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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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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림자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온다.
자유와 절망, 버림의 극치에 서 있는 치명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

신영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초현실적이고 환영적인 이미지를 실재로 만들어내며, 한국 여성시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젊은 시인인 신영배의 감각적인 시가 펼쳐진다. ‘물’의 이야기를 펼쳐냈던 전작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 큰 획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림자’로 시인은 전형과 관습과 무관한 자신만의 시세계를 펼쳐놓는다.

2001년 문단에 나온 신영배 시인은 결코 기성의 것과 타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탐닉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그녀는 진정한 현실을 지각하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형태변화와 자유를 이끌어내는 시 「세상에서 가장 긴 나무의 오후」를 비롯해서 55편의 시를 수록했다.

출판사 서평

한국 현대 시에서 ‘여성적 시 쓰기’ ‘여성-몸으로 시 쓰기’의 날카로운 징후를 보여준 시인이 있다. ‘여성적 상상의 모험’이라는 전선을 따라 이동한 한국 현대시의 전위 속에서 시적 육체 내부의 불온한 다성성을 폭발시키며, 이 시인은 ‘여성 혹은 소녀의 몸의 상상력’으로 ‘물의 담화’와 ‘물의 드라마’를 생성한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시인은 초현실적이고 환영적 이미지를 실재로 만들어내며 그림자를 육체적으로 수행하는 두번째 시집을 내놓는다.
한국의 여성시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젊은 시인 신영배가 첫 시집 『기억이동장치』에 이어 두번째 시집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를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 파란색의 첫 시집이 물의 이야기였다면 저녁 어스름을 닮은 색의 이번 시집은 그림자 이야기다. 오후 여섯 시, 길어진 그녀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첫 시집에서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시인의 언술은 여성이라는 질환의 증상이자 증후, 그것에 대한 주술이자 여성적 몸의 상상적 모험이 체험하는 ‘환상 통로’의 기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물의 이미지였다. 그녀의 시에서 물은 끝없이 흘러 다니며 편재했다. 투명한 물에서 검은 물로, 갇힌 물에서 넘쳐나는 물과 증발하는 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은 단지 비유의 대상이 아니라 언술 방식 그 자체였다. 여성적 시 쓰기의 다른 몸을 열었던 주술로서의 신영배 시는 “사라지는 시” 혹은 “시만 남고 내가 사라지는 시”로 향했다. 물이 ‘증발’한 그 자리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오후 여섯 시에 가장 길어진 모습으로.

이번 시집에서 그녀는 그림자-몸으로 실존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이러한 기이하고 독특한 변이가 형태 변화의 자유와 지각 방식의 자유 낳는다고 설파한다. 크기, 부피, 길이, 넒이, 윤곽, 농도 등 형태를 가늠하는 규칙, 기준, 한정, 틀에서 벗어나는 그림자는 기고, 흐르고, 떠다니고, 흔들리고, 들러붙고, 수시로 옮겨 다닌다. 하여 그것은 영원한 변화의 다른 이름인 것이며, 고정된 형식화를 거부하는 이러한 몰형식의 자유가 사물의 형상과 눈앞의 풍경을 뒤바꾼다는 것이다. 신영배의 시에서 빌딩 속에서 나무가 일어서고, 지평선 위로 새가 흐르고, 강이 날고, 머리카락이 닿으며, 때로 얼굴이 지표면 가까이 떠다니고, 연인의 하체는 강물에 빠지고, 뱀의 꼬리는 하염없이 길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림자-몸으로 감득한 외부의 형상은 주지와 상식, 전형이나 관습과 무관한, 방금 새로 태어난 세계이며, 여기에는 이것과 저것의 경계가 없고, 분별도 없고, 동화나 합일도 없고, 앞뒤나 위아래 구분 없이 서로의 일부로 붙었다 떨어지고, 각자에게 속했다 분리되고, 물리적 시공간을 잊은 채 떠돌기 때문인 것이다.

그녀의 시는 그림자의 온갖 모험의 기록이자 자기 감각과 형태의 한계를 넘어가는 예술적 자유의 도정이다. 예술적 자유란 언제나 그렇듯, 전통과 권위, 객관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전면적 부인이며, 비록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의 수인(囚人)이 된다 할지라도 개성의 미적 산출은 단지 자기 기준을 따를 뿐이며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함을 생명으로 한다는 원리의 실현이다. 넘치는 자유의 길을 따라 신영배의 언어가 부조하는 미묘(美妙)하고 신비한 그림자의 판각들은 기존의 형상과 감정의 틀을 최대한 흩뜨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형식화함으로써 예술이, 시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 정점에 선다. _강계숙, 해설 「그녀, 그림자 되다」에서

그녀의 시집 앞에서 독자들은 이전에 없던 언어가 일어서는 사태 앞에 놓이게 된다. 혼란과 낯섦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림자마저도 덜어내려는 절대적 비움, 적어놓은 이야기 전부를 바람에 날리려는 절망의 순도, 다 내려놓았으니 다 가져가라는 버림의 극치…… 또 다른 극단에 서 있는 신영배 시인의 자유를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치명적이고, 서늘하게 아름다운 그녀의 시가 한 걸음 다가설 것이다.

그녀의 그림자-몸은 기성의 감각으로 감지 못한 세계의 이면이나 뒷면, 혹은 사물과 사물이 맞닿으면서 일으키는 파장의 보이지 않는 면을, 그 틈에서 흘러나오는 ‘사이[間]’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그녀의 언어가 부조하는 미묘(美妙)하고 신비한 그림자의 판각들은 가장 적요하고 잠잠하지만 결코 기성의 것과 타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 정점에 서 있다. 그러니, 오후 여섯 시, 그녀를 따라 가장 길어져보자. 빛의 자음과 모음으로 점이 될 때까지, 점을 따라 무겁고 둔한 몸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하여 숨겨진 저 이면들 ‘사이’로 그녀를 따라 들어설 수 있을 때까지……

모래가 아직 꽃이었을 때의 곳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내 두 다리는 문장이다.

모래가 아직 꽃이었을 때 사막은 향기롭고

두 다리가 멈춘다. 다리가 다리를 더듬는다. 흐르는 모래 위를 다시 걷는다.

모래가 아직 꽃이었을 때 사막은 향기롭고, 바람은 혀가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

다리가 멈춘다. 발목에 흘러내린 혀를 떼어낸다. 다시 걷는다.

모래가 아직 꽃이었을 때 사막은 향기롭고, 바람은 혀가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 태양은 점으로 인간을 지웠고

멈춘다. 다리가 길게 늘어난다. 그림자 끝에 내 머리가 떨어져 있다. 정수리에 꽃이 피어 있다. 닿는 순간 사라지는 꽃. 혹은 점.

걸어간다. 머리를 주우러 그림자 끝으로.

발끝의 그림자 위에서

두 다리가 걷는다.

목차

시인의 말

제 1부
저녁의 점/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기하학적 다리에 대한 독백/세상에서 가장 긴 나무의 오후/나를 버리지 마세요/그림자 날다/팔월의 점/그림자라는 고도/공중옷걸이/태양 아래에서/정오에는 말을 버린다/그녀의 점자/저녁의 거울/거울의 저녁/얼굴은 안개로 돌아간다/나의 아름다운 방/점의 동물

제 2부
수면용 안대/소녀의 점/불타는 그네/비누가 닳다/점핑스커트/고녀의 밤/모빌/마리오네트/해변의 비디오/기억은 기형이다/집이 있던 자리/치마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다/봄의 옥상/누워 있는 네 개의 발/휴일의 공기/두 마리의 고양이를 위한 방/상상임신/그림자 가게1

제 3부
상자가 아직 칼이었을 때/새의 점/풀밭 위의 욕조/새가 떠 있는 동안/전자 비/리모컨 바다/티브이 아비/도시의 집/흐르는 발/사막에서/나를 입으세요/나를 입으세요!/그림자 가게2/등을 더듬다/마그리트의 티브이/공중계단/4월의 나프탈렌/2층 햇살돛단배/점의 구성/발끝의 노래

해설|그녀, 그림자 되다·강계숙

본문중에서

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꽃이 눈알을 강물에 떨어뜨린다
새가 부리를 강물에 떨어뜨린다
연인이 하체를 강물에 떨어뜨린다

뱀의 꼬리가 서쪽으로 늘어난다

얼굴은 지표면 가까이에 떠다닌다

밀은 부어올랐다
밀은 충혈되었다
말은 고름이 괴었다
말은 늙어갔다

눈은
꽃이 있는 곳에서 꽃이 없는 곳으로 간다
입은
혀가 있는 곳에서 혀가 없는 곳으로 간다
코는
향기가 있는 곳에서 향기가 없는 곳으로 간다
귀는
바람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없는 곳으로 간다

얼굴이 강을 건넌다
말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부연 입자의 배열로 돌아간다

목 위에 안개를 얹고 연인을 찾아간다
연인이 환하게 웃는다
나는 空의 아내
-「얼굴은 안개로 돌아간다」

저자소개

신영배(소영)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72

1972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다. 2001년 포에지 '마른피' 등단. 저서로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기억이동장치'가 있다. '소영'이라는 필명으로 쓴 그림동화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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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99권 / 현재구매 가능도서 19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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