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을 통해 인간과 그의 운명에 관해 고찰한다. 이 주제에서 ‘자유의지’ 문제가 빠질 수는 없는데,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인간에게 자유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니체에 의하면 인간에겐 자유가 없다.

 

“인간의 운명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위하고 판단하더라도,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부당함을 알고 있다.”

 

폭포를 생각해보자. 수없이 굴절되고 소용돌이치고 부서지는 물살이 정해진 것 없이 자유롭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역시 필연적이기에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행위도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자유롭다는 환상에 빠져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정해진 운명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인가?

 

“행복이 있는 곳에는 거의 어디에나 무의미에 대한 기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을 그 반대의 것으로, 합목적적인 것을 무목적적인 것으로, 필연적인 것을 임의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은 인간을 기쁘게 하며 게다가 이 과정이 아무런 해도 주지 않고 일시적인 즐거움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더군다나 인간을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우리의 무자비한 주인으로 느끼는 필연적인 것, 합목적적인 것, 경험적인 것의 속박에서 일시적으로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기대되었던 것(보통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긴장시키는 것)이 아무런 해를 주지 않고 해결될 때, 우리는 즐거워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은 사티로스 축제에서 노예들이 느끼는 기쁨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굳이 어떤 목적만을 추구해가며 살 필요가 없다. 막살라는 말이 아니다. 현재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말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생각에 맞서,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을 때 우리는 속박에서 벗어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그것들을 거부할 수 있을까? 정열, 언어, 예술, 종교 등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이 있다. 거기에 반기를 들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게 논리적인 본성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인간은 본래 비논리적인 존재다. 그 사실이 사상가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가장 이성적인 인간도 때로는 다시 본성을, 즉 만물에 대한 자신의 비논리적 기본 입장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목적과 이성에 사로잡히지 않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 흐름이 아닌,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부분만을 다루었다.

<선악의 저편>은 9장에 걸쳐 29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다. 이 책의 제목인 ‘선악의 저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과 악의 범주를 넘어서는 차원을 다루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부제인 ‘미래철학의 서곡’까지 더해진다면 이해가 더 쉬워진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악을 넘어서는 미래의 철학”

 

넘어야 할 과거 혹은 현재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니체에 의하면, 그것은 당연히 선악을 구분하는 도덕 체계이다. 이에 관해서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자세히 해부한 바 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도덕이 시대마다 다르게 변해왔고, 동시대라 해도 공간마다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덕 체계가 가장 완전하다고 믿는다. 일종의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그런 역할을 해왔고, 기독교에 의해 뿌리 박혔다. 니체가 넘어서길 촉구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들은 바로 시대의 미덕의 가슴에 해부의 메스를 댐으로써, 그들 자신의 비밀이 무엇인지 드러냈던 것이다: 이 메스를 댄 목적은 인간의 새로운 위대함을 아는 것이며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새로운 미답의 길을 아는 것이다. 그들은 그때마다 가장 존중받는 동시대의 도덕성 유형에 얼마나 많은 위선과 안일, 방임, 자포자기가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허위가 숨어 있고, 얼마나 많은 덕이 살아남아 있는지 폭로했다.”

 

저건 과거 중세시대의 이야기일 뿐일까? 합리적인 현대인은 뭔가 다를까? 아니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았다. 니체는 여전히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과거의 사람들이 도덕이라는 범주에 갇혔다면, 현대에는 전문성이라는 면에서 우리의 다양성이 제한되고 있다.

 

“모든 인간을 한쪽 구석이나 전문성에 가두고 싶어 하는 현대적 이념의 세계에 직면하여 철학자는 –만일 오늘날에도 철학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면,- 인간의 위대함을, 위대함의 개념을 바로 그의 광범위함과 다양성에, 그의 다면적 전체성에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성뿐만이 아니라, 뭐든 들어갈 수 있다. 학생에게는 ‘공부’가 될 것이고(공부만이 그 인간을 평가하는 전부가 되고, 모든 학생이 그것만을 위해 달려가니까), 사회인에게는 ‘돈’이 될 것이며(모든 것의 평가 기준이니까), 저질 로맨티스트에게는 ‘사랑’이 자신을 가두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남녀 간의 사랑만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거부하여 초연하게 살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사는 삶 역시 자신을 제한하는 것일 테니까(누구도 손쉽게 세상과 이별할 수는 없다). 오직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겠지.

 

 

*이 책은 부분을 다룬 것이니, 전체적 흐름과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둘 것.

니체, 선악, 도덕

<즐거운 학문> 역시 앞서 소개한 <아침놀>과 같은 형식의 잠언 모음집이다. 이 책은 383개의 단편과 다양한 시로 된 짧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틀에 묶는 것은 내게 있어 어려운 일이다. 굳이 그 작업을 할 생각도 없다. 다만 니체는 제2판 서문을 통해, 이 책에 “오만, 불안, 모순, 변덕스런 봄 날씨 등이 뒤섞여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겨울과 이 겨울의 극복에 대한 경고를 끊임없이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즐거운 학문’이란 무섭도록 오래 지속된 억압에 저항해온 이야기다. 여기서는 ‘목적론’과 맞서는 이야기만 살펴보자.

 

니체는 첫 단편의 제목을 “존재의 목적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정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목적론, 즉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과 이웃의 삶을 촉진해야 한다! 이 모든 ‘해야 한다’라는 당위와 ‘그러므로’라는 근거가 미래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필연적으로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무 목적 없이 생겨나는 것을 이제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이성과 궁극적 목적으로 인간에게 비춰지게 하는 것 –현존재의 목적을 가르치고 윤리의 설교자가 등장하는 것은 이것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니체에 의하면, 이 세상은 어떤 목적과 질서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 가운데 존재한다. 물론 그것은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질서, 조직 구조, 형식, 미, 지혜, 그밖에 우리가 심미적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베이컨은 자신의 4대 우상론을 이야기하며 종족의 우상을 고발하는데, 인간이란 종족이 우주의 지배자인 것처럼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모든 것이 인간의 생각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우주는 결코 인간을 모방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어떤 미학적 판단이나, 도덕적 판단도 우주에 적용되지 않는다! 우주는 자기보존 본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도대체 본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주는 법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연에 법칙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자연에는 오직 필연성이 있을 뿐이다. 자연에는 명령하는 자도, 복종하는 자도, 위반하는 자도 없다.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연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목적의 세계에서만 우연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서가 없이 혼돈에 빠진 세상에서 우리는 불행할까? 아니다. 이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거나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라는 말이다.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 나오는 인용구를 들어보자.

 

“스토아주의나 위선보다는 정열이 더 낫다. 전통적인 윤리 안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심지어 악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더 낫다. 자유로운 인간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자연의 수치이며, 하늘의 위안도 지상의 위안도 얻지 못할 것이다. 결국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기적의 선물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넌 남자니까, 넌 여자니까, 넌 국민이니까, 넌 학생이니까 이렇게 해야 돼.” 이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정해진 일에 자신을 맞춰갈 필요 없다. 세상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서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음을 니체는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것을 억압해 온 그리스 주류 철학과 기독교(성서와 다른 기독교!)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우리 스스로에 대해 권리를 지녀야 마땅하다! 우리도 또한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순진무구한 자기애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성장하고 꽃피워야 한다!”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