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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1 소요유 멀리서 아득히 거닐다 : 고형렬 에세이[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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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고형렬의 에세이 장자 전집(전 7권, 2019년 7월 11일 초판 1쇄)을 완질하고, 100여 일에 걸쳐 전권의 내용을 고치고 보완한 증보판을 낱권으로 출간한다.

    이 책은 모든 해석 너머에 가려진 장자를 불러내는 과정의 기록이다. 알기 위해 읽지 말고 모름에 이르기 위해 읽어야 한다. 실용을 위해 읽지 말고 무용에 이르기 위해 읽어야 한다. 길을 찾기 위해 읽지 말고 길을 잃기 위해 읽어야 한다.

    “장자는 길을 찾고 다시 잃어버리는 무도(無道)의 사상가이다. 무언가를 알아버리면 지식의 종결이 오고 의식은 파괴된다. 그러기에 무지로 돌아와 더 깊은 혼돈 속, 예컨대 광막지야와 골의지요(滑疑之耀)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길을 잃고 자신을 잃어버린다. 자신을 잃은 그곳이 상아(喪我)의 자아이다. 이것이 천진이며 무식이고 더 나아가 죽음이며 그 속에서 만나는 빛나는 자연이다.(본문 중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야마와 진애와 상취(相吹)의 숨소리라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소요는 “아무것도 마음에 지니지 않은 채 반짝이는 눈밭 위에 내리는 미세한 햇살을 잡는 눈이며 그것과 함께 바람처럼 물결처럼 비상하고 경쟁하는 이름 없는 것들의 아름다운 소멸”이라는 것. 모름을 인정하고 그 모름으로부터 출발하여 “아득히 끝없이 거니는 것이 요(遙)”이다. “모든 잡동사니와 만사로부터 뚝 떨어져 저쪽에 혼자 펼쳐진 책 속에 있는 언어의 한 그루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할 때에 문득 ‘상아의 자아’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완전한 소요는 “종생(終生)”일 것이라고 본다. “종생(終生)”은 육체의 소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육체에 갇혀서도 어떤 생이 멈추고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 질주로 탈진해가는 21세기 성과주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삶 너머로, 삶 밖으로 서성거려보는 귀휴의 시공간이 이 책 속에 있다.

    목차

    머리말 4

    북명(北冥)의 물고기, 붕(鵬)새가 되다 10
    남쪽 하늘로 이사갈까 19
    생물들은 아지랑이와 티끌 속에서 29
    물은 배를 기다린다 47
    바람은 날개를 찾아온다 63
    쓰르라미와 비둘기 들의 비웃음 77
    길을 가는 자의 양식(糧食) 98
    대춘(大椿)은 8천 년을 살았다 115
    궁발(窮髮)의 북쪽은 무엇을 예언한 것일까 131
    일관(一官)과 일군(一君)의 메추라기들 158
    송영자(宋榮子)를 비판하는 장자 선언 173
    무궁을 노니는 이름 없는 인간들 197
    기산에서의 유(由)와 요(堯)의 독대 217
    그대는 귀휴(歸休)하시오 229
    그리운 고야산의 신인(神人) 246
    만물이 방박(磅礴)하는 자연의 음악 262
    무용한 모자와 요(堯)의 아득함 292
    대호(大瓠)가 부서지다 318
    송나라 변벽광 세탁업자의 수약(手藥) 339
    장자와 혜자 사이의 저나무 366
    마지막 대화 388

    종언(終焉) 414

    본문중에서

    만물이 회생하는 봄날, 장자는 조화롭고 귀여운 생물들의 꿈꾸는 순간이 결국은 자연의 품에 숨어있는 것임을 발견한다. 만물이 바람과 야마진애, 상취의 생물 속에서 정색하고 생동하는 것을 자연은 노래한다.
    이 가엾은 봄날의 햇살을 다 받을 수가 없어 미물로 돌아가고 싶고 또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을지 모른다. 그 어디나 다 ‘우리’의 고향이다.
    나의 몸의 고향은 어쩜 저 작은 벌레나 새들의 심장이며 낯선 울음소리이며 빛처럼 공기를 따라다니는 소요의 진애였을 것이다. 생명들은 야마진애 속에서 태어나고 그 안에서 호흡하고 살아간다.
    그러니까 봄날의 장난에 어찌 사람이 다시 희망을 내다보면서 어리석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생물이 그 작은 수정체의 구멍 없는 창으로 밖의 봄을 내다보지 않을 수 있고 또 몸을 사리고 다듬어서 주위를 살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리석은 것들만이 생명일 것이다. 어떤 교화로도 자신의 본능과 몸과 장기를 포기하거나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생명이다.
    현대 속에는 사라지고 없는 옛날의 그 멋진 지인과 성인, 신인 들은 상취의 재롱(才弄) 앞에서 마음을 빼앗기고 어느 날 산으로 들어가버린 바람처럼 임종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그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서로 숨을 주고받고 들이쉬고 내쉬며 쉴새없이 할딱이는 코와 입 속에서 장자가 들은 것이 음악이 아니라고 한들 그들에게 무슨 명분과 변론이 필요할까.
    코와 입으로 애무하듯 그 숨을 서로 주고받는 자연의 형사지언(形似之言)은 생명의 찬가이며 놀라운 음양의 변화이다.
    천진과 우둔(愚鈍) 곁에서, 무지와 무명 속에서 약간의 시적 의문과 함께 나도 물결과 나뭇가지처럼 흔들리며 너울거렸을 뿐이다.
    그들과 함께 놀며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 나비와 바람과 물결과 같이 가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그곳에 그대가 나타나게 되어있으며 그들과 함께 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생명으로 돌아오는 것은 일하러 잠시 이 자연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pp.31~32)

    현대사회는 일백 년 전부터 문화와 가치, 체제의 틀, 이성의 편집에 의한 강화된 권력화로 소요 불가의 한계를 숱하게 노정하고 있다.
    인간은 상처투성이이다. 인간은 물질자본과 문명에 외형적으로 순응하는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행복과 편리를 추구할지라도 본래의 자아는 지혜의 수단으로 자연과 본질을 훼손한 문화의 모든 조건을 거부하기도 한다.
    인간이 야마(野馬)와 진애(塵埃) 속에 있는 한 생명체이며 오묘한 동물이자 지혜임에도 마치 그들은 다른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위험한 유위(有爲)의 싹들이다.
    늘 인간은 공허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책무에서 놓아주면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수많은 세대를 거쳐오는 동안 천진과 소요가 사라진 세계. 크고 작은 오만과 지혜, 시기와 암투, 권력과 자본의 문명 주체들이 천진과 소요를 제어하는 현상은 거개가 폭력적이다.
    현대는 모두 그 안에 갇혀있다.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며 갈 곳이 없다.
    (/ p.41)

    시비와 비교와 경쟁을 넘어 무한의 시간을 사유하는 것을 장자는 발견하고자 한다. 그 시간은 하늘 안의 만물의 주변에 쉼없는 흐름으로서 소요하는 만물의 풍경이다. 유한한 존재라도 의지할 곳은 그 자연 속에 소요하는 삶을 얻는 그 길밖에 없다.
    장자의 길은 바로 이 이충과 장수목들이 함께 존재하는 대자연 속에 있다. 다만 그 시비와 비교가 없다면 생명의 장단 문제를 가지고 논할 것이 못 된다.
    어쩜 일찍 죽은 것이 장수한 것일 수 있다. 요절은 다른 시간과 죽음 의식에서는 장수보다 더 장수이기 때문이다. 먼저 떠난 것이 더 많은 시간을 먼저 선점한 것이 아닐까. 오래 산 것은 자신의 사생의 시간 속에서 산 시간이 축난 것이라면 말이다. 더 영원히 살아야 할 저쪽의 시간이 짧아졌다 할 수 있다.
    장자의 현실적 삶은 일단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일차적인 대전제이다. 그것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독연(獨然)의 삶으로서 산과 강물과 같다.
    독자적인 삶의 중심에 있는 도에 대한 답을 장자는 상황에 따라 달리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一) 속에 있다.
    (/ p.121)

    인위적인 만사의 편집 구도 속에서 인간과 세상을 다스리느니 자연을 따르며 자연의 길이 되며 자연과 합일되는 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유자(遊子)의 개인은 마치 나의 나처럼 나의 팔처럼 신장처럼 눈의 나처럼 다리의 나처럼 나의 심장처럼, 이름도 공도 없이 자연을 따르며 합일하여 함께 노니는 사람이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것만큼 큰 고달픔과 수고로움이 없다. 권력의 무용과 무상이 여기 있다. 자연의 무위만이 유용인 것이다. 저 하늘의 땡볕이 무엇을 하는지 이미 아는 자는 방안에 들어가 혼자 쉴 일이다.
    이 귀휴(歸休)가 가슴 찡한 한여름의 얼음장 금 가는 소리를 낸다. 바람을 타고 치복하는 것보다 이처럼 오장육부가 시원한 위로의 말이 어디에 있을까.
    무사인(無事人)에게 태양과 계절이 관통한다.
    (/ p.227)

    인간도 돌아가 쉬고 싶다. 인간만이 유독 지구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아무도 시킨 적이 없지만 자발적 업을 가졌다.
    인간은 일들을 그만하고 돌아가 마냥 쉴 때가 되었다. 실은 모든 존재 사물은 그 자리에 있으며 그 자리로 돌아가며 무엇에 이용되지 않길 바란다. 다만 장자의 마음은 늘 부드러우며 혼자 즐거이 지내며 무리지어있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자시를 통해 외물들의 편애를 짓지 않고 유용과 무용을 가르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무기(無己)가 우선한다.
    사실 장자는 그까짓 물이나 몇 섬 담는 그릇(인간)을 가지고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장사를 하든 정치를 하든 글을 쓰든 그렇게 자잘하고 옹색(壅塞)해서 어디다 쓸 것이냐는 뜻이 있다.
    이곳에 무의 사상이 숨어있다.
    커다란 나무술통[대준(大樽)]을 만들어보라는 말은 그야말로 날카로운 풍유(諷諭)의 정신이자 사물의 유용성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또 다른 차원의 풍류(風流)의 마음이다.
    어찌 우리 둘이 술 한잔 못 할 것이 있겠는가 하는 의미심장함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 사물과 놀아라’ 하는 것이 장자의 인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다.
    (/ p.356)

    아 나를 잊을 수 있다면! 이것이 장자의 시작이다. 설광(雪光)에 눈이 시린 겨울 아침의 설원에 아버지와 함께 서있다. 여기서 소요(逍遙)가 스스로 시작한다.
    이곳이 언제나 장자사상의 첫 발자국을 떼는 출발점이다. 날개를 들어보고 싶다. 가정, 향(鄕), 국가 같은 것은 그곳에 없다. 나도 없는데 그런 것이 있을까.
    방황소요(彷徨逍遙).
    이는 이 세상에서의 장자의 유일한 탈출의 통로이다. 이 통로를 가지고 왈가불가할 것은 없다. 방황소요는 광막지야에서나 운행이 가능할 것.
    너무나 큰 경지는 광대무변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마치 붕새가 날아가는 하늘이 저 가시(可視)의 하늘만 가지고는 안 될 것을 미리 아는 것처럼. 마음의 존재에 여분 없이 딱 맞는 하늘도 거부한다.
    장자의 방황소요의 광막지야는 무한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은 망각의 망각의 망각의 시간을 지나서 돌아올 무엇이지만 아무것도 아무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요연하고도 묘망한 것이다. 잠시 살아가는 것들의 동류의 집합 속에서 우리는 의문하지 못하고 착각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 광야의 일부 벽(壁)이 이 현실 세계이다. 그래서 물무해자무소가용(物無害者無所可用)이 바로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장자의 독보적인 경지라 하겠다. 무용의 무해의 경지는 방황소요하는 광막지야의 현재의 모습이다. 이처럼 장자사상에서는 방황소요하는 광막지야와 물무해자의 거리를 척도하지 말고 소요해야 한다.
    방황소요를 영겁회귀로 바꾼다면 아마도 영겁회귀사상의 창업자와 아버지가 바로 장자가 아닐까. 한 그루의 저나무 아래 작은 나무를 심은 장자, 그의 보이지 않는, 숨긴 마음을 찾아간다. 그것은 눈물겨운 자기소외의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래서 우주와 합일하는 절대소요의 경지이다. 생사영겁의 대정(大情)이다. 나의 죽음이, 족제비의 죽음 같은 하나의 쓰레기가 아니려면.
    이 장자의 주인공인 방황과 소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시작된다.
    장자는 혜자에게 당신은 혼자 너구리와 족제비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놀라운 의문이자 질문이다.과연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그 너구리와 족제비가 바로 당신 혜자 같은 사람이다. 혜자가 장자보고 당신은 소용없는 대호와 같다고 해서 이렇게 말했을까.
    하지만 그것을 보는 장자의 눈은 신인(神人)의 눈이다. 응결되어있었을 눈. 눈 속의 신은 그것들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돕지도 해치지도 않는다. 자연 속에 놓아둔다.
    자연에서 죽는 것은 자연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다. 고의로 죽음을 막고 생을 놓아주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혼자’이다. 자연은 늘 ‘혼자’ 있다. 텅 비어있는 듯 꽉 차있다.
    그것을 응결(凝結)하는 독견(獨見)이야말로 세상과 너구리와 족제비의 심리를 일별하는 시선이다. 그 시선은 이미 그들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죄다 알고 있다.
    (/ pp.401~402)

    장자는 저 붕새이며 쓰르라미며 새끼비둘기이며 이곳의 대호이며 대수이다. 그것의 대본이며 너구리이며 족제비이다. 장자는 처음부터 붕으로써 무엇을 비판하고 비하하기 위한 장자가 아니었다.
    그는 동식물을 관통하는 호호탕탕(浩浩蕩蕩)한 세계를 거침없이 내통했다. 이는 지금까지 없었던 소통방식이며 대상이고 자연관이다.
    특히 나무를 〈소요유〉에 등장시켜 인간과 자연의 담론을 펼친 사유의 방식은 사적으로 가장 커다란 위안이 되었고 또한 숙제가 된 ‘무위’와 ‘소요’가 무궁한 나그네와 벗의 동행(同行)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보다 커다란 선물은 없다. 장자는 이제 청정한 도의 본령으로 향하는 모드설정을 〈소요유〉에 맞춰놓고 인간세와 만물, 양생, 혼돈, 진인론 등을 논하는 도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것 역시 고통이나 고집이 아니라 소요(逍遙)이다. 이 소요는 무한으로 나서는 새로운 장자를 따라나서게 되는 책무가 아니라 자유이다. 이 절대자유의 근거는 자연에 있으며 그것의 대로(大路)와 대본은 도이다.
    유용의 세계로 나아간 소통의 세계를 잠시 차단하고 무용으로 나아가는 무한의 세계로 ‘나’의 언어와 사유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한 점의 의혹도 없는 본래 자연 그대로의 우주 공간에서의 천유(天游) 천방(天放)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하지만 이 대자유 속에는 절대순수와 가없는 허명(虛名)의 자전(自全)이 있으며 혼돈(渾沌) 역시 여전하며 천양(天壤)이 없지 않다.
    저 어둠이 없이는 빛이 오지 않을 것이니 그 음양의 공전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하나로 포용하는 것이 장자의 도이다. 음양 사이의 바람과 기가 경계선을 넘어 활생하는 주체로서의 광대무변한 경지를 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며 그 작용이 장자의 날개와 푸른 하늘의 꿈이고 길[도(道)]이다.
    무용(無用)한 것이 무궁하다. 무궁한 것의 주인공은 무궁자이다. 무궁자의 소요 공간이 바로 이 무하유지향이며 광막지야이다. 무향광막(無鄕廣莫)이 장자의 길 없는 마음이며 우주이다. 그 우주에 길은 원래 없다. 장자에게서는 다만 언어와 지상에 낼 수 없는 길만이 인간의 언어로 말해서 도일 뿐이다.
    이제 이 말조차 버려져야 할 것이다. 꿈조차 잊은 채 어느 세월이 흘렀는지 알 길 없어, 다시 바람 불고 비 내리는 어느 도시와 한 그루 어느 나무 밑에서 나는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쓸모없음이 아니라 소요의 추억이 어떤가, 광막의 저쪽에서 한번 상상해보는 것뿐이다.
    (/ pp.410~411)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11.08
    출생지 강원도 속초
    출간도서 44종
    판매수 2,673권

    낯선 현실과 영토를 자기 신체의 일부로 동화시키면서 내재적 초월과 전이를 지속해가는 고형렬은 15년 동안 삶의 방황소요와 마음의 무위한 업을 찾아 이 책, 장자 에세이 12,000매를 완성했다.

    속초에서 태어나 자란 고형렬(高炯烈)은 「장자(莊子)」를 『현대문학』에 발표하고 문학을 시작했으며 창비 편집부장,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첫 시집 『대청봉 수박밭』 을 출간한 뒤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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