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세이건, 에덴의용, 뇌과학, 인간본질, 코스모스

카뮈가 쓴 <시시포스의 신화> 중 인간의 숙명성에 대한 심원한 다음의 문장은 스러져가는 이 작품 속 인물들이 빼앗긴 것, 바로 그것일 것이다. “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가득 차오른다.”

아마 이것의 패러독스한 해석이 깊게 내려앉은 고립무원의 둔덕, 생존의 희망, 그 가능성마저 상실시키는 음울한 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젊음의 일탈, 그 해방적 쾌락의 공간이 호기심과 탐험으로 각색된 여정의 불안으로 이동하고, 그 불안이 두려움이 되며, 마침내 온통 죽음의 불가피성에 직면하는 공포로 전율하게 된다. 구원의 희망이라는 기대치가 마음에서 그 존재를 잃어버리는 순간, 절망은 인간을 내습한다. 알지 못하던 죽음의 그늘, 그 실체를 비로소 인지하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희망이 사라진다. 희망이 사라진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죽음의 공포, 그 유혹이다.

 

작열하는 태양, 열대의 바다, 젊은 육체들의 갈망 그득한 웃음소리와 술, 그리고 음악에 몸을 맡긴 독일, 그리스, 미국의 청춘남녀들이 멕시코 휴양지의 낮과 밤을 채운다. 제프와 에이미, 에릭과 스테이시 이렇게 두 쌍의 미국인 청춘들은 심해 가이드로 우연히 만난 독일청년 마티아스의 떠나버린 동생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된다. 고고학현장 발굴 인원인 한 여성을 찾아 떠난 동생을 찾기위해 동행의 제안을 하고 이들과 주점에서 만난 그리스 청년 파블로 등 6명은 이렇다 할 준비도 의지도 없이 가벼운 휴가여행의 기분을 지니고 낯선 장소로 출발한다.

 

이들을 목적지로 안내하던 고물트럭은 정글 앞에서 멈추고, 현지인 운전사는 이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아무도 없다라는 의미인 듯, 알 수 없는 언어로 강하게 만류하지만 6명의 젊은 이방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발길을 향한다. 정글과 개간지를 통과하면서 마야인들의 작은 부락을 만나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지만, 이들에게 다가온 한 명의 건장한 마야의 남성으로부터 떠나라는 의미의 이해 할 수 없는 언어와 행동의 메시지를 받고 발굴지로 추정되는 경로를 찾아 발길을 돌린다. 언어의 불통이 지니는 오해와 왜곡, 그리고 불신, 서로 소통이 되었더라면...

이 소설의 얄궂음은 이 다른 언어로 인한 소통의 차단, 불능성, 무력성을 반복한다. 그리스인과 미국인의 의사불통, 마야인과 이들의 소통불능, 문화의 기원인 언어의 차이, 문명적 오만함을 극복하지 못할 때 야기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낭패, 그 무능력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할 것이다.

 

마침내 이들 일행은 마야인들의 미심쩍은 감시 속에서 발굴지로 보이는 폐허에 이르는 길을 찾아내고,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황급히 말을 타고 달려온 마야인은 그들에게 둔덕으로 오르지 말 것을 표현하지만 둔덕의 경계에 무성하게 자란 초록의 넝쿨에 발이 감긴 에이미를 보자 많은 숫자로 늘어난 마야인들은 태도를 바꾸어 총과 화살을 겨누고 이들에게 경계가 된 넝쿨식물의 안 지대인 둔덕을 오를 것을 강요한다. 그러다 넝쿨식물 사이로 드러난 사람의 뼈와 소지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해골이 된 사체는 바로 마티아스의 동생 헨리히임을 알게 된다. 무엇인가에 흡입된 듯이 살이 사라지고 하얀 뼈들만 드러낸 이해 할 수 없는 모습, 당황과 참담함, 살해의 위협에 내몰린 이들은 둔덕을 오르고 발굴단의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텐트를 발견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

 

마땅히 존재해야 할 것이 없을 때, 자신들의 합리적 이성에 반하는 현상을 마주 할 때, 이해 할 수 없는 위협이 자신들을 에워쌀 때, 인간은 무력감과 가공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들이 들어선 황량한 폐허, 정글의 무더위와 함께 줄곧 괴롭히던 파리와 모기떼마저 사라진 지대, 낯선 초록의 넝쿨 식물이외에는 어떠한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환경임을 일행 모두가 인지했을 때, 이미 이들은 폐허의 둔덕에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곤 발굴단원으로 보이는 해골의 잔재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을 살해한 주체가 바로 선홍색 꽃을 맺은 넝쿨식물임을 납득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욕망을 꿰뚫는 넝쿨에 기만당하고, 그리스인의 척추부상, 에릭의 다리 중상, 보잘 것 없는 식수와 식량은 일행의 생존적 열망을 떨어뜨린다. 토사물을 흡입키 위해 달려드는 넝쿨의 재빠른 움직임, 기생을 위해 에릭의 상처를 뚫고 신체 속으로 들어간 넝쿨, 하반신의 마비로 죽음의 문턱에 선 그리스인의 하체를 먹어대는 무성한 넝쿨의 집요한 공격, 이를 피해 폐허를 벗어나려 하지만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선 마야인들의 화살과 총신들은 오직 그들이 떠나올 때 남긴 메시지를 확인할 그리스인의 친구들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구원의 기대만을 남긴다.

 

생존의 희망은 오직 외부로부터의 구조밖에 남은 것이 없음을 인정할 때, 그러나 그 구원조차 가능성이 퇴색하게 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목마름과 배고픔, 잠에 빠질 때마다 인간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달려드는 음험한 식물의 공격, 자신의 앞에 죽음만이 놓여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 그리고 바로 옆의 연인과 동료들이 넝쿨식물에 의해 살해당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만 할 때, 우린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그 잘난 이성은 아무런 기지도 발휘하지 못한다.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몰래 물을 들이켜고, 한정된 열악한 식량을 삼켜버리는 이기심, 타인의 약점을 힐난하고, 시기하고 의심하며 감정의 싸움에 몰두한다. “굳이 넝쿨이 죽일 필요 없지. 너희들 스스로 자초하고 말거야.”라는 자조의 말처럼 희망이 떠나버린 인간은 생존을 위한 투쟁심,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자멸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기다리고 희망하고 견디는 것 뿐”이라며, 삶의 가능성, 생의 의지를 지키기 위한 견뎌냄, 인내의 지혜를 다짐하지만 희망의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인간을 삶의 시험에 돌입하게 한다. 결국 저 시시포스처럼 인간은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됨을 수긍하고, 보기를 바라지만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아는 맹인이 되어 계속해서 전진한다. 그리고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소설은 이같이 결코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난 그곳에 또 한패의 젊은 그리스인들이 둔덕을 넘어 동료의 이름, 파블로를 외치고 있으니.

 

빈틈없이 독자의 뇌리를 채우는 가득한 공포, 심연보다 깊은 표현할 길 없는 아득한 공포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끝 간 데 없이 마음을 죄어온다.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 기묘한 매혹을 무어라 할 수 있을까? 희망이 상실된 지대, 그곳에 좌초된 인간들의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탄식을 절로 나오게 하는 인간의 본성들, 터질 듯한 공포의 괴성을 같이 질러댈 것만 같은 그 소스라치게 하는 악마적 전율을 조작해대는 치밀한 문장의 마법일까? 초자연적 스릴러! 진정한 압도적 호러 걸작이라 왜 아니라 하겠는가? 공포를 이해할 줄 아는 독자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폐허, 스콧스미스, 공포, 스릴러, 비채

이렇다 할 문학적 장식도 없이 간결하고 담백하게 쏟아내는 세풀베다 특유의 블랙유머는 소박한 서민의 모습을 닮아있어, 그 진솔한 감정을 수용하는 데 아무런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나라 칠레의 남부, 남극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센 협만(峽灣)의 삼림지역인 파타고니아의 투박한 시골형사의 도덕적 우직함을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구독했던 시골 촌부인 아버지가 자부심에 차서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인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형사는 14발의 탄알을 장전한 레밍턴 소총을 소지하고 그의 애마 팜페로와 함께 도둑들을 소탕하는 의로운 경찰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그러다 가축도둑 무리를 발견하고, 그에게 기관총을 들이대는 이들 무리 3인에게 레밍턴의 맛을 톡톡히 보여주지만, 엉덩이뼈가 날아간 한 명의 도둑이 칠레의 군부 권력자인 칸테라스 장군의 아들이고, 이로인해 카우카만을 처단하려는 권력을 피해 서장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전출을 보낸다. “훌륭한 경찰들은 자살을 재촉하는 종족”이 되고마는 권력의 폭력성을 알기에.

 

비록 외견상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국부를 독점한 군부를 비롯한 우익 세력이 사회의 지배집단으로 여전히 활개를 치는 칠레에 인간의 존엄이나 시민적 자유, 정의와 민주주의는 그들을 위한 수사(修辭)일뿐이다. 도시 산티아고에 들어서자 “목 까지 똥 속에 잠그고 산지 20년째”인 의로운 시골형사의 첫 인상은 온통 똥냄새로 가득한 도시의 악취이다.

이미 부패한 관료집단의 시녀들로 그득한 전임지인 산티아고 경찰서가 그의 능력에 적절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을 것은 예상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파타고니아의 찰스 브론슨”이라는 조롱의 환영인사와 함께 배정 받은 곳이 성범죄 상담부서의 말단 자리이다. 그런 그에게 행운처럼 우연히 탑승한 택시 기사‘아니타’라는 여인의 사랑을 얻는다. 군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존재도 없이 사라져버린 옛 연인에 대한 고통의 기억을 안고 있는 40대 여성 아니타에게 그는 깊은 동료의식을 갖게 된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끔찍할 만큼 처절한 고독과 소외의 도시에서 그녀는 파타고니아 시절 애마 팜페로처럼 그의 행동을 돕는다.

 

터무니없는 성 범죄들의 상담을 하던 어느 날, 독재 권력의 핍박을 피해 망명했다 돌아 와 폰섹스 사업을 하는 전직 배우커플의 겁에 질린 진술을 접수하게 된다. 그들이 의뢰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위협의 음성들에는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괴성과 신음, 그리고 이들 부부를 향한 악의에 찬, 살해 위협이 담겨있다. 인간을 처절할 정도로 고독하게 만듦으로써 생겨난 음성산업, 이 고독의 가장 끔직한 표출 방식의 도덕적 타락조차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의 사악함이 너무도 커서 비판의 조명을 쏘아 댈 수 없다. 그저 “지푸라기 위에서 하는 섹스는 늘 공짜였는데 전화로 하는 섹스는 엄청난 사치”라는카우카만의 자조어린 넋두리로 넘어 갈 수밖에.

 

보다 많은 증거 수집과 계속되는 이들의 협박전화를 청취하기 위해 배우 커플의 전화섹스 사업 현장으로 이동하는 자동차의 라디오에서는 “이제 곧 낙관주의를 몇 톤씩 수출할 판”이라는 듯, “칠레가 아주 잘나가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권력 홍보뉴스가 흘러나오고, 차창 밖에는 “비야그리말디”라는 악랄한 고문의 진원지인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가장 흉악한 운명을 결정짓는 사람들이 사는 화려한 정원이 딸린 고급 동네가 지나간다. 집과 경찰, 심지어 공기까지 조정한다는 파렴치의 터전을.

 

이네 배우커플에게 다시금 협박의 전화가 걸려오고, 목소리는 카우카만에게까지 죽음의 임박을 위협한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 배우커플은 황급히 거처를 탈출하고, 카우카만을 암살하기 위해 잠복하던 칸테라스의 심복들은 파타고니아의 찰스브론슨이자 마푸체 인디오 형사의 스미스 앤 웨슨에 의해 세상을 떠나고, 한 명의 하수인은 칸테라스를 불러들이기 위해 카우카만의 인질이 되어, 칸테라스의 사주로 무수한 시민을 어떻게 살해하고 유기했는지를 실토하게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칸테라스와 파타고니아 인디오의 정면 대결은 불가피해 진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네 놈이 빌어먹을 인디오라서 승자를 이해할 줄 몰라”라고 떠벌리는 파렴치한의 이 말이 왜 이렇게 분노를 자아내는지. 세풀베다의 에세이집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해죄로 고소된 개(dog), '치키토‘의 우화가 떠오른다. 발로 차는 남자의 발길질을 피하려다 바짓가랑이를 찢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소되어 18년간 수감되었다는 웃기는 이야기, 가해권력이 피해자의 저항을 폭력이라 규정하며 자유를 박탈하는 구조적 폭력의 현상을 빗댄 에피소드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산티아고 도시위로 동이 트고 있었다. 쓰레기 수거 차량들이 ~ (中略) ~ 그 도시를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치우기 위해 평소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과거의 불의와 부정위에 선 오늘의 권력을 칠레의 현실처럼 처단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 된다. 여전히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 미군정의 주구노릇을 하던 반민중(反民衆)이 다수의 시민을 지배하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오늘을. 소설의 서문 말미를 장식하는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는 이 문장을 왜 그리 우리들은 쉽게 망각하고 마는지. 지배계급의 맹목적 신념이 야기하는 폭력의 실체,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쟁취를 위해, 그리고 진실을 위해 억압과 죽음을 무릅쓴 영웅들의 이야기를 문학적 향기에 담아 끝없이 들려주는 세풀베다의 유머에 거듭 유쾌함을 만끽하게 된다. B급 누아르로 다가온 세풀베다의 대중을 향한 의지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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