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에서 스텐딩으로, 멘붕 사회에 해독제로 쓰인 책!”이라는 소개글이 좋았다. 행복은 상처받지 않은 삶이 아니라, 상처받아도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준비된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힐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기 역시 타인을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입에 발린 감언이설에 속아, 서로 킬링되고 킬링할 뿐이겠지.

 

이 책은 딱 보면 아시겠지만, 유신민의 이야기이며 자기 성찰이다. 내용 중 가수 크라잉넛이 자신보다 훌륭함을 고백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면 행복했기에, 대학을 가지 않거나 대학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노래와 연주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한 청년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지도 않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도 못했다.” 중년의 씁쓸한 고백이다. 화려한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세상에 휩쓸려온 것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유시민이 주장하는 것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자연이 인간에게 준 본성이라고 여기며,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피해도 따른다. 이미 은퇴했지만, 솔직한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옷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가식으로 치장하지 못하면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회사원의 옷을 벗어 던지면 회사 생활이 힘들어지고, 학생의 옷을 벗어 던지면 학교생활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살 때에 비로소 자신의 길이 열릴 것이다. 나 역시 나의 길을 걷는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갈 때, 사람들은 진정성을 보고 인정해주기 마련이다. 이기심이 아니라, 진심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우연성’에 의존할 테니, 결단해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나의 길, 크게 뚫린 타인의 길.

유시민

누군가 왜 받을 먹느냐고 묻는다면, 살기 위해 먹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당연히 먹어 왔기 때문에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 오히려 밥은 안 먹을 때, 먹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배가 불러서, 입맛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등등. “왜 책을 읽는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양식이니까 읽고, 재미있으니까 읽고, 유익하니까 읽고..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까?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걸까? 이런 의문과 함께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단순하다. 저자가 생각하는 ‘책 읽는 이유’에 관한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그러니 좋은 글도 있고, 별로인 글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글도 있다. 그래서 좋은 글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이 단편 모음집의 장점이겠지. 책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내게 필요한 것들만 쪽쪽 빨아 먹을 수 있으니까(그게 단편 모음집의 한계이기도 하다).

 

지금 힐링 열풍이 불고 있다. TV에서도 힐링, 책에서도 힐링을 외친다. 그래서 책을 통해 위로받으려는 사람도 있다. “아니야, 넌 잘하고 있어.” 이런 위로가 듣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 책은 시간 낭비가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독서는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우리를 낙담케 한다. 그러나 절망이 슬픈 것은 아니다.”

 

책은 우리의 생각을 전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힐링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대체 왜 그런 상황에 부닥쳤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용기가 없고 게을러서 변하는 건 싫은데, 위로는 받고 싶고.. 그래서 찾는 힐링이라면 결국 자신을 킬링할 테니 주의하자. 책을 그렇게 악용해선 곤란하다. 그래서 저자는 “오만한 작가들의 사기 행각을 조심하라.”고 외친 것이다.

 

책의 홍수인 시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무수히 많은 책이 있지만, 정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을 찾아 읽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오히려 책이 너무 많아서 그 작업이 힘든지도 모르겠다. 좋은 책을 읽자. 불량식품이 아닌 좋은 음식을 먹어야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살기 위해 좋은 읽어내자는 말이다. 억지로 읽는 책이 아니라, 정말 좋은 책을 읽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희열을 선물해 줄 것이다.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되는데..

 

"멸망한 제국의 이름은 몰라도, 천 년 전 시인들의 작품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죽음은 망각이며, 특히 단순화이다. 반면 독서는 죽음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을 회복시킨다. 무덤을 꺾을 유일한 경쟁상대는 결국 도서관인 셈이다."

힐링, 책, 독서

그 자체가 행복하지는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일 한다. 하지만 목적이 전도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말이다. 일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행복(안심?)을 느끼는 것일까? 당연하게 인식되지만 사실 이상한 일이다. 러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나 보다. 자발적 노예가 되어 행복을 느낀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현실이.

 

“세상엔 너무나 일이 많으며 근로가 미덕이란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일 자체도 문제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일하지만 적은 대가만을 받으며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유지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상은 말한다. 일하라고, 근면한 것이 옳은 거라고 말이다. 반면 게으름은 악한 것인데, 그것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근면인가?

 

러셀은 게으르라고 제안한다. 물론 그것은 세상에서 매도하는 빈둥빈둥 노는 ‘게으름’이 아닌, 삶의 ‘여유’를 의미한다. 미래만 준비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그것이 왜 근면인가!), 자기 삶의 비중에서 일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그 나머지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의 삶은 더욱 향상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세상은 지금의 자본주의 세상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일 테고 말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방해를 받을 것은 자명하다. 자기 안에 피어나는 불안감은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계속해서 압박할 것이다. 돈 벌라고, 일하라고. 그 대상은 친구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자기 삶에 당당한 사람만이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다. 물론 게으름이 아닌 여유로써 뚫고 나가야 함을 명심하자. 하염없이 놀기만 하는 것은 여유가 아니니까. 당당한 게으름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 살아보자.

 

*이와 유사한 책으로는, 마르크스의 사위로 알려진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러셀, 게으름,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