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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예술문화에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건축을 보는 즐거움, 아는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된 세계 건축 산책 시리즈 9권. 이 책은 런던과 바스,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의 훌륭한 주거를 살펴 본 답사기이다.

아름다운 도시는 반드시 아름다운 주거에 의해 만들어진다. 도시의 매력은 결코 커다란 기념비적 건축물과 화려한 공원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도시에는 그 전체를 구성하는 훌륭한 주거단위의 모습이 있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도시는 지금도 이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실제로 그런 도시에 살았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영국과 미국의 아름다운 도시 주거를 살펴본 답사기다. 런던에서는 리젠트 파크를 이루는 여러 테라스 하우스들이, 체스터에서는 중세 상업 도시를 이루며 2층에 통로가 형성되어 있는 주택들이, 바스에서는 고전적 입면 구성을 보여주는 로열 크레센트, 랜즈다운 크레센트의 주택들과 자연과 도시의 조화로운 공존이 다루어진다. 또한 필라델피아를 이루는 여러 가지 양식의 도시 주택들과 소사이어티 재개발, 보스턴의 비컨 힐과 백베이의 주택들, 찰스턴의 2층 포치가 있는 주택들, 포트 선라이트의 공장지대 주택단지들이 조명된다.

머리말 - 도시 주거의 안락함

1. 런던 - 테라스 하우스에 의해 조성된 거리, 광장, 공원
2. 체스터 - 보행 데크로 연결된 중세의 도시
3. 바스 - 바로크적 장대함으로 가득한 휴양도시
4. 필라델피아 - 퀘이커교도가 만든 격자형의 도시
5. 보스턴 - 청교도가 만든 언덕과 수변도시
6. 찰스턴 - 미국 남부 고도의 화려함과 우수
7. 포트 선라이트 - 19세기 자본가가 건축한 이상도시

맺음말 - 도시주거에 대한 단상

계단식 현관을 올라가는 사람은 아직 도로 공간의 중심에 있으면서, 동시에 이미 집이라는 고유의 영역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그곳에서 사람은 안심하게 되고 집의 내부에 들어가서 마음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집에서 거리에 나갈 때 사람은 계단식 현관을 내려가면서 거리를 감지한다. 이와 동시에 그 사람은 아직 주거의 공간에 속하면서 이미 한걸음 거리의 중간에 내딛고 있는 것이다.
(10-11쪽)

이러한 런던의 도시풍경은, 예를 들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탐정소설을 읽은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할 것이다. 셜록 홈즈를 읽는 즐거움의 하나는 홈즈와 함께 런던 거리를 탐험하는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을 발췌한 연구서나 사진집까지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 도시는 연립주택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홈즈도 범인도 이 연립주택이 늘어선 거리에 살았고 그곳을 도주하거나 쫓아 다녔던 것이다. 혹은 영화 『My Fair Lady』를 본 사람들이라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걷는 오드리 햅번의 옆으로 언제나 그 철제 펜스가 이어지고, 조적조의 파사드가 이어지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연립주택 그 자체가 뮤지컬의 무대장치였던 것이다. (38-39쪽)

집들마다 개성이 가장 잘 표현되고 있는 곳은 입구 디자인이다. 아치형의 입구, 절처형(切妻型)？R의 입구, 게다가 기둥으로 포치를 지탱하는 것도 있다. 계단은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많다. 드라이에리어를 따라 철제 펜스가 흐르듯 곡선을 그리고 이 계단을 따라 입구의 문까지 계속된다. 때로는 계단 끝에서 대문의 기둥처럼 높게 되어 있고, 상부의 모양이 아치형이 되기도 하며, 조명기구나 장식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45쪽)

문을 열어서 밖으로 나가 이 계단 위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볼 때 나는 언제나 심장이 뛰었다. 거리는 때로는 빛으로 넘쳤고, 때로는 안개로 가득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에 사는 기쁨, 거리에 나가는 즐거움을 이 정도로 멋지게 실현한 디자인은 없다. 그 가슴 뛰는 즐거움은 집에 돌아가서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서 있을 때도, 남의 집을 방문해서 문을 두드릴 때도 마찬가지로 얻게 된다.
(45-46쪽)

여기서도 건물 입면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3부 구성이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건물 전체는 완결된 정적인 것이 아니라 파도처럼 요동치며 연결되어 있다. 마치 도로 반대편에 위치한 큰 나무숲과 대화를 나누는 듯이 혹은 춤을 추고 있는 듯 끌고 당기면서 온화하고 즐겁게 연결되어 있다. 앞쪽이 늘 숨겨져 있지만 그로 인해 이 운동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되어 갈 것처럼 느껴진다. (75쪽)

집과 집 사이에는 포치를 따라 좁게나마 꼭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이 정원에는 나무와 꽃이 넘치듯 심어져 있다. 녹지, 포치, 정면의 벽이라는 3대 요소가 차례로 반복되면서 찰스턴 특유의 즐겁고 화려한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정원에 피어난 꽃은 통로를 물들이고 이 때문에 이 도시는 꽃의 도시로서도 유명하다. (107쪽)

무엇보다 포트 선라이트 최대의 특징은 연설 중에 윌리엄 레버가 “집 앞뒤쪽에 정원을 있는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넓고 풍부한 녹지에 주택이 세워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당시에 얼마나 신선하고 혜택받은 조건이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영국의 주택 중에 비교적 혜택받은 중산층의 주택조차도 뒤쪽에 작은 정원back-yard이 있을 뿐이며, 노동자 주택에서는 이 공간조차도 없고, 주택의 뒤쪽이 서로 밀착된 ‘백투백back to back’이라는 형식이 통례였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포트 선라이트는 녹지와 햇빛이 넘치는 전원도시의 선구적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6쪽)

단독주택이 늘 반反도시적인 것은 아니다. 각각의 주거 속에서 도시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문제를 담지 못했던 근대의 주택관 그 자체가 반도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고가 극복되고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에서는 뛰어난 독립주택도 연립주택도 그리고 고층주택도 영구히 실현될 수 없다. 주거와 도시를 서로 구별하는 단일한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거와 도시는 늘 연속적이며 이 점에서 주거는 작은 도시이며 도시는 큰 주거이다. (126-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