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신용카드 청구할인
인터파크 롯데카드 5% (12,830원)
(최대할인 10만원 / 전월실적 40만원)
북피니언 롯데카드 30% (9,45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NH쇼핑&인터파크카드 20% (10,800원)
(최대할인 4만원 / 2만원 이상 결제)
Close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 프랑스 태평양 스탈린그라드

소득공제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판매지수 76
?
판매지수란?
사이트의 판매량에 기반하여 판매량 추이를 반영한 인터파크 도서에서의 독립적인 판매 지수입니다.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상품에 가중치를 두었기 때문에 실제 누적 판매량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판매량 외에도 다양한 가중치로 구성되어 최근의 이슈도서 확인시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해당 지수는 매일 갱신됩니다.
Close
공유하기
  • 출판사 : 플래닛미디어
  • 발행 : 2011년 03월 07일
  • 쪽수 : 358
  • ISBN : 9788992326933
정가

15,000원

  • 13,500 (10%할인)

    750P (5%적립)

할인혜택
적립혜택
  • I-Point 적립은 마이페이지에서 직접 구매확정하신 경우만 적립 됩니다.
추가혜택
배송정보
  • 2/3(금) 이내 발송 예정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12)
  • 무료배송
주문수량
감소 증가
  • 이벤트/기획전

  • 연관도서(68)

  • 상품권

AD

책소개

스탈린그라드 전투, 독일 몰락의 전주곡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은 2차 대전의 향방을 가르는 전환점이 된 결정적인 세 가지 에피소드를 담아낸 책이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 함대가 벌인 일련의 해전을 비롯하여 독일의 승천을 의미하는 변곡점 프랑스 전역부터 몰락을 알리는 전주곡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세 사건의 기록을 통해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의 흐름을 이해한다. 2차 대전은 언제 발발한 것인지, 군사 강국인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에 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등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심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출판사 서평

프랑스 전역, 독일 승천의 변곡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독일 몰락의 전주곡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에 의해 가해진 군비 제한으로 굴욕을 겪은 독일은 승전국들, 특히 앞장서서 조약을 강요한 프랑스에 상당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 국민에게 프랑스는 반드시 굴복시켜야 할 미움의 대상이었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Hitler는 조약 파기와 재군비再軍備를 선언하고 급속도로 군을 증강한다. 하지만 당시 독일을 막을 수 있었던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달래고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1차대전의 참혹했던 기억이 적극적인 대응을 막고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고 싶게 만들었던 것이다. 두 나라의 이런 안이한 태도는 히틀러의 자신감을 북돋았고, 결국 독일의 침공으로 이어졌다. 당대의 육군 강국 프랑스는 허무하게 무너졌고, 프랑스와 함께 싸우던 영국해외원정군(BEF)은 급히 바다를 건너 철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전쟁으로 발발 이전부터 종전 이후까지의 모든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그런 순간이 존재했다. 특히 프랑스 전역은 2차대전 전체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전쟁의 첫 번째 주체였던 나치 독일의 모습이 이 전역을 전후로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전격전Blitzkrieg이 완성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만일 프랑스가 그토록 쉽게 나라를 지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 전역의 승자가 독일이 아니었다면 이후의 거대한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에서 출간된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은 이처럼 2차대전 당시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세 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독일의 승천을 의미하는 변곡점이 된 1940년의 프랑스 전역, 태평양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1942년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 함대들의 대결, 그리고 사상 최악의 전투로 독일의 몰락을 알리는 전주곡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이 세 사건의 기록을 통해 2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의 흐름을 이해한다. 2차대전은 언제 발발한 것인가? 군사 강국인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에 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는가? 항공모함의 등장은 태평양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나? 막대한 인명을 손실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과연 어느 한쪽이 승리한 전투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독일의 승천을 의미하는 변곡점이 된 프랑스 전역부터 몰락을 알리는 전주곡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2차대전의 향방을 가르는 전환점이 된 결정적인 순간들을 만난다.

책속으로 추가

1942년 스탈린그라드
역사에 남을 만한 쾌속 진군을 선보이며 소련을 궁지로 몰아넣다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장군을 만난 독일군은, 광대한 유전과 곡창지대가 있는 캅카스Kavkaz 지역으로 눈을 돌린다. 캅카스는 소련에게도 생명선과 다름없이 중요한 곳으로, 이 지역을 빼앗긴다면 우랄Ural 산맥 동쪽의 시베리아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양군은 결국 남부 러시아의 최대 요충지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스탈린은 자기 이름을 따서 ‘스탈린그라드’로 이름 붙인 이 도시를 반드시 사수하고자 했다. 남부 러시아 한가운데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좁은 공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끝장을 보려 했던 미친 인간들의 경쟁심이 만들어낸 지옥이었다. 1940년 프랑스 전역이 독일의 승천을 의미하는 변곡점이었다면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2차대전을 개시한 독일의 몰락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독일군의 스탈린그라드 공격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시작했다. 스탈린그라드의 모든 것을 불태워 적의 전투 수행의지를 꺾고, 지상군이 쉽게 입성하여 도시를 장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때까지 독소전쟁의 경과를 보면 이 정도의 타격을 입은 소련군은 급속히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에, 공격에 나선 독일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손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방어에 나선 소련군의 저항은 완강했다. 도시의 폐허는 거대한 요새로 바뀌었고, 독일군은 시가전의 늪으로 끌려들어갔다. 양군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곳에 집중 투입했다. 다른 전선으로 투입해야 할 병력, 전차, 대포, 전투기가 총동원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스탈린그라드는 명분이 아닌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자존심 대결장이 되었다. 몇 달간의 지루한 공방전 끝에 소련군이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을 성공시키며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한다. 이때까지는 독일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여 도심으로 압박하여 들어가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엄청난 규모의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에 투입된 모든 독일군을 순식간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모두 25개 사단 총 33만에 달하는 집단군 규모의 대병력과 장비들이었다. 스탈린그라드를 완벽하게 포위하여 순식간에 위치가 바뀐 소련은 독일군을 천천히 고사시키기로 했다. 현지 지휘관 파울루스Paulus는 후퇴를 원했으나 히틀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지사수를 명령했다. 결국 모든 희망을 잃고 고립된 독일 제6군은 소련군에 항복하고 만다. 그것은 스탈린그라드를 반드시 접수하겠다고 발악하던 히틀러의 광기로 인하여 엄청난 대군이 그 좁은 폐허의 도시로 집중되어 벌어졌던 최악의 참사였다.

목차

시작하는 말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1940년 프랑스
*전투서열 (1940년 5월 1일 기준)

1942년 태평양
*미ㆍ일 양국의 항공모함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서열 (1943년 1월 31일 기준)

끝맺는 말

제2차 세계대전 연표
참고 문헌

본문중에서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
-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2차대전에 주도적으로 참전한 국가는 불과 10여 개국 남짓으로 소련·미국·영국·중국·독일·일본이 사실상 전쟁의 모든 것을 이끌었다. 2차대전이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것은 단지 서류상의 참가국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피해와 잔혹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직접 피해로 사망한 사람들만 무려 5,000만 명으로 추산하며, 전쟁터가 입체적으로 커져 후방 깊숙이까지 확대되다 보니 군인보다 민간인들의 희생이 더 컸었다. 그것은 앞으로 발생할 전쟁이 그런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이기도 했다. 게다가 단지 인종ㆍ민족ㆍ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희생과 피해가 극심하다 보니 2차대전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큰 전쟁을 막기도 했다. 아니 사람들이 새로운 전쟁을 두려워하도록 학습시켰다. 2차대전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 가운데서도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냉전이 2차대전의 악몽을 잊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 내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1945년 8월 15일을 2차대전이 끝난 시점으로 보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쟁의 시작은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그 이유는 2차대전이 ‘각각 성격과 지역이 달랐던 여러 전쟁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우선 2차대전의 전장은 유럽-아프리카 전구戰區, Theater와 아시아-태평양 전구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두 전구에서 동시에 전쟁에 임한 미국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도발의 주역인 독일과 일본은 군사전략상 함께 공조를 취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두 전구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별개의 전쟁이라 정의할 수 있고, 2차대전 발발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1차대전과는 달리 교전국이 불명확하거나 그때그때 달랐던 점도 2차대전의 특이점이다. 결국 2차대전은 비슷한 시기에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따로 벌어진 여러 개의 전쟁들이 결국 하나로 합쳐져 끝을 맺는 과정이다. 그리고 수많은 여러 전쟁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2차대전 중에서도 주인공이 되는 전장과 그렇지 못한 전장은 분명히 구분된다.

1940년 프랑스
1차대전 종전 후 독일인들이 승전국들에 대해 느끼는 반감은 컸고, 그중 앞장서서 독일을 압박하던 프랑스에 대한 감정의 골은 상당히 깊었다. 보불전쟁普佛戰爭, Franco-Prussian War과 1차대전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입은 프랑스 또한 독일이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보니 프랑스는 다른 승전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몽니를 부려가면서 독일을 최대한 옥죄는 전후체제 성립을 주도했다. 베르사유 조약의 일환으로 독일 영토인 라인란트에 프랑스군를 주둔시켜 독일을 군사적으로 감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1923년 전쟁배상금 지불 지연을 이유로 루르Ruhr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독일 경제를 파탄시켜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독일 국민들은 프랑스를 반드시 굴복시키고 싶은 미움의 대상으로 여겼고, 따라서 히틀러는 군부와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먼저 철천지원수 프랑스를 손봐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동맹국인 영국은 나치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선언하고 주데텐란트Sudetenland와 오스트리아Austria 등을 합병할 때도, 독일의 야욕을 제지하려는 어떤 적극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 1차대전 당시 프랑스는 무려 140만이 전사하고 420만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것은 당시 20~30대 프랑스 남성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런 끔찍한 경험 때문에 프랑스에는 어떻게든 전쟁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결국 전쟁을 불렀다.
당시 프랑스는 세계 최강의 육군을,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독일이 속도와 집중을 앞세워 구사한 독창적인 전략 때문에 유럽의 육군 최강국 프랑스는 불과 7주 만에 독일의 자비를 바라는 입장이 되었다. 독일은 집단화된 기계화부대와 공군의 입체적인 지원을 통한 현대적 개념의 전격전을 최초로 구사했다. 자신 있게 프랑스 침공 명령을 내린 히틀러는 후일 “점령 후 이틀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피 말랐던 시간이었다”고 술회했을 만큼, 사실은 프랑스의 저력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단지 국토의 5퍼센트만 점령되고 200만 군이 아직 남아있었는데도, 저항을 포기하고 수도를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
프랑스 전역 전후로 나치 독일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만일 프랑스가 그렇게 쉽게 몰락하지 않았다면 이후 벌어진 일련의 비극도 없었을 가능성이 컸다. 한마디로 1940년 프랑스 전역은 2차대전 ?

이 상품의 시리즈

(총 70권 / 현재구매 가능도서 69권)

선택한 상품 북카트담기
펼쳐보기

분야에서 많은 회원이 구매한 책

    리뷰

    8.0 (총 0건)

    100자평

    작성시 유의사항

    평점
    0/100자
    등록하기

    100자평

    8.0
    (총 0건)

    판매자정보

    • 인터파크도서에 등록된 오픈마켓 상품은 그 내용과 책임이 모두 판매자에게 있으며, 인터파크도서는 해당 상품과 내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상호

    (주)교보문고

    대표자명

    안병현

    사업자등록번호

    102-81-11670

    연락처

    1544-1900

    전자우편주소

    callcenter@kyobobook.co.kr

    통신판매업신고번호

    01-0653

    영업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종로1가,교보빌딩)

    교환/환불

    반품/교환 방법

    ‘마이페이지 > 취소/반품/교환/환불’ 에서 신청 또는 1:1 문의 게시판 및 고객센터(1577-2555)에서 신청 가능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 반품의 경우 출고완료 후 6일(영업일 기준) 이내까지만 가능
    단,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반품/교환 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의 하자로 인한 교환/반품은 반송료 판매자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음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주) 인터파크 안전결제시스템 (에스크로) 안내

    (주)인터파크의 모든 상품은 판매자 및 결제 수단의 구분없이 회원님들의 구매안전을 위해 안전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결제대금 예치업 등록 : 02-006-00064 서비스 가입사실 확인

    배송안내

    • 교보문고 상품은 택배로 배송되며, 출고완료 1~2일내 상품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출고가능 시간이 서로 다른 상품을 함께 주문할 경우 출고가능 시간이 가장 긴 상품을 기준으로 배송됩니다.

    • 군부대, 교도소 등 특정기관은 우체국 택배만 배송가능합니다.

    • 배송비는 업체 배송비 정책에 따릅니다.

    • - 도서 구매 시, 1만 원 이상 무료, 1만원 미만 2천 원 - 상품별 배송비가 있는 경우, 상품별 배송비 정책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