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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불면의 백작 부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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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40년 강은교 산문 미학의 절정을 만나다!
이 시대는 늘 ‘새로운 것’에만 경도되어 있다. ‘가치’의 기준이 오로지 ‘새로움’에만 있는, 일견 맞기도 한 이 말에 문학도 어느새 편승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 과연 ‘신작新作만이 새로운 것인가’라고 반문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새로움’은 신작 여부와는 별개로, 시대를 관통하는 작가의 예리한 정신과 이를 고스란히 담은 문장에서 찾아야 하고, 그것이 발휘될 수 있는 유효한 시대 상황과 대중 인식과의 결합에 있으니, 비록 몇 년이 흐른 뒤라도 작품에서 ‘신작’ 이상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을 가려내어 엮는 일련의 작업은 어느 작업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강은교 산문 선집은 ‘새롭다’. 단순한 선별 작업으로만 이뤄진 ‘선집’의 개념을 뛰어넘어 현시점에도 새롭게 읽힐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다. “그대의 ‘틀’을 비틀게. 관습이 되어 버린 공간을, 관념의 분비물로 가득 찬 공간을 또는 감정의 분비물로 더러워진 공간을 구조하려는 것을 떠나”(4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저자의 말은 마치 각 작품들이 “관습이 되어 버린 공간”에서 잠시 한 시절 풍미했다가 곧 사라지는 운명을 경계하고, 부활과 재생을 꿈꾸며 새로운 ‘작동’을 그 스스로 예견한 구절로까지 읽힌다. 신작만이 새로움을 안겨 줄 것이라는 관념의 분비물로부터 말이다.
등단한 지 40여년이 다 되어 가는 한 여성 작가의 인생 궤적을 역추적하며, 상처의 결정체인 각 작품들을 재배치 · 구성하는 일은 단순한 독서 편의 제공 차원은 아니다. 나이테처럼 새겨진 한 사람 내면의 이력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조금 과장해 얘기한다면 40년의 세월 동안 한 여성 작가의 인생길에 간헐적으로 세워진 표지판을 각자의 지도와 비교해 가며 읽는 일이다.

허무의 극점에서 길어 올린 순례와 구원의 언어

어둠의 그림자들이 달려와 엎드린다. 벌판이 달려와 모로 눕는다.
저기 숨어 있는 수평선이 달려와 푸욱 고개를 숙인다.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목소리 하나.
“사랑하라, 여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허虛와 무無’ ‘비리데기’ ‘순례자’ …….
강은교를 대표하는 몇 개의 말들에서 풍기는 정서를 음미하다 보면 고유의 느낌과 분위기가 서로 중첩되어 하나의 질감이, 거기에 빛깔, 그리고 명암이 차례로 생기면서 형태화되기 시작하다, 이내 하나의 ‘아우라’를 형성한다.
강은교 시 세계, 그 원형으로서의 산문은 과연 어떨까? 한마디로 말해 시보다 더 고통스럽다. 시가 고통과 슬픔을 고도로 정제한 것이라면 산문은 그 고통을 낱낱이 풀어헤쳐 내부의 생채기를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저엔 ‘고독’이 짙게 깔려 있다. “나는 끊임없이 꿈꾸고 있다. 소외의 꿈, 유배의 꿈 그러므로 그리움의 꿈을, 고독과 허와 무의 꿈을. 생명이며 에너지인 우리의 이 튼튼한, 이 허와 무…….”(4부 ‘기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의지적 고독, 의지적 허와 무! 작가는 자신을 세워 가는 방식으로 “생명”과 “에너지”로서의 “소외”를 선택하였고, 스스로 ‘비리데기’를 자처하였다. “이런 시대, 이런 뜨거운 햇볕뿐인 삭막한 시절, 우리는 모두 ‘비리데기’일 뿐이다. 버려진 자, 우리의 다정한 부모로부터 버려진 자, 신은 그렇게 우리를 잉태 하고 그리고 버렸다. 약속도 없이, 비를 내릴 기미도 없이.”(3부 ‘기계들’) 이러한 것으로부터 작가는 그가 바라던 ‘순례자’가 된다. 바람은 늘 떠나고 있네. / 잘 빗질된 무기無機의 구름 떼를 이끌면서 / 남은 살결은 꽃 물든 마차에 싣고 / 집 앞 벌판에 무성한 내 그림자도 거두어 가네. // <순례자의 잠> 중에서(4부 ‘아버지와 엘리엇이 있는 습작 시절’)
강은교의 ‘순례자 의식’은 그의 언어들이 허무와 고독의 극점에서 길어 올린, 즉 스스로 버려짐으로써 체득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산문 선집을 읽는 독자들에게 먼 데,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 “여기를!”, 그 순례의 선험자로서 “사랑하라” 고 당부하고 있다. 바로 순례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듯.

고통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
선집은 그동안 발표되었던 산문 중, 총 22편을 선별하여 4부로 구성하였다. 1, 2부에서는 유년 시절에 있었던 일(1부 ‘잊을 수 없는 순간들’ 2부 ‘바다에서의 성사’ 外)을 추억하거나, 소소한 일상 중의 사색과 깨달음의 이야기(1부 ‘낮은 것들을 위하여’ ‘솔방울’ ‘나의 언덕’, 2부 ‘실을 풀며’ ‘말을 위하여’ ‘동물원 이야기’ 外)를 들려주며, 생사의 기로에서 느꼈던 삶의 의지와 생명의 고귀함, 이를 깨달은 순간 아이의 죽음이 가져다 준 슬픔의 교훈(1부 ‘투병기’)에 대해 덤덤히 얘기하고 있다. 3부는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기억할 만한 죽음의 유형들로부터의 ‘성찰’(‘죽음들’)과 작가의 ‘순례자 의식’을 가장 잘 드러낸 글(‘기계들’)이 실려 있다. 강은교는 이 ‘기계들’에서 모든 유기적 관계를 기능과 역할의 측면으로 고찰하는 등 물화物化의 세계를 순례하며 세계 속에서 하나의 부속물로 전락한 기계화된 자신의 신체, 즉 “답장을 기다릴 그 사람” “지금 병들어 있는 그 사람”에게 구원의 편지를 쓰고 있다. 4부는 시와 관련된 여러 단상들을 모았다. 시와의 첫 만남(‘시를 열던 시절’)과 아버지와 시에 얽힌 이야기(‘아버지와 엘리엇이 있는 습작 시절’), 기억이 시가 되어 가는 과정(기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과 문학청년들을 위한 권고의 편지(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렸다. 또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 - 신석정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 약혼식 날 찍은 사진, 딸아이와 찍은 사진, 아버지 사진, 기개가 높았던 젊은 시절의 모습 등 - 을 실음으로써 실제로 어떻게 고통이 풍경으로 남는가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추천사]
강은교는 풀잎에 맺힌 물방울이다. 가늘디가는 바람 한 점도 놓치지 않고 파르르 떠는 이 물방울의 투명하고 예민한 감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가만히 웅크려 앉아 물방울을 들여다보면 존재의 심연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온 자의 서늘함이 보이고, 금방이라도 둑을 허물며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비애를 꾸욱 눌러 참고 있는 자의 견고한 의지도 보인다. 자신의 안을 향해 뭉쳐진 채 바깥을 향해 반짝이는 이 한 방울의 떨림 속에 수심을 알 길 없는 바다가 있고, 섬이 있고, 별을 품은 하늘이 있다. 비리데기가 생명수를 얻듯 시인은 고통의 극점까지 가서 한 종지의 이슬을 얻어 온다. 맑게 글썽이는 이 순도 높은 문장의 향연에 누가 목마른 뿌리를 적시고 싶지 않으랴. 감히 말하건대, 강은교는 하나의 축복이다. 이 산문 선집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고통이 풍경이 되는가를 엿보게 될 것이다.
(손택수 시인)

목차

1부
잊을 수 없는 순간들
한밤중의 전화
아, 가을 그리고 열매
어느 불면의 백작부인을 위하여
낮은 것들을 위하여
솔방울
나의 언덕
투병기

2부
아파트의 심심한 아이들
바다에서의 성사
실을 풀며
말을 위하여
단편들
꽃의 비망록
동물원 이야기

3부
죽음들
기계들

4부
이름
시를 열던 시절
아버지와 엘리엇이 있는 습작 시절
기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5.12.13~
출생지 함남 홍원
출간도서 56종
판매수 5,725권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 및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학위취득)
저서로,

시집: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어느 별 위에서의 하루』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붉은 강』 『벽 속의 편지』 『초록거미의 사랑』 『네가 떠난후 너를 얻었다』 『바리연가집』 『아직도 못만져 본 슬픔이 있다』 그 외에 육필시집 『봄무사』 외 다수.

시산문집: 『젊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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