 싶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여기저기 찾아봐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벌써 이틀이나 지났으니, 이를 어쩌나. 머릿속이 텅 빈 상태이다. 수업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받은 경비까지 무려 50만 원이나 고스란히 노트 갈피 속에 넣어 둔 상태이다. 동료인 P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P는 자기 같으면 머리를 박고 싶을 거란다. 우선 점심을 먹은 식당으로 가 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머리를 아무리 굴려 봐도 진공상태이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강의실에 두고 왔을까?, 설마 전쟁터에 나갈 병사가 훈련소에 총을 두고 왔단 말인가? 아니 전쟁터란 표현이 너무 강했었나? 전쟁터나 다를 게 무엇인가? 생애 첫 글쓰기여서 내 나름대로는 총력을 기울이는 일이니. 들고 다니던 파일을 잃어버리고도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으니, 이게 무슨 일이람.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서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금요일 날 세 들어 살던 세입자에게 환기하지 않아 곰팡이가 생기고 집을 험하게 썼다고 잔소리해댔다. 청소비를 공제하겠다는 소리까지 하였으니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인 줄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파일박스만 찾으면 그 일도 없었던 일로 하고 월요일엔 잔액을 전부 보내 줘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학교 행정실은 문을 닫았으니 오늘은 확인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우선 식당에 들러 보기로 하고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물론 불법 주차이다. 마음이 다급해져서인지 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휴일이어서인지 손님은 없고 주인아주머니 혼자 계신다. 들어서자마자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아주머니께서 무얼 찾느냐고 묻는다. “지난 목요일 점심때요, 제가 여기 두고 간.”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오른쪽 선반 위에 놓여 있는 내 파일박스가 방싯 웃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첫사랑 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반갑진 않았을 것이다. 내 얼굴이 화사해짐을 느낀다. 긴장이 한순간에 확 풀렸다. “어, 내 파일박스 여기 있네, 사장님 이거 제 것이에요.” 아신단다. 자주 오는 손님이라 그럴 것 같아 잘 보관해 두었단다. 그리고 손님이 두고 간 물건은 누가 가져가지만 않는다면 항상 잘 보관해 두신다고 한다. 요즘은 손님들도 남의 물건에 손을 잘 안 대니 어디에 두고 갔는지 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감사함이 하늘 끝에 닿았다. 노트를 펼쳐보니 거금 오십 만원이 방긋이 웃는다.
그제야 불법 주차된 자동차가 생각났다. 얼른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식당을 나와 자동차에 올랐다. 불과 3, 4분 정도 CCTV에 찍혔다면 주정차 위반 고지서가 날아오겠지. 겸연쩍은 마음에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책상에 앉으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지난 시간에 읽었던 수필을 수정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라서다.
갑자기 금요일 날 집을 비운 세입자가 생각났다. 조금 전에는 분명 마음 쓰게 하지 말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나머지 돈을 다 보내 줘야겠다고 다짐했던 일이다.
손해 보는 느낌이 다시 스멀거린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하긴 엄밀히 말하면 청소비나 원상복구 비용을 공제하는 게 맞는 일이긴 하다. 이럴까 저럴까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누구 말마따나 어디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내가 딱 그 모양새다. 조금 손해 보는 게 마음 편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약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월요일까지 조금 손해 보는 게 낫다는 이 생각이 변하지 않길 간절히 빈다.
내 간사한 마음의 끝은 어디일까? 한 발짝 비켜서서 나를 보는 나를 점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