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MB정부의 공약대로 7%가 되고, 수출도 활성화되고 무역흑자도 증가되며, 실업률도 낮아지고, 잠재성장률도 높아져서 모든 이들이 성장의 꿀물을 나누어 먹으며, 사회적으로도 통합되고 모든 이들이 서로에 대한 갈등을 접고 화합하는 꿈. 빚에 쫓기는 사람도 없으며, 저축을 통한 이자율도 적당히 상승되어 투자가 늘어나고,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전 세계를 선도하는 앞선 기업들이 늘어나는 나라. 집값은 안정되면서도 적당히 투자가치가 있어서 붕괴되지도 않고, 주가는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며 상승곡선을 그리기에 투자만 한다면 어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세상.
이러한 세상은 생각만 해도 좋다.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정치인들의 입에서든, 아니면 그냥 꿈에서 본 것이든 이러한 세상은 참 살만할 것 같다.
이러한 꿈을 꾸는데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바퀴벌레 같은 생각 집어 치워!”라고 소리친다면? 그런 소리를 치는 학자가 있다. 바로 폴 크루그먼이다. 그의 글을 처음 읽었던 것이 고등학생 때였다. <아시아 성장의 기적>이라는 글이었는데, 그의 요지는 이러하다. 1994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불렸던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의 경제 성장이 최고조를 달리고 있을 때, 이것이 허구임을 주장했다. 당시에도 물론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정부 캠페인이 한창이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살만했다고 한다. 또한 88서울올림픽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의 단물이 넘치던 시기에 그는 이렇게 찬물을 끼얹었다. 고등학생으로서 그의 글이 물론 어려웠지만, 참으로 명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교우위 무역이론이 당연한 진리라고 받아들였던 나에게, 그의 교과서와 다른 주장은 참으로 센세이셔널했다.
사실 이번에 폴 크루그먼의 책을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사면 한 권을 끼워 준다기에 덥석 받았다. 그래서 먼저 읽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모든 개념들을 이해하기란 몇 번의 숙독과 더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폴 크루그만은 30여 년에 걸친 미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불필요함을 역설한다. 오히려 그는 학자로서 현실에 참여하여 그릇된 정책을 내세움으로써 경제를 망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대해 조망하며 가치를 배제한 채로 연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현실 참여적인 목소리를 낸다.
요지는 이러하다. 미국 보수정부 시절 하의 시장 숭배주의자들의 토양을 제공했던 공급중시론자들,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의 자유주의자들의 지지에 기반한 전략적 무역론자들 사이에서 이 두 가지의 경제 이론(그는 이를 이론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은 선동가들의 주장이며, 경제학계의 아웃사이더들이 정치인들의 입맛에 가공한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효험도 없는 약발 떨어진 주장일 뿐이라고 명백히 말한다. 혹자는 그가 이 책을 쓴 19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에서 자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그는 그런 악감정에서 책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다.
최소한, 내가 잘 모르지만 고전경제학과 좌 편향 된 이데올로기적 정치경제학을 제외하자면, 그의 주장은 참으로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론이라고 여겨진다. 섣불리 경제정책에 대해 처방을 내세움으로써 국민들을 선동하기보다, 경제가 “덜 나빠질 수 있도록”하는 것이 정부의 최선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QWERTY 이론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최 첨단의 컴퓨터가 등장함에도 키보드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QWERTY자판인 것처럼, 기존에 점유하고 있던 시장 지배자들의 역할로 인해 무역이라는 것도 발생하고 경제라는 것이 움직인다는 주장(거칠게 요약하자면 그렇다)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아시아 4마리 용이 고도의 자본 투입과 저임금 노동력 투입으로 경제성장이 이뤄진 이후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점에서 무한한 경제성장률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덜 나빠지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해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프리드먼식의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저소득 계층에 대한 적극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복지, 필요한 경우 세금 제도의 확대, 불필요한 낭비적 요소의 축소 등을 주장한다. 당연한 처방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 묘책이나 특효약이라는 것이 없듯, 경제 역시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기에, 선동적 경제학자(그는 바퀴벌레로 표현한다)의 역할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경제학자, 더 넓게는 사회과학자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도 경제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알려 줄 수 있는 책이다.
폴크루그먼,
경제학의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