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와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들의 삶을 이해조차도 할 수 없다.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아와 충돌하고 자신의 생각조차 선택할 수 없는 삶이란 흔히 정상적이지 않는 삶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에이자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일상조차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야 할 에이자의 삶은 한 마디로 고통스럽다.

 

“학교 식당에 앉아 있으면 내 안에 미생물들이 잔뜩 있고, 그것들이 날 위해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따지면 난 곧 미생물들이죠. 인간이라기보다 역겹고 우글거리는 박테리아라고요. 그러면 난 결코 깨끗해질 수가 없어요. 내 몸 구석구석에 더러움이 퍼져 있으니까요. 내 안에서 정말로 순수하거나 더럽혀지지도 않은 부분, 내 영혼이 있어야 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없어요. 이건 곧 박테리아에 영혼이 없듯이 내게도 영혼이 없다는 뜻이죠.”

 

에이자는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까봐 걱정하는 상황이 매일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고자 스스로 낸 손가락 상처가 감염될까봐 불안해하고,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고도 세균에 감염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세정제를 마실 정도로 상태는 심각하다. 그런 에이자에게 또 다른 공포가 있다.

 

“그냥 내 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게 싫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바꾸려는 존재하는 도구 같아. 이 광활한 우주에서 그냥 하나의 유기체 같다고. 그리고 소위 내 ‘자아’라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무서워.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선택할 수 없다면 어쩌면 나는 진짜가 아닐 수도 있잖아.”

 

두 자아의 충돌은 자신을 허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기까지 하면서 또한 죽음이란 것에 공포를 느끼는 에이자의 심정이 안타깝다. 소설에서 자꾸 비춰지는 에이자의 또 다른 자아의 속삭임은 솔직히 공포스럽다.

 

“넌 절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넌 네 생각을 선택할 수 없어. 넌 죽어가고 있고 네 안의 벌레들이 네 살까지 먹어치울 거야.”

 

벅찬 삶을 살아가는 에이자는 나름대로 연애도 하고, 친구와의 우정도 잘 쌓아가며 10대에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강박증과 불안증으로 인해 평범한 삶은 특별한 삶으로 비춰지게 한다. 소설은 10만 달러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를 찾는 모험에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그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지만 과정에서는 그 사건과는 별개로 에이자의 심리변화와 갈등을 자세히 묘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릴 적 불안장애를 겪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느낌과 공감이 꽤 크게 다가온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심리 문제에 마주하게 된다. 정상적이었다가도 어떤 상황에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불안한 현대인의 삶에 작은 위로를 전한다.
 

작가 B.A 패리스의 데뷔작 소설 <비하인드 도어>는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 소설이었다. 반전 스토리에 소름 돋을 정도였다. 이번 신작 소설 <브레이크 다운>도 심리 스릴러라고 한다. 읽지도 않았지만 기대감 증폭이다. 소설의 홍보자료만으로도 이미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느낌이다. 한 순간의 선택이 주인공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데 운명적인 금요일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폭우가 쏟아지는 밤, 회식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주인공 캐시는 지름길이지만 어둡고 사고의 위험이 많은 숲길로 오지 말라는 남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본능적으로 핸들을 숲길로 꺾는다. 그렇게 차를 몰던 캐시는 어둠 숲 속에서 폭우를 맞으며 정차해 있는 차를 발견한다. 고장이 난 걸까? 생각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차를 정차했지만 왠지 무서운 생각에 지나치고 만다. 그러다 마주친 차 속의 여자와의 눈 맞춤. 다음 날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빠진다. 게다가 그녀는 새로 알게 된 여자 친구 제인이어서 죄책감은 더욱 심해진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캐시. 자신도 모르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난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잊고, 주문한 기억도 없는데 물건들이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그리고 늘 사용하던 가전제품 사용법도 알 수 없게 된다. 건망증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그러나 엄마의 치매 병력 때문에 자신에게도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해버린다. 게다가 대답 없는 전화가 자꾸 걸려온다. 이런 일들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녀의 삶은 무기력해지고 피폐해져간다.

 

소설은 캐시의 죄책감과 공포에 시달리는 모습, 안절부절 하는 심리상태, 망상증과 같은 모습들을 자주 보여준다. 그러니 기억상실증 내지 치매에 걸렸겠구나 하고 믿게 된다. 모든 상황이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나칠 정도로 기억을 놓아버린 그녀의 행동을 보면 혹시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기억을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하게 한다. 그러다 이야기는 반전을 맞게 된다. 남편의 불륜, 대상은 어릴 때부터 의지해왔던 여자 친구다. 불륜만으로도 벅찬 상처인데 이 두 사람은 캐시가 추락한 삶을 살도록 하게 만든 장본인들로 상처에 상처를 덧댄다. 이제 캐시는 두 사람에게 복수의 화살을 돌린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에 이어 신작 <브레이크 다운>에서도 소름 돋는 흥분감을 느꼈다. 반전 스토리에 빠져들게 만든 작가의 필력은 감성 폭발을 맞이하게 한다. 어쩜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에 감탄한다. 올 여름 심리 스릴러로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아마도 대박이 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부모를 여의고 어릴 적부터 인간병기로 훈련받아 온 여자아이가 어느 덧 성장해서 강한 킬러로 변신하여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영화가 생각난다. 대부분 이런 종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전체적인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결정적일 때 묻어나오는 인간미와 화려한 액션은 관객들을 압도한다. 소설 <크루얼티>도 조금은 비슷하다. 

 

소설 <크루얼티>는 제목에서부터 잔혹함이 묻어나온다. 읽지도 않았는데 이 긴장감이란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다. 얼추 스토리를 알고 책을 읽어나갔지만 직접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액션과 추리, 스릴러의 강도는 새롭기만 한다. 또한 미스터리 사건의 향방은 역시 미스터리했기에 소설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너무 집중해서일까!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외교관 아빠를 따라 세계 각국을 다니게 된 17세 소녀 그웬돌린은 어느 한곳에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한 이유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빠와 쭉 자란 그녀는 의지할 곳이라곤 아빠밖에 없다. 그런 아빠가 프랑스 출장 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이제 정말 고아가 되어 마음을 둘 곳이 없어져 버렸다. 스스로 사려졌을까? 아님 납치 되었을까? 이 사건으로 아빠의 정체가 CIA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동안 아빠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빠의 실종에 사람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직접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변신을 하고, 단서를 찾아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까지 건너간다. 이 여정 속에서 ‘아빠는 왜 납치되었을까?’의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의문만 가득한 채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악마보다 더 잔혹한 킬러로 변신하게 된다. 과연 그녀의 아빠는 누가, 왜 납치했을까? 그리고 아빠를 구할 수는 있을까?

 

경찰이 사라진 아빠를 더 이상 구하지 않자 어린 17세 소녀는 아빠를 구하고자 목숨까지 걸 정도로 진정 용기를 낸다. 이후 폭력과 맞서면서 자신을 극복해나가며 강한 여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영웅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 딱 걸크러시를 연상시킨다. 그녀의 행동과 추리를 쫒아가다 액션을 만나면 함께 몸이 움직인다. 불리한 경우엔 힘을 좀 더 내라고 안간힘을 쓰다 통쾌하게 물리치면 시원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그녀의 움직임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소설의 ‘끝’ 글자를 끝으로 책을 덮으니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색다른 경험이다. 많은 독자들도 영상처럼 흘러가는 경험을 했었나보다. 이미 유명한 제작사에서 영화로 만든다고 한다. 이 여름에 보면 딱 좋을 영화인데 올 여름에 볼 수 있도록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