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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 박경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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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문득, 돌아선 곳에서 나를 달빛 든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
    내면의 고스란한 슬픔을 끊임없이 달래고 어르는 시인, 박경희


    2001년 등단한 시작한 박경희 시인의 신작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 『벚꽃 문신』(실천문학사 2012)으로 ‘새로운 교감적 이야기꾼 시인의 등장’이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그동안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애잔한 서정과 떠나간 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한 일상의 푸근하고 평범한 장면과 그 이면에 미지근하게 남아 있는 죽음의 기척들을 감싸 안고, 삶을 넉넉하게 받아들이면서 “능청과 해학, 시원시원한 몸짓과 사투리”들로 풀어내는 박경희의 이번 시집은 “슬픔을 걷어내는 방식이 가히 독보적”(안상학, 추천사)이다.

    “손바닥 깔짝 뒤집으면 이승과 저승이 바뀌는겨, 암만, 다 그런겨”

    출판사 서평

    세상과 현실의 고통을 아파하는 ‘이야기 시’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은 박경희 시인이 7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질박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간사가 절기 속에 녹아 있는 핍진한 시편들이 구성지던”(김해자, 발문) 첫 시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생과 공유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고향의 생생한 입말을 살린 걸쭉한 입담과 정감어린 언어 속에 삶의 애환이 오롯이 서린 시편들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남다른 눈썰미와 따듯한 시선으로 농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서사적 사건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박경희의 시는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호미 대신 펜 쥐라”(「경칩」)는 말을 남기고 “산 넘어 가신 지 팔년”(「청명(淸明)」)째인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저승과 문턱이 같은”(「하늘 깃털」) 나이에 든 ‘욕쟁이’ 어머니와 “한번씩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를 찾는”(「참말로 벨일이여」) 치매 걸린 할머니에 대한 곡진한 사랑으로 천연덕스럽게 풀어놓는 가족 서사에는 유머러스한 화법 속에서도 애잔함이 스며 있다. 시인에게 가족은 삶의 동력이며, 서로 부대끼며 ‘기냥저냥’ 살아온 삶의 풍경은 아련한 추억 속에서 고스란히 한편의 시가 된다.

    세상의 진실을 말하고 강파른 현실의 고통을 아파하는 사람으로서 시인의 시선은 비단 가족 서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마음은 “집도 학교도 다리도 붕어 집이” 되고 만 이웃들의 “금지된 삶”(「물속의 집」)과 “짧은 대나무 마디로 살다 간 사내의 빈 곳”(「내 마음 기우는 곳」)에 기운다. 한편 “개발인지 게발인지” “굴착기 돌아가는 소리 요란”(「엄지손가락」)하게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가는 농촌의 그늘진 이면을 짚어내고, 4·3 제주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4·16 세월호 참사 등 “아리고 쓰려서 쓸쓸한”(「그대들의 마디 꺾이는 소리」) 고통의 역사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김해자 시인은 발문에서 “박경희는 느린 사람이지만 일견 촌스럽고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만한 시를 쓸 만큼 용기 있고 진실”한 시인이라고 평하면서 “농경문화의 자식으로서 대지적 감수성이 몸에 밴” 그의 시는 “글자 이전에 말이, 말 이전에 마음이 있었음을 실감케 한다”고 적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좀처럼 쉽게 곁을 줄 수 없는 냉엄한 시대에 재미와 감동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 박경희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

    -첫 시집 『벚꽃 문신』 이후, 약 7년 만에 출간하신 두번째 시집입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한편 한편에 손과 가슴이 함께 닿았습니다. 첫번째 시집은 힘들고 아렸다면, 두번째 시집은 참 쓸쓸하기도 하고 담담하기도 합니다.

    -산문집도 여러권 출간하셨는데, 집필활동을 비롯하여 요즘 시인께서는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통해 눈이 밝아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서 좋고, 나눌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이 아이들을 통해 저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내 안의 내가 좀 즐겁게 놀았으면 합니다.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 시집은 나이 듦에 대한 슬픔, 가족을 기다리는 노인들, 시골의 쇠퇴 등의 이야기를 썼는데, 두번째 시집은 조금 밝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슬픔과 쓸쓸함이 슬그머니 녹아들었습니다. 7년 동안 제 곁을 떠난 사람이 여럿입니다. 떠난 분들은 죄다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 아픔이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졌는지 모를 정도의 뒤틀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함께 있듯이 이승과 저승이 함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참말로 벨일이여」. 1부에 나오는 첫 시입니다. 모든 작품에 안쓰러운 눈빛과 손길이 가지만 이 시는 그냥 아픕니다.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저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시골 아이들의 삶과 지금도 변함없이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 시인의 말 ]

    작은 밭을 묵힌 지 7년.
    그동안 돌들깨, 도깨비바늘, 왕바랭이, 쇠비름이 자리를 빛냈다.
    소소한 것이 인연이 되어
    밭을 일구고 있다.
    그 밭에 들어가자 나도 돌들깨, 도깨비바늘이 됐다.
    소소한 내가 그 안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2019년 보령 명천에서
    박경희

    추천사

    박경희 시인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대개 눈은 울고 입은 웃는 인상이다. 첫인상이 그렇게 각인된 탓이리라. 시집에도 표정이 있다면 이번 시집 또한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는 인상이다. 눈은 내면의 슬픔이 고스란하고 입은 그 슬픔을 끊임없이 달래고 어르고 있다. 능청과 해학, 시원시원한 몸짓과 사투리들이 어우러져 한판 씻김굿을 치르는 형상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도 없고, 이승과 저승의 거리도 없다. 눈은 없어진 것들과 덜어진 것들과 사라진 것들을 불러내어 같이 운다. 입은 한술 더 뜬다. 새로 생겨난 것들과 다시 채워진 것들과 나타난 것들에게 원래 있었던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럼없이 군다. 그만의 슬픔을 걷어내는 방식이 가히 독보적이다.
    - 안상학 / 시인

    목차

    제1부
    참말로 벨일이여
    산벚나무
    그놈이 누구인지
    청명(淸明)
    그런 봄날
    그대들의 마디 꺾이는 소리
    초승달 부메랑
    생일
    고수
    팔자(八字)
    뚱딴지꽃
    참 좋은 날

    제2부
    오광
    경칩
    웃음 달
    꼬리 긴 별
    봄날
    슬픈 이야기
    낫질 한방
    실종된 봄

    먼 산
    꽃 걸음
    대설주의보
    가을밤에 부는 바람
    정류장

    제3부
    말복이 처마에 들다
    하늘 깃털
    엄지손가락
    그늘을 당겼다 놓는 집
    달빛 한아름
    생강꽃처럼 화들짝
    칠월 칠석
    손바닥
    물속의 집
    새벽의 눈물
    울화통
    리어카의 무게
    소름
    별을 바라보았다
    그런 저물녘

    제4부
    드렁허리
    윤슬이 출렁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집
    한여름 밤
    벚꽃잎 흩날릴 때
    노루의 눈빛
    무화과
    새집
    내 마음 기우는 곳
    폐염전
    바라보다가 문득,
    빈집 한채


    발문|김해자
    시인의 말

    본문중에서

    일찍이 이유 없이 보름을 골골거리다가 시 한편 쓰고 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몸 싹이야 이곳저곳에서 나는 몸뚱어리지만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북소리를 듣고 온 뒤 몸이 아파 며칠 방구들 지고 누웠다 가슴을 둥둥 쳐대는 긴 북소리가 파도를 타고 녹슨 몸 구석구석을 에돌자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툭툭, 터져나왔다
    ('그대들의 마디 꺾이는 소리' 중에서)

    달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밤 잠결에 어머니가 한바탕 크게 웃는다 자다 말고 일어나 얼굴을 보니 볼이 붉다 내려앉은 초승달이 눈 한가득이다 닭도 울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오줌 누러 가는 어머니 등 뒤에 대고 뭐가 우스워서 자면서 그리 웃었느냐고 물으니 저승 간 느 아버지가 왔다고 옆에 누워 내 젖을 만졌다고 간지러워서 웃었다며 지지 않은 달빛 속으로 들어간 부끄러움 한동안 빤히 창밖만 바라보던 어머니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며 네년 때문에 오줌 찔끔거렸다고 속옷 갈아입어야겠다고 잠이나 자지 왜 일어나서 지랄이냐고 괜스레 애먼 나만 타박이다
    ('웃음 달' 중에서)

    뒤집어봐야 됫박인 줄 알고 좆 끝으로 밤송이 발라봐야 지 좆 끝만 아프지 누구 좆도 안 아프다고 여길 가봐도 저길 가봐도 찬밥덩어리인 줄 모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잔소리는 오만가지 지 잘난 줄만 알고 남 잘난 줄은 모르는 기둥에 고무줄로 매단 빗마냥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그래도 제자리로 잘도 돌아온다고 십년 객지 생활에 철드는가 싶더니 이건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라고 자식새끼 욕해봤자 당신 얼굴에 침 뱉기라 남한테 말도 못하고 산 넘어 가신 아버지
    ('슬픈 이야기' 중에서)

    돈 많아도 다 헛지랄이여, (…) 돈이 무신 소용이여, 잘 벌어 잘 쓰야지, 나는 돈도 읎지만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 줄겨, 나 죽으면 그 돈으로 장례나 치러, 속 끓이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어, 손바닥 깔짝 뒤집으면 이승과 저승이 바뀌는겨, 암만, 다 그런겨
    ('손바닥' 중에서)

    갈바람이 흰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새 날아간 자리 가지처럼 파르르 눈동자 떨리던 사람
    바스락거리는 별을 끌어다가 반짝, 담배에 불붙이던 사람
    산등에 걸린 달을 눈으로 담은 사람
    흙 파인 돌계단에 앉아 찬찬히 처마의 달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 뒹구는 바람을 끌어다가
    옷깃 안으로 여미던 사람
    문득, 돌아선 곳에서 나를 달빛 든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
    ('바라보다가 문득,'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4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
    출간도서 6종
    판매수 151권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시안》 신인상 수상. 시집 [벚꽃 문신],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가 있음. 제3회 조영관 창작기금 수혜. 현재 시골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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