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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한국어 : 문지혁 장편소설[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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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문지혁
  • 출판사 : 민음사
  • 발행 : 2023년 03월 03일
  • 쪽수 : 268
  • ISBN : 978893747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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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되풀이만이 사랑할 만하다.
되풀이만이 삶이다.”

『초급 한국어』 다음의 한국어 배우기
나에 대한 글쓰기로 완성되는 문학 수업

출판사 서평

문지혁의 ‘한국어 수업’ 두 번째 이야기 『중급 한국어』가 출간되었다. 2020년 출간된 『초급 한국어』를 잇는 『중급 한국어』는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최초의 ‘시리즈 인 시리즈’ 소설이다. 『초급 한국어』가 뉴욕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작가의 경험을 담아 낸 것처럼, 『중급 한국어』에서도 현실의 문지혁처럼 소설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주인공 ‘문지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급 한국어』가 ‘코리안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기초 한국어 강의 커리큘럼에 따라 흘러갔다면, 『중급 한국어』의 뼈대는 글쓰기 강의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Are you in peace?’라고 번역해 보는 초급 한국어 수업은 익숙한 한국어를 낯설게 보는 과정이었다. 이어지는 ‘중급’ 단계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써 보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빛나는 문학적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심화학습이 이뤄진다.

■ 나에 대한 글쓰기
『중급 한국어』의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듣고 자신의 글을 써 내야 한다. 이후 서로의 글을 평가하는 합평을 거쳐 작품집을 만드는 것이 수업의 전체 커리큘럼이다. 이 대장정의 출발점이 되는 첫 번째 강의는 바로 ‘자서전’이다. 백지를 앞에 둔 학생들을 향한 첫 번째 지침은,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라는 것. 나의 삶을 어떻게 글로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중급 한국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배워 갈 수업 목표이자 지혁 자신이 탐색해 가는 과제다. 강의 내용에 이어지는 지혁의 이야기들은 ‘자서전 쓰기’의 실전편이다.

■ 딸과 함께 새로운 언어 배우기
『초급 한국어』의 지혁은 작가 지망생이자 뉴욕의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다. 지혁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시간을 그리는 『중급 한국어』에서 그는 여전히 등단하지 못한 작가이며 비정규직 대학 강사다. 바뀐 게 있다면 책 한 권을 낸 것, 은혜와 결혼한 것 그리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딸 은채가 태어난 것. 아이가 성장하며 언어를 배워 가는 동안, 지혁도 아이와 함께 낯선 언어를 배워 간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쓰고 읽고 고치는 매일매일이 그런 것처럼,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놀아 주는 하루하루 역시 되풀이되며 “천천히, 그러나 세금처럼 확실하게” 흘러간다. 『중급 한국어』는 결혼 생활과 육아의 과정들을 세밀하게 기록하며, 되풀이되는 시간 속에서 반짝이는 새로운 언어를 포착한다.

■ 문학으로 확장되는 일상의 언어
소설 속 강의는 카프카의 『변신』,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같은 문학작품을 통해 성장과 사랑, 죽음과 고통을 바라본다. 우리 일상을 이루는 것들이자 문학작품의 영원한 주제들. 이지적이고 재치 있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강의를 따라가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문학적 경험이다. 한편 강의 내용은 지혁 자신의 일상에서, 학생과의 대화에서, 은채의 말을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지혁과 은혜의 결혼 생활에 대한 묘사는 강의 주제인 ‘대화’와 ‘사랑’의 정수를 보여 주고, 카프카식 서사 구조를 그린 도식 옆에는 이를 거스르는 은채의 짧은 이야기가 놓인다. 문학과 삶이 경계 없이 포개지며 서로를 덧쓰는 『중급 한국어』를 읽고 나면, 우리의 언어는 한층 풍부해진 내력을 안고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추천사

박소란(시인)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일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으로서. 입이 아니라 몸으로 말해 낼 진실을 위해 오늘도 다만 삶을 쓰고, 읽고, 고칠 뿐. 되풀이할 뿐.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라고 가까스로 힘주어 이야기하기까지 한 작가가 진지하게 치러 낸 내적 분투는 더없이 숭고한 것이었다.

권희철(문학평론가)
『중급 한국어』에 삽입된, 아마도 문지혁 작가가 실제로 자신의 소설 창작 수업에서 제공해 왔을 강의노트들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또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강의노트의 내용이 아니라 『중급 한국어』가 결국 자신의 강의노트를 배반한다는 데 있다.
소설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현실과 일상의 ‘바깥’은 없다는 것, 삶도 글쓰기도 오직 그 무의미하고 너절하고 지겨워 ‘보이는’ 현실과 일상 안에만 있다는 것, 그 안으로 다이빙할 때에만 그 안에서 이미 변화하느라 물결치고 있는 소박하지만 애틋하고 절실한 무엇인가를 감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가 된다.

목차

1 자서전 9
2 글쓰기의 과정과 기술 35
3 유년 59
4 사랑 79
5 대화 105
6 환상 125
7 일상 147
8 죽음과 애도 169
9 고통 195
10 합평 227
11 작품집 만들기 243
작가의 말 259
추천의 글 264

본문중에서

자, 이렇게 시작해 볼까요?

자서전.
아마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자서전이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에 관해 쓴 글이죠. 어떤 사람들이 이런 걸 쓸까요. 그렇습니다. 전직 대통령. 전쟁 영웅. 성공한 기업인. 위대한 학자. 종교 지도자. 불굴의 영혼. 말하자면 벤저민 프랭클린, 김우중, 헬렌 켈러, 마하트마 간디, 미셸 오바마…… 같은 사람들이죠.

영어로는 오토바이오그래피라고 부릅니다. 칠판을 한번 보세요. 세 개의 단어가 들어 있죠. 오토(auto). 바이오(bio). 그래피(graphy). 오토는 자기 자신, 바이오는 삶, 그래피는 쓰는 거죠. 말 그대로 풀어 보면 자기가, 삶을, 쓰는 것. 이것이 자서전의 본래 뜻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자기가, 삶을, 쓰는 것. 사실 이건 자서전만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실은 자기가, 삶을, 쓰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자서전은 백만장자 CEO나 유명 정치인, 특별하고 대단하고 빛나는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쓰는 그런 글이 아닙니다.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에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11쪽)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변명하자면 나는 말한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이다. 은혜의 눈 속에 들어 있던 무엇을. 대화란 일종의 통과 발언(throughspeech)
이니까. 다이얼로그. 대화라는 단어 자체가 거기서 왔다. ‘dia’는 무엇을 통해서, ‘logue’의 어원인 ‘legein’은 말한다는 뜻이니까. 대화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행동이고, 따라서 그것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내적 행동이다.
나는 은혜의 말을 그대로 읽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을 따라 했다고,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내가 읽은 그녀의 ‘통과 발언’은 이것이다.
나는 아이를 원해.(19쪽)

우리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는 한 우리는 모두 영웅이에요. ‘써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책상 앞에 앉지만, 언제나 써야 하는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죠. 소명을 거부하다가 어찌저찌 ‘문지방’(학교 다닐 때 제 별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참 못됐죠.)을 넘어 글 속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부터 진짜 고난과 시련이 시작됩니다. 세상에 술술 써지는 글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영웅, 나의 글 쓰는 자아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옛 용사들이 용과 싸워 이긴 것처럼 용보다 더 무섭고 포악한 ‘하얀 여백’ 혹은 ‘데드라인’ 아니면 ‘성적’ 같은 괴물들과 맞서 싸운 다음 승리를 거두죠.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여러분은 문지방을 넘어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빈손이라고요? 아닙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약이 여러분의 두 손에 쥐어져 있어요. 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말했잖아요? 우리는 A에서 A’가 되었으니까요.
…… 저기, 저기 자고 있는 영웅 좀 깨워 주시겠어요?(47쪽)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에서 분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치사랑이 없다면 그걸 굳이 왜 나한테 말하는 건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 사랑을, 치사랑을,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처럼 중력에 반하는 예외적인 애정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원하는 것을 돌려 말하는 건 비겁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은채에게, 사랑은 같은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벌써 깨달은 것만 같은 이 아이에게, 나는 엄마와 비슷하지만 다른 말을 하고 싶다.
치사랑은 없어. 그래도 괜찮아.(89쪽)

저자소개

문지혁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8001

1980년 1월생. 서울대 영문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인문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뉴욕대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2010년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단편소설 '체이서'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사자와의 이틀 밤'과 공동단편집 '오늘의 장르문학',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3'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고흐를 만나다', '렘브란트를 만나다', '호세아', '코끼리 믿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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