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되는 새로운 개념 중 하나인 ‘감정노동’은 책 표지에 스튜어디스가 자신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단순한 책으로 보기 어렵다. 저자 앨리 러셀 혹실드라는 사회학자를 알게 된 것은 기든스의 <현대사회학>뿐만 아니라 최근 상징적 상호작용이론에 대해 공부하면서 Goffman의 Dramaturgical Theory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기능주의나 갈등주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쉽게 이해하고, 한 마디씩 해 보라면 말할 수 있는 이론이다. 상징적 상호주의는 사회과학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라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그거… 우리의 의사소통에는 여러 가지 상징이 숨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야.”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는다.
이 책 부록이 백미다. 부록에서 다루고 있지만, Mead나 Mills 등의 고전 상징 상호작용이론가를 비롯해 Goffman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아마 국내의 고전사회학을 다루는 어떤 책에서도 상징적 상호작용이론에 대해 설명해준 것은 못 본 것 같다. (물론 내가 다 읽어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은 금물!)
이 책에서 감정노동은 앞서 말했듯 ‘감정’까지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훅실드가 알아내려고 했던 것은 어떻게 감정을 사회가 통제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감정적’이라는 말은 무언가 쉽게 ‘느낌’에 휘둘린다는 뜻을 의미한다. ‘감정’과 ‘느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또한 ‘감정’을 알고 이해한다고 할 때 이는 ‘인지’의 영역이라면 인지와 감정은 또 무엇이 다를까? 우리가 쉽게 말하는 일상의 단어들 속에서도 ‘감정’이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는 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훅실드는 ‘감정노동’이라는 사회가 감정을 통제하는 기제에 앞서서 다윈으로부터 출발해 ‘감정’을 연구하였던 사회학자들을 열거하며 그 이론들을 검토한다.
다윈에서 출발한 ‘유기체론자’들은 감정이란 행동에 앞서서 받게 되는 느낌을 말한다. 즉, 감정과 행동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이성을 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이는 생식을 위한 교미라는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이며, 적개심을 품게 된 상대를 보고 ‘분노’를 느꼈다면 공격행동의 전조라는 것이다. 그렇듯 감정은 생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를 기점으로 하는 심리학자들은 감정의 신호기능에 대해 말한다. 어떤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자신의 불안과 불쾌감이 자아로 하여금 그에 맞서 다양한 방어책을 발전시키게 되며, 이로부터 모든 감정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에게 감정은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선적인 자극-반응으로서의 행동과 연계된 것을 넘어서며, 그렇다고 사회학자들의 주장처럼 사회적 의미만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 이면에는 감정과 연계된 다양한 무의식적 존재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이 에너지로 작용한다는 그의 주장은 ‘감정사회학’의 큰 줄기로 작용될 수 밖에 없다.
상호작용 이론가들은 다윈을 중심으로 한 유기체론자들과 다른 입장을 지닌다. 모든 감정은 행동의 전조가 아니다. 물론 감정 중에서는 행동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통제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한 감정으로서 분노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며, 정당 방어로서 내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이는 내가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하며, 이는 생물학자들의 관심영역이다. 사회학자들은 감정 중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측면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Goffman의 연극학적 상호작용이론 역시 사람들이 ‘웃음’을 보이는 것의 의미가 어떤 자극에 따른 감정반응으로서인 경우도 있겠지만, 사회적 관계를 위해 연기를 하는, 즉 통제된 감정이라는 것을 밝혔다. 물론… 저자 혹실드는 칼로 무 자르듯 단련될 수 없는 감정은 유기체론자적 관점, 단련될 수 있는 감정은 사회학적 관점이라고 구분하지는 않았고, 이를 경계했다(284p). 하지만, 감정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감정사회학’이란 새로운 학문분야는 이토록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배경을 동시에 갖고 있다. 혹실드는 ‘감정’을 이러한 다학문적 통섭 속에서 ‘감정’을 규정한다. 기존의 고프만이 갖던 사회적 의미로서의 연출된, 혹은 연극화된 감정만이 아니라 실제로 내면화된 감정까지 사회에서는 통제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있다.
혹실드는 크게 2가지의 직업을 예로 들어서 설명한다. 긍정적 감정 표현을 해야 하는 스튜어디스와 부정적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추심원이 그 예이다.
그가 개정판을 펴내며 추가한 부록에는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사적 영역의 시장화’라는 측면이 새롭게 부각된 서비스의 형태라고 규정하였다. 예를 들어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사적 영역이 시장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감정 노동이 형성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복지사를 비롯해 심리치료사, 상담자, 아동전문가, 노인 요양보호사 등과 같은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를 ‘진심으로’ 표현하기를 요구 받는다. 겉으로 드러난 ‘진심’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진심으로 내면화해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이것이 과거 노동 시장에서 의도화된 ‘친절’만을 판매하던 서비스와는 달라진 형태라는 점이다. 사회복지사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업 현장에서 ‘이 클라이언트는 다른 마음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야.’라며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며, 이러한 행위 역시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통제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노동은 위(관료화된 구조_베버의 관료주의 참고)로부터 관리되며, 관리의 영역은 과거 노동수단이던 노동자의 손과 발에만 국한하던 것에서 벗어나 내면화된 감정까지 통제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노동은 추심원도 예외는 아니다. 채무자에게 연락을 해서 빚을 받아 내야 하는 추심원은 채무자에게 겉으로 드러난 분노만으로 대할 수 없으며, 진심으로 이들에 대한 경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병원 원무과의 직원들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선한 사람들임에도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마저 못해 돈을 지불하도록 독촉하다가는 스스로 지칠 수 밖에 없기에 감정을 통제하게 됨을 관찰한 바 있다. 좀 더 벗어난 생각이지만, 냉전시대의 간첩들, 실미도 대원들 역시 감정노동자들이 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 자신의 생명까지 던졌던 사람들이 아닐까? 전투대원들 역시 자신의 감정을 적에 대한 분노와 동일시함으로써 통제된 감정을 가져야만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그의 책을 몇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사회학적 깊이가 깊은 책이다. 오히려 이러한 책이 보다 대중적으로 보이도록 편집되고 출판된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의 감정 통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다행스럽다. 물론 읽는 내내 쉽지만은 않은 개념들과 사회학적 사전 지식이 필요하므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개인의 내면 영역인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혹실드는 사회학자이지 정치학자나 사회행동가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한 새로운 틀을 제시했을 뿐이다. 혹자는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것이 거대한 사회의 통제 아래에서 내 감정마저 잠식당하며 혼란감을 느낄 수 있고, 혹자는 이러한 거대구조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어떤 것도 이념적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하지만, 우선 나… 즉, 상담가로서 내담자를 맞이해야 하는 전형적 감정노동자인 나는 나의 감정노동의 속성을 발견한 뒤에 내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감정노동으로부터 나의 사적 영역과 분리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분리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이다.
감정노동,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