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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의 수필에는 처절하리만치 치열한 삶의 숨결이 오롯이 녹아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논물을 가두기 위해 폭풍우 속을 달렸던 어린 날의 이야기에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밤 깎기, 인형 옷 뜨개질하기, 꽃 오리기, 야쿠르트 배달, 화장품 판매, 학습지 일, 집 지어 팔기, 주식 거래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다해내며 오늘에 이르러 마침내 훌륭한 자녀를 키우고 의연하게 자신을 일으켜 세운 깊고 깊은 고뇌의 흔적이 녹아 있다.
따라서 김정순의 수필에는 절실한 삶의 원리가 뚜렷하게 제시되고 있다. 험한 세상을 헤쳐 나오면서 얻은 불규칙한 심장 박동, 힘든 숨쉬기, 골다공증과 담석증, 우울증 등 여러 의심 질환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자녀들을 위해 ‘십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갈구할 정도로 좌절하기도 하였지만 마침내 북을 치고 글을 쓰며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스스로 열어온 밝은 길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수필집은 인간 김정순의 고백록이자 명상록이며 자서전이다.-심후섭(아동문학가, 대구문인협회장)

작가의 말제1부 삼베적삼삼베적삼기다림폭풍우 속에서재봉틀초 두루미어머니나무설빔단풍잎 편지감나무대지하현달딸제2부 유혹유혹이정표비틀거리는 오후만추성장통방하착放下著이모작기도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다슬픈 허수아비옷을 다리며북소리제3부 맥문동맥문동거울벽난로뚝배기 속의 논쟁눈빛어울림옥잠화오해막걸리그리움 한 조각우두머리잃어버린 고향도시락제4부 아! 꿈속이던가아! 꿈속이던가축제꽃배환생소록도월심언니백목련연꽃마을광란의 축제섬진강빗속여정지난날의 행복

발문

[발간문]
책을 내며내 글은 여덟 살 때 처음지은 밥 같다불리지 않은 쌀 양은솥에 담아센 불로 급히 끓여아래는 타고 중간은 설익고 위는 죽이 된 삼층밥일흔이 넘도록 밥을 지어 밥 박사알맞게 불린 쌀 무쇠 솥에 넣고은근한 불로 뜸들인 밥솥뚜껑 열면짜자작 짜작! 밥알들 함성 들리고구수한 밥 냄새 코끝 찾아들고굼실굼실 기어가듯 살아 움직이는 밥알입안에 넣으면 혀끝에 부드럽게 감겨씹으면 구수하고 달콤한 맛으로 화답하는 밥밥 짓기 역사 위에구수하고 달콤한 밥을 짓듯내 글도 글쓰기의 길을 찾아가다보면누군가의 가슴 울리는 글 한편이라도 지을 수 있을까차마 부끄러워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창고 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 먼지가 뿌옇게 앉은 글들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지난 삶의 흔적들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용기를 내었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산마루에서 무엇을 주저하느냐고 스스로를 꾸짖었습니다. 부끄러운 삶도 자랑스러운 삶도 나의 것이었습니다. 어설프게 쓴 이야기지만, 이제는 가슴을 열어 내보내야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질 것 같았습니다.글쓰기의 길로 안내하시던 홍억선 선생님의 열정적인 명 강의가 고마웠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강의실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어설프고 못생긴 그릇 같은 글을 빚어도 예쁘다 가능성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 말이 진정인가 싶어 가마에 넣어 구워도 보았습니다. 제법 모양새 갖춘 그릇으로 구워진 적도 있었습니다.이 글들이 문학적인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표현력이 부족하여 비유도 부자연스러운 곳이 많습니다. 다만, 저의 고단했던 삶의 기록이고 어려움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이정표를 찾으려 애썼던 흔적들입니다. 덜컥거리는 문장이 있어 읽기 힘들어도, 부족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표현이 있어도 이해하시고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이제 주저함을 이기고 한권의 책으로 엮으려고 글을 정리하면서 휴! 긴 숨을 몰아쉽니다. 꼭 해야 할 숙제를 끝마친 것 같아 홀가분한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