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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카페 : 트라우마의 유산 그리고 기억의 미로

원제 : Survivor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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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자 2세의
역사와 기억과 트라우마에 관한 걸작 논픽션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잔혹 행위,
그 파멸적 유산을 품어낼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자 2세인 유대인계 미국인 작가가 부모 세대의 기억이 망각되는 것이 두려워 독일의 노쇠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부모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아 자기 몸속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괴롭혀왔다는 것을 자각하며 2세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터뷰어가 되어 생존자들의 기억을 파고들어간다. 작가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신의 부모 이야기와 자랄 때의 가정환경이 얼룩처럼 덧칠되는 것을 느끼면서, 이 집단적 고통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몸에 새겨 넣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대해서는 프리모 레비나 파울 첼란 등 생존자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 이미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 엘리자베스 로즈너의 책은 희생자 1세의 자식 세대인 2세가 그 기억과 마주하고자 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로즈너는 자신이 이 기억과 고통의 유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3세대, 4세대로까지 이어질 문제임을 상기시켜준다. 한편 저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만나는 와중에도, “우리는 가해자를 비판하려는 본능을 되도록 억제해야 한다”면서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듯 가해자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곧 가해자일 수 있고, 또 가해자들 역시 우리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안아야만 우리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고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에 관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최고의 책
모먼트 2017년 최고의 책
전미유대인도서상 결선작
베이에어리어 작가들이 뽑은 가장 주목할 만한 논픽션

트라우마라는 유산

“이 유산은 나를 전 세계 수백만의 타인과 연결시킨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누군가는 제노사이드로, 누군가는 국적의 부재로 참혹한 고통에 시달린다. (…) 내 개인적 유산의 실체에 더 깊이 다가갈수록, 나는 전 세계의 폭력과 박해, 강제이동, 몰살이 세대 간에 반향을 일으키고, 또한 회복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더 뚜렷이 확인하게 된다.”

최근의 후성유전학 연구는 의미심장한 결과를 알려준다.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부모 세대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자손들에게 유전적으로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부모의 자녀들은 우울증과 불안증에 걸릴 확률이 대조군에 비해 3배 더 높다. 심지어 생존자의 손녀들까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고통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치유해나가고 있다. 저자 또한 생존자의 딸로서 슬픔과 불안, 분노, 혹은 “우리에게 속한 듯 속하지 않은 경험의 망령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유산을 결국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이는 베트남 전쟁, 킬링필드, 아르메니아 학살 등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의 생존자와 그 자녀들에게 연결된다.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지금, 이 유산을 통해 세대와 세대 사이 여러 가닥의 복잡한 밧줄이 생기는 것이다. “과거를 파헤치고 그것의 가닥들을 하나로 엮는 과정 속에서 미래를 새롭게 고쳐 쓰고, 어쩌면 새롭게 설계하는 일까지 가능해지기를” 저자는 소망한다.
저자는 6장에서 그 가능성을 공들여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현재 생존자 3세들은 부모가 수용소에서 받았던 일련번호를 문신으로 새기는 등 고통의 유산을 자기 정체성이나 자긍심으로 받아들여 보존과 기억의 새로운 방식을 만드는 중이다. 또는 독일 전범세대 3세와 홀로코스트 생존자 3세들이 관계를 맺어 과거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저자는 복잡한 밧줄로 엮인 연대에 주목한다. 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가지들’에 새로운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금기어들, 재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하지만 고통을 재현하고 증언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고통은 경험자들의 신체에 개별적으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저자의 어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배고픔을 호소하거나, 닭을 먹을 때면 뼈다귀를 쪼개 골수까지 빨며 게걸스러움을 보였다. 그 허기에는 학살을 피해 숨어 살고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어머니의 경험이 새겨져 있다. 또한 같은 사건에 대한 경험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곤 한다. 1995년에 가족과 함께 부헨발트를 방문했던 일을 회고하면서, 저자는 한 사건을 공유하고 공동의 기억으로 보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발견한다. 어떤 공산당원들에게 부헨발트 수용소는 유대인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파시즘에 맞선 수감자 봉기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특히 9장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엘리 위젤의 말은 중요하다. “홀로코스트는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 그러나 한 편의 쇼로서 기억돼서는 안 된다.” 20세기 중반의 잔인한 역사를 재현하는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몇몇 훌륭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생존자들의 몸에 새겨진 언어를 ‘누가’ ‘어떻게’ 전유할 수 있는가 하는 거대한 문제에 부딪힌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창작자들에게도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엘리 위젤은 해방 후 10년 동안 펜을 들지 못했다. 샤를로트 델보는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만에 원고를 완성했는데도 1965년이 되어서야 책을 출간했다. 프리모 레비 또한 그 폭력의 실체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사건을 직접 경험한 생존자들에게조차 어떤 언어들은 ‘금기어’인 것이다. 이를테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저자의 요청을 받자 ‘이야기’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들에게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이야기’라는 단어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불가능성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언어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가진 것 또한 언어뿐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이야기하는 법

이 책 후반부에는 다양한 작가와 조각가와 극작가는 물론이고 희극배우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이 소개되고 있다. 상처를 가리지 않고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이다. 증언의 어려움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지만, 저자가 주장하듯이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공유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가장 심오한 능력 중 하나다. 클로드 란즈만의 「쇼아, 홀로코스트의 구술 역사」,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엘리 위젤의 『밤』처럼 폭력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조명해낸 사례도 있다.
결국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3장에서 저자는 유대인 청소를 피해 살아남은 폴린과의 만남을 회고한다. 그녀에게는 ‘여덟 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한 명의 생모, 그리고 그녀를 숨겨준 또 다른 어머니들이었다. 저자는 그 만남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생존자 카페는 따로 있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수없이 참석해온 이런 자리가 결국 다 생존자 카페였다.” 저자는 폴린에게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야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가, 상처와 상처가 겹쳐지는 대목이다.

기억을 계속하기 위하여

“짐작건대 아버지는 이야기하기의 힘과 무한한 가치를 알아차린 듯했고, 그 증인은 내가 될 것이라고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세 번 부헨발트를 방문한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미국으로 이민해 한 번도 고향을 쳐다보지 않았던 아버지는 처음에 선뜻 여행에 나서지 못했다. 독일은 그를 잉태한 땅이지만, 동시에 죽음의 잿빛처럼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겹게 떠난 여행에서 아버지는 그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과거를 꺼내기 시작하고, 저자는 자기 삶에 드리워져 있던 홀로코스트라는 그림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것은 과거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한발 내딛는 것이었다.
이렇듯 이 책은 저자의 사적 서사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는 수많은 사람이 죽은 역사의 한 장이지만, 생존자 2세들에게는 자기 가족의 삶인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었던 것과 묻지 않았던 것들을 복기하며 그들의 기억을 온전히 물려받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은 길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답을 발견하기도 하는, ‘기억의 미로’에서의 여정이다. 시인의 필치로 써내려간 이 글에는 움켜쥐려 할 때마다 흩어지는 기억들에 관한 깊은 사유가 가득하다.
사건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에 의해 대대로 전승된다. 더 이상 대화할 수 없게 될 때 고통은 잊히고 폭력은 반복될 것이다. 저자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동시에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써 전달하는 어려움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언어를 통해 어떻게든 적절한 기억의 방법을 탐색한다. 물려받은 트라우마에 잡아먹히지 않고 대화와 연대로, 치유와 미래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해보자고 우리에게 대화를 걸어오는, 종이로 된 한 권의 ‘생존자 카페’다.

추천사

마음을 울리는 사적 서사와, 집단 트라우마가 개인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계몽적 연구가 어우러진 절박하고, 정직하고, 아프고, 진실한 회고록.

목차

작가의 말
부적절한 언어의 알파벳
프롤로그
1장 너도밤나무 숲 III
2장 금기어
3장 어머니가 여덟인 여인
4장 그들은 유령처럼 걸었다
5장 너도밤나무 숲 I
6장 3세대 그리고 망각의 반대말
7장 걸림돌
8장 너도밤나무 숲 II
9장 사후 기억 그리고 책략의 역설
에필로그
감사의 글
주註

본문중에서

오늘 이곳에서 한 남자는 체화된 역사의 증인으로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식의 표현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역사는 체화되고, 진실은 증언된다. 적어도 현재에는, 그리고 미래에도 한동안은, 이야기하기란 몸의 행위일 테다. 이야기는 살아 있는 존재다. 누군가 입 밖에 내는 순간, 듣는 이들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 어떻게든 몸 밖으로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 _61쪽

관건은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 세대가 비자발적으로 물려준 유산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확언컨대, 현존하는 트라우마의 반복적 연결 고리를 끊어내어, 우리 의식이 환경과 새롭게 반응하고 맞물리게 할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_126쪽

자신의 경험을 글로 공유했던 생존자들이 결론적으로 위안이나 해답을 얻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데우시 보로프스키는 28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파울 첼란은 1970년 물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또한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가 30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공식적 사인이 자살로 발표되었을 때 엘리 위젤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40년 후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망일이 부헨발트 수용소의 해방 기념일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레비의 친구 페르디난도 카몬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상 프리모는 1945년에 이미 자살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때 그러지 못한 이유는 글을 쓰려는 욕구(그리고 의무감)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제 할 일을 다 끝마친 거예요. 그래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_128쪽

생존자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는 일이 괴로웠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비록 눈물과 콧물이 흘렀지만, 그보다 쓸모 있는 고통은 없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지만 말로만 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부족해도 말은 우리가 가진 재산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해져야 하고 어떻게든 남겨져야 한다. 내 고민은 어떻게 해야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널리 전파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 그들이 언제까지 이곳에 더 머무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서둘러야 한다. _159쪽

알고 보니 적지 않은 생존자의 손주 세대가 늙고 죽어가는 조부모의 수감 번호를 자신들 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있었다. 짤막하게 나열된 숫자들이 똑같은 파란색으로 너울거렸다. 불완전하고 투박하게, 위아래가 뒤집혔으면 뒤집힌 채로, 그들은 조부모의 팔에 영구히 새겨진 희미한 숫자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기억하기 위해서. 피부로 증언하기 위해서. 무엇을 새기고 무엇을 주장할지를 다음 세대가 선택할 때까지. _236쪽

최근의 후성유전학 연구가 점점 명확히 보여주듯이, 우리에게 유전되는 것들은 비단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생존기나 외적으로 드러나는 트라우마와 상실, 슬픔, 심리적 탄력성에 그치지 않는다. 슬픔으로 채워진 모유를 마신다는 비유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뇌의 신호전달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변화는 자손에게 대물림된다. 부인하고 침묵해도 소용없다. 출산을 아예 포기하지 않는 한, 상실과 절망의 유산, 충격과 고통의 잔해를 조금도 물려주지 않을 방법이란 없어 보인다. 극심한 정신적 충격은 결코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다. 사실 최근에야 우리는 이와 같은 충격을 인지하고 명명하기 시작했다._244쪽

우리 모두는 규명을 지속할 책임이 있다. 또한 인간의 혈통을 타고 끈질기게 이어져온 파괴와 복수의 역사를 눈여겨볼 책임이 있다. 우리는 가해자와 부역자들, 노예와 익사자들, 수감자와 해방자들, 살인자와 생존자들에 대한 집단적 기억으로 암호화된 존재다. _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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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화, 사람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독서 생활자이자 치과 의사이다. 다양한 글과 생각을 좀 더 생생하게 접하고 싶어 시작한 원서 읽기를 계기로 번역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좋은 글을 정직하게 전하기 위한 자발적 고민을 즐기며 책과 언어와 삶을 사랑하는 행복한 번역가가 되기를 꿈꾼다.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맹그로브의 눈물'이 있으며 그녀의 첫 번역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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