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예술문화에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건축을 보는 즐거움, 아는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된 세계 건축 산책 시리즈 8권. 이 책은 19세기에 만들어진 빛의 거리를 답사한 것으로 파리의 패시지, 런던의 아케이드, 밀라노의 갤러리아, 모스크바의 굼 등을 산보하여 풍경을 그려냈다.

발터 벤야민의 지적처럼 거리는 공동체의 집이며 여행자의 집이다. 유리로 덮인 빛의 거리는 도시 사람들의 일상이 풍경처럼 펼쳐지는 곳이며, 삶의 몸짓과 기억의 단편으로 아로새겨진 무대이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엄청난 빛의 거리는 지금도 골목길에 조용히 혹은 거리의 전면에서 세련되고 독특한 표정으로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귀중한 공간이다. 도시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이 빛의 거리에는 철과 유리라는 근대적 재료, 무한한 공간을 담으려는 근대적 열망, 상점과 근대인들 사이의 시각적 조우가 담겨있다. 이 책은 유리 지붕이 덮인 빛의 거리가 현대도시에서 부활할 것임을 예감하며, 여러 도시에서 발견되는 빛의 거리들을 산보하며 그 풍경을 그려낸 답사기다. 파리의 패시지 두 카이르, 패시지 파노라마, 갤러리 돌레앙, 패시지 주프루아, 런던의 로열 오페라 아케이드, 벌링턴 아케이드, 피커딜리 아케이드, 밀라노의 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나폴리의 갤러리아 움베르토 1세, 모스크바의 굼의 특징적 모습과 도시의 ‘길’에 대한 체험들이 엮어져 있다.

빛의 거리의 계보
빛의 거리의 무대

1. 파리
2. 런던
3. 밀라노
4. 나폴리
5. 모스크바

해설_ 빛의 거리의 부활
참고문헌

파리에 조성된 빛의 거리는 거의 대부분 협소한 통로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주로 패시지라고 일컬어진다. 한편 갤러리라고 불려지는 거리는 회랑 모양으로 볼록하며 작은 광장을 가지고 있지만 규모면에서 볼 때 이것도 작은 통로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팔레 루아얄의 정원에 그 구조가 남아 있는 갤러리 돌레앙Galerie d’Orleans(1828~1829년) 등은 수많은 갤러리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이다. (7-8쪽)

빛의 거리는 극장처럼 듣기 좋도록 선택된 음악이 흐르는 곳은 아니다. 실례로 음악대나 배경음악, 확성기를 통한 전기적인 소리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감지되는 것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나 웃음소리, 고함소리일 뿐 아름다운 소리는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빛이 나는 거리의 공명효과를 통해 이 소리들이 공간의 음악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낸 소리를 하나의
음악으로 즐기면서 그 음에 음을 중첩시키는 데 열중하는 것이다. (13쪽)

그곳에서는 생활과 삶의 무대가 전개되어 소리, 빛, 회화, 노래, 휴식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면서 점차로 사람들이 스스로의 축제를 연출해 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것은 빛이 나는 가로가 도시라는 극장 그 자체이거나 아니면 무대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해 주는 일이다. 그곳을 거니는 자체가 이미 연극에 참여했음을 의미하고, 관람자와 피관람자를 동시에 연출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시의 공간과 일체가 된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러한 역할을 연출하는 때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장치에 의해서 사람들은 도시라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대상과 접촉할 수가 있고, 이를 통해 생활의 즐거움을 더해가는 것이다. (15-16쪽)

이 공간은 두 가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 하나는 도시의 어떤 범위를 내부화하여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확실하게 도시로 연장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도시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전체를 건축을 통해 가시화하는 것이다. 밀라노의 갤러리아가 충격적인 이유는 이 도시와 건축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함과 동시에, 건축 문화로 인해 가능하게 된 도시의 즐거움과 예지에 넘치는 표현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78쪽)

이렇게 공사중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부터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룹을 이룬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테라스에 허리를 걸치는 그룹도 늘어나고, 원형으로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고리와 고리들이 점점 더 커지고 부딪혀서 말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도 옥타브가 높아지며, 재잘거리는 사람들과 속삭임이 엉켜 갤러리아의 저녁은 무르익어간다. 날마다 반복되는 이 광경은 학생운동 시기에도 보수공사 시기에도 계속되는 모습인 것이다. (79쪽)


그러나 붉은 광장에 드러누운 그 특징 없는 건물이 국립백화점인 굼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는 다소 이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 실제 그곳에 들어가 보면 붉은 광장이 광장이기 위해
서는 노동절에는 어떨지 모르나 굼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밀라노처럼
광장과 갤러리아가 시각적으로 개방되어 결합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러시아 광장에서도 사
람들이 모이는 집회 기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붉은 광장이 광장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건축적으로 조성된 갤러리아풍의 빛의 거리가 무표정한 파사드 뒤에 숨겨져 있고 그 강인한
공간의 혼이 층을 이루며 배후에서 광장을 아우르고있는 것이다.
(111-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