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자크 르 고프는 고리대금을 자본주의의 발전과 연관 지으며, 그 탄생 배경을 묘사한다. 포커스는 당시 사회적 배경이다. 지금이야 돈이 귀하고 신성하며 가장 강력한 존재로 대접받지만, 그 10세기 초반 유럽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었나. 어떻게 돈이, 그것도 고리대금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당시 기독교에 있어서, 고리대금은 흡혈귀라고까지 표현되는 죄였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하나님과 돈을 대립시키며 돈과의 관계를 잘 정리해왔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하지만 13세기에 그것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기독교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고 해도, 화폐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가치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히 고리대금이란 무엇일까? “고리대금은 고리대금 그 자체, 모든 금지된 금융 행위의 총칭이기도 하다. 고리대금은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는 거래에서 빌려 준 자가 이자를 받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이자의 징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리는 이자와도, 또 이윤과도 동의어가 아니다. 고리대금은 재화의 생산이나 물질적인 변형이 없는 경우에 성립한다.” 쉽게 말해 ‘돈놀이’하는 것이 고리대금이다. 분명히 성경은 고리대금을 금지하고 있다(출애굽기 22:24; 레위기 25:35-37; 신명기 23:20; 누가복음 6:36-38). 그래서 초기 교부들은 고리대금 업자들을 경멸했고, 초기 공의회는 성직자의 고리대금을 금지했다(니케아 공의회 교회법 17조, 325년). 하지만 12세기에 접어들어 화폐가 일반화됨에 따라 고리대금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13세기까지 급증했다. 자연히 사회와 교회도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11세기 말부터 13세기 초까지, 기독교의 죄와 회개 개념이 변화를 일으킨다. 영적이고 내면적인 차원에서 그것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거운 죄에만 적용되던 고해는 보편적이고 빈번한 것이 되었다. 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에서는 모든 교인이 1년에 1번은 고해를 할 것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따라서 고해 사제는 고리대금업자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고리대금 업자가 받았던 비난과 금지 대상들은 점차 감소했다. “이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고리대금업자가 그들의 온건함 때문에, 또는 용인된 이자 대출이라는 새로운 구역으로 그들의 활동이 옮겨감에 따라 지옥에서 구제될 가능성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연옥’의 탄생이다. 고대로부터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양분된 사후 세계의 구도를 이어왔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서구 사회에서 그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개념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단순한 이원론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선과 악, 상과 하의 양극 사이에서 가운데 또는 중간을 구분하고, 죄인들 가운데 즉시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질 사람들이 아니라, 완전히 선하지도 또 완전히 악하지도 않은 자를 구분해 냄으로써, 단순화의 위험이 있는 이원론을 피하려는 일반적 추세를 따른 것이었다.” 천국에 가기도, 지옥에 가기도 모호한 사람은 연옥에 보내져서, 자신의 죄에 따라 일정 기간 훈련(고통)을 받고 죄가 정화되어 천국에 가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로 인해, 고리대금업자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희망 말이다. “연옥은 정말이지 기독교가 13세기에 고리대금업자에게 보낸 눈짓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제한 없이 천국을 보장해주었다. ... 최후의 통회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고리대금업자는 구원받으리라는 희망, 살아서는 돈주머니와 죽어서는 영생을 모두 얻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머지않아 그것은 거의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저자에 의하면 종교적 사회에서 최고의 장애물은 종교적인 것이다. 돈에 대한 사랑이나 생산 없는 이자가 죄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연옥에 의해 극복되었다. 죄를 좀 지어도 마지막에 회개하고, 죽은 뒤 연옥에 가면 결국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리대금과 함께 자본주의는 부흥했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연옥, 돈, 구원, 고프, 자본주의

이 책은 스피노자가 어떻게 현대 사회에 받아들여졌는지를 다룬다. 따라서 많은 나라의 개론서를 보게 될 텐데, 편역자는 “자세히 언급하면 지루할 것이기 때문에 주요 특징만 다루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스피노자와 관련된 철학책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쉬움’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이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쉽기만 한 책이 최고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너무 평이하게 소개한 것이 아닌지 싶다. 감동이나 깊은 깨달음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이해를 못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책을 집어 들 사람은 대부분 스피노자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일 텐데, 너무 쉽게 쓰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전달되지 않은 것이 많다고 생각된다.

 

가령 “20세기 스피노자 철학의 메아리”라는 파트에서는 스피노자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다루는데 딱 한 문장 할애가 되었다. 그것도 어색한 번역 투로.. “마지막으로, 아인슈타인은, 아무도 학설 비교에 대한 명확한 내용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스피노자의 대한 언급을 많이 했다.”

 

어쨌든 20세기 중반 이후, 정확하게는 1945년 이후 스피노자는 부활했고,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들뢰즈, 네그리에 이어 불교적 해석들까지. 이 부분이 자세히 소개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

 

뒷부분에서는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와 스피노자와의 관계를 한 챕터씩 할애해서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 바빠서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래도 이 책을 직접 읽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연구서들을 찾아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만약 그 자료들의 나열이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이 책의 성과를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난 철학자 강신주의 이야기. 5주에 걸쳐 50시간을 인터뷰하며 6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인터뷰 형식의 대화이고, 대중 철학을 표방하는 강신주 선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읽힐 것이다. 지금까지 했던 강연을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인문학이다. 지식이나 교양으로 자신을 꾸며주는 것은 가면일 뿐 인문학이 아니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품위 있는 영국 귀족처럼 되려는 것도, 덕망 있는 공자처럼 되려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고 참다운 나를 만들어 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강신주 선생은 인문학을 고유명사의 학문이라고 표현한다. 니체는 니체의 철학을, 칸트는 칸트의 철학을, 김수영은 김수영의 시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좋아서 따라다니면 그것은 인문학이 아닌 종교다.

 

물론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나 한 사람 변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가면을 벗으면 무수한 공격이 들어와 상처가 된다(나 역시 체험해 본 바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피하면 안 된다. “인문학, 철학의 특징은 주어가 ‘나’나 ‘너’까지라는 거예요. ‘우리’라고 쓰면 사회과학이 돼요. 정치적 담론이 되고. ‘우리’와 ‘나’는 달라요. 그래서 ‘너나 잘하세요’가 좋은 거예요. ‘사회가 변하지 않잖아요. 저 혼자 뭘 해서 되겠어요?’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의 가르침은 그거죠. 왜 모든 게 변한 다음에 숟가락 올려놓으려 하냐, 너는 왜 못 하냐, 인문정신이라는 것은 천안문 광장에서 장갑차 맨 앞에 있는 그 청년의 정신이다. ‘100명이 서면 저는 그 뒤에 설게요.’ 이건 인문정신이 아니에요.”

 

이렇게 1부에서 인문학에 관해 다루고, 이어서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넘어간다. 사랑, 시, 제자백가, 사회, 자본주의, 음악, 인간. 이 모든 것을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을 위하여 이야기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인간 보편’이 아닌 ‘각 개인의 인간’을 의미한다. 왜? 먼저 개인으로 서야만 유대와 연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조직/조폭문화에 길들어 있다. 심지어 조직에 대항하는 노조조차도 그런 문화다. 탈퇴하면 죽이려 하면서 말이다. “우리 조직이 와해될까 봐 두려운 거예요. 그럴 때 ‘나는 혼자 남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한데, 우리가 그렇게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반복적으로 전체주의를 겪었고, 전쟁을 겪으면서 패거리가 들어가 있어야 생존한다는 걸 체득했잖아요. 독재가 패거리를 강요했잖아요.” 물론 그 과정은 과격하고 아플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자기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말 그대로 ‘메스를 대는 수술’과도 같은 작업이다.

 

여기서 그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순 없으니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망치는 결혼과 소유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래도 삶과 밀접하기 때문에, 독신주의자가 아닌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자신이 변해야 할 부분이 있고, 빨리 헤어져야 할 나쁜 연인도 있을 테니까.

 

과격한 표현으로 주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에 대해, 강신주 선생은 외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잘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그것이 인문학이고 철학이니까.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동의 못 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그건 모든 책이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어떤 것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며,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건 맞는 것 같아.’라고 판단이 되면 얼마든지 하면 된다. 아니라면 단호히 거부하고 말이다. 이제 소개의 글을 다 읽었으니, 가면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인문학적 삶을 살아가자는 그 이야기를 직접 읽어보는 게 어떤가?

 

*맨얼굴의 표준어는 ‘민얼굴’이지만, 저자의 철학적 맥락과 입맛을 살리기 위해 맨얼굴로 표기했다고 밝힌다.

강신주, 철학, 인문학, 맨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