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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 동갑내기 두 거장의 예술론 교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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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동갑내기 두 거장의 예술론·교육론

    “예술은 인간을 지탱하는 것”
    한 시대를 공유하는 두 동갑내기 거장이
    걸어온 삶과 걸어갈 삶을 통찰한다.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각기 일본을 대표하는 오에 겐자부로와 오자와 세이지. 둘은 193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오에는 시코쿠의 시골마을에서, 오자와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제국주의 시기,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혼란기, 경제 발전기를 경험한 두 거장은 이 대담집에서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함께 살아갈 동시대인과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에게 예술과 삶을 이야기한다. 예술 없이는 인간이 지탱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획일화된 국가와 조직이 아닌 민주주의 시대의 건강한 개인과 세계인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전한다.

    동갑내기 두 거장이 나누는 예술과 삶에 대한 대담

    오에 겐자부로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주목 받기 시작하여 주요 문학상 여럿을 수상하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오자와 세이지는 1959년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이후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시작으로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을 지냈다. 오에는 주목받던 신인 시절, 지적 장애를 지닌 아들 히카리의 출생과 더불어 작품 세계가 크게 변화하여 공존과 화해를 본격적으로 주제 삼기 시작한다. 오자와는 서구의 동양인 차별과 NHK 교향악단 사태 등 도전을 마주하며 각고의 노력으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 반열에 오른다. 둘 모두 제국주의와 패전을 거치며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겪었으며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서 훌륭한 개성을 갖춘 개인으로 우뚝 섰다. 이 대담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바탕 삼아 깊이 있는 주제들을 메기고 받으며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오자와 씨와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오자와 씨는 중국에서, 나는 일본 시코쿠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패전 후 사회적 혼란을 겪은 일본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기운이 움트지 않았더라면, 각자 다른 분야에서 첫발을 내디딘 두 젊은이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당시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민주주의 기운뿐이었다. 사실 지금도 민주주의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지만 말이다. 당시의 소년은 그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임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오자와 씨나 내게 주어진 숙명이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년 시절의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일하다가 생을 마칠 것이다.” (오에, 8쪽)

    문학은, 음악은, 개인적인 것

    두 사람은 외부로부터 격리된 섬에 살며 개인보다 조직과 국가를 우선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을 경계한다. 이기적인 개인이 아닌 책임감 있는 개인이 혼자 서는 데서 건강한 인간이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오에가 만들어낸 세계적인 문학은 장애인 아들과의 공생을 깊이 궁구한 개인적 삶의 결과이며 오자와가 만들어낸 세계적인 음악은 동양인으로서 서양 음악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수준 높은 음악’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추구한 결과이다. 단일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며 분단된 반도라는 사실상의 섬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도 이 문제 제기는 유효하다.

    “음악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물론 어딘가에 가서 지휘를 한다거나 청중과 오케스트라가 없으면 음악회를 열 수 없는 점 등을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요. 저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오자와, 25쪽)
    “저는 일본에 없는 소설을 쓰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오자와 씨 말씀대로 아주 가까운 곳, 그러니까 바로 제 곁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더군요. 그때부터 아이는 제 삶과 일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 사실 우리 인간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와서 다시 아이의 아이로 계속 이어져 가는 존재일지도 모르지요.” (오에, 28쪽)
    “회사도, 소사이어티도, 조직도, 심지어 국가도 중요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오자와, 82쪽)
    “‘나는 회사를 위해 산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요즘엔 좀 덜하지만 버블이 터지기 전엔 유럽이나 뉴욕 주재 대기업 직원들은 일본이라는 국가보다 자기 회사를 더 중요시했어요. 그 무렵엔 활기 넘치는 일본인이 꽤 있었는데, 그런 활기는 국익을 앞세운 데서 나오는 게 아닌 듯했습니다. 모두 사익을 위해,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거품이 꺼지니까 다들 회사를 믿을 수 없어졌었지요. 그 후 사익이란 말이 움츠려 드는가 싶더니 ‘국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더라고요.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면서요. 저는 국익 따위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익’, ‘국익’ 하는 건 일본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국가란 무언가 다른 수준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힘을 지닌 쪽으로 나아가야 해요.” (오에, 85쪽)

    삶을 이끌어준 사람들과의 만남

    오자와 세이지는 사이토 히데오,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의 훌륭한 스승을 모시며 서양 고전 음악의 깊이를 전수받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와타나베 가즈오의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고 감명 받아 스승이 교편을 잡은 도쿄대학교로 진학한다. 스승 사이토 히데오의 이름을 딴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교육하는 오자와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오에는 훌륭한 교육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사실 교육은 시스템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돼요.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교육의 질이 확 달라져요.” (오자와, 86쪽)
    대담 가운데 오에와 오자와는 삶에서 만난 훌륭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가 다케미쓰 도루를 회상하며 그의 인품과 작품에 젖는다. 오에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던 큰아들 히카리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음악가로 성장하여 이번 대담에서 오에의 곁을 지킨다. 친구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에의 오랜 벗 이타미 주조(히카리의 외삼촌)의 죽음을 위로하며 일러준 브람스의 〈주제와 변주, 작품 18b번〉을 히카리 역시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주제와 변주〉의 원곡을 묻는 오에에게 브람스의 〈현악 육중주 1번〉의 2악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문학도, 음악도, ‘일래버레이트elaborate’가 필요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꼬박 여덟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나머지는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삶을 이어왔다. 장편 한 편을 아홉 달 걸려 쓰고, 한두 해 들여 수정하는 작업의 연속이다. 오자와 세이지는 지휘하는 총보 전체를 암기하여 이해하는 엄청난 노력으로 음악 전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 대담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체를 외워 악보에 적는 사이토 히데오 선생의 교육 방법이 등장한다.
    “젊은 작가들, 나름대로 재능 있다는 작가들은 금방 휙 써서 책을 낸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공한 작가들이 있고, 그렇게 해도 문제는 없지요. 하지만 긴 인생에 걸쳐서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쓰는 일이 의미가 없고 와타나베 선생님의 말마따나 재미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라면 기본적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창조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작가는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므로 스스로를 부정할 줄 아는 용기도 있어야겠지요. 말하자면 작가로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에, 125쪽)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대담 당시 예순 다섯이던 두 사람은 이제 여든을 훌쩍 넘겼다. 오자와 세이지는 보스턴 심포니에서 물러나 스승의 이름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바뀐 오자와 세이지 마쓰모토 페스티벌(옛 사이토 기넨 페스티벌 마쓰모토)과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미래의 예술가들을 키우는 데 마지막 남은 힘을 쏟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 역시 일생을 지켜온 호흡으로 꾸준히 새로운 작품과 글을 발표하고 각종 현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책임 있는 삶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한 개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책임감을 지닌 ‘새로운 개인’이 되어주길 당부한다.
    _
    오자와 _ 얼마 전 〈피가로의 결혼〉을 연습하고 나서 음악 교실 학생들과 함께 뒤풀이 겸 간단한 중국 요리에다 맥주를 마셨어요. 그때 한 여학생이 “여기서 많이 배웠는데 앞으로 제가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하고 직설적으로 묻더군요.
    오에 _ 멋진 질문이네요.
    오자와 _ 저는 “우리에게는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다”고 대답했어요. “너희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고, 나는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너희가 음악가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먹고사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이에 한계가 있으니 내가 죽기 전까지만 그런 세상이 되도록 애쓰겠다. 내 노력이 너희에게 영향을 줄지 어떨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절박하기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오에 _ 하하. 멋있군요. 연주회였다면 박수를 보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오자와 _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274쪽)

    목차

    우리는 동갑내기 _ 오에 겐자부로
    살아온 시대,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예술은 인간을 지탱하는 것
    ‘새로운 세계인’을 바라며
    대담에 감사하며 _ 오자와 세이지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에 살면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도 않았고 외국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고통을 겪은 역사가 없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똑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개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약해요. 한 사람의 개인으로 똑바로 서는 건 다른 개인에게 디렉션이 있는 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겁니다. 그런 디렉션은 당연히 맞은편에 사람이 서 있어야만 제구실을 하겠지요. 다른 개인이 있어야 방향을 알고 거리를 파악해서 힘껏 공을 던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개인으로 서는 것 자체를 에고이즘이라든가 개인 중심주의로 볼 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원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개인이 혼자 설 수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해요.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런 인식이 약합니다. 국가와 사회부터 생각할 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개인과 일대일로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 p.83)

    우리 음악계도 거품 경제 때, 그러니까 일본에 돈이 넘쳐났을 때 외국에서 온갖 것을 마구 사들였어요. 당시엔 우리 음악가들이 외국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외국 것을 돈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자존감이 확 떨어지더군요. 일본의 음악계는 돈으로 그 위치를 산 게 아닌가 싶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외국의 음악가와 교류한다거나 청중이 음악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게 중요한데, 그런 수준까지 자연스럽게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야 일본이 비로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버블이 터졌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일본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회복했지요. 21세기에는 일본인들이 국가보다, 그리고 사업보다 진정으로 소중한 건 인간 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 p.81)

    “내게 소설은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지금껏 부모로서 아들에게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 주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키워 왔는데, 이제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내 일은 끝났다.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삶에 비하면 소설은 내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 p.31)

    표현하는 데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표현을 뜻하는 익스프레션expression이라는 영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표현한다는 건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짜내어, 그러니까 레몬에서 즙을 짜내듯 안에 있는 걸 짜서 밖으로 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내면에서 무엇을 어떻게 짜내느냐가 중요해요. 그리고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던져서 표적을 맞출 것인지, 또 어느 방향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던질지도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중요하지요. 결국 표현은 중요한 이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p.51)

    정치 쪽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고려해 오자와 씨와 로버트 만 씨의 음악 교육 모델을 정치가를 육성하는 데 적용하면 좋을 거예요. 플라톤의 《국가》에는 교육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현대 국가의 정치가들에게도 그 같은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학교 교육 탓이겠지만 일본 정치가들은 제대로 말할 줄을 몰라요. 쓰는 어휘도 한정되어 있지요. 그렇다 보니 유머가 없어요. 정상회담 같은 자리에서 회의 초반에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것 정도는 할 줄 아는데 그 이상은 할 줄 몰라요. 사실 그런 식의 구태의연한 농담은 유머가 아니에요. 그냥 농담일 뿐이지요. 일본 정치가들에겐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없어요. 히틀러 식의 극적인 전개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민주주의에 맞게 이야기를 극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자와 씨와 로버트 만 씨 같은 분들이 음악을 가르치듯이 이야기할 줄 아는 정치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서는 그런 정치가가 나오는 게 불가능할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 p.100)

    ... 극단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국가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는 ‘나’라는 개인보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저는 현재 보스턴 심포니에도 소속되어 있고,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에도 속해 있어요. 그러나 ‘나’라는 개인을 버리고 두 단체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나’라는 개인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책임도 져야겠지요. 저는 보스턴 심포니의 리더로서 재임하는 동안 책임지고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지만, 잘되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둘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두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방법으로 책임질 겁니다. 저는 늘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하지 않고 구성원 모두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진행하다 보면 겉은 민주주의지만 속은 엉성한 민주주의랄까, 결과적으로는… 리더 개인이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을 취하게 되는데, 이게 가장 무서운 겁니다.
    (/ p.110)

    그런데 요즘 들어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문학이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 나오는 소설을 보면 인간을 지탱하는 문학의 힘이 근본적으로 약해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예술의 힘, 예컨대 음악의 힘이나 문학의 힘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맥락에서 예술가를 어떻게 가르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와서 아주 좋은 사례를 봤습니다. 저는 특히 음악을 듣는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예술가와 함께 보조를 맞춰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 pp.116~117)

    연주가 끝난 뒤 대담하는 자리에 서 우치다 씨가 사회자에게 질문을 했어요. 역시 음악가다운 질문이더군요. 음악에서는 어째서 고전이 매일같이 연주되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가, 그러니까 클래식 음악, 이를테면 바흐나 말러의 곡이 전 세계적으로 매일이다시피 연주되고 현대인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지요. 문학 작품의 경우는 고전이 매일 읽히지 않습니다. ... 저는 아내와 히카리 앞에서 그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저와 같은 나이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19세기 전에는 작곡가가 작곡과 연주를 겸했고, 그 후로는 연주자 시대가 펼쳐졌다고 말한 걸 소개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지요. 지금도 고전 음악이 꾸준히 연주되고 사랑받는 건 연주자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에요.
    (/ pp.118~119)

    아까 21세기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새로운 시대인 만큼 일본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개인’이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그러니까 한 개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사람, 개인으로서 자긍심을 지닌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일본이 지금과 다른 나라, 다른 사회가 되지 않겠나 싶은 겁니다.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로 모든 젊은이가 ‘새로운 개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야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니까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겠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새로운 개인’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 p.144)

    오에 씨는 자꾸 시골 출신이라고 하시는데, 뭐랄까 통속적으로 표현하면 헝그리hungry 의식을 갖고 계신 게 아닌가 싶어요. 다케미쓰 선생과 저도 그랬어요. 맨 처음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감상에 젖어 있었지요. 낭만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케미쓰 선생이나 저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거나 유명한 대기업에서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되거나 임원이 되겠다는 식의 각오나 결심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오로지 음악을 하겠다는 낭만적인 생각만 품었지요. 하지만 다케미쓰 선생과 저는 아주 절박한, 벼랑 끝에 내몰려 앞이 보이지 않는 헝그리 상태에 빠져서 지냈어요. 오에 씨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 p.160)

    에너지의 원천은 의외로 단순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성에 대한 욕망, 먹고 싶은 욕구, 먹고살려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같은 데서 생기는 게 에너지 아닐까요? 그런데 갈수록 그런 것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배고파서 음식을 실컷 먹고 싶은 갈망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닐 테지요. 21세기에는 IT인지 뭔지 하는 것 덕에 더 정교하고 편리한 기계가 쏟아져 나오고,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하게 전개되겠지만 기본적인 욕망이 없으면 인간의 삶은 황폐해져요. 방금 말했듯 인간의 에너지는 그 같은 기본적인 욕망에서 나오는데, 그 에너지를 대체할 만한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 p.161)

    오든은 시에서 ‘위험 감각sense of danger’이 없으면 안 된다며 완만한 오르막처럼 보여도 위험 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했어요. 말하자면 ‘헝그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는 늘 위험 감각을 지니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말을 위기 감각이라 표현해도 좋겠지요. 사실 ‘지금이 위기다’라는 감각을 지니는 게 중요해요. 특히 젊은이들이 위기 감각을 갖고 온 힘을 쏟아 분투하려는 마음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저는 ‘위험 감각이 없으면 안 된다’는 오든의 말을 지금까지 인생의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 p.162)

    이타미 주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 관한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실렸어요. 그 기사를 보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게 팩스를 보냈습니다. 그때 뉴욕은 낮 시간이었고 일본은 한밤중이었는데, 저는 잠들지 못한 채 깨어 있었지요. 팩스에는 유감이라는 애도의 글과 함께 음악을 들어 보라는 글이 적혀 있더군요. 그 음악은 그의 책 《뮤지컬 일래버레이션스》에도 소개된 것인데, 책을 읽은 덕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지요. 그것은 브렌델이 어느 콘서트에서 연주한 브람스의 〈주제와 변주, 작품 18b번〉이었어요. 에드워드는 브렌델이 그 곡을 앨범에 넣지 않았다면 NHK 방송국이든 어딘가에서 브렌델 연주회 앙코르 영상을 빌려서라도 들어 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너무 슬퍼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위로와 격려를 했습니다.
    (/ p.195)

    제가 아무리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한다고 해도 일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실과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를 중국과 일본에서 보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사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실을 깨닫고는 반년 동안 아내와 상의한 끝에 아이들을 일본에 데려왔습니다.
    (/ p.219)

    네, 오자와 씨는 나가노 동계 올림픽 때 전파로 세계를 하나로 이어서 인터내셔널한 규모로 만들고는 그것을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을 흥분시켰어요. 그러니까 오자와 씨의 시선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스물 몇 명 되는 자그마한 지역의 사람들도 살펴보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인간관계를 꿈꾸어 왔어요. 저는 소설에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 마을이라든지 도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일본보다는 전 세계를 무대로 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설명하기가 좀 애매한데, 방금 오자와 씨가 하신 말씀과 비교해 보면 제 생각을 이해하실 겁니다.
    (/ p.227)

    저는 일본이나 호주, 한국, 중국 모두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각각 세계의 지방 중 하나라고 봅니다. 중심이라고 여기는 건 뒤떨어진 생각이에요. 미국, 프랑스,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변두리면 어떻고, 교외면 어때요.
    (/ p.228)

    저자소개

    오에 겐자부로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5
    출생지 일본 남부 시코쿠의 에히메 현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5,924권

    1935년 일본 남부 시코쿠의 에히메현에서 일곱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도쿄 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인 1957년에 〈기묘한 일〉을 대학 신문에 발표해 일본 문단의 찬사를 받았고, 1958년에 〈사육〉으로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967년 《만엔 원년의 풋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1973년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로 노마 문예상, 1982년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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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와 세이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중국 선양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35년 만주 봉천(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나 여섯 살 무렵 일본으로 이주했다.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음악 명문인 도호 학교에 진학하여 사이토 히데오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지휘를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해 브장송 국제청년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고, 이듬해 버크셔 음악센터(현, 탱글우드 페스티벌) 지휘자 콩쿠르에서도 쿠세비츠키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베를린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사사했고, 1961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취임했다. 시카고의 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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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피그맨]으로 2012년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아너 리스트 번역 부문에 선정되었다. 옮긴 책으로 [어느 수학자의 변명]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 [1984]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에덴의 동쪽] [휴먼 코미디] [리브라]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북풍의 등에서]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 [기적의 세기] [첫사랑의 이름] [온 뷰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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