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올랐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주부라는 역할을 맡고 있으면 누구나 해야하는 고정대사인 줄 알았고, 정년퇴직까지 성실히 일을 하실 아버지께서 '요즘 경기가 안 좋다'라고 하시면 그저 용돈을 아껴쓰라는 말씀인 줄 알았고, 학생은 공부만 잘 하면 멋진 직장을 다니며 부모님께 넉넉한 용돈을 드릴 줄 알았고, 젊은이들은 사회에서 적정 나이라고 생각되는 시기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처럼 살아갈 줄 알았던 학창시절... 넘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별 모자람이 없었던 그 시절에 나는 우리 가정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중산층임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IMF의 원조를 받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국민과 국토는 있지만 이름만 있을 뿐 국가가 실제적 힘이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알게 되었고 2010년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가 줄 파장에 대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치솟은 물가에 김치는 '금치'가 되고, 아직은 젊고 멋진 아버지들이 퇴직자가 되고, 청년실업을 넘어 취업 포기자가 속출해 경제적 문제로 결혼, 출산을 미루는 2010년, 우리의 현실. 이런 고통을 강한 모습으로 훌쩍 자라기 위한 <성장통>으로 여기며 해결책이 있다고 말하는 '대한민국의 성장통'. 모든 것이 꼬이고 얽혀 버린 듯한 문제들의 해답을 제시하며 희망을 주겠다는 소개글이 한낱 희망 고문 혹은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지식인의 현실감 없는 궤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가득찬 눈으로 이야기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자 공병호 박사는 [1부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인의 성장통]에서 가정 경제, 남과 비교함으로서 행복감을 느끼기 힘든 개인, 자본주의가 가져온 긍정적, 부정적 결과들, MB정권의 리더십, 기업국가의 모습, 모자란 일자리 상황, 교육 문제 등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구석구석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며 우리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원인을 분석한다. [2부 성장통을 딛고 진정한 성장의 길로]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개인이 실천해야 할 해결법과 사회가 취해야 할 위기 탈출법을 제시하며 희망과 용기의 메세지를 전달함으로서 글을 마친다.
이 책이 재테크 관련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경제 경영 전문가라는 저자가 마치 사상가, 철학가, 교육가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점이 다소 놀라웠다. 물론 경제 상황을 확실하게 분석해 보여주기는 하지만,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고 경쟁력이 있는 자신만의 기술을 쌓고, 빠르게 변화하고 불만족스럽게 생각되는 사회의 모습을 받아들여 개인이 변해야 함을 강조하는 모습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선뜻 '옳소'를 외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생각을 바꾸고 스스로 성장하길 바라는 내용은 다른 자기 계발서의 메세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어쩌면 이것이 최선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간혹 공감하기 힘들거나 반박하고픈 내용도 군데군데 보였다. 특히 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결손 가정 자녀들에 대한 혜택에 대해 말하며 그들이 도움을 당연히 여기며 의존적인 아이들로 자랄까 걱정이다 라고 한 점에 주목하는 대목이 그 예이다.
"....도움을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지나친 의타심을 갖게 될까 걱정입니다.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늘고 있어요. 나중에 자립해서 자신이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평생 남에게 의존하는 인간을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본문 266p>
소외계층 자녀들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그걸 의타심으로 연결될까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인성, 혹은 인성 교육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는 걸까? 과거에는 도움을 주면 모두 고마워하며 커서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또한 공병호 박사가 우리에게 지양하기를 원하는 <과거 미화>의 일종이 아닐까싶다. 물론 개인이 의지만 있으면 어려운 현실을 딛고 열심히 공부하기에도 좋은 세상이다 라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나온 이야기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반 페이지에 불과할 뿐임에도 이 부분은 좀 속상하고 슬픈 마음이 들게 하였다.
이런 잣대를, 자수성가로 부자가 된 과거의 재벌 총수들에 비해 어려움을 모르고 선조의 재산을 물려받은 재벌 2,3세들의 의존적 성향에는 왜 들이대지 않는가?
70원이 버스비인 줄 아는 국회의원이 기초 생활 수급비와 최저 임금을 책정할 때, "버스비가 70원이니, 이 돈이면 쌀도 사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옷도 사고..다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으리라 했던 나의 상상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는 이미 많이, 충분히 소외 계층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비록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이 책에 대해 비호의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뛰어난 시대 분석력을 비롯해 명쾌하게 느껴지는 해결법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첫째로, 1부에 등장하는 세계 속에서 바라 본 우리의 현실이었다. 각종 수치를 보여주며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님에도 비교 대상을 좁게 선택했기에 스트레스는 늘고 행복지수는 줄었다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글로벌 시대라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정작 우리를 글로벌적인 눈으로 넓게 보지 못했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라니,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둘째, 우리의 소비를 권장하는 문화와 교육에 지나친 투자를 비판하는 점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빚을 내서라도 소비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교육비에 사용해 궁핍할 노년을 맞이할지 모르는 이상한 세태는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세번째, 2부 2장, [사회의 선택]에서 제시하는 사회적 해결법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으로서 경제를 넘어 사회 제도 곳곳과 대북 정책, 외교정책에도 제시된 의견을 보며 이런 사회를 만들기위해 단순히 정부나 기업의 변화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공병호 박사의 제시하는 개인의 성장통의 해결 방안은 그 골자만 보면 간단하다. 개개인이 변하는 것! 그는 불평만 하기 보다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스스로의 행복 기준을 세우고 현실 (특히 사회의 흐름과 경제적인 부분)을 정확히 볼 줄 아는 눈을 길러 각종 리스크를 줄이고, 성장하기 위해 혹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강조한다. 특별히 돈이 드는 것이 아니기에 쉬운 것 같지만 마음과 의식, 정신, 생활 습관의 변화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기에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위기에서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결심과 단단한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만 허리띠를 졸라 맬 것이 아니라, 정신도 졸라 매며 수양이 필요한 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사실, 시험이 아닌 한, 세상 어느 것이나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개성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꼭 맞는 안성맞춤 해결법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연민과 분노에 빠져 무기력하게 있기 보다는 해봄직한, 수긍할 수 있는 좋은 의견이라면 취할 것을 취해 자신에게 맞는 특별하고 속 시원한 해결법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지금의 현실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멋지게 성장한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한 번 스스로 변화해보자!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기적을 이루는데 특별한 재주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 아무것도 두려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