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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옥례 수필집 [타법]. 저자의 다양한 수필을 만날 수 있다. 독자는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을 넘어, 자신과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제1부
입 큰 여자
타법
중심잡기
4번 테이블 손님
규화목이 일깨워준다
허기
야명조
까닭
사람 人

제2부
여우비
수류우향水柳寓鄕
도화살
사리邪離
마지막 주막
한 번만 더
발등을 찍히다
느닷없이 생긴 일
L 과장

제3부
통
솔개
뚜비
고슴도치 엄마
무늬만 며느리
뿔논병아리 가족
어머님의 선물
천사채
운문사의 이엽 단풍
제4부
졸참나무
베개
틀다
응석
사이즈
참맛
현을 조율하다
들찔레를 보며
오지랖 여자

제5부
계속 온다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편견을 깨다
마음의 귀
오른발, 왼발
이히 리베 디히, 아이 러브 유
할머니, 안녕하세요?
청춘의 소울푸드
텔레마코스의 멘토

발문 / 홍억선

[발문]
엄옥례의 문장강화법

홍억선(한국수필문학과장)

엄옥례 수필가와 나와의 문학적 인연은 제법 깊은 편이다. 십 년쯤 전이었을까? 수필 사무실이 만촌동에 있을 때였다. 엄 작가는 그 옆옆 건물의 2층에서 작은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당구장 주인과 수필, 약간은 언밸런스한 조우였지만 사무실이 가깝다는 것이 계기다 되어 그녀는 수필 공부에 입문했다.
수필반에 들어온 엄 작가가 용기를 내어 제출한 첫 습작품은 그 시작이 이러했다. “소백산 자락 첩첩 산골 봉화에 뿌리를 둔 부모님은 결혼하여 자식을 두었는데 네 명의 자식들은 태어나서 차례대로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새로운 집터를 찾아 헤매던 부모님은 더 깊은 골짜기 외딴 집으로 이사를 했고, 거기서 내가 처음으로 태어났다.” 꽉 찬 사연들이 뒤이어 쏟아질 것 같은 뜻밖의 첫 문장이었다.
그 다음에 낸 글은 또 이러했다. “도시로 나와 공부를 마치고, 직장에 다니던 나는 나이가 들어 미팅이라는 걸 했다. 그런데 맞은편의 친구 파트너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나는 내 파트너를 제쳐두고 그 사람에게 집중했다. 결국 그때 남의 파트너였던 남자가 지금의 내 남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반전이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따라간 남자의 집은 대구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언덕배기 판자동네였다. 그 누군가가 살다가 버리고 간 구멍 숭숭한 무허가 집, 거기에는 뇌졸중으로 누운 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이렇게 4명이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다.”
신선하면서도 도발적인, 거칠면서도 입에 감기는 찰진 화소들이었다. 아마 그때 내가 엄 작가에게 얼핏 지나가는 말로 “감이 있네.” 라는 말을 흘렸던 모양이다. 기억에 없는 말이었지만 후에 들은 바로는 그 한 마디가 글마당 쪽에서는 문외한이었던 엄 작가에게 삶의 변환점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을 대타로 쓰면서까지 엄작가 가 부지런히 드나들던 수필반의 수료날이 되었다. 엄 작가의 남편께서는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아내를 위해 꽃다발을 들고 왔다. 무척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그날을 앞뒤로 하여 20여 년 동안 수십 차례의 강좌를 운영하였지만 축하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는 또 다른 가족을 아직 보지 못했다. 한 가족의 순박한 사랑법을 목도한 나는 엄 작가가 글쟁이로서 충분한 자산을 가졌음을 확인하였고, 부디 수필가로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 바람대로 엄 작가는 수필가가 되었다.

엄 작가의 수필은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싱싱한 현실 체험만으로도 이미 수필이 되었다. 그 속에는 손재주가 뛰어난 남편이 조립컴퓨터 사업으로 생활을 넉넉하게 일군 보람도 있고, 뒤이어 대기업이 뛰어 들어와 잘 나가던 사업이 비탈에 놓이게 된 딱한 처지도 있다. 동네 토박이로서 마을금융 이사장에 도전했다가 만신창이가 된 남편의 처절한 인간사도 들어 있다. 세상의 빚을 갚기 위해 당구장 주인이 된 사연도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타법’은 그 무렵에 쓴 글이다. 계산대에 앉아 당구 경기를 바라본 지 수 년이 되었다. 판화 같은 당구대 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역동적이다. 욕심을 내서 끌어 치기도 하고, 멀리 보고 밀어치기도 한다. 그래도 잘 안 되면 비틀어 치기도 한다.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에 정신이 흐트러져 큐미스를 내기도 한다. 그것이 당구장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파란 당구대 위에 알록달록 공이 움직이듯이 세상은 여러 빛깔의 타법으로 온전한 그림이 된다. 이 작품은 유수한 문학공모전의 수상작으로서 그의 작품활동에 큰 용기를 주었다.
본인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엄 작가의 문장은 그동안 놀랍도록 진화했다. 일취월장이라든가 괄목상대라는 말을 써도 될 만하다. 대체로 세상에서 두 부류의 수필가를 자주 본다. 물론 뛰어난 문재로 명문장가로 남는 이가 많기는 하나 개중에는 문재를 밑천삼아 평생 그것을 소진해 가며 종내에는 몇 편의 글과 함께 소라껍데기로 산화하는 이가 있다. 이에 비해 글이라는 것에서는 먼 변방에 머물러 있다가 그것도 늦은 나이에 입문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올라가 결국에는 수필이라는 집을 짓고 그 안에 차곡차곡 자산을 불려가는 이가 있다. 물론 엄 작가는 후자에 속한다.
엄 작가의 삶은 곧 수필이 된다. 그의 수필은 바로 그의 삶과 동의어다. 어떤 이론적 문장강화법도 이에 앞서지 않는다. 그는 수필가가 되고서 생업인 당구장을 접었다. 각고의 수련과정을 거쳐 지금은 문학치료상담사가 되었다. 직업을 바꾸어 이름 있는 강사가 되었다. 놀라운 결단이고 변화다. 우리 사회에서 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문학 강사가 아직은 무슨 번듯한 직업이 될까마는 그는 지금 울타리 안의 소년원이며, 외진 군부대를 찾아다니고 있다. 다문화교실이며, 쓸쓸한 요양원을 마다 않고 다닌다. 그래서 이번 수필집의 주요 테마는 ‘비탈에 선 나무들’에 맞춰져 있다.

엄 작가를 지켜보면서 수필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수필집 《타법》은 분명 그만의 인생타법이다. 끌어치고, 밀어치고, 돌려치고, 때로는 헛손질한 그만의 삶이요, 그만의 수필이다. 그 속에는 그만이 가꾸어 놓은 온기와 미소가 있다. 이제 그 미소와 온기가 부디 그만의 타법이 아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