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조지오웰' 에 대해서

 

 

세상의 변화는 은밀하게 그리고 예기치 않게 밀어와 어느 사이엔가 우리네의 익숙한 삶의 뿌리를 흔들어댄다. 우한발 코로나19가 그렇고, 혐오와 질시의 언어가 난무하며 무기력과 슬픔을 대신한 무용한 쾌락의 장치들에 몰입하는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토양위에서 전체주의적 망령들의 반동적 선동이 활개 치는 것이 그렇다. 아마 이러한 환란 아닌 환란 속에서 오직 개인들 자신의 행복만을 부르짖을 때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부터 야기될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직시케 하는 지성의 목소리인 '조지 오웰'의 소설『1984』를 소환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 본능에서 절로 솟는 각성의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Α. 책 '디 에센셜'시리즈『조지 오웰』에 대해

 

마침 '민음사 X 교보문고'가 개인과 시대의 한계를 탐색할 수 있는 고전 작품을 통해 지향해야 할 삶을 재구성하는 지적 유산을 선정하여, 작가의 사상이 가장 잘 투영된 '소설과 에세이를 큐레이션'한 '디 에센셜'시리즈의 첫 권으로 『조지 오웰』을 출간한 것은 오늘 우리네 사정과 요구에 부응한 돋보이는 기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책 표지에서 만나게 되는 초상화가 '정중원'이 그린 조지 오웰의 하이퍼리얼리티 형상은 왠지 소설 속 윈스턴의 모습과 겹치며 그의 곡절 많았던 삶의 얼굴이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감응을 느끼게 된다.

 

이 새로운 구성의 판본은 소설 『1984』의 완역본과 「교수형」을 비롯한 에세이 7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에디션이 지닌 매력은 기획의 시의성이나 판형의 신선함을 넘어서는 '소설 X 에세이'구조를 통해 수록된 작품들의 긴밀한 상호 조응으로 더 깊고 섬세한 읽기가 되도록 하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인간 사유의 축소를 위해 사용되는 축약된 단어로써 '신어'와, 언어의 쇠락이 의미하는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성찰하는 에세이「정치와 영어」는 전체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의 속성과 현상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1947년 발표된 에세이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은 계속해서 과거의 기사를 현재의 사실로 바꾸는, 결국 권력과 지위의 유지를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소설 속 윈스턴의 진리부 기록국 업무가 현실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층적 보기를 돕는다.

 

Β. 소설 『1984』

 

"프롤, 85퍼센트의 대중,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노동, 가사와 양육에 대한 걱정,

영화, 축구, 맥주, 도박 ... 그들을 통제하는 건 어렵지 않다." - 118쪽 변형 발췌 인용

 

소설의 배경인 1984년은 이미 전체주의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다. 텔레스크린이라는 이름의 촘촘한 감시망과 사상경찰이 얼굴표정, 심박동의 미세한 변화는 물론 무의식까지 통제하는 예속 사회이며, 끊임없는 전쟁 상황의 속보와 포화가 일상화된 곳이다. 또한 앎에 대한 의지, 생각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동의어인 세계이다. 서른아홉 살의 작고 여윈 파란색 제복을 입은 남자 '윈스턴 스미스'와 함께 색채라곤 없는 을씨년스런 잿빛 도시의 정경과는 달리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을러대는 현란한 포스터의 펄럭임으로 시작되는 도입부 묘사는 마치 B급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음울함으로 감정을 압도한다.

 

보도,연예,교육 및 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眞理部)라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윈스턴은 현재의 사실과 일치하지 않게 된 과거의 신문기사를 당의 지시에 따라 오류의 정정이라는 명분으로 수정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끊임없이 변조되는 과거, 그래서 "지금 진실한 것은 영원히 진실하다."는 궤변이 진리인 세계가 된다. 행정기관의 이름은 이처럼 "뻔뻔스럽게 사실과 정반대인 뜻을 지닌" 이름으로 불린다. 사상범을 체포, 고문, 살해하는 기관은 애정부로, 한없이 감소하기만 하는 일상용품 등 산업생산을 관장하는 곳은 풍요부와 같이 명칭이 지녔던 전복된 관념이 진실이라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 세계이다.

 

사실 내겐 이러한 세계가 낯설지 않다. 머리길이 단속, 치마길이 단속 등 사생활의 통제에서부터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반병신이 되어 풀려나거나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이 예사였던 시절이 채 30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대학에는 사복경찰이 상주하고 있었으며 파시스트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학생 정보를 캐내기 위해 동료학생을 팔아먹는 끄나풀들을 운용하며 동기간에도 마음 놓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였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2020년 오늘, 한국 사회는 황색언론을 필두로 기회주의적 담론가들, 수구세력들의 선동 정치와 이에 뇌동하는 대중 집단이 다시금 대중민주주의, 파시즘의 이름을 대신한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사회로 젖어 들어가고 있다. 오웰이 소설에서 경고하는 바로 그것이 눈 에 도달해 있음에 안타까움이 커진다.

 

윈스턴이 바라보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당 슬로건은 전체주의 권력의 유지 존속을 위한 명제이다. 프롤의 거주지에 수시로 떨어지는 폭탄과 상대를 달리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되는 전쟁이 평화인 것은 인민 대중의 애국심이라는 저열한 열광의 상시화, 이를 통한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니 당의 입장에서는 평화인 것이며, 당 권력의 모든 언행에 어떠한 의심이나 회의도 체포와 폭력을 수반한 죽음이기에 예속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이다.

 

또한 당의 안정성이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충성하는 어리석고 맹목적인 열성분자이며,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말소할 줄 아는 인간만이 생존할 수 있기에 지적 게으름을 비롯한 무지야말로 힘인 것이다. 문화적 저열성을 심화시키는 각종 온라인 미디어 매체들에 희희나락하며 자기 본능과 욕구에만 충실한 인간들이 넘칠 때 파시즘은 이 지적 빈곤과 도덕적 미숙을 영양 삼아 은연히 성장한다. 소설은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인류애에 터 잡은 경고일 것이다. 오웰은 말한다. 이같은 세계가 "현실이 되게 놔두지 마라, 그것은 바로 당신에게 달렸다."고.

 

소설 속 다음의 문장은 '당신에게 달렸다.'는 의미에 조응한다. 진정한 자유와 안전을 누리려 한다면 앎의 역량을 높이고 주변의 변화를 날카롭게 통찰할 수 있는 지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각성할 것을, 맹목에서 탈출할 것을, 행진을 하고 함성을 지르며 깃발을 흔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를.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정통적인(충성하는)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 무지로 인해 정상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 258쪽에서

 

인구의 85퍼센트에 이르는 소설 속 프롤은 위 인용 문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원시적 애국심의 꼭두각시이며, 영화, 축구, 맥주, 도박(게임) 등 일시적 쾌락에 열중하고, 전체 상황의 이해를 지니지 못하기에 사소하고 엉뚱한 것에 연연하며 정작 커다란 병폐는 인식하지 못한다. 종속 상태인 자신들을 성찰 할 줄 모른다. 이들의 두드러진 생활 특징이 "추악함, 적나라함, 무관심"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윈스턴의 이해는 그대로 오늘 우리 대중 사회의 묘사라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이중사고'와 '신어'는 바로 이러한 인간들을 양산하는 도구이며, 전체주의의 생명 유지 토대라 할 수 있다.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고,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민주주의 수호자로 믿으며,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이 해괴한 사고가 이중사고이다. 오늘 한국사회의 기득 세력들이 매일 쏟아내는 혐오와 증오의 언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언어에서 이것을 매양 발견하게 된다. 또한 모든 언어들이 축약되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협의의 왜소한 의미로 축소되어 사용되는 현상은 일종의 약어인 신어(新語)의 본질이랄 수 있다. 사고의 폭을 좁히고, 개념을 획일화하여 "뇌신경을 쓰지 않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체주의 권력, 포퓰리스트들이 가장 반기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오웰은 표현 불가능한 악랄한 고문과 목전에 둔 죽음 앞에서 "마지막까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다!"라고 외치는 윈스턴의 불복종, 사유의 여정을 보여주며 온 마음의 의지를 휘저으며 현실을 부릅뜨고 바라볼 것을 깨우쳐준다. 전체주의는 그리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그런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모습을 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많은 독자들의 관점이, 그 사유의 깊이가 변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Γ. 일곱 편의 에세이들

 

수록된 일곱 편의 에세이는 조지 오웰의 사상(思想)과 소설 『1984』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한 가히 선도적 수준의 편집 판본이 되게 해준다. 무엇을 의도했는지, 실제로 말한 내용과 당대의 사람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을까를 복원하여, 오늘의 우리네에게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지성사적 노력의 결실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것이 『1984』의 최고수준 비평판이 되도록 하여준다고 해도 넘치는 수사는 아닐 것이다.

 

에세이「사형수」는 교수대를 향해 죄수를 끌고 가던 식민지 버마(미얀마) 경찰이었던 당시의 기억을 술회하는 내용이다. "사형수가 물구덩이를 보고 옆으로 살짝 피해 걷는 모습"에서 오웰은 인간의 생명성에 대한 연민으로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몽매함을 사유한다. 이것은 소설의 여러 장면에서 반복되어 묘사되는데, 권력의 냉혹성, 그리고 생명, 타자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전체주의의 본질적 속성은 이처럼 실제와 연결 짓게 된다.

 

「코끼리를 쏘다」는 전체주의 권력이 왜 사람들의 무의식까지 통제하려하는지 거짓된 권력의 불안의 정체를 드러내 보여준다. 인파의 의지에 쫓겨,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 기대하고 있으니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오웰의 목소리는 전체주의가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를 여실히 증거하며, 그 안에 들어앉은 겁쟁이의 두려움, 자아와 자아의 부담에서 풀려나게 해주는 집단성, 그것일 것이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이다." - 636쪽에서

 

소설 『1984』의 주제어인 이중사고와 함께 신어로 불리는 일종의 약어는 에세이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과 「정치와 영어」두 편을 통해 "개념이 없으면 낱말도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 "약어를 사용하는 추세는 전체주의 체제 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음"을 당대의 실체적 현실 예를 들어가며, 어휘 선택 범위가 줄어드는 것을 지배 계층과 권력이 방관하며 부추기는 것은 사고하려는 유혹의 감소와 비례적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당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현실 사회에 대한 오웰의 통찰이 소설 속 언어가 된 배경을 이해하는 맞춤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그밖에 「나는 왜 쓰는가」,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 「작가와 리바이어던」등 에세이는 오웰의 작가로서의 진솔한 성장기록이며, 영원한 행복을 시도했던 유토피아 그리기 시도의 실패 역사를 통해 행복과 자유의 교환이라는 무시무시한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기도 하고, 문학 창작이 집단에 대한 충성으로 물들 때, 창의성이 고사되고 왜곡되는 전체주의화 현상을 창작 세계를 통해 들여다보도록 해주기도 한다. 다시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들 선별된 에세이는 소설과 함께 독자들에게 한 작가의 신념과 그의 담론 세계, 나아가 성취하려했던 사상을 보다 깊이 있게 재해석하는 과제를 결합시키도록 해준다. 오늘 우리들과 우리네 사회에 요구되는 지성의 환기를 위한 진정 적시의 편집판이 아닐 수 없다.

디에센셜, 디에센셜조지오웰, 1984, 민음사, 조지오웰

  

“몸과 정신과 고기, 그야말로 모든 것이 태양과 열기와 숯불에 타고 있다.” - P 156 中에서

 

 

왠지 지옥 같은, 하지만 우리 사는 현실과 닮은 이 문장이 왜 내게 유독 꽂혔는지 모를 일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헤이놀라. 언뜻 스칸디나비아 대안 포르노의 여배우 이름처럼 들린다.”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처럼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다. 소설의 한 축이 유명 포르노 배우인 ‘니코’라는 인물이고, 반수신(半獸神)으로 불리기까지 하니, ‘세계사우나대회’가 열리는 핀란드의 소도시 ‘헤이놀라’는 맞춤의 지명이다.

 

‘심장마비, 화상, 페궤양’을 일으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지정온도 섭씨 110도라는 극한의 공간에 펼쳐지는 이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경기, 그야말로 “허망함이 예견된 세계”에 참가 선수, 각종 언론매체, 기업 마케터들, 나체와 사우나의 열기에 도취되어 쾌락을 만끽하려는 관광객까지 저들마다의 욕망이 끓어오른다. 주체할 수 없는 무료함, 시간을 처리하기 위해 기획된 고도로 상업화된 이 이벤트에서 기괴한, 그리고 낯선 공포의 냄새를 맡게 된다.

 

치명적인 열기를 버텨내고 사우나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 마지막 최후의 인간이 챔피언이 되는 미련하고 해롭기만한 야만적인 경기, 여기에서 누군가들은 이익과 쾌락을 얻고, 누군가들은 소비의 대상이 되어 전시되고 추락한다. 소설의 묘사들은 유머와 풍자, 해학 그 자체이지만 열연하는 3년 연속 준우승자인 옛 소련의 잠수함 선장이자 해군 장군이었던 왜소한 체구의 러시아인 이고리, 중년에 이른 섹스 심볼인 포르노 배우이자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 거구의 핀란드인 니코의 정신세계가 빚어내는 삶의 비극적 요소는 희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작가 피란델로였던가? 유머와 공포는 상상력이 낳은 쌍둥이라 했던 말이 떠오른다. 소위 기묘한, 엽기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질서가 파괴되는 세계와 대면 할 때의 긴장감과 섬뜩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로테스크’하다는 미학적 용어가 어울리는 그런 이야기로 다가온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결승전에 오른 5명 중 하나인 신부를 묘사하는 니코의 표현이 있다. “호리호리하고 비리비리한 몸에 달린 신부의 굵은 페니스”의 왜곡된 듯한 조합은 “오싹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참가자들을 향해 주절거리는 신부의 기도 소리는 부조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수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아름다운 선물, 고통, 아멘”

비극을 향해 치닫는 공간에서 뱉어지는 이 희극적인 장면은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그로테스크 해!

어쩌면 이 그로테스크함은 불가해하고 모호하며, 우스꽝스럽고 경악스러우며 소름끼치기조차 한 인간 세계를 그려내려 한 작가적 의지의 소산이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것이 심연을 마주할 때의 공포가 아니라면 무엇이 공포이겠는가!

 

공산당에 배신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삶의 희망이 없는 치명적 매독에 걸린 이고리의 생사를 초월한 마지막 결전으로서의 도전, 포르노 배우로서 점차 수명을 다해가는 불안에 휩싸인 장년에 이른 니코의 “멸망하는 세계의 마지막 기회”로서의 결승전은 가히 점점 괴벽스러워지는 오늘의 세계, 상업적 착취와 관음증적 소비의 극한을 향한 무모함으로 그득한 맹렬한 질주, 바로 그것인 것만 같다. 110도 불가마 옆에서 1초의 버티기는 영혼마저 탈탈 털어내야 하는 혹독함이다. ‘선더 스트럭(thunder struck)’,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 그들을 급습한다. 체온 상승의 충격으로 덜덜 떨기 시작한다. 신체 조직의 열 발산이 정지하고 열전도효과가 제로가 된다. “6분 13초, 최후 2인인 니코와 이고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안전 요원들에 의해 끌려가는 그들의 피부가 벗겨지고 흘러내리며, 분사된 찬 물에 의해 피어오르는 연기의 묘사는 역겨움, 혐오, 괴이함이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던 이 세계가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때 느껴지는 갑작스러움과 당혹감은 그로테스크의 본질 아니던가?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의 희극적인 이 이야기는 점차 생경해져가는 오늘의 세계에 대한 반성적 자기 응시인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독일의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이저’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련다.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속 ‘그윈 플렌‘의 의도되지 않는 웃음, 의지에 상응하지 못하는 미소를 닮아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발견케 될지도 모르는 그런 작품이다. (注: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의 제재인 세계사우나대회는 2010년 폐지되었단다.) 

열기, 조제프인카르도나, 세계사우나대회, 그로테스크, 성적소비, 열린책들

   

“우리의 작은 인생은 덧없이 끝을 향해 물러나고, 지상의 기쁨은 희미해지네,

영광도 지나가고,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모두 변하고 썩나니,

오, 변하지 않는 그대여, 나와 함께 머무소서.” - P 432 中에서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내가 지닌 언어는 이상의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알지 못하는 어떤 그리움들이 깊어진다. 바다 같이 깊은 감동이 온몸을 감싸듯 휘젓는다.

 

모든 이의 필요에 대해 열린 마음을 함께 나누는 한 자연주의 공동체 아르카디아, 영혼의 양식을 구하려 카라반을 이끌고 이동하던 그네들에게 최초의 아르카디아인 꼬마 비트가 태어난다. 소설은 바로 이 텍스트의 책임자인 ‘가장 작은 히피 조각’, 비트가 삶의 신성한 존엄성을 의식하고 그것을 아끼고 가다듬으며, 충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끝없이 내몰리는 상실에 대한 도저한 발걸음, 삶이라는 그 견딤의 고독한 시간의 이야기이다.

​

자기 이야기에 대한 책임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삶, 이것을 바라보는 내내 시리도록 순수한 것들이 뭉쳤던 내 숨을 크게 내 뱉게 한다. 춥고 배고프며 고된 노동의 일상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모두가 모두에게 의지하는 친밀함, 무한히 개방된 마음들의 사랑이 흐르는 곳, 그러나 이 낙원은 서서히 붕괴해 간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사람들, 대마초와 섹스와 방종, 자유의 방종은 열린 마음들을 굳게 걸어 잠그게 만들며, 깊어지는 갈등은 분열과 해체를 재촉한다.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쫓기듯 아르카디아를 떠나 도시로 향한다. 자신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조용하고 좋은 꿈, 사진을 찍으며 사는 삶을 포기해서라도 얻고 싶었던 헬레와 아르카디아를 떠난다. 그의 사랑, 삶의 태도를 형성시킨 터전을 상실한 어린 비트에게 도시의 삶은 고통에의 도전, 그가 자신의 삶에 쓰려는 이야기,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아르카디아인으로서의 심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프고 쓸쓸하게 흘러간다.

 

어느덧 가난하지만 사진예술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있는 비트, 그의 확실한 존재였던 부모, 버려진 아르카디아에 오두막을 짓고 돌아간 아버지 에이브에 대한 분노로 인한 어머니 해나의 별거, 그의 갤러리에 나란히 걸린 “바깥세상에서 잘 생긴 성인이 된 아르카디아인들의 단단한 껍데기에 싸인 얼굴은 아프도록 부드럽고 숨김없는 아르카디아 시절의 얼굴”과 대조되어 도시가 강요하는 영혼의 두꺼운 장막, 그 우울한 견딤의 아린 통증을 던져준다.

 

이 묵묵한 견딤의 시간에 자신의 삶을 버려서라도 얻고 싶었던 헬레와의 재회, 그녀와의 짧은 시간의 행복 속에 얻은 딸 그레테, 그리곤 다시금 그의 곁을 떠나버린 사랑의 상실은 삶을 온전히 파괴하는 아픔이 된다. “왜 울어? .... 아빠는 항상 울어. 왜 항상 우는 거야?” 라는 비트를 향한 그레테의 말에 이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르카디아 시절, 지붕 수리를 하다 떨어져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아버지, 근육위축경화증으로 점차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 에이브와 해나는 비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동반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은 그의 “기반암이자 세계의 중력”이었던 에이브만을 먼저 거두어 간다. 딸 그레테와 아르카디아의 옛 친구들, 이웃인 아미시 사람들과 매일 한걸음씩 죽음의 늪으로 향하는 어머니 해나에게 아름다운 삶으로서의 기억을 위한, 진정한 삶의 복원을 위한 자연을 닮은 일상이 찬연하게 이어진다.

 

내 삶의 이야기, 내 삶이라는 소설의 첫 장에서 그 완결의 페이지인 마지막 장은 어떻게 덮여질까? 온통 사람들에게 열린 자신의 사랑이 마침내 소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빛이 그림자에 이르고,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써 낼 수 있을까를 생각게 된다.

흙의 달콤함이 나를 향해 피어오를 때, 비트의 황금빛 먼지가 앉아 빛나는 회고처럼 자기 이야기에 대한 숭엄한 책임의 인간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도 쓸 수 있다면....

아르카디아, 로런그로프, 사랑, 자유, 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