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상담하던 학생이 말한다.
“이번 중간고사 끝나면 그냥 놀 거에요. 아 그냥 폼 나게 놀고 싶어요. 교복 딱 줄이고 빨리 면허 따서 오토바이도 타고 그럴래요.” 인간중심 상담을 적용하고자 무던히 노력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학생들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가치와 편견이 존재한다. 그러한 내 가치와 편견이 작용하는 순간 이 학생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란 얘기는 결국 교과서에 존재하거나, 혹은 수용하더라도 다소 인위적이고 어색한 수용이 될 때가 있다. 난 이 학생이 최소한 자퇴한 다른 친구들과 달리 오토바이를 ‘찌지지’(전기 스파크로 시동을 걸어 훔치는 행위) 않았던 것에 대해 다른 친구와 달리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을 이 학생의 강점으로 상담하게 된다.
나의 학생시절 경험에 기반한 학생들에 대한 편견 혹은 주관은 상담 과정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내 학창시절의 경험이 현재 학생들에게 갖는 몇 가지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다.
- 교사들의 언어 폭력이나 신체폭력은 당해볼 만큼 당해 보았다. 시범 케이스로 걸려서 밀대자루로 100대를 맞은 적도 있었고, 슬리퍼로 뺨을 난타당한 적도 있다. 쓰레기통을 닦아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쓰레기통에 물을 담아 마시도록 하여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적도 있다. 나는 이러한 비대칭 권력 관계의 폭력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 (현재 자립형 사립고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1 때 240명 중 전교 석차 223등을 했던 경험이 있다. 중학생 시절 시골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오다가 고1 때 교사들로부터 완벽한 ‘구제불능’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이후 1년 간 방황하며 공부에 손을 놓았다가, 2학년 때 피나는 노력 끝에 성적을 올렸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누구든 자신이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는(특히 성적 만큼은) 생각을 갖도록 했다.
- 사회복지사로서, 또한 청소년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이들의 다소 이탈적인 행동에 대해 허용적인 경향이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일할 때는 학교 내의 다양한 규정과 규칙을 준수하여야 함에 대해 받아들이고, 나의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어느 정도 관념으로 갖고 있어야 하며, 이는 매 상담과정마다 괴리감을 다소 느끼도록 만든다.
이런 것들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나의 고민에서 출발한다. 과연,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학생 탈선은 고대 그리스의 벽 낙서에 “요즘 젊은 것들이란 버릇 없으며…”라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양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학생 탈선’이라는 것을 우리는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행동이라는 것은 그렇다면 학교의 규율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의 가정에서 ‘문제’로 규정될 만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를 들면, 흡연이나 음주 등의 사회적 금기가 있는가 하면, 머리 기르기, 교복 줄이기, 욕하기, 교사를 비아냥거리기, 특정한 또래를 괴롭히기, 공부 거부하기, PC방에 죽치고 앉아 있기 등의 이러한 행동들도 있다. 이미 하나의 반문화로 구성되어 가는 것이 하나의 현상이라면, 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이 책은 문화인류학적 접근으로서 문화기술적 서술이 1부를 이루고 있다. 저자 폴 윌리스는 문화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이들에 대한 참여관찰, 면접 등을 통해 이들의 대화를 분석하고 개념화하였다. 여담이지만, 번역을 했던 김찬호 선생은 학부 시절 <문화인류학> 강의에 들었던 인연이 있다. 명 강의였고, 여전히 청소년 문화와 관련된 문화인류학적, 사회학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계신다니 반가웠다.
아무튼 폴 윌리스는 학교의 반문화로서 7가지를 개념화하였다. ➀권위에 대한 반항과 순응적인 아이들에 대한 거부, ➁비공식 집단의 형성, ➂개기기, 거짓말하기, 까불기, ➃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신나는 것을 찾기, ➄성 차별주의, ➅익살 떨기, ⑦인종차별주의 등이다. 실제 학교 내에서 학생들을 관찰하고, 면접하면서 이러한 7가지의 ‘싸나이(lads)’들의 반 문화를 끌어 냈다.
우리가 문제청소년, 비행청소년이라고 낙인 찍는 아이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저자는 그들이 단지 학교라는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하면서 견디어 내는(live out)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자원을 갖고 거기에 작용(not 적응)하면서 부분적인 해결과 재조합(recombination)을 하고 있다고 한다(p266). 이들은 수동적으로 현재 상황에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이 이들의 핵심이 아니라, 그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는 생산의 주체라는 뜻이다.
학교라는 것은 그렇다면 이들의 문화적 생성을 억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가? 책을 읽기 전 저자는 틀림 없이 근대 산업사회의 학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는 학교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교사에 대해서도 그 역할에 대해 긍정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계급을 재생산하기 위한 기제로서 학교가 존재하고 있지만, 노동자 계급(특히 남성중심적)의 계급 재생산에 있어서 그들의 남성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학교가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학교 교사들 역시 허위의 권위를 갖고 학생을 대함으로써 학생을 억압한다고 본 것이 아니라, 이들 역시 사회 구조 내에서 학생들에게 일종의 박제된 권위의 게임을 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그들이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더라도 근대의 교사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 사회의 학교임을 드러내고 있다.
왜 그렇다면 영국 공립학교의 ‘싸나이들(lads)’은 반문화를 형성하는가? 앞서 저자가 이들의 반문화 요소에서 밝혔듯 이들은 순응적인 또래들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표현한다. 이는 단순히 어린 시절의 혈기와 반항심으로서 순응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경쟁을 통해 좋은 성적을 성취함으로써 계급이 재편성될 가능성이 실제로 낮다고 스스로 해석한다. 이 해석의 과정은 학자들이 하듯 분석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기보다 직관적이고 본능적, 동물적으로 느낄 뿐이다. 이미 산업화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영국 노동자 계급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주로 생산직에 종사하며 나름의 계급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다시 저임금 생산직에 자녀들이 노동력으로 투입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사회와는 다를 수 있다. 영국 노동자 계급이 그들의 계급성을 받아들이고 노동윤리나 보람을 강조하며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신화를 학생들에게 노동자들은 강요한다. 왜냐면 자식만큼은 노동자 계급이 아닌 관리직, 전문직으로서 계급 상승을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계급 상승이 성적 향상이나 몇 개의 자격증 취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실제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에서 첨예화된 한국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당히 많은 다수가 저임금 노동자로 생활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모든 청소년이 수능과 명문대,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에 참여하여 좌절하기보다 스스로 이들은 반문화를 택한다. 다만 영국은 학생 반문화가 하나의 문화적 지배양상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높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도 저자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반문화가 수용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억압되고 저항한다. 다만 한국과의 정도 차이를 언급하고 싶다.)
학교 교사, 상담자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미 그들 역시 학교에 순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성공’의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학교에서 lads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지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것과 동시에 ‘말썽을 피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바람직한 상황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것이 많은 교육 전문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반학교 문화에 대해 앞서 말하였듯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를 인정하여야 함에 대해 말한다. 영국 노동자 계급 청소년의 반학교 문화는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등의 성향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역기능을 학교가 순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반문화를 드러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어떠한 대안이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해 몇 가지를 제시한다(p363 참고).
한국 사회에서 학생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반문화적 움직임이 개별화되어 나타나는 양상이며, 영국의 노동자 계급성이 한국사회에는 하나의 계급성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Paul Willis가 이 책을 영국에서 냈던 1978년과 다르다. 하지만, 입시 위주와 학력 위주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다양한 대안들이 정책적으로 제시됨에도, 공식적으로 학생 문화와 반문화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이 정책 차원에서 모색되는 것이 아직은 주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 또한 미시적으로 학생들을 개별 상담하는 사회복지사는 어때야 하는 것인가? 반문화를 이미 체험하고 즐기는 아이들은 분명 사회적으로 비행청소년이다. 이들을 사회적 틀에 맞게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이들을 상담을 통해 문제행동을 감소시키고, 학력 경쟁에서 전교 석차 300/320을 200/320으로 올려 주어야 할 것인가? 이들에게 현실의 상황을 감안하여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인가? 이 경우에도 이들의 자기결정권을 이유로 100% 상담자의 주관이 배제된 진공 상태에서 상담이 가능할 것인가?
최소한 우리는 학생들의 반문화가 존재함에 대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아니, 수용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들이 학업에 매진하도록 하기 위한 방향성의 전환이 목표가 아니라, 이들 스스로 계급성을 갖도록 하고, 이들 스스로가 다른 정체성을 얻도록 도울 수 있는 상담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학교,
계급재생산,
반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