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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의 가을 사흘 : 서정인 대표중단편선[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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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서정인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21년 08월 20일
  • 쪽수 : 472
  • ISBN : 978895468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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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 순간도 정체하지 않고 새로운 문학적 실험을 선보여온 서정인의 중단편소설은 빼어난 감식안을 지닌 독자들조차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작품을 탐독하게 만드는 기량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서정인 소설의 유의미한 도약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수작을 새로운 기준으로 선한 대표중단편선 『무자년의 가을 사흘』이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3차분의 첫 권으로 묶였다.
『무자년의 가을 사흘』을 시작하는 작품 「나주댁」은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한국사회로 진입한 근대성이 어떻게 주변부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파괴하고 획일화하는지를 일상적인 풍경 속에 드러낸다. 이 ‘벽지’에 대한 애정과 우려는 이 대표중단편선은 물론 서정인의 소설세계를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의식인바, 『무자년의 가을 사흘』은 작가의 주제의식이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소설화되는 과정을 한 권에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내내 언급되어온 「강」(1968), 「가위」(1976), 「철쭉제」(1983~1986) 연작 등을 과감히 덜어낸 이유다. 표제작 「무자년의 가을 사흘」은 한국전쟁의 참상 주변부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순수한 어린이의 시선으로 전쟁을 발발시키는 문명의 논리를 꼬집어냄으로써 작가 고유의 문제의식을 극명하게 표현해낸 또하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대표중단편선에 수록된 최근작 「바람」(2018)은 문명의 발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나날이 날카로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술자의 개입 없이 이어지는 두 노인의 대화를 통해 소시민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감지하게 해주는 이 독특한 작품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그를 그 자리에 올려놓은 사다리를 걷어차고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다리로 아직 나지 않은 길을 홀로 헤쳐나가온”(류보선, 해설) 서정인 소설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다.

추천사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서정인 소설은 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근대성이 주변부의 존재들에게 가한 폭력과 대지의 숨죽인 아우성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단일한 근대성의 거대한 압박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우리들이 순종해서는 안 되는 일과 용기를 내서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준별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저곳 서구의 존재들보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조금 더 참된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거기에는 서정인 소설의 살풍경과 푸념이 나름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황종연(문학평론가,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서정인의 실험적 작업은 모든 소설 형식의 실험이 그러하듯이 독자에게 소설을 읽는 상투화된 독법을 버리도록 요구할 뿐만 아니라 소설에 대한 기존의 정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 이러한 도전적 성격은 이미 여러 논자들이 권고한 대로 소설의 형식적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만하다.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현실에 탄력 있게 대응하고자 소설 형식의 관습적 제한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기미를 우리는 그것에서 감지할 수 있다.

목차

나주댁 _007
우리 동네 _034
벌판 _057
남문통 _086
행려 _109
춘분 _129
뒷개 _150
붕어 _171
무자년의 가을 사흘 _283
용병대장 _380
바람 _406

해설|류보선(문학평론가)
단일한 근대성과 입말의 계보학적 가능성 _431

본문중에서

애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서울에만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종종 벼랑에 핀 꽃처럼 대단한 벽지에서도 산견되는 수가 있다. 그들은 그 희소가치로 인해서 더욱 빛이 찬연하고 기세가 대단하다. 아무도 그들의 우국충정을 폄할 수 없다. 그들은 갈수록 창궐하는 매국적 부정부패와 민족정기의 망국적 타락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이고 제동장치이다. 비록 모든 사회악과 도덕적 타락이 불치의 암처럼 뿌리깊은 고질이 되어버렸지만 그들은 그들의 제동 능력의 효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자임하고 나선 임무가 엄청나게도 중대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 그들은 없으면 별것이 아니지만, 있으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다.(「나주댁」, 7쪽)

사람들은 차츰 그들이 그를 너무 존경했던 것은 아닐까, 적어도 너무 동정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후회는 옳았다. 결국 그는 단순히 그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능멸하기 시작했다. 자기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을 잠시나마 존경했다는 것은 참을 수 없이 억울한 노릇이었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나도 한때는…” 식으로 그들에게 반발했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갔다. 대항하는 것은 같아지는 중요한 한 방법이었다.(「우리 동네」, 45쪽)

돈 생길 일 없으면, 돈 잃을 일 없으면, 여객 운수업자도 얼마든지 규칙을 존중하고 지킬 줄 알았다. 그놈의 돈 몇 푼 더 벌자고 난폭운전을 하고, 과속 운행을 하고, 신호위반을 하고, 차선을 안 지키고, 곡예 앞지르기를 했다. 그놈의 돈 때문에 단골손님들을 짐짝처럼 천대했고, 목숨을 걸고 차를 몰았다. 사람의 위엄이나 존엄성은 간곳없고, 생명까지 위협받았다. 도대체 몇 푼 때문에 그러냐? 시내 차비를 한 천원 내면 사람대접 해줄래? 그들의 목숨값이 너무 헐했다. 그들은 사람값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붕어」, 190쪽)

차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유가 없었다. 주인은 그들이 또 오고 안 오고, 언제 또 오고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지가 시간 없고 배고픈데 안 들어오고 배겨? 휴게소에서 우동을 사 먹어본 사람이면, 팅팅 불은 몇 가닥 면 가락들을 후루룩 빨아들일 때 속았다는 생각과 아울러 돈 벌기 어렵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감탄이 문득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그 증거는 그 자신이었다. 그가 증인이었다.(「붕어」, 213쪽)

그때까지 수없이 들려왔던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그 총 끝에선지 딴 데선지 알 수 없게 둬 번 났다. 바로 그 총구멍 앞에 서 있던 사람이 한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지만, 그 검은 쇠붙이가 그 무너짐에 책임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 무심했다. 그는 다만 묶인 채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가령 여름날 뙤약볕에서처럼, 피곤해서 한쪽으로 몸을 눕힌 것뿐이었다. 좀 쉴라고.(「무자년의 가을 사흘」, 325~326쪽)

저자소개

생년월일 -

1936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2년 에 단편 「후송」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한국 문학 작가상, 동서문학상, 김동리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강』, 『가위』, 『토요일과 금요일사이』 등이 있고, 장편으로 『달궁』, 『봄꽃 가을열매』등이,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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