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사랑에 관하여,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 한 경우는 드물다.
철학자들도 사유하지 않으니,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랑은 그저 느끼고 하면 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진다.
사춘기만 되어도 다 할 수 있는 그런 거다.
물론 아주 예쁘고 소중한 것.
하지만 바디우는 그런 '흔한 사랑 이야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안전 규범들에 맞추어 사랑을 훌륭히 준비한 자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편의에 부합하지 않을 타인이라는 존재를 곧 포기하게 되겠지요."(p.19)
사랑을 사유가 아닌 느낌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사랑할 때 얻는 좋은 느낌을 추구한다.
물론 상대가 좋고,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좋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기쁨을 느끼면 '질투'를 하게 되는 거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둘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포장되는 이 관계는 서로를 소유하며 타자를 배제한다.
그래야만 관계가 안전하게 지켜지기 때문이다.
바디우는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사랑의 원리를 비판한다.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라 하겠습니다."(p.41)
사람들은 사랑을 '도구'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을 위한 하나의 도구말이다.
그래서 안전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려 하는데, 그건 결혼과 함께 더 강화된다.
결혼 전의 이별은 상처만을 가져오지만, 결혼 후의 이별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피해까지 야기한다.
그래서 사랑의 덕목은 희생이며 안전이다.
사랑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은 부정되어야 한다고 받아들여 진다.
그러면서 둘은 하나가 되었다(사랑 안에서 혹은 가정 안에서)고 선포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일 뿐이다.
연인이 되거나 결혼을 했다고 해서 사랑이 완성되거나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정일 뿐이기에 계속해서 사랑해나가야 한다.
당연히 안전만큼이나 위기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사랑이 깨질 수도 있다.
결국 그것을 감수하고 계속해서 사랑하느냐, 포기하고 계약 관계로 변질되느냐의 차이다.
"지점들, 시련들, 시도들, 새로운 사실들의 출현이 존재하며, 매 순간 '둘이 등장하는 무대'를 재연해야 하며, 새로운 선언에 필요한 용어들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최초에 선언된 바로 그 사랑도, 역시 '다시 선언'되어야 할 것입니다."(p.62)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닌 '나' 자신이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안주하려는 욕망을 극복해야 한다.
바디우는 그런 사랑이 '전쟁'같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항상 '두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하나가 되었다는 환상이나 계약이 아니라,
두 사람으로서 만나는 순간에만 사랑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바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