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네 편의 영화를 통해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최근 많은 사람이 강신주 선생의 책을 읽어 봤을 텐데,

30금이라는 제목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더 파격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하려는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금기를 극복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저자들 스스로도 그것이야말로 예술과 인문학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금기란 무엇일까?

"선택할 수 없는 것, 그게 다 금기예요. 고를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뿐이라, 선택이 배제된 것 말이죠." (99페이지)

 

세상엔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금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 그것도 '그가 속한 사회'가 규정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집단 무의식이나 군중심리라기보다,

특정한 지배자나 그룹에 의해 만들어진 원칙일 것이다.

누군가를 노예로 만든다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주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네 편의 영화는 그러한 현실을 파헤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단, 각 영화는 팝콘을 먹으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쾌하게 다가온다.

"사유는 쾌락이 아니라 불쾌함의 여지, 즉 '부정성'을 통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104페이지)

 

이것이 큰 틀이고, 세부적인 내용은 직접 읽으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마지막 영화가 '종교'를 다뤘다는 점이다.

분명히 다음 주제로 넘어갈수록 영화는 점점 더 불쾌하고 잔인하게 변해가는데,

마지막 영화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느낌마저 든다.

만약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자극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영화다.

 

하지만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에게 이 영화는 버겁게 다가온다.

다른 모든 잔인함과 그것을 통해 말하려는 메시지에 공감한다고 해도,

감히 종교를 건드리는 마지막 메시지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금기의 비밀이 아닐까?

누군가에겐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할 가치이지만, 누군가에겐 별 게 아닌 것..

이 책에서 두 사람이 말하는 것, 네 명의 영화 감독이 말하는 것.

그것들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아마 당사자들도 정답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기의 원리'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

금기, 강신주, 이상용

1.

일제강점기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찬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그 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먼 옛날의 아우슈비츠 사건부터 얼마 전 일어난 세월호 사건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악’ 앞에서 절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2.

이 문제를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의문이라고 정죄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다. <구약성서> 욥기의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이론에 매몰된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에 따라 정죄가 이어졌고, 동시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변호하려는 신정론(변신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게 ‘모든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와 ‘모든 고통은 잘못에 대한 대가다’라고 설명되는 전통적인 대답은 굳이 신학화하지 않더라도 이미 욥기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잘못된 생각임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 상식 안에서 하나님을 보호하기 위해 같은 생각을 이어간다. 더 세련되고 체계적인 형태로 말이다.

 

3.

박영식 선생은 자신의 저서 <그날, 하나님은 어디계셨는가>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분석한다. 전통 신학들의 한계와 오해를 지적하며, 현대신학의 지평에서 하나님의 전능함에 대한 의미를 다시 분석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사유하도록 요청되는 개념은 ‘하나님의 전능’인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강한 능력으로 이해되었던 전통의 이해와 달리, “하나님의 전능은 다른 힘들과 경쟁하여 이를 제압하고 그 관계를 파괴해버리는 무지막지한 힘이나 무력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사랑 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힘은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힘이 아니며, 다른 힘들 위에 군림하여 제안하는 수퍼 파워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은 피조세계와의 사랑의 사귐 안에 들어오면서 자신이 곧 사랑이심을 드러낸다.”(p.171)

 

4.

어떠한 신학적 답변도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 외부에 대한 방어라는 취지와 달리, 신정론은 내부적 만족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기독교인 외에 신정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시도들이 부족했다는 말은 아니다. 누가 어떤 대답을 내놓았어도 답은 같았을 테니 말이다. 모두를 만족하는 대답은 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대답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악을 쳐부숴도 사람들은 다시 불만을 터뜨리고 하나님을 잊게 될 것임을 <성서>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변호는 죄를 가진 사람이 법정에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법정에 설 이유가 없다.

 

기억하자. 사람들은 단지 이론적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할 일은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 방어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묵묵히 고통 받는 사람들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현장에 함께 계시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 지으셨을 하나님처럼,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그와 같은 길을 가야 한다.

 

5.

많은 사람이 기도원이나 성지순례를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 예수님이 계실까? 그곳은 그저 편안한 쉼터나 관광지에 불과한데 말이다. 지금 예수님이 살아 있었다면 예루살렘에 갔을까? 진도 팽목항에 갔을까?

 

누군가 “그 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자기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 정작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있음을 강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련되고 합리적인 대답을 던지지 못해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래, 하나님은 이 사람의 모습처럼 지금 여기에서 함께 계시는구나.”

신정론, 변신론, 욥기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사실 부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더 원제목과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듯하다. "지옥에서 꾸며진 책, 신학-정치론"

 

말 그대로 이 책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관한 책이다. 따라서 스피노자 사상 전체를 아우르고 있진 않지만, 스피노자가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던 목적을 이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라고 본다.

 

19세기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악마의 신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성서가 신화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의도는 "성서 속의 신화적 형식을 제거하고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그는 악마일 뿐이었다.

 

그런데 무려 17세기에 이와 같은 파격적인 주장이 있었다. 그게 바로 스피노자이고, "신학-정치론"이다. 흔히 스피노자하면 윤리학(에티카)만을 떠올리지만, 이 책 역시 스피노자의 사상을 강력하게 대변하는 책이다. 여기서 그는 기적을 부인하고 성서가 인간에 의해 쓰여진 문학작품이라고 말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데, 그가 목숨을 걸고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던 이유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단, "윤리학"(에티카)과 달리, "신학-정치론" 자체도 어렵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먼저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한다.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은 "신학-정치론"의 주변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으니, 그 이후 더 세밀한 이해를 위해 참고삼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공포, 두려움, 신에 대한 경외심 등은 표상상의 관념을 통해 신을 타당하지 않게 인식한 결과일 뿐이다. 표상상은 신에 대한 의인화된 개념을 지지하도록 한다. 스피노자의 신은 심판하지 않으며, 전통적인 종교적 개념이 신에게 부여한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삶이나 도덕적 특징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때문에 신은 두려움이나 다른 수동적 정서의 대상이 되기에 적절하지 않다. 실제로 신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적인 사랑은 두려움과 희망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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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