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는 제목과 표지의 핑크색만 놓고 보아도 ‘페미니즘’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아마도 독자들이 제목과 겉표지의 색만 보면 선뜻 책을 선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인지, 출판사에서도 추천사가 제일 앞쪽에 배치되는 조금은 특이한 배치를 했다. 추천사를 먼저 읽으면, 추천사를 작성한 사람의 생각으로 인해 책을 읽는 동안 나만의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의 특성을 받아들여 추천사를 먼저 읽어보았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페미니즘(feminism)’과 ‘페미니스트(feminist)’라는 단어의 뜻을 ‘여성 우월주의’와 같은 뜻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나로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책이었고, 단어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추천사와 차례만 봐도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저자 ‘록산 게이’는 미국인이지만, 흑인계 여성이다. 양쪽 차별을 모두 받고 자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러한 경험 등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어렸을 때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녀는 하나의 대비책으로 뚱뚱해짐을 택했고, 그 뚱뚱함으로 인해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성폭행에 대해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던 것은 부모가 바라던 착한 여자 아이로서의 여성성을 잃지 않고 싶었던 본인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면, ‘강간을 당한 것은 어린 여자인데 왜 집단 성폭행을 한 어린 남자들의 미래를 걱정하는지’와 같이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는 것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가끔 경험한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한 것 같은데, 이러한 일들이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면 그 왜곡된 사건에 우리는 익숙해지며 오히려 어린 남자들을 두둔하게 된다.
특히, 문학과 예술 등에서의 이러한 문제는 이미 고착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와 같은 소설의 결말은 처음 보는 왕자의 키스를 받아 마법에서 풀리며, 백설공주는 자기를 돌봐 주었던 일곱 난장이 중 한 명이 아닌 그 왕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지금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결말이다. 그러한 ‘공주소설’은 백설공주 말고 많다. 또한, 성인의 문학으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소설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밝힌다. 돈도 많고 성적인 만족만을 해결해주는 남자는 꼭 동화 속 왕자와 같은 이미지이며, ‘너무 엉망으로 쓰여 읽으면서 웃고 또 웃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낙태 제한권’에 대한 법 제정을 선거철마다 들고 나오는 정치인은 모두 남자들이며, 피임은 여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것도 못마땅해 한다. 즉, 여성의 몸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든 타협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진다는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회사 주요간부는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본성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미 정치나 회사에 주요 간부로 있는 일부 여성들의 '페미니스트' 거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낸다.
저자는 여성성에 대한 얘기 외에도 인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저자 본인은 저자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실패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본인이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특정한 부류의 여성들이 보이는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본인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하며,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믿는다. 이 책의 원제인 ‘Bad feminist’의 ‘bad’를 ‘나쁜’이라고 번역하기 보다 ‘서투른’으로 표현했으면, 이 책의 내용과 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진정한 양성평등이 무엇인지 양성평등에 대한 우리의 현주소 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