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이경애의 첫 시집 『수납장의 봄』은 대부분의 작품이 생태학적 상상력에 천착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적 배경은 주로 ‘봄’이라는 특정 계절에서 원초적인 생명성, 봄을 맞아 활력이 넘치는 생명의 환희가 시적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이경애의 시적 경향의 다른 한편에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는 ‘낙엽’을 통해 생이라는 것이 ‘버려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며 인간의 삶도 이와 같음을 깨닫는 지경에 이른다. 존재론적 인식을 탐구하는 그의 시편에서의 시적 대상들 또한 대부분 자연에서 취하고 있다. 자연의 현상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얻어내고 있다. 이러한 이경애 시인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한 시편들과는 본질적으로 차별성을 가진다.
이경애 시인의 또다른 주요 시적세계는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서를 해석하고 있다. 고립과 유폐의 장소성을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와 그곳 사람들의 진중한 삶을 이경애 시인만의 독법으로 노래하고 있어 주목된다.
- 강경호(한국문인협회 문학평론과 회장)

수납장의 봄/ 차례


시집을 내면서 7


제1부 수납장의 봄

수납장의 봄
해무 주의보
소나기
4월
섬
만남
봉안당
가는 길목
삶을 채취하다
가을
낙엽
기다림
봄날의 앙탈
닮았구나


제2부 시간을 낚는다

시간을 낚는다
봄
산을 오르다가
홍시
달맞이꽃
어머니의 텃밭
목소리
봄
202호
대기 중
비밀의 섬
비
산수유
고사목



제3부 제비네 행복

제비네 행복
오솔길
서리꽃
늦가을
새
분재
꽃잎
보상
표정
일용직
배롱나무
여행
한 끼의 행복


제4부 소원

소원
기다림
이만치 와버렸네
오솔길
길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현실
가을 바다
암울한 현실
가뭄
향기
가을 예고
그만큼만
달력
나쁜 놈의 선물

해설
생태학적 상상력과 삶의 방식에 대한 모색/ 강경호

수납장의 봄



봄을 꺼낸다
수선화 제비꽃 양지꽃 냉이꽃

방안이 환하다.
여자의 얼굴도 핑크빛 모드로 바뀐다

겨울을 정리한다
차곡차곡 켜켜이

어제 사 온 봄은 아직 피우지 않은 봉오리인 채
나비 잠에 빠져 있고

창밖 나뭇가지 새들 종종거리는 소리에
무거운 감정들 입춘대길이라는 편액으로
날려 보낸다
도려낸 왼쪽 가슴에 살이 오른다

따뜻하다
피가 돌고 있다.






해무 주의보



건져 올린 파도 한 조각을 아침상에 올려놓고
남편과 티격태격하느라 상을 물리고 만다
둘 사이에도 해무 주의보가 내렸다
가시거리가 아득하기만 하다
역류성 식도염이 도지는지 편도가 묵직하다
바닷가 갯바위를 찾아간다
해무가 융단처럼 곱다
장막을 치고
바람을 끌어다가 이불을 삼고
아직 눈동자를 갖지 못한 것들과 마주 보고
눕고 싶다
떠 있는 솜사탕을 한 입 베어
허기를 채워본다
구름을 깔고 누워 황홀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출항을 준비하는 남편의 배가 통통거린다
갈매기도 바다의 문을 열고 앞서간다
바다의 비늘이 투명하다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든다
햇볕이 환하다.






소나기



내리꽂히는 햇볕이
맹독이 되는 8월
목말랐던 대지에
장대비 사납게 퍼붓는다
흙의 내장이 파열되고
골절된 텃밭 옥수수도
하반신을 잃고 쓰러졌다
빗소리 비명소리
개구리 혼비백산 뛰는 소리
비 한 모금에
저리도 환하게 꽃잎을 틔우는
담 너머 능소화.






4월



그날도 벚꽃은 천국처럼 환했다
긴급 속보는 금세 지옥으로 변했다.
하늘은 어두웠고 꽃들은 수의를 입고
지상에서 멀어져간다
바다는 흔적을 지우고 무심하다
애타게 이름을 불러봐도 사납게 짖어대는 파도뿐
수장된 슬픔들이 등대처럼 물 가운데 떠 있다
무심한 봄날은 물처럼 흐르고
맹골도 바다는 눈감지 못한 절규를 애써 외면한다
싸늘한 바다
4월은 가고 있다
눈물이 점점 휘발되고 있다.






섬



노을 가루 분분하다
어둠이 스며들면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파도가 어린아이처럼 보챈다
다독이는 어미처럼 섬은 파도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린다
바다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고
섬은 붓을 든다
획을 그을 때마다 밤의 음영들이 섬을 휘감는다
선을 그은 붓끝이 예사롭지 않다
천년의 비밀을 발설하고 싶은 노송은
숨이 막혀 마른기침을 한다
떼 지어 노는 고기들은 야광찌처럼 빛이 난다
섬으로 돋아나서 그 자리에 머물기에
너무 아쉬워 밀물과 썰물이 오고 가는 데로
긴 여행을 하고 싶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만남



우울이 밀려오는 하루다

깨진 사금파리에서 봄볕의 감정을 읽는다

우울이 스타카토로 바뀐다

목소리가 알토에서 소프라노로 바뀌고

봄볕의 엔도르핀을 먹으니

후딱 봄이 창을 건너 밀려온다

창가의 제라늄이 한창이다

세상이 온통 붉은색이다

여자의 마음도 온통 붉은색이다

여자는 입춘대길을 휘갈기며

대문에 걸고 있다.





봉안당



이제는 그만 가야 할 것 같다고
하늘 아래 삶이 고달프다고
푸념에 땅이 꺼지더니
문 앞에 이름 석 자 명패는 그대로네
아기 동백 울타리에
세 평 남짓 잔디정원
현대식 건물 한 채
95키로 길이 길기도 짧기도 한데
단칸방에 편안하게 앉아
코 고는 소리 휘파람처럼 새어 나온다
끄나풀 하나 놓아버렸더니
이렇게 편안하다는 듯
봄볕 속에 딸이 놓고 간
봄꽃도 모르고
드르렁드르렁.




가는 길목



산 넘어가는 햇살 끝에
찬 이슬 맺힐 때
바람이 연주하는 노랫소리가
흔적을 없애려 한다

한때는
새들의 둥지가 되고
바람막이가 되고
흐르는 땀방울 훔쳐 가며
쉬어가고픈 그늘이었는데

한때 푸르렀던 잎새들도
먼 길을 걸어왔다고
휴식을 취할 때

햇살이 낙엽 위에 걸터앉아
낙엽을 만지작거리다가
뼛속 깊이 몸을 섞는다

안색이 변하기 시작할 때
산 능선을 지나가는 바람은
골짜기마다 소문을 낸다
땅 위에서 뒹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쓸쓸함.


▣ 작품론


해설


생태학적 상상력과 삶의 방식에 대한 모색
- 이경애 시집 『수납장의 봄』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이경애의 첫 시집 『수납장의 봄』은 대부분의 작품이 생태학적 상상력에 천착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적 배경은 주로 ‘봄’이라는 특정 계절에서 원초적인 생명성, 봄을 맞아 활력이 넘치는 생명의 환희가 시적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봄’은 생명성을 상징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고 움츠렸던 생명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때 시적 대상들은 대부분 자연으로 깨어나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대입시켜 시인 자신의 자아를 투사시킴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묘파한다.
이경애의 시적 경향의 다른 한편에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는 ‘낙엽’을 통해 생이라는 것이 ‘버려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며 인간의 삶도 이와 같음을 깨닫는 지경에 이른다. 존재론적 인식을 탐구하는 그의 시편에서의 시적 대상들 또한 대부분 자연에서 취하고 있다. 자연의 현상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얻어내고 있다. 이러한 이경애 시인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한 시편들과는 본질적으로 차별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경애 시인의 또다른 주요 시적세계는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서를 해석하고 있다. 고립과 유폐의 장소성을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와 그곳 사람들의 진중한 삶을 이경애 시인만의 독법으로 노래하고 있어 주목된다.

2.
서정시는 시인의 오래 축적돼 온 기억의 층위에서 현실에서 만나는 정서적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 기억들을 소환한다. 이때 불러낸 기억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시인이 살아오면서 정립한 정신적 가치화됨으로 시인의 총체성을 이룬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나타난다.
주로 유년의 정서적 사건들의 시적 대상인 고향, 어머니, 아버지, 때묻지 않은 모습들이 보편적으로 오래 쌓여온 기억들이다. 그러므로 특히 첫 시집에는 가족사와 관련된 정서적 사건들이 시적 대상들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경애 시인의 시적 경향은 생태학적 상상력이 주류를 이루고 존재론적인 탐구를 보여주는 시편들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추가 가능한 것은 이경애 시인의 관심사가 최근 환경 파괴 등으로 화두가 되는 생명성 문제와는 다른, 그래서 위기에 처한 지구촌 생태를 극복하자는 외침보다도 자연 친화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생태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태학적 상상력의 시를 쓰게 했다는 추론이 타당하다.

송홧가루 눅진한 산길을 걷다가
잠시 숨을 고르느라 쉬고 있는데

건너편 골짜기서
꿔 꿔 꿩 꿔 꿔 꿩
암꿩의 앙탈이 속사포다
간이 얼마나 크기에 수꿩을 쥐잡듯 하나

전라도 버전으로 한 마디 한다

셀셀 웃음친께 헬렐레 노는 꼴이라니, 꼭 발정 난 개들맨키로 확 성냥불 댕겨불기 전에 싸게 꺼져불드라고이

그 말이 얼마나 구수하고 서글프던지
골짜기가 우렁우렁 메아리를 내보내는 것 같다
골짜기 한 귀퉁이에 이십 년째 누워있던 남편,
어험 하고 벌떡 일어날라나.
- 「봄날의 앙탈」 전문

작품의 절기는 봄날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생명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이므로 그야말로 활력이 넘친다. 송홧가루가 날리는 산길을 걷는 화자는 “잠시 숨을 고르느라 쉬고 있”다. 그때 건너 골짜기에서 암꿩이 앙칼지게 소리를 지른다. 화자는 이를 보고 “간이 얼마나 크기에 수꿩을 쥐잡듯이 하”느냐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봄날은 생명의 계절이어서 암수 꿩의 사랑놀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생명들이 생기발양하는 모습에 화자는 “골짜기 한 귀퉁이에 이십 년째 누워있던 남편,/ 어험 하고 벌떡 일어날라나.” 한다. 생명의 기운이 도는 봄날의 환호작약에 화자는 세상 떠난 지 이십 년이나 되는 남편조차 살아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시제인 ‘봄날의 앙탈’을 ‘암꿩의 앙탈’로 읽어도 무방하다. ‘앙탈’이란 ‘생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짓’의 사전적 의미를 갖지만, 여기에서는 ‘사랑의 표현’을 역설적으로 하는 말로 이해된다. 앞서 말했듯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암수의 사랑놀이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앙탈’이라는 의인화법은 원초적인 생명성을 함의한다. 그리고 세상 떠난 남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과장법이 생명성 앙양을 강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다음의 「수납장의 봄」은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화자의 일상에서 생명성을 읽게 한다.
봄을 꺼낸다
수선화 제비꽃 양지꽃 냉이꽃

방안이 환하다.
여자의 얼굴도 핑크빛 모드로 바뀐다

겨울을 정리한다
차곡차곡 켜켜이

어제 사 온 봄은 아직 피우지 않은 봉오리인 채
나비 잠에 빠져 있고

창밖 나뭇가지 새들 종종거리는 소리에
무거운 감정들 입춘대길이라는 편액으로
날려 보낸다
도려낸 왼쪽 가슴에 살이 오른다

따뜻하다
피가 돌고 있다.
- 「수납장의 봄」 전문

서정시에서 상상력을 형상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지를 구현하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시각적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보다도 가장 크게 작용한다. 특히 색채는 이미지를 감각화하는데 절대적이다. 이 작품에서 ‘봄’이라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수선화 제비꽃 양지꽃 냉이꽃”은 실제로는 서랍 속에 있었던 봄옷들이지만, 꽃들이 지닌 노랑, 보라, 하양의 색채를 보여준다.
이들 봄옷을 꺼내든 여자는 겨우내 칙칙했던 방 안이 환해진다고 한다. 그러자 “여자의 얼굴도 핑크빛 모드로 바뀐다”. 여기에서 ‘핑크빛’ 색채이미지는 ‘분위기 있고’ 그래서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화사하고 밝은 옷으로 여자의 마음을 밝고 환하게, 그리고 설레임으로 일순간 뒤바꾼 색채들은 시적 감정을 매우 감각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겨울을 정리”하는 의식, 즉 ‘봄을 맞는 의식’을 잘 치러낸다.
이 작품은 3연까지는 수납장이 있는 방 안에서의 정서를 담아낸 것이고, 나머지 4·5·6연은 방 밖에서의 일어나는 정서적 사건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어제 사온 봄은 아직 피우지 않은 봉오리인 채/ 나비잠에 빠져 있고” 창 밖에서는 새들 지저귀는 소리로 봄기운이 물씬하다. 특히 “도려낸 왼쪽 가슴에 살이 오른다”. 겨울 동안 삭은 나무에 움이 트는 봄을 맞아 생명활동을 시작하는 나무를 비롯한 생명들에게서 “피가 돌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번 시집의 표제작으로 ‘수납장’과 ‘창 밖’ 등 모든 곳에서 생명의 핏줄이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는 ‘봄의 환희’를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생명의 기쁨을 노래한 시편들이었지만, 다음의 「202호」는 생명과 죽음이 대비되고 교차함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30촉 전구처럼 희미해진 눈망울이
반가워서 눈시울에 눈물이 금세 고인다

소변 주머니엔 적색뇨가 연신 떨어진다
뼈가 앙상하다

잠시 전구 촉이 환하다 싶었는데
밥 투정 옷 투정 돌변한다
지겨운 레퍼토리에 오늘도 슬프다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패랭이꽃 같은 찬란한 길을 걷나 보다

손가락을 파르르 떤다
패랭이꽃이 무참히 꺾어지는 것을 지켜본다

무거운 슬픔이 내려앉는다.
- 「202호」 전문

이 작품은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과는 생명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다. 위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생명의 계절인 ‘봄’의 환희를 통해 푸르른 생명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생과 사를 대비시켜 생명이 얼마만큼 소중하고 가치있는지를 보여준다.
‘202호’는 병실 번호이다. 화자가 202호 환자를 면회한 것으로 짐작된다. ‘202호’라는 특정 병실은 병원마다 있는 병실이다. 그런데 화자가 지켜보는 202호는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 공간이다. 202호에 있는 시적 대상은 눈망울이 희미하다. “소변 주머니엔 적색뇨가 연신 떨어진다”. 병원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환자의 모습은 “뼈가 앙상하다” 병이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의 눈망울에서 생기가 도는 듯하다가 여러 가지 투정을 한다. 늘 있던 일상이다. 그런데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손가락도 파르르 떤다. 그리고 ‘패랭이꽃’으로 은유화된 환자가 “무참히 꺾어”진다. 생명의 숨결이 희미해지는 것을 화자는 지켜볼 뿐이다. 그러므로 “무거운 슬픔이 내려앉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202호’는 ‘병실’이라는 공간성 뿐만 아니라 환자의 이름 대신 익명의 기호로 표현함으로써 죽어가는 사람들을 복합적으로 나타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생명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죽어가는 생명을 통해 생명의 의미를 절대적 가치로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을 노래한 시편들이 주로 봄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봄」에서 “산들이 들썩거리며 좌불안석”한다고 한다. “새들은 포롱포롱 날갯짓하고” “명주실 같은 실바람이/ 실타래처럼 풀어놓는”다. 생명활동을 분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봄」에서도 “봄은 직진으로 온다”며 거침없이 북상하는 봄을 의인화하고,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입덧 난 여자처럼” “천지 사방은 산란을 시작한다”고 봄날의 생동거림을 노래하고 있다. 「표정」에서도 “봄비가 내리고/ 꽃망울들 투두둑 실밥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날로 푸르러지는 풍경을 “산과 들은 표정을 바꾸느라 바쁘”다고 한다. 「제비네 행복」도 생명의 환희를 매우 감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제비들의 안부가 시끄럽다”거나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느라 “풀빵구리 드나들 듯 바쁘다”고 동사형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사목」은 말 그대로 죽은 나무를 의미하는데, 고사목의 죽음이 생명의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며 생명의 순환을 노래하고 있다.

3.
인간은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생은 쉬운 것만은 아니어서 산길 불길 오르고 건너듯이 힘들어하며, 절망하면서도 끝내 알 수 없는 지점이지만 그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길을 가야한다. 이것이야말로 서정시가 추구하는 덕목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서정시의 효용성은 자연과 사물에서 아름다움과 인간이 지녀야할 가치를 발견한다. 그런 까닭에 서정시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이라고 한다.
이경애의 시는 이러한 서정시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결국 시를 통해 이경애라는 한 인간의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 그의 시가 가야 할 길이다.

바람의 횡포에 나뭇잎은
원형탈모처럼 빠져나가고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마지막 남은 나뭇잎 하나
툭 -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심장이 시퍼런 강물처럼 철렁였다

생이란 저런 거구나
낙과처럼 버려질 생이었구나
버려지기 위해 푸르름이 존재했구나
생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

발밑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
바스락바스락 슬픔이 증발하고
낙엽들을 보면서
잊혀지는 것과 버려지는 것과
생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 「낙엽」 전문

화자는 가을날 바람에 지는 낙엽을 바라본다. 이 흔한 풍경을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소설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킨다. “마지막 남은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에서 둔탁한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실제로는 낙엽 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화자의 심리적 감각은 잎새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러자 “심장이 시퍼런 강물처럼 철렁였다”고 진술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애경애 시인만의 서정시가 탄생한다. 화자는 “생이란 저런거구나”하고 “버려지기 위해 푸르름이 존재했”고 “낙과처럼 버려질 생이었”다는 역설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 봄날 푸른 잎새가 피어났다가 한철 무성했었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 “생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라고 인식하게 된다. 낙엽 하나 떨어지는 것에서 그것을 단순한 낙엽의 운명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 화자 자신도 언젠가는 낙엽처럼 삶을 마감할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간절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태어났다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화자가 아니다. 막연한 죽음에 대한 관념이 낙엽을 통해 구체적이고 절실하게 현실화되는 과정을 인식하면서, “발 밑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들을 보며 “잊혀지는 것과 버려지는 것과/ 생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생로병사의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성과 존재의 가치를 다시금 알게 되는 ‘발견’의 모습을 보여준다.
「낙엽」에서 생명이 다하는 모습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