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까뮈라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무엇으로부터 처음 접하는 것이 좋을 지 고민하다가 바로 이 책을 골랐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외국 문학작품을 우리가 쉽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은 ‘번역’이다. 언어의 정수만이 모인 문학작품에서 번역이 엉망이라면 읽는 내내 소설에 몰입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결국 문학작품 자체를 낮게 평가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알베르 까뮈의 전집을 낸 ‘책세상’은 김화영 교수가 모든 그의 책들을 번역했기에 더욱 믿음을 갖고 선택했다. 또한 짧은 <이방인>에 덧붙여 장 폴 사르트르의 작품해설, 까뮈 본인이 나중에 연극으로 만들기 위한 극작가의 제안에 답장한 서신 등이 포함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처음에 이방인에 대해 느꼈던 까뮈의 <이방인>이 갖는 무게에 비해 작품은 짧고도 간결했다.
칸딘스키의 미술작품을 보면 우리는 누구나 미술작품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오직 직사각형으로 이뤄진 작품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도의 분석을 거쳐야 이후에 단순화를 통한 세계의 표현이 가능하다.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거칠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알제리에서 뫼르소라는 청년이 요양소에 있는 엄마가 죽은 뒤 다시 집에 돌아와 일상을 보내고, 친구의 아랍인과의 싸움에 휘말려 결국 권총으로 아랍인을 살인한 뒤에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 받고 사형을 기다린다. 그 사이에 여러 묘사가 있고,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골격은 엄마가 죽은 것, 그리고 뫼르소가 자신과 크게 원한관계가 없던 아랍인을 죽인 것의 2가지 사건이다.
뫼르소는 자신으로서 엄마가 죽은 것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엄마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신과 함께 보내는 것보다 노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벌이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요양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2년의 세월이 흘렀고, 다만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이 귀찮아서 엄마를 보지 못하고 사별하게 되었다. 뫼르소는 엄마가 죽은 그 상황에서도 직장 상사가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죽은 것은 나 때문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덤덤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알제리의 내리 쬐는 태양에 그는 졸기도 한다. 요양소의 원장과 무감정한 대화를 하며, 엄마가 임종 전에 누군가와 죽음을 앞두면서도 ‘약혼’까지 했던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뫼르소는 엄마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주말의 연휴가 있음을 알고 그는 먹고 쉰다. 그리고 마리라는 여자친구와 만나서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희극 영화를 보고 욕정을 느끼며, 함께 섹스를 나눈다.
그의 다양한 친구들 중 ‘포주’이자 여자를 두들겨 패는 것에 익숙한 레몽이라는 작자가 있다. 레몽의 정부에게 협박하는 편지를 대수롭지 않게 써 주며, 서로 친구가 된다. 같은 집에 거주하는 이상하게 생긴 노인도 있다. 뫼르소는 마리와 함께 레몽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레몽의 정부의 오빠 아랍인 일당과 싸움을 벌이게 되며, 그들이 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레몽이 피스톨을 쏘려 하는 것을 막고 그가 총을 갖고 있게 되지만, 결국 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때 그는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이고 만다. 아랍인은 칼을 갖고 있었고, 뫼르소는 찌는 듯한 더위에 그 아랍인과 마주친 뒤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한 방을 발사한 뒤 잠시 멈추었다가 4발을 더 발사하여 죽인다.
이후 그는 재판에서 자신이 엄마가 죽은 뒤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것과 아랍인을 죽은 것이 무슨 연관인지도 모르며 재판을 객관자가 되어 관찰한다. 철저히 재판과정에서 그는 관중으로서 보면서 변호인과 검사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단두대에 머리를 잘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죽었던 아빠가 자신이 어린 시절 사형장면을 보려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집에 와서 토하는 것을 보고, 사형장면만큼 큰 쾌락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제가 그에게 와서 신에 대한 용서를 빌도록 권하지만, 그는 마리에 대한 정욕보다도 더 값싸게 신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며 사제를 내 쫓는다.
아주 짧은 소설임에도 읽는 내내 알제리의 강렬한 태양과 모래톱에 얽힌 피, 그리고 마리와의 육정,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뫼르소와 자신이 배제된 법정 등이 얽힌다. 또한 ‘무엇’ 때문에 재판을 받는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감정이 배제된 채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지도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길로틴의 모습에서 그는 무언가 장엄한 하나의 도구를 떠올렸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걸어 올라가 목을 내밀어야 하는 너무나 평범함 속에서 ‘죽음’으로 가는 문이 새롭지 않고 일상 속에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단지, 그는 아랍인을 죽여서만 처벌을 받게 된 것은 아니다. 배심원과 다양한 사회의 구조 안에서 이전에 엄마에 대한 무감정한 사별이 하나의 낙인이 되어 그를 ‘악인’으로 연기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일상적인 일들로 보자면 그는 단지 그의 소설 제목 그대로 ‘이방인’일 뿐이지만, 그는 무덤덤한 일상을 보내고, 일을 하며, 욕정을 느끼고, 먹고 마시는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그를 찾아온 전속 사제 앞에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려 하기보다 그냥 이 순간에서 누군가로부터 방해 받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까뮈는 그 스스로 자신이 ‘실존주의’ 문학가로 불리는 것, 혹은 어떠한 부류의 유파에 속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미국의 심리주의적 경향을 따랐음에도, 이를 마찬가지로 거부해 왔다. 그의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것은 어찌 보면 역설이다. 나는 문학평론가가 아니다. 단지, 내가 읽은 <이방인>에서의 뫼르소와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와 일면 닮은 점이 느껴진다. 라스꼴리니꼬프 역시 노파를 죽이기 전에 방세가 밀린 집주인에게 들키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듯, 뫼르소는 자신의 재판정 앞에서도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배제시키고, 또한 사회로부터도 배제를 당해 있다. 살인은 그에게 죄였지만, 그는 스스로 더 중대한 살인자가 되어 버렸다. 한 동안 쉽게 책장을 덮기 어렵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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