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신용카드 청구할인
카카오페이 3,000원
(카카오페이 결제 시 최대할인 3천원 / 5만원 이상 결제, 기간 중 1회)
PAYCO(페이코) 최대 5,000원 할인
(페이코 신규 회원 및 90일 휴면 회원 한정)
북피니언 롯데카드 30% (15,12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EBS 롯데카드 20% (17,28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인터파크 NEW 우리V카드 10% (19,44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인터파크 현대카드 7% (20,09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Close

서태후와 궁녀들 :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

소득공제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판매지수 159
?
판매지수란?
사이트의 판매량에 기반하여 판매량 추이를 반영한 인터파크 도서에서의 독립적인 판매 지수입니다.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상품에 가중치를 두었기 때문에 실제 누적 판매량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판매량 외에도 다양한 가중치로 구성되어 최근의 이슈도서 확인시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해당 지수는 매일 갱신됩니다.
Close
공유하기
정가

24,000원

  • 21,600 (10%할인)

    1,200P (5%적립)

할인혜택
적립혜택
  • I-Point 적립은 출고완료 후 14일 이내 마이페이지에서 적립받기한 경우만 적립됩니다.
  • 추가혜택
    배송정보
    주문수량
    감소 증가
    • 이벤트/기획전

    • 연관도서(13)

    • 사은품(3)

    출판사 서평

    자금성 가장 깊숙한 곳의 은밀한 이야기
    서태후를 측근에서 모신 노궁녀가 들려주는 황실의 사생활


    이 책은 19세기의 마지막 몇 년,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지만
    이미 허물어지고 있었던 청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서태후가
    그 권력을 어떻게 누렸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추상적이고 제도적인 권력이 아니라
    감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황실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서태후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궁녀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이 책은 우리가 글로 읽기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궁중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토해내고 있다. 그것은 곧 화려함의 극치이며, 인간이 인간을
    떠받드는 조심스러움의 극치이고, 궁정의 잔인한 음모와 정치의 극치이며,
    지금껏 한 번도 밝혀지지 않았던 이름 모를 궁녀와 환관들의 적나라한 실생활이다.
    또한 이 책은 서양의 침략으로 베이징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서태후와 광서제가 시안으로
    급히 피난했던 지난한 과정을 무엇보다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놀랍고도 진귀한
    역사 사료이기도 하다.

    1. 노궁녀 ‘룽얼’은 누구인가?
    걸작 논픽션이라는 말이 전혀 손색없는 [서태후와 궁녀들]은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집적 들려주는"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노궁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저자들은 노궁녀의 구술口述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들은 1940년대 초반에 만났다. 노궁녀는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한족 성은 ‘허何’이고 짐작컨대 본래의 만주 성은 ‘허서리赫舍里’ 씨다. 궁에 있을 때는 ‘룽얼榮兒’이라 불렸고 서태후는 ‘룽’이라 불렀다.
    노궁녀는 원래 시청西城 징지다오京畿道에 살았다. 아버지는 여느 기하인들(만주족)처럼 딱히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고 10살 이상 많은 오빠는 아마추어 희곡 배우였다. 룽얼은 열세 살에 황궁에 들어와 저수궁儲秀宮[청대 서태후가 거처했던 곳]에서 일을 배우고 서태후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주로 담당했던 일은 담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서태후의 명으로 류 씨 성인 태감에게 시집을 갔다. 그는 서태후의 심복이었던 환관 리롄잉의 양아들로 베이츠쯔北池子에 살면서 광서제의 이발을 담당하던 환관이었다. 그러나 불구덩이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혼인생활 속에서 1년도 채 못 되어 태후를 그리워했고 다시 궁으로 들어가기를 청했다. 다행히 서태후의 특별허가를 받아 궁으로 돌아왔는데 이것은 청대에 매우 드문 일이었다. 궁의 관례상 궁녀는 한번 궁을 떠나면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혼인한 몸으로 태후 곁에서 시중을 든다는 것은 태후의 각별한 애정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00년(경자년), 서태후를 따라 시안으로 피신했을 때는 출발 직전 진비珍妃가 처참하게 죽는 일을 현장에서 겪었다. 신축년, 시안에서 환궁했을 때는 나이가 들어(청대 궁의 관례에서 궁녀는 25세 이전에 궁을 떠나 혼인을 해야 했다) 궁을 떠나 베이츠쯔로 옮겨와야 했다. 서태후의 시중을 든 햇수는 무려 8년이었다. 남편이었던 류 태감은 아편쟁이로 도박에 빠져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2.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룽얼의 구술을 책으로 정리해낸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궁녀의 생활, 서태후의 일상, 광서제에 관한 일화, 기타 사소한 이야기들 등 네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이 지면에 옮기는 문제에 있어서 투철한 책임의식을 갖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자는 일찍이 ‘전하기만 하고 짓지 아니하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노팽老彭을 본받고자 함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이 노팽이라는 분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 거기에 기름이나 식초를 첨가하지 않은, 즉 실제 상황만을 전한 분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노팽 선생을 따라보고자 한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모든 근거 없는 과장, 임의로 신비감을 더하는 것, 암암리에 기만하는 것, 현실성 없이 허황된 것을 배제하고,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아는 것처럼 쓰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에 들어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이야기는 온전히 서태후 만년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며 그녀가 백성의 고혈을 돌아보지 않고 극도의 사치로 향락을 누리던 궁중생활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서태후의 일상이라든지 연회와 유람, 먹고 마시고 자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생활 속에서 궁중의 체제를 대략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봉건사회 통치계급이 정한 삼엄하고 잔혹한 제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위엄이 하늘 아래 만백성 위에 자리하고, 한 사람의 사욕이 나라와 민족이 망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을 말이다.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가을이 왔음을 안다", 누구나 아는 이 말처럼 서태후가 추구했던 바를 보고 그녀의 속마음이 무엇을 향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청나라 말기 기록에 이런 시가 있던다. "삼십삼천 하늘 위 하늘, 가장 높은 곳, 옥황상제의 머리 위 왕관, 왕관 위에 깃대를 꽂고, 나 부처는 그 깃대 꼭대기에 있노라." 스스로 ‘서천의 태후 부처님’의 나라 씨라 칭하던 서태후였으니 그 높고 높은 지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그 지위를 신랄하게 비꼰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풍자시는 풍자를 하기에는 충분하나 세세한 진상을 알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고귀함을 유지했는지, 어느 정도의 고귀함이었는지? 먹는 것은 어떻게 먹었는지? 자는 것은 어떻게 잤는지? 또 무엇을 하면서 즐겼는지? 이런 생생하고 사실적인 일들은 바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모두 생생하고 충실하다. 궁녀들이 입궁해서 배치를 받고, 자고·먹고·입고 하는 모든 습관을 교육받는 법, 잘못했을 때의 체벌, 태감들과의 관계, 서태후의 일과가 어떻게 시작되어 마무리되는지, 그녀의 식사습관, 방의 모양, 세수하고 머리빗고 치장하는 데 들이는 공, 궁 전반의 청소, 음식준비 등 세세한 이야기들을 읽은 독자들은 책을 덮고 절로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강대한 이웃 나라들이 국경까지 밀어닥치며 호시탐탐 나라를 노리고 나라가 열강에 쪼개질 지경에 이른 상황임에도 고군분투하여 나라의 힘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권좌에 취한 권력자의 실제 모습을. 아마 착취를 당한 중국인들이나 역사에 밝은 이들은 더욱 비통한 심정에 사로잡힐 지도 모르나, 동시에 이 책을 보며 궁중의 법도와 풍속의 화려한 모습에 정신을 잃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태후 만년에는 외세를 배척하던 것에서 외세의 비위를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다. 소위 ‘중국의 물력을 계산해 외국의 환심을 산다’는 태도였다.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하고 자주 연회를 열어 각국 공사관 부인들을 초청하고 웃는 낯으로 열강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대체로 궁녀의 생활, 서태후의 일상, 광서제에 관한 일화, 기타 사소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책은 굳이 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손가는 대로 독자들이 연상하기 쉽도록 배려한 게 큰 장점이다. ‘네 명의 금강역사, 500명의 아라한’ 부분은 물론 서태후의 일상에 속한다. 그리고 ‘다보보’ 이야기는 확실히 기타 사소한 이야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를 연이어 보면 궁 안에서 태후는 천하제일의 연회를 즐기지만 궁 밖에서 팔기 자제들은 다보보를 먹는 꼴사나운 모습을 알 수 있다. 만주인이 세운 청 왕조의 기둥, 기하인들이 말이다. 이 두 모습을 대조해보면서 독자들은 자연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태후의 팔옥누대八玉樓臺 역시 모래 위에 세운 성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아예 이 두 이야기를 함께 배치했다. 또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궁에서 연지를 제작하는 이야기를 쓰고 나니 이는 늦봄의 일이라 펜이 가는 대로 초여름의 익모초 연고를 만드는 이야기까지 썼다. 또 중간에 냄새나는 대마 이야기들을 발견해서 장푸의 거세 이야기에 연결해서 썼다. 서행길 이야기를 쓸 때는 피란의 긴 여정 중 서태후의 가마 이야기 외에도 태후를 따라 서쪽으로 함께 피란한 사람들 이야기까지 써야 했다. 그래서 ‘서행길’ 부분에 황태자 이야기며 ‘광서제가 머리를 깎다’ 편 등을 수록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궁녀생활
    서막 | 저수궁에 들어가다 | ‘마마님’을 알현하다 | 때릴 수는 있지만 욕은 할 수 없다 | 얼굴은 때리지 않는다 | 잠자는 자세 | 방귀 뀔까 무서워 배불리 먹을 수 없다 | 아침식사 | 점심식사 | 저녁식사와 야식 | 사계절 음식 | 의복, 치장 | 행동거지 | 궁녀는 글을 배우지 못한다 | 과일 항아리 | 가장 기쁜 일-가족과의 만남 | 전달 신호 | 담배를 올리는 일 | 제기차기

    제2장 서태후의 일상
    서태후의 일상 | 저수궁과 체화전 | 야간 당직 | 여담 | 조회 이전의 풍경 | 머리 빗기 | 분주한 아침 | 가장 고된 일 | 화장지와 관방 | 상소문 읽기 | 식사 준비 | 취침 | 식사를 올리는 일 | 네 명의 금강역사, 500명의 아라한 | 음식을 권하지 않는 예 | ‘다보보’가 불러온 이야기 | 가장 먼저 설 소식을 전하는 납팔일 | 수많은 메뚜기의 날갯짓 | 주사위 놀이와 검은 원숭이 | 발에는 비단 신발, 입술에는 붉은 앵두 | 발 씻기, 목욕, 손톱 손질 | 이허위안 | 이허위안 지춘정 | 옥당춘 부귀 | 호수 위의 신선

    제3장 청 황궁의 풍속
    무당과 식육제 | 2월 2일, 용이 머리를 드는 날 | 바느질 솜씨를 구하는 날 | 악귀를 쫓는 중원절

    제4장 서태후와 광서제의 시안 피란
    시안으로 가기 전에 죽은 진비 | 피신하기 전 두 개의 손톱을 잘라내다 | 시관스西貫市에서의 하룻밤-고난의 첫 행선지 | 창핑에서 화이라이까지 | 서행길 | 광서제가 머리를 깎다 | 신저우의 가을밤 | 타이위안에서 게를 먹으며 술잔을 들다

    제5장 내궁의 소소한 이야기들
    서태후의 친정 | 장모가 사위를 때리다 | 광서제와 룽위 | 광서제 | 부모가 준 골육은 버리지 않는다 어느 태감이 전하는 이야기 | 리 피석에서 은제장에 이르기까지-내가 알고 있는 리롄잉 | 추이위구이가 다시 궁에 돌아오다

    후기
    부록 1 내가 아는 ‘노궁녀’ _류야오신
    부록 2 작은 정성으로 가난한 사함을 도왔던 50년: 진이와 함께한 날들을 돌아보며 _선이링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궁녀는 똑바로 누워 잘 수 없다
    "첫 번째는 자는 것이에요. 궁 안의 규범 중 유난히 엄격한 규범이 하나 있어요. 궁녀들은 잘 때 바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자면 안 된답니다. 반드시 몸을 옆으로 돌리고 다리를 구부린 채 자야 했어요. 궁 안의 사람들은 모두 신을 믿어요. 전해지기로는 궁마다 신이 있어서 밤이 되면 궁 밖으로 나와 그 궁을 지킨다고 해요. 태후마마와 황상[재위 중인 황제], 황후마마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궁녀들은 밤에도 아무렇게나 잘 수 없었어요. 신이 보는데 사지를 벌리고 팔자 모양으로 누워 있으면 얼마나 보기 싫겠어요! 그랬다가 만약 신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하면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겠지요. 자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몰라요. 그때 습관 때문에 지금까지도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잠을 자요. 얼마나 맞았으면 그러겠어요."
    (/ pp.24~26)

    글을 배울 수 없는 ‘궁녀’...바느질로 박쥐를 만들다
    "궁녀는 절대로 글을 배울 수 없었어요. 궁녀는 태감보다 한 단계 아래 계층이었기 때문에 태감들은 간혹 궁에서 글을 익혔지만 궁녀는 절대불가였어요. 대신 시간 날 때 배우는 것이 바느질과 주머니를 짜는 일이었지요. 내가 있던 저수궁은 황궁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써야할 은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동궁과 자령궁慈寧宮에는 때때로 은이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궁녀들은 용돈 벌이를 위해서라도 바느질을 악착같이 연습했지요. 어떤 때는 태후마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큰 박쥐를 만들기도 했어요. 각양각색의 실을 들고 와서 실의 한쪽 끝은 긴 바늘로 방석 위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 끝은 이로 중심선을 단단히 물어 팽팽하게 잡아당긴 뒤 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면 금세 큰 박쥐 한 마리가 완성됐어요. 저수궁 문밖, 장춘궁 가는 길에 있는 살아 있는 박쥐와 똑같았지요. 그러고는 태후마마가 보시고 한번 웃어주시길 바랐어요.
    (/ pp.38~39)

    서태후 침실 안 대여섯 개 항아리의 용도는?
    "태후마마의 침전에는 대여섯 개의 빈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그냥 보기 좋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과일을 저장해놓기 위한 것이었어요. 태후마마의 침전은 다른 향을 쓰지 않고 과일 향을 써서 안 좋은 냄새를 없앴어요. 저수궁 외에 체화전에도 과일 항아리가 있었고요. 이 과일들은 대부분 불수감나무 열매나 시트론[귤 등과 같은 장과], 모과같이 남쪽 지방에서 나는 과일들이었어요. 매월 둘째 날과 열여섯째 날이 되면 항아리에 든 과일을 꺼내고 다시 신선한 과일을 채워 넣었지요. 꺼낸 과일들은 우리가 가져가도 되었답니다. 이것은 태후마마와 황후마마만 내릴 수 있는 규정이어서 이 두 궁에 있는 궁녀들은 특권을 누렸지요. 가져간 과일은 자기 방에 놓을 수도 있고 남겨두었다가 식구들에게 보낼 수도 있었어요. 궁중생활에서 그래도 이것이 꽤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 pp.42~43)

    ‘한 편의 행위 예술’과도 같은 담배 시중
    "태후마마가 편한 자세로 앉아 나를 한번 흘깃 쳐다보시면 나는 곧바로 알아듣고 부시를 준비했어요. 부싯돌과 부들솜까지 잘 준비한 다음 뒤돌아서서(반드시 몸을 돌리고 했어요) 부시로 부싯돌을 긋지요. 부싯깃에 불이 붙으면 종이에 옮겨 붙이고 입으로 불어서 불길을 일으킨 다음 불길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손으로 조심스럽게 끌어 모아요.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담뱃대를 받쳐 올리지요. 태후마마가 담뱃대를 무시기 편하도록 태후마마 입에서 3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말이에요. 태후마마가 담뱃대를 무시면 서둘러 왼손으로 종이를 내리고 다시 불길을 모으지요. 그렇게 태후마마가 담배를 한 차례 피우시고 나면 대통을 새것으로 바꾸어드려요. 이것이 대략 담배 시중을 드는 일련의 과정이에요."
    (/ p.55)

    ‘서태후의 스캔들’을 해명하다
    허 아주머님의 말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하고 말았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샤오안쯔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허무맹랑한 데가 있다. 처음에 거세를 하고 궁에 들어가기를 청했을 때부터 여러 기관의 검사를 거쳐야 했을 텐데 세력을 얻고 나서 갑자기 거세한 부분이 자랐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인 듯하다. 허 아주머님은 가끔 장황하게 하소연을 하는 일도 있었다.
    "중화민국 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내게 묻더군요. 리롄잉이 야간 당직을 설 때 태후마마가 침실에서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태후마마를 깨울까봐 두려워 무릎을 꿇고 기어서 침전으로 들어갔다고 말이지요. 들어와서는 태후마마께 마실 물을 따라드렸더니 마마가 무척 감격했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렇게 따지면 태후마마는 주무실 때 궁에 홀로 계셨다는 말이 되잖아요? 아무도 태후마마를 돌보지 않고, 밤에 기침을 하시는데도 물 한 그릇 떠다줄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게 무슨 황궁의 태후겠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 pp.83~84)

    자금성 궁궐 바닥재는 어떤 것을 썼을까?
    "궁 바닥에는 벽돌이 깔려 있어요. 흔히들 금 벽돌 바닥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도토[불순물과 침전물을 제거하여 만든 매우 부드러운 진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로 만든 벽돌이었지요. 질감이 부드러우면서도 굉장히 견고해서 궁 바닥은 갈라진 틈 하나 없이 단단했어요. 듣기로는 벽돌을 깐 뒤 그 위에 다시 뜨거운 밀랍으로 여러 번 덧칠해서 벽돌의 틈과 틈 사이를 메운다고 해요. 하나의 커다란 벽돌 덩어리처럼 말이에요. 여름에는 이런 바닥에서 흙먼지가 올라오지 않지만 겨울에는 벽돌 밑에서 불을 때면 벽돌이 건조해져서 먼지가 흩날린답니다. 궁에서는, 특히 저수궁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태후마마의 규기 시간 동안 바닥을 꼭 물로 한번 깨끗이 닦아내서 흙먼지를 없앴는데 이것이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에요."
    (/ p.103)

    세계박람회에 내놔도 손색없을 서태후의 관방(요강)
    "태후마마가 쓰시던 관방은 정말이지 국보급이었어요. 지금 같으면 세계 각국 전람회에 가져다놓고 전시를 해도 될 거예요. 나도 꽤 눈이 높은 사람인데 궁을 떠난 뒤에도 그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물건은 보지 못했답니다. 태후마마가 자주 쓰시던 것은 겉에 큰 도마뱀붙이가 새겨진 단향목 관방이었지요. 아유, 이 조각도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하고 붙잡으려는 듯한 모습이었지요. 네 발은 사납게 땅을 붙잡고 서 있는데 이 발이 바로 관방 밑을 받치는 네 개의 다리예요. 몸에 있는 보일 듯 말 듯한 비늘은 온통 곤두선 듯하고,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것이 꼭 큰 조롱박 같지요. 이 배 부분이 바로 관방의 불룩하게 나온 부분이에요. 꼬리는 바짝 말려 올라가 있고 구부러진 꼬리 끝과 꼬리 자루가 교차하면서 숫자 8의 모양을 만들어요. 바로 절묘하게 만든 관방의 뒤쪽 손잡이 부분이지요. 도마뱀붙이의 머리는 뒤로 살짝 들어올린 채 관방의 배 위에 찰싹 붙어 있고 아래턱은 약간 튀어나와서 뒤의 꼬리와 평행선상에 있어요. 손아귀는 앞쪽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고요. 뒤로 젖힌 머리로 두 눈은 위를 주시하고 있답니다. 자신의 등 위에 탄 사람을 말이지요. 관방에 나 있는 한 줄의 갈라진 틈은 도마뱀붙이의 입이에요. 이 살짝 벌린 입으로 화장지를 물고 있지요. 두 눈은 이름 모를 붉은 보석이 박혀 있어 광채가 나고요. 관방은 전체 크기가 자기 요강보다 약간 높고 위에 올라가서 일을 볼 수 있어요. 관방의 아가리는 길쭉한 타원형이고 뚜껑도 있지요. 뚜껑 정중앙에 누워 있는 이무기가 바로 뚜껑 손잡이였어요. 도마뱀붙이 뱃속에는 잘 말린 향나무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어요. 변이 떨어지면 즉시 향나무 가루 속으로 굴러들어가 파묻혀서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지요. 물론 악취가 나지도 않고요."
    (/ pp.106~111)

    상소문에 손톱으로 가부를 표시한 서태후
    "상소문을 읽으신 뒤에는 종이 위에 엄지손가락 손톱으로 꼭꼭 눌러 무언가를 표시하셨어요. 어떤 때는 수직선을 그리시고 어떤 때는 ×자를 그리시고 어떤 때는 V자 표시를 하셨지요. 어쨌든 군기처의 장경[청대의 문서를 관리하는 문관]들은 모두 알아보겠지만요. 상소문을 읽는 이 짧은 시간 동안 태후마마의 손톱이 한 번 움직이는 대로 어떤 이는 승진을 하고 어떤 이는 목이 날아가고 어떤 이는 귀양을 가게 되는 거예요. 그동안 나는 문에 서서 ‘룽얼, 담배를 가져오너라’ 하는 말씀이 들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이 말이 떨어지면 궁녀들을 관리하시는 마마님은 내가 ‘네’ 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궁문을 나가 궁녀들에게 일을 지시하셨지요. 태후마마가 이 큰일을 마치신 것을 알면 비가 한 차례 왔다가 갠 것처럼 궁 전체가 다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한답니다."
    (/ pp.114~116)

    같은 음식은 세 번 뜨지 않는다
    "태후마마의 식사 때는 매번 120가지가 넘는 요리가 올라온답니다. 또 계절 요리까지 더해지고요. 이 요리들을 전부 놓고 태후마마가 원하시는 대로 골라 드시는 거예요. 오늘 이 요리를 드셨다면 내일은 다른 요리를 드시면서 누구도 태후마마가 무슨 음식을 잘 드시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요. 태후마마도 일부러 이렇게 하셨어요. 오늘 맛있게 드신 음식은 다음 날 절대 드시지 않으셨지요. 며칠이 지나면 다시 그것을 드셨고요. 또 같은 음식을 세 숟가락 이상 뜨지 않았어요. 어떤 음식을 세 번이나 떴다는 것은 틀림없이 태후마마가 좋아하신다는 것이고 이것이 아랫사람에게 알려지면 나쁜 마음을 품은 자가 이 요리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 p.122)

    궁녀들의 피부는 달걀 흰 자위처럼 고와야 한다
    우리 궁녀들은 피부를 달걀 흰자위처럼 보드랍고 매끄럽게 가꾸어야 했어요. 또 이렇게 해야 태후마마와 함께 문밖을 나설 때도 귀족 부인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었고요. 태후마마는 승부 근성이 강하신 분이어서 뭐든 남보다 뛰어나야 했어요. 만약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리가 못생긴 닭같이 보이면 이후에는 다시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지요. 태후마마께 우리는 몸에 단 장식품과도 같았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장식품이 태후마마보다 더 아름다우면 안 되는 거지요. 숙왕肅王[숙친왕 산치善耆, 1866~1922, 청나라 왕족이자 정치가]의 부인은 대단한 미인이었어요. 정교하게 꾸민 머리에 귀에 단 비취 귀고리는 얼굴 한쪽이 모두 푸르게 보일 만큼 반짝였지요. 황후마마와 후궁마마들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답니다. 태후마마는 심기가 상하셔서 접견을 할 때도 시종일관 그분을 향해 얼굴을 펴지 않으셨어요. 이처럼 우리에게는 화장도 직무와 연결되는 일이었지요."
    (/ pp.169~170)

    서태후는 어떻게 목욕했을까?
    "태후마마는 목욕하실 때 3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낮은 의자에 앉으셨어요. 굵직하고 단단한 네 의자다리 위에는 모두 여덟 마리의 용이 장식되어 있었지요. 각각의 다리에 두 개의 용 장식이 있는데 한 마리는 밑
    을 향해, 다른 한 마리는 위를 향해 엎드려 있어요. 또 의자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움직이는 의자 등받이였어요. 위아래로 들어 내릴 수도 있고 좌우로 돌아가기도 했지요. 다시 말해 등받이의 위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어요. 등받이 위 양면에 모두 문에 거는 빗장같이 장부[한 부재의 구멍에 끼울 수 있도록 다른 부재의 끝을 가늘고 길게 만든 부분]가 있어서 등받이를 장부 안에 집어넣고 개폐기를 단단히 채우면 견고하게 고정시킬 수도 있었지요. 또 하나 설명해줄 물건은 은 목욕통이에요. 태후마마는 목욕을 하실 때 두 개의 목욕통을 사용하셨는데 둘 다 나무에 은을 입힌 것으로 그다지 크지 않았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이 두 목욕통이 똑같이 생겼지만 통 바닥에 비밀이 있어서 잘 훈련받은 궁녀가 손으로 바닥을 한번 만져보면 금방 두 개를 구별해냈답니다. 하나는 상체를 씻는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하체를 씻는 용도라 두 개를 절대 헷갈리면 안 되었지요."
    (/ pp.185~186)

    진심으로 미신을 믿는 청 최고 권력자
    "태후마마는 미신을 깊이 믿는 분이었어요.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게 낫다는 식으로 대충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믿고 계셨지요. 7월 10일이 지나면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도 찾지 못하게 하셨어요. 예를 들어 태후마마가 부채를 어느 곳에 떨어뜨려도 절대 찾으면 안 되었어요. ‘찾지 말거라. 며칠 후에 다시 보자꾸나’ 하고 말씀하셨지요. 며칠이 지나서 정말 찾으면 태후마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내가 찾을 필요 없다고 했잖니. 며칠이 지나면 돌아오니까 말이야.’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였어요. 태후마마는 이 며칠 동안 도처에 귀신이 있어서 무언가 아끼는 물건을 발견하면 며칠간 가지고 놀기 때문에 찾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셨거든요. 귀신들을 대할 때는 속 좁게 굴지 말고 대범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만약 사람이 조급해하면 그것들은 도리어 물건을 망가뜨려 외진 구석에 던져버린다고 하시면서요. 이는 곧 화가 났다는 표시이지요. 우리 현세에 사는 사람들이 귀신들을 화나게 할 필요가 뭐가 있나요. 태후마마의 이런 세심함과 넓은 도량은 사람들을 대할 때는 많이 볼 수 없었어요. 오직 귀신들에게만 이렇게 큰 아량으로 자비를 베푸셨지요."
    (/ p.317)

    서태후의 시안 피란

    너무나 평화롭던 피란 전날

    "피란을 간 때는 광서 26년, 즉 경자년 7월 21일(1900년 8월 15일) 새벽이었어요. 흔히들 말하는 의화단 사건이 있었던 해지요. 피란을 갔던 첫날도 기억나요. 7월 20일 오후, 태후마마가 낮잠을 주무시고 일어나신 뒤였지요. 아마 내 기억이 확실할 거예요. 그날 태후마마는 침실에서 낮잠을 주무셨고 궁 안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평소 때와 조금도 다름없었지요. 피란을 떠나는 조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이날은 마침 내가 낮에 침실 시중을 드는 날이었답니다. 그날 오후,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침실 서쪽 벽에 기대고 앉아 문 입구를 마주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침실 시중을 드는 자의 규범이었지요. 태후마마는 머리를 서쪽으로 향하고 주무셨고 나는 태후마마의 침대에서 고작 6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태후마마가 벌떡 일어나 앉으시더니 휘장을 걷어올리셨어요. 휘장을 걷는 일은 보통 궁녀가 하는데 이날은 뜻밖에도 태후마마가 직접 일어나서 하시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급히 밖에 있던 궁녀에게 신호를 보냈어요. 태후마마는 황급히 세수를 하시고는 담배도 피우지 않으시고 우리가 올려드린 파인애플 즙도 마다하신 채 한마디 말씀도 없이 저수궁 동쪽 길목의 낙수당을 나와 북쪽으로 걸어가셨어요. 나는 황급히 그 뒤를 쫓았어요. 속으로는 좀 당황스러워서 급히 샤오쥐안쯔에게 이 일을 알렸지요. 샤오쥐안쯔도 뛰어오고, 우리 둘은 서쪽 회랑 중앙까지 태후마마를 황급히 따라갔어요. 그때 태후마마가 말씀하셨지요. ‘따를 필요 없다.’ 낮잠에서 깨신 뒤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태후마마 혼자 북쪽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어요."
    (/ pp.337~338)

    진비의 죽음
    "‘태후마마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어. ‘서양인들이 성안으로 쳐들어오려 한다. 바깥은 난리가 나서 누구도 제 한 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야. 만일 그들에게 치욕을 당하면 황실의 체통은 전부 끝장이고 선대 조상들께도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매우 강경한 어조셨어. 말씀을 마치시고는 턱을 치켜드시고 진비마마에게 눈길 한번 주시지 않은 채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셨지.’" "‘진비마마는 잠깐 말이 없다가 이내 이렇게 대답하셨어. ‘알고 있습니다. 선조의 체면을 깎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태후마마가 다시 입을 여셨어. ‘너는 아직 젊어서 말썽이 나기 쉽다. 우리는 잠시 몸을 피신하려 하나 젊은 너를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진비마마가 대답하셨어. ‘마마는 몸을 피하시옵소서. 황상을 베이징에 두시어 정세를 돌보도록 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말이 태후마마의 심기를 건드렸어. 태후마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색이 변하시더니 큰 소리로 꾸짖으셨지. ‘당장 죽음을 코앞에 둔 것이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게냐!’" "‘그러자 진비마마도 외쳤어. ‘저는 죽을죄가 없사옵니다!’ ‘죄가 있든지 없든지 너는 죽어야 할 것이다!’ ‘황상을 한번 뵙게 해주시옵소서. 황상은 저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황상도 너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저 계집을 우물 속으로 집어넣어라! 게 누구 없느냐?’’" "‘이렇게 해서 나랑 왕더환이 같이 진비마마를 붙들어서 정순문貞順門 안 우물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지. 진비마마는 계속 황상을 뵙게 해달라고 외치다가 결국에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지. ‘황상, 베풀어주신 은혜, 내세에서 갚겠나이다.’"
    (/ '태감 추이위구이가 룽얼에게 해준 말' 중에서/ pp.348~349)

    "내 손톱을 잘라버려라"
    "태후마마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참에 느닷없이 떨어진 청천벽력이었어요. 바로 그때, 유탄 하나가 낙수당 서쪽 편전 방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어요. 리롄잉이 외쳤어요. ‘마마, 얼른 가마에 오르시옵소서!’ 태후마마는 그때서야 정말 놀라셔서 사람을 불러 황상을 모셔오고 황후마마와 후궁마마, 자령궁의 태비마마, 궁 안에 있는 공주마마들께도 알려 얼른 낙수당으로 오라고 분부하셨어요. 또 다른 태감을 보내 태자마마께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하라 하셨지요. (...) ‘쥐안쯔와 룽쯔는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야말로 천은이었어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지요. 태후마마의 이 말씀 한마디면 이 생사의 고비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우리는 감격으로 둘 다 온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기어가서 태후마마의 발을 붙잡고 ‘마마!’ 하고 외쳤어요. 그런데 태후마마는 잠시 멍하니 계시더니 갑자기 이렇게 소리치셨어요. ‘룽쯔, 가서 가위를 가져오너라!’ 그때 태후마마는 침전 의자에 앉아서 왼손을 탁자 모서리에 올려놓고 계셨어요. 그 상태로 얼굴을 돌리신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지 뭐예요. ‘내 손톱을 잘라버려라!’"
    (/ p.363)

    일반 백성인 척 꾸미고 궁을 빠져나오다
    "이 무렵에야 나는 비로소 태후마마의 세심함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어요. 포롱차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백성들이 입는 복장으로 갈아입은 것은 사람들 틈에 끼어 성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황족 분위기를 풍기지 않고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이 두 대의 마차를 고용한 것은 미리부터 계획해놓지 않은 이상 그 자리에서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뿐만 아니라 포롱차를 하층민들의 물건 싣는 차처럼 꾸며놓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은 것도 그렇고요. 가장 놀랄 만한 것은 궁 안의 진기한 보물들을 조금도 가지고 오지 않으시고 그저 자잘한 은 몇 개만 싸가지고 오셨다는 점이에요. 이 모든 것은 황족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태후마마의 그런 주도면밀한 생각과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민첩함, 또 값진 보물들을 미련 없이 포기하는 단호함은 정말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어요. 그런데 이때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그러면 태후마마는 이 피란을 애초부터 준비하고 계셨던 것인가? 아니면 정말 준비 없이 맞닥뜨리신 것인가? 나같이 태후마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몸종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어요.
    (/ pp.378~379)

    "그럼 우리 살이라도 떼어 올리시지요"
    "샤오쥐안쯔가 울먹이며 대꾸했어요. ‘그럼 우리 살이라도 떼어다 올리시지요! 제 살부터 떼세요. 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추이위구이가 대답했어요. ‘쥐안쯔, 누구 살을 떼겠다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거야. 지금 우리가 반 묘畝 정도의 땅에서 딴 채소들 중 조금 남은 것은 대부분 병사들이 앞 다투어 가져갔어. 그러니 당장이라도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동부 꼬투리를 훑고 옥수수 대는 베어 묶어 마차에 실어야 돼. 사람도, 가축도 모두 필요한 것이니까. 지금 우린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어. ‘부유할 때 미리 없을 때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아무것도 없을 때 있던 시절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 지금은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함께 움직여야 돼. 길에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말이야.’"
    (/ p.388)

    모기떼의 습격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또 어디서 수많은 모기떼가 굴러들어왔어요. 정말 굴러들어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창문 윗부분, 처마 아래에 한 무더기의 모기들이 둥근 공처럼 뭉쳐서 온통 웽웽거리고 있었답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시끄러웠어요. 전통 극에서 치는 소라[꽹과리보다 작은 징] 소리를 들어본 적 있지요? 소라를 계속해서 두드릴 때 쉴 새 없이 울리는 그 소리, 이때의 모기 소리가 꼭 그랬어요.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재빨리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태후마마께 모기를 쫓으시라고 파초선을 건네드렸지요. 뿐만 아니라 보고 있자니 모기떼는 사람을 뜯어 먹을 기세였어요. 방 안에 불빛이 있으면 안 되었지요. 조금이라도 불빛이 보이면 옥수수 나방이 날아 들어왔으니까요. 그것들은 목숨을 걸고 날아 들어와 얼굴, 목, 손 할 것 없이 아무 데나 부딪혔어요. 손으로 쳐서 잡으면 썩은 살구처럼 배에서 체액이 흘러나와 소름이 돋게 했지요. 우리 중 셋째 공주마마는 유독 겁이 많고 벌레를 무서워하셔서 벽 모퉁이에 움츠리고 계신 채 꼼짝도 하지 않으셨어요."
    (/ p.397)

    들판에서 용변을 해결하다
    "그때 갑자기 맨 앞에 있던 말의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고개를 들어 내다보니 태후마마의 가마가 멈춰서 있었지요. 우리는 얼른 마차에서 내려 태후마마의 가마 앞으로 달려갔어요. 가마가 높아서 서서 고개를 들고 여쭙는 수밖에 없었지요. 사실 이것은 궁에서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랍니다. 태후마마는 낮은 목소리로 우리 둘에게 용변을 해결해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잠시 멍해졌지요. 이 황량한 교외에서 앞뒤로 마을도 없고 어떻게 태후마마의 용변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에요. 태후마마는 과감히 말씀하셨어요. ‘여기 풀이 빽빽한 곳에서 해결할 테니까 나를 둘러서서 가리도록 해라.’ 정말 현명하신 판단이었어요. 화장실 한 번 쓰기 위해 애걸복걸해야 했던 원취안이나 시관스의 똥통보다는 몇 배나 나은 조건이었지요. 적어도 구역질날 만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우리 궁녀들은 재빨리 둥글게 벽을 만들었고 이 벽 안에서 태후마마, 황후마마, 후궁마마, 공주마마들까지 차례로 용변을 해결했어요. 정말이지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지요. 화장지도 없어서 야생 마잎으로 대신해야 했답니다."
    (/ pp.412~413)

    저자소개

    생년월일 ~1992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허베이성 위톈 현 사람으로 본명은 왕시판이다. 저서로 [서태후와 궁녀들], [궁녀담왕록]이 있다.
    진이金易와 선이링沈義羚 은 이 책의 구술자인 노궁녀 룽얼과 이웃으로 지낸 지식인 부부다. 두 사람과 노궁녀는 말년을 이웃으로 함께 보내며 서로의 살림을 돌봐주었고 이런 오고감 속에 청 황실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진이는 허베이 성 위톈玉田 현 사람으로 본명은 왕시판王錫?이다. 진이와 선이링은 1939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처음 만났고, 대학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 학구파다. 1940년대 초반 결혼하고 대학을 졸업한 둘은 해방 전의 베

    펼쳐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진이金易와 선이링沈義羚 은 이 책의 구술자인 노궁녀 룽얼과 이웃으로 지낸 지식인 부부다. 두 사람과 노궁녀는 말년을 이웃으로 함께 보내며 서로의 살림을 돌봐주었고 이런 오고감 속에 청 황실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진이는 허베이 성 위톈玉田 현 사람으로 본명은 왕시판王錫?이다. 진이와 선이링은 1939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처음 만났고, 대학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 학구파다. 1940년대 초반 결혼하고 대학을 졸업한 둘은 해방 전의 베이징에서 궁핍한 신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곧 지도교수의 배려로 진이가 히로시마대학 문리과대

    펼쳐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U&J 에이전시에서 중 국어책을 번역하고 교정하는 일을 겸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기억을 잃은 소년], [서태후와 궁녀들],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등이 있다.

    룽얼 구술 [기타]
    생년월일 1880~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880년생. 자금성 저수궁儲秀宮에서 서태후를 모신 청 황실의 궁녀. 만주 기하인旗下人으로 열세 살에 궁에 들어가 8년간 서태후에게 담배 올리는 일을 했다. 서태후가 매우 아낀 몇 안 되는 궁녀 중 하나였으며 8국연합국 군대가 자금성을 함락시키고 서태후가 광서제와 함께 급히 시안으로 피난할 때도 동행하여 모실 정도로 측근이었다. 즉, 룽얼은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이자 서태후의 권세가 최고조로 올랐다 추락한 노년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서태후와 궁녀들]은 궁을 나온 그녀가 평범한 신분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1940년대 말 이 책의 저자인 진

    펼쳐보기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이 상품의 시리즈

    걸작 논픽션 시리즈(총 17권 / 현재구매 가능도서 13권)

    펼쳐보기

    이 책과 내용이 비슷한 책 ? 내용 유사도란? 이 도서가 가진 내용을 분석하여 기준 도서와 얼마나 많이 유사한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비율입니다.

      리뷰

      8.0 (총 0건)

      기대평

      작성시 유의사항

      평점
      0/200자
      등록하기

      기대평

      0.0

      교환/환불

      교환/환불 방법

      ‘마이페이지 > 취소/반품/교환/환불’ 에서 신청함, 1:1 문의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1577-2555) 이용 가능

      교환/환불 가능 기간

      고객변심은 출고완료 다음날부터 14일 까지만 교환/환불이 가능함

      교환/환불 비용

      고객변심 또는 구매착오의 경우에만 2,500원 택배비를 고객님이 부담함

      교환/환불 불가사유

      반품접수 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보낼 경우 상품 확인이 어려워 환불이 불가할 수 있음
      배송된 상품의 분실, 상품포장이 훼손된 경우, 비닐랩핑된 상품의 비닐 개봉시 교환/반품이 불가능함

      소비자 피해보상

      소비자 피해보상의 분쟁처리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라 비해 보상 받을 수 있음
      교환/반품/보증조건 및 품질보증 기준은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라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음

      기타

      도매상 및 제작사 사정에 따라 품절/절판 등의 사유로 주문이 취소될 수 있음(이 경우 인터파크도서에서 고객님께 별도로 연락하여 고지함)

      배송안내

      • 인터파크 도서 상품은 택배로 배송되며, 출고완료 1~2일내 상품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출고가능 시간이 서로 다른 상품을 함께 주문할 경우 출고가능 시간이 가장 긴 상품을 기준으로 배송됩니다.

      • 군부대, 교도소 등 특정기관은 우체국 택배만 배송가능하여, 인터파크 외 타업체 배송상품인 경우 발송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배송비

      도서(중고도서 포함) 구매

      2,000원 (1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음반/DVD/잡지/만화 구매

      2,000원 (2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와 음반/DVD/잡지/만화/
      중고직배송상품을 함께 구매

      2,000원 (1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업체직접배송상품 구매

      업체별 상이한 배송비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