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아침놀>은 무려 575개의 짧은 잠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도덕의 계보학>처럼, 이어지는 긴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의 단편이 니체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책이다.

 

궁극적으로는 니체의 사상을 축약하고 있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요약하는 것은 불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사랑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몇 가지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결혼 전에 이루어지는 숙고의 표본.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녀는 결국 내게 얼마나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인가! 또한 만일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결국 정말로 얼마나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인가! 문제는 단지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성가심에서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결혼하자!”

 

“가장 위험한 망각.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잊는 데서 시작해 자기 자신에게서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직 문제의 여인 살로메에게 실연당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일까? <아침놀>을 쓸 당시의 니체는 사랑에 관해서도 꽤 진지하게 사유했던 것 같다. 그녀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면서.. 물론 실연 후 니체의 과격한 여성관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타나기 때문에, 과연 그 이후에도 사랑을 꿈꿨느냐는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이 책에는 꽤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남겨있다.

 

니체

‘보노보’(Bonobo)란 유전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유인원이다. 책 표지를 보고 언뜻 침팬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폭력적인 성향을 띄는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평화를 좋아하는 낙천적인 성향의 동물이라고 한다. 이 책은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하면서 인간의 사회를 돌아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침팬지로 만든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또한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서라고 외친다. 이미 어린시절부터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던가. 시험에서 1등을 하고,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이다. 인간의 세상이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려는 욕망까지 고려한다면, 인간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 아니다. 사회 구조가 그런 유형의 인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경쟁과 폭력에 물든 침팬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보노보 혁명’이 요구된다. 타인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말이다. 그것은 경제적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자는 운동으로 이어진다. 경제에서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기업들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1장에서는 존 우드(John Wood) 등 8명의 사회적 기업인을, 2장에서는 그라민 은행(Grameen Bank) 등 7개의 보노보 기업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보노보라는 혁명이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더 정확히 말해 이미 많은 보노보가 그것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3장에서는 정확히 사회적 기업가가 누구인지,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지에 관해 설명하고, 4장에서는 그렇게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닌 새로운 생태계를 묘사한다. 우리가 보노보 혁명을 통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세상, 동물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말이다.

 

지금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은 돈이다. 돈이 신이 되어버린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은 골목상권을 죽이면서까지 계속해서 돈을 소유하려고 하고, 일반 사람들 역시 그것을 비판하기보다, 대형 마트를 이용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발버둥 친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길들여진 침팬지의 모습일 따름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우리는 침팬지로 훈육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본래 모습이 보노보라고도 할 수 없다. 그저 어떤 사회에서 사느냐에 따라 우리는 침팬지가 될 수도, 보노보가 될 수도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 한 사람 잘 살고 깨끗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되고, 사회를 변혁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 아닌가.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경쟁이 아닌 공감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폭력적이 되어가는 침팬지가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며 서로 하나 되어가는 보노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반증하듯 침팬지는 위계질서가 잡힌 세계를 추구하고, 보노보는 인간과 같이 섹스를 즐기는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침팬지의 세계는 성을 금기시 하면서 보수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과거 신분사회와 같지 않은가? 물론 성을 금기시 하는 것은 순수한 이유가 아니라 가진 자들이 그것을 독식하기 위함이었다. 그만큼 보수적인 사회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노보의 세계에는 자유와 평화가 있다. 금기를 통해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계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에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없다. “서양인이 쓴 책이라 그런 것 아니냐.”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2부에 나오는 그라민 은행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의 은행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보다 훨씬 후진국인 동남아의 사례까지 소개될 만큼, 전 세계를 아우르며 조사된 책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 분발해야 한다. G20 가입국이 된 것이나, 삼성이 세계적 기업이 된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쩌면 더 경쟁이 심해진 무서운 사회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하여, 침팬지가 아닌 보노보의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달려갈 때다.

‘기억’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공부한 것을 기억해야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고, 과거의 실수를 기억해야 앞으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애인을 기억해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다. 나아가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이기도 하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영화 인디언 썸머 중에서)

 

반면 ‘망각’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기억하지 말고 지워버리라는 말이다. 저자는 철학, 심리학, 인지과학 등을 통해 망각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불필요한 스트레스에 이리저리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삶의 에너지를 현재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잊거나, 단순히 마음을 비워 명상의 단계에 이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망각의 의미를 가르쳐주며, 기억할 필요 없는 것들을 잊으라고 제안한다. 대부분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오만가지 쓸데없는 일을 기억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기에만 익숙해져 있다. 주입식 교육에 물들었기 때문일까? 뭐든 기억하려고 한다. 기억을 소유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소유한다고 해서 과거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현재와 미래를 망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기억의 천재로 불리는 솔로몬 셰르셉스키는 수학 공식, 외국어로 된 시, 10여 년 전에 들었던 단어까지도 모두 기억했는데, 그것은 그를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이끌었다. 기억이 쌓이고 쌓여, 5분 전에 들었던 이야기와 5년 전에 들은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여,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이다.

 

셜록홈즈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다락방과 같아서 모든 기억을 담아둘 수 없다. 그러므로 필요하지 않은 기억은 버려야 한다. 어떻게?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몰입’이다. 완전한 무지도 아니고, 너무 많은 잡념도 아닌 중용의 상태가 몰입이라고 한다. 그렇게 독서나 학문 등에 몰입할 때 우리는 중심 잡힌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며 제안한다. 몰입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지에 관해서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망각이 기억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돈을 잘 버는 것만큼, 잘 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아닌가. 아니, 여기서는 공두래공두거(空頭來空頭去)라고 해야겠지.

망각,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