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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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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독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의 시집 - 103편의 시와 해설 수록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헤세는 소년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90여 년 동안 줄곧 시인의 길을 걸어온 '진정한 시인'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을 살펴볼 때 희곡은 전혀 없고, 소설은 객관적인 사회소설이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 표백(自己表白)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극단적으로 말해 주관적 서정시(抒情詩)라고도 할 수 있는 성질의 소설들이다. 따라서 작가 헤세의 이해는 시를 무시하고서는 불가능한 작업이 될 것이다.
    "나는 본래 소설가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헤세의 소설 작품에는 대부분 자작시(自作詩)나 인용시가 삽입되어 있다. 그의 절창(絶唱)인 [안개 속에서]는 단편 [가을의 도보 여행]과 함께 묶어놓은 형태로 발표되었고, 그의 출세작 [페터 카멘친트]에는 연인을 위한 시 [엘리자베트]가 실렸으며, 로렌초 메디치의 시 [청춘의 노래]가 인용되었다. 또 단편 [청춘은 아름다워라]의 제목은 그러한 구절이 포함된 민요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 초판본 앞머리에는 그 민요가 실려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유리알 유희]에도 주인공의 유고시(遺稿詩) 형식으로 13편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그의 소설과 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출판사 서평

    [해설 - 헤세의 생애와 시]

    헤세의 생애와 작품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1877년 7월 2일, 독일 슈바르츠트 동북부, 나골트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소도지 칼프에서 태어났다. 칼프는 뷔르템베르크 지방의 한 골짜기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늑한, 오래된 마을로, 부근에 있는 숲속의 들풀 향기와 시냇물 소리, 천렵(川獵) 등은 헤세의 유년 시절의 추억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후에 [수레바퀴 아래서], [청춘은 아름다워라] 등에서 아름답게 묘사된다. 고향 칼프에서 보냈던 그의 유년 시절은 헤세 문학의 원천(源泉)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시인의 고장'이라 불리던 슈봐벤 지방에서 태어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시인의 정수(精粹)라 할 횔덜린, 뫼리케, 실러, 동화작가 하우프 등도 이 지방을 고향으로 하고 있는 만큼 어린 헤세는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세가 네 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스위스 바젤로 이주한다. 개신교 목사였던 부친 요하네스 헤세가 바젤에서 개신교 잡지 편지를 맡았기 때문이다. 요하네스 헤세는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발트해(海) 삼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 출신이다. 그는 개신교의 전도에 뜻을 두어 바젤 전도본부를 거쳐 인도에서 포교에 종사하던 중 병을 얻고 귀국한 후, 위대한 인도학자이자 포교사인 헤르만 군데르트의 조수로 복음출판 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헤세는 유년 시절 이후 자신이 태어난 곳에 정주(定住)하지 않고 스위스로 떠난 만큼 그의 고향은 '먼 데서 그리워하는 곳'의 이미지로 그의 정신세계에 강하게 뿌리내려, 그로 하여금 고향을 절실히 동경하는 '고향의 시인'이 되게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폐쇄적인 향토시인이 아니었다. 인도학자인 조부와, 부모를 통해 넓은 세계와의 유대(紐帶)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 그 자체에 대한 헤세의 경도(傾倒)된 친근감과 이해는 여기에서 기인(起因)한 것이라 하겠다.
    어린 헤세는 이상한 체력과 지력(知力)으로 어머니를 놀라게 하고 괴롭히기까지 하였다. 뭔가 유별난 것이 그를 내부에서부터 뒤흔들어 놓는 듯했다. 그것을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모른다는 듯이 헤세는 걷잡을 수 없이 격한 성격의 아이였다. 불과 네 살의 어린 나이로 지은 시와 열 살 때의 동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시작(詩作)에의 충동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시인이 된다는 것은, 올곧은 목사 집안이 아니더라도 그 당시엔 바라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헤세가 시인으로서의 길을 찾기까지의 혼미와 격동은 그 자신과 부모를 몹시 괴롭혔을 것임에 틀림없다.
    1886년, 그의 가족은 다시 칼프로 돌아왔다.
    이 무렵의 그의 생활은 19세까지의 회상과 함께 [나의 유년 시절]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던 옛날 이야기와 아버지가 낭독해 주곤 했던 괴테 시에 대해 그가 가졌던 인상은 다시없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때도 분명히 그의 내부에선 '시인'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목사의 아들은 역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자연아(自然兒) 헤세는 고기 낚는 일도, 토끼몰이도 체념하고,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팅엔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라틴어와 그리스어 습득에 전념,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신학자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 이어서 1891년에는 말브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를 전후한 그의 고통, 불안, 기쁨, 긍지 등 복잡한 감정이 [수레바퀴 아래서]에 생생히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처받기 쉬운 소년의 민감한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신학교 교육은 헤세를 '수레바퀴'로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게 된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애써 입학한 학교생활에서 실망과 좌절만을 경험한 헤세는 반년 후, 거의 노이로제 상태가 되어 신학교를 도망치고 만다. 수재였던 그가 정신병자, 낙오자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그는 무엇보다도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고 [마술사의 유년 시절]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의 마술사, 즉 시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현실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헤세는 잠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부모에 의해, 정신요법을 행하는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라는 목사에게 맡겨졌는데 곧 자살 미수로 돌려보내진다. 1893년엔 학업을 중단하고 에쓰링엔의 서점원이 되었으나 이틀 만에 도망쳐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고등학교에 다시 보내자 교과서를 팔아 권총을 사는 등 불량학생으로 지내다 마침내 퇴학을 당하기에 이른다.
    그 후 헤세는 17세로 칼프에 있는 페로 시계공장의 견습공 노릇을 하면서 독학으로 문학 공부에 열중하다가, 다음해 1895년에는 대학 도시 튀빙엔의 헌책방 헤켄하우어에서 점원 및 조수로 일하며 창작에 힘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책을 파는 사람'에서 '책을 쓰는 사람'으로 변모해 가던 헤세는 1899년 처녀 시집 [낭만의 노래(Romantische Lieder)]를 자비 출판했다. 이 시집에는, 환상적인 애상(哀傷)이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가락을 담은 시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그 시집은 아무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같은 해에 헤세는 산문집 [한밤중의 한 시간(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을 꽤 이름난 서점에서 냈으나 초판 6백 부 중 고장 53부밖에 팔리지 않았다. 후에 노벨상 수상자가 된 대문호도 그 출발은 참담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산문집은 헤세보다 두 살 위인 릴케로부터는 "예술적 경건(敬虔)의 산물"이라는 이해 깊은 비평을 받았다.
    시를 쓰는 점원은 주인으로부터 환영 받지 못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1899년, 친하게 지냈던 바젤의 R. 라이히 서점으로 옮겨 간 헤세는 시간만 나면 스위스나 이탈리아 등지를 번번이 여행하여 그 인상을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러다 1901년엔 시문집 [헤르만 라우셔의 유작(遺作)과 시(Hinterlassene Schriften und Gedichte von Hermann Lauscher)]를 냈는데, 이 책에서 그는 강한 낭만적 유미주의(唯美主義)의 색채에 환상적이고 독특한 문체를 이루어 놓고 있다.
    이 점을 인정받은 헤세는 1902년 [시집(Gedichte)]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시인이 되고자 한 헤세의 숙원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고생시킨 어머니에게 이 시집을 바칠 기쁨에 차 있었는데, 불운하게도 간행 직전인 1902년 4월에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것은 1905년 [청춘 시집](증보판)으로 제목을 바꿨으나, 원래 내용 그대로 오늘날까지도 계속 간행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헤세의 시적 재능은 독일의 유명한 현대문학 출판사인 피셔 사(社)로부터도 인정받아, 1904년 그의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가 간행되었다. '향수(鄕愁)'라고도 번역되는 이 소설에 담긴 인간적인 인생탐구 정신과 신선한 문체, 싱그러운 자연묘사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헤세를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끌어올렸다. 이 해에 그는 9세 연상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여 라인강 상류 보덴 호(湖) 부근의 한가한 시골 가이엔호펜으로 이주, 그곳에서 본격적인 창작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1906)와 [게르트루트(Gertrud)](1910)의 두 장편 외에 많은 시와 에세이를 발표하고, 단편집 [이웃 사람들(Nachbarn)](1908), 중단편집 [이편에서(Diesseits)](1907)를 간행했으며, 세 명의 사내아이 브루노·하이너·마르틴을 낳는 등, 창작 생활과 결혼 생활 양편에서 모두 풍요한 결실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가이엔호펜과 부부 생활에 환멸과 권태를 느낀 그는 1911년 여름, 한 식민지 무역상(貿易商)의 호의로 화가 친구 한스 슈투르체네거와 함께 싱가포르, 수마트라, 인도 등지를 몇 개월 동안 여행했다.
    오래된 동양의 오묘한 지혜를 만나지 못해 실망스런 여행이었지만, 강한 이국정취와 풍부한 색채의 열대 풍물들은 그의 시심(詩心)을 살찌우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는 피부색과 사용언어는 달라도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인상을 강하게 느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평화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1912년 단편집 [우회로(迂廻路, Umwege)]를 발간하고, 가족과 함께 스위스 베른 교외로 옮겨 갔다. 이듬해 여행기 [인도에서(Aus Indien)]를 발표한 데 이어 1914년에는 예술가의 가정생활의 어려움과 그 파국을 그린 소설 [로스할데(Rosshalde)]를 발간했다. 이 작품은 헤세의 결혼 생활의 파국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勃發)하자 그는 안팎으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입대를 자원했으나 군무 불능(軍務不能) 판정을 받은 그는 베른의 독일 포로 후생사업에 적극 가담했다.
    그 후 그는 스위스 한 일간지에 "사랑은 미움보다 숭고하고 평화는 전쟁보다 존귀하다"는 요지의, 극단적 애국주의에 반대한 비평문을 발표하여 인류에게, 특히 문화인들에게 증오와 전쟁을 부채질하는 일은 그만두자고 호소했는데, 이 온건한 반전운동(反戰運動)이 그를 독일의 배반자, 매국노로서 탄핵받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전쟁 희생자를 위한 위문 문고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계속했다.
    그를 지지한 사람은 후에 서독 초대 대통령이 된 호이스,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롤랑 등 극히 소수였다. 특히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롤랑과의 친교는 그에게 무엇보다도 큰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둘 사이의 이 유례없는 우정은 롤랑 사후 헤세로 하여금 전쟁과 정치에 관한 시사평론집(時事評論集) [전쟁과 평화(Krieg und Fried)](1946)를 롤랑에게 바치고, 1954년에는 두 사람의 우정의 기념비라 할 [헤세―롤랑 서신 교환집]을 발간하게 했다.
    1916년 단편 [청춘은 아름다워라(Schon ist die Jugend)]를 발표할 즈음 그는 아버지 요하네스의 죽음, 막내아들 마르틴의 중병, 아내 마리아의 정신병 악화와 그에 따른 입원, 자신의 신병(身病) 등으로 정신적·육체적 위기에 빠져 정신적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자 1919년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남스위스 몬타뇰라로 이주하여 보헤미안적 생활을 하면서 집필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으론 [귀향(Die Heimkehr)]과 [데미안(Demian)] 등이 있고, 단편집 [작은 정원(Kleiner Garten)], 정치평론집 [차라투스트라의 복귀(Zarathustras Wiederkehr)]를 간행하기도 했다. 한편 제로〔零〕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 아래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장편 [데미안]은 전후(戰後) 혼미해 있던 독일의 정신계(精神界)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었다.
    시와 수필에 자신이 직접 그린 수채화를 삽입한 아름다운 시화집(詩畵集) [방랑(Wanderung)] 및 [화가의 시(Gedichte des Malers)], 고호적 자화상이라 할 같은 제목의 중편이 실린 중단편집 [클링조르의 마지막 여름(Klingsors Letzter Sommer)], 구도자(求道者)의 이야기를 그린 [싯다르타(Siddartha)] 등 이색적인 작품집도 잇따라 간행되었는데, 이들 작품의 기조(基調)는 '내면(內面)으로의 길', 즉 자기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 부인과 정식 이혼한 후 1924년 루트 벵어와 결혼한 헤세는 1927년엔 그녀와도 이혼하고 마는데, 같은 해에 발간된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에는 그러한 자기탐구 정신과 통렬한 문명 비판 정신이 표리(表裏)를 이루고 있다.
    1930년에 발간된 대작(大作) [지와 사랑(Narzi? und Goldmund)]은 밝고맑은 지혜와 다채로운 사랑, 높은 정신과 강렬한 관능이 융합되니 원숙한 결정(結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진(眞)과 미(美)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반발하면서도 서로 끌리는 특수한 우정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이 진리와 아름다움의 끊임없는 추구는 1932년에 발간된 [동방순례(Die Morgenlandfahrt)]로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헤세 소설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이상(理想) 소설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1943)의 전주(前奏)가 된다.
    1931년, 체르노비츠 출신 예술사가(藝術史家) 니논 돌빈과 결혼한 헤세는 이후 몇 년간은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스가 출현하자 평화주의자인 그는 환영 못 받는 작가로서 1945년까지 독일에서의 책 출판을 금지당한다. 대전 당시엔 스위스에 국적을 두고 주로 취리히의 주르캄프 사에서 작품집을 냈으나, 작가 활동과 사생활에 위협을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과 고충을 극복하고 출간된 대작 [유리알 유희]는 헤세에게 1946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영광을 안겨준다. 이어서 그는 괴테상, 빌헬름 라베상, 서독출판협회의 평화상 등을 수상하게 되는데, 당시 몸이 몹시 쇠약해 있던 그는 시상식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만년의 그는 몬타뇰라의 한가로운 거주지에서 대나무, 동백, 감 등 동양적인 식물을 재배하며 문자 그대로 청경우독(晴耕雨讀)의 나날을 보냈다. '함께 번민하는 자'로서 세계 각국의 유명무명(有名無名)의 독자에게 편지를 띄우는 한편 보다 원숙하고 깊이 있는 시와 산문을 계속 썼던 것이다.
    자칭 '혼자 가는 자'라 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세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친구로서 살다가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몬타뇰라에서 방랑의 일생을 마감했다.

    시인으로서의 헤세와 시 감상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헤세는 소년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90여 년 동안 줄곧 시인의 길을 걸어온 '진정한 시인'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을 살펴볼 때 희곡은 전혀 없고, 소설은 객관적인 사회소설이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 표백(自己表白)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극단적으로 말해 주관적 서정시(抒情詩)라고도 할 수 있는 성질의 소설들이다. 따라서 작가 헤세의 이해는 시를 무시하고서는 불가능한 작업이 될 것이다.
    "나는 본래 소설가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헤세의 소설 작품에는 대부분 자작시(自作詩)나 인용시가 삽입되어 있다. 그의 절창(絶唱)인 [안개 속에서]는 단편 [가을의 도보 여행]과 함께 묶어놓은 형태로 발표되었고, 그의 출세작 [페터 카멘친트]에는 연인을 위한 시 [엘리자베트]가 실렸으며, 로렌초 메디치의 시 [청춘의 노래]가 인용되었다. 또 단편 [청춘은 아름다워라]의 제목은 그러한 구절이 포함된 민요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 초판본 앞머리에는 그 민요가 실려 있다. 노벨상 수상작 [유리알 유희]에도 주인공의 유고시(遺稿詩) 형식으로 13편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그의 소설과 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 시인으로서의 헤세의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시업(詩業) 전체를 개관해 보기로 하겠다. 그의 독립된 시집에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낭만의 노래](1899),[시집](1902),[도상(途上)에서](1911)
    [고독한 자의 음악](1915), [화가의 시](1920), [시선집(詩選集)](1921)
    [위기, 일기의 단편(斷片)](1928, 한정판), [밤의 위안](1929)
    [사계절](1931, 한정판), [생명의 나무에서](1934, 시선집)
    [신시집(新詩集)](1937), [시 10편](1940, 한정판), [시집](1942, 시전집)
    [꽃가지](1945, 시선집), [만년(晩年)의 시](1946, 한정판)
    [계단(階段)](1961, 신구 시선집), [후기 시집](1963)

    처녀 시집 [낭만의 노래]에 실린 시들은 주로 눈부신 대낮을 두려워하고 황혼의 쓸쓸한 정취에 젖어 세상에서 쫓겨난 아웃사이더의 향수를 노래하고 있다. [덧없는 청춘], [고백 1, 2], [마을의 저녁], [나는 천공에 뜬 별] 등이 그것인데, 낭만적이고 현실유리적(現實遊離的)이지만 센티멘털한 독자적 멜로디와 정서를 감추고 있는 시군(詩群)이라 할 수 있다.
    헤세의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음악적이지만, 특히 [낭만의 노래]에서 [고독한 자의 음악]까지는 책 이름에서도 엿보이듯이 매우 음악적인 시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음악이 우선한다"는 P. 베를렌느의 신조(信條)는 헤세의 그것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특히 초기 시집들은 민요조(民謠調)의 순수한 기분에 잠겨서, 깊이는 부족하지만 아름다운 애상에 기분 좋게 취하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낭만의 노래]에서는 그와 같은 세계가 극히 좁고 그런 만큼 순수했지만, [시집](후에 증보되어 '청춘 시집'으로 이름을 바꿈)에 이르면 그 세계는 넓어지고 다채로워지며 내면적 깊이를 갖는다.
    여전히 음악적인 성격을 기조로 하면서 고독과 향수와 방랑의 기쁨 및 슬픔이 순례자, 즉 방랑자의 마음으로 구가(謳歌)된다. [안개 속에서], [엘리자베트], [흰 구름], [라벤나] 이하 일련의 이탈리아 여행의 노래가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고독한 자의 음악]은 헤세 시 전체 중 으뜸가는 것들에 알맞은 제목이라 하겠다. 그는 '고독한 자의 음악'을 연주하며 '내면으로의 길'을 걸어가는 방랑자인 것이다. 이 시집을 선물 받은 로맹 롤랑이 헤세를 '노래의 천재'라 불렀듯이, 여기에는 [꽃가지]를 위시하여 독일 노래의 새로운 소리라 할 만한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또한 종래의 감상적이고 감미로운 민요조를 극복하고 고독자의 내적 싸움 끝에 지은 시들도 많이 눈에 띈다. 고독감에의 영원한 탄식이 아니라 무상(無常)한 인생에의 침체가 자주 동양적인 지혜와 이어지는 표현에 이르고 있는[때때로], [행복], [홀로] 등 풍미 깊은 가작(佳作)들이 이 시기의 산물이다.
    [밤의 위안]에는 제목과는 달리, 편안한 잠을 방해하는 극심한 고뇌가 기성(旣成)의 불협화음과 더불어 울리는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낭만의 노래]에서 맛볼 수 있는 감미로운 멜로디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헌신(獻身)], [시인의 최후] 등이 그 전형적인 것으로, 헤세는 자기 안의 추악한 일체의 것과 혼란을 토해내 버리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1차 대전 후의 격동(激動)이 반영되어 있는 만큼 자기와 세계에 대한 회의(懷疑)를 격렬하게 뱉어 내고 있지만, [화가 놀텐을 다시 읽고]의 마지막 구절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시가 손짓하면 고통은 미소 짓는 것을 배운다"라는 시인의 자세를 헤세는 잃지 않고 있다. 주옥(珠玉) 같은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파랑 나비]나 언어 본질을 엿보게 하는 역작(力作) [말] 등, 혼란기임에도 충실성으로 넘쳐 있는 시들도 이 시기에 씌어진 것이다.
    한편 헤세는 소설을 통해 자신이 인간과 신(神)의 탐구자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시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점점 강해져 갔다. [고독한 자의 음악]에서 이미 [이집트 조각의 수집품 중에서]와 같은 소위 사상시(思想詩)가 발견되는데, [밤의 위안]을 거쳐 [신시집]에 이르면 현대적인 사상시에로의 경사(傾斜)가 한층 더 강해진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학예(學藝)의 정수(精髓)를 다한 고도의 유희를 구상한 [유리알 유희]에도 13편의 사상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질의 시 중 최고 걸작은 [성찰(省察)]이다. 이 시는 헤세 시업의 정화(精華)로, 인간 존재의 무상함과 위태로움 그리고 곤란과 동시에 높은 의의(意義)가 힘찬 내적 리듬으로 노래되고 있다. 헤세는 종교와 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이 시를 읽어 주었으면 하고 대답하곤 했다.
    이 후기 작품들에는 일관된 무상함과 함께 현실 세계에 대한 실망, 현대 문명에 대한 회의가 특히 강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차츰 밖과 안, 문물(文物)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게 되고, 자기 자신이 되고 인간이 되는 길 위에 신에게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암시하는 커다란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만사 새옹지만(人間萬事 塞翁之馬)요, 비눗방울처럼 덧없는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그 속에 영원한 빛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설사 세계가 전쟁과 불안에 숨 막힐지라도
    여기저기 곳곳마다 남몰래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지라도.
    (/ '전쟁 4년째에' 중에서)

    [전쟁 4년째]에서 위와 같이 노래하고 있듯이, 그의 시 속에는 슬픈 부정 속에서도 밝은 긍정이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헤세는 생전(生前)의 마지막 시집에 [계단(階段)]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수록 시 [계단]에 따른 것이다. 헤세는 이 시에서 인간에게는 영속적인 안주(安住)는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은 항시 이별과 재개(再開)를 각오해야 한다, 인생이란 하나의 단계에 이별을 고하고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이란 없고, 우주정신은 우리를 한 계단 한 계단 높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미소 지으며 현세(現世)에 작별을 고한다. [안녕, 세상이여]에는 현실 세계와 으르렁거렸던 헤세의 화해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시는 헤세의 장례식 때 그의 관(棺) 앞에서 낭독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상으로 헤세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헤세의 면모와 각 시집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는데, 아무리 우리가 시인 헤세에 접근하고자 할지라도 그 많은 시집에 수록된 시 전부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헤세 시선집의 필요성이 생겨나는바, 이번에는 또 어떤 시를 어떻게 선택하여 한 권의 시집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헤세는 생전에 자신의 시선집을 네 번이나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인 [꽃가지]를 만드는 중에 있었던 일화(逸話) 한 가지를 한 신문 속에 기록해 놓았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해에 헤세는 시선집 한 권을 내서 누이 아델레에게 바치고자 했다. 그때 헤세와 니논 부인이 각각 따로 시를 골라 비교해 보니, 70편 중 공통적인 것은 놀랄 정도로 적었다는 것이다. 서로 퍽 잘 아는 사이인 두 사람이었는데도 이처럼 선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의외인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었다고 헤세는 술회하고 있다.
    이 일화는 예술 작품에 있어 객관적인 표준 설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나타내 준다. 아름다움이란 그 좋고 나쁨이 각 개인의 기호(嗜好)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편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시선집이나 교과서에 거듭 실린 헤세의 시는 거의 이 두 사람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고 하니, 만인에게 사랑받는 시는 자연히 공통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本) 선집은 시 발표 연대와는 상관없이 헤세 시의 대표적인 것 103편을 내용면에서 크게 세 장으로 분류하여 실었다. 그 분류와 배열 방법은 어디까지나 옮긴이의 임의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 옮긴이의 능력 부족으로 원시의 미묘한 가락과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옮기지 못했지만, 시인으로서의 헤세를 만나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 서석연 / 전 성균관대 교수

    목차

    1. 청춘과 사랑의 노래
    초상(肖像)
    덧없는 청춘
    어느 여인에게
    사랑의 노래
    나는 거짓말쟁이
    괴로움 안고
    쓸쓸한 밤
    흰 장미
    고백 1
    고백 2
    연인에게 보내는 엽서
    비난(非難)
    사랑
    시들어 가는 장미
    7월의 아이들
    봄날
    여름 저녁
    일찍 찾아온 가을
    가을
    어느 소녀에게
    니논에게
    내 사랑하는 여인들
    연인에의 길
    내 고향은 어디
    다 마찬가지
    초여름 밤
    가을날
    겨울날
    라벤나
    엘리자베트 1
    엘리자베트 2
    엘리자베트 3
    엘리자베트 4
    그대 없이는
    안녕, 세상이여

    2. 방랑과 고독의 노래
    안개 속에서
    들을 지나서
    흰 구름
    방랑길에서
    두 골짜기에서
    북국(北國)에서
    새털구름
    폭풍 속의 이삭
    구름
    생명의 가을
    홀로
    나비
    나는 천공에 뜬 별
    파랑 나비
    눈 속의 나그네

    6월의 바람 부는 날
    8월
    9월
    10월
    11월
    마을의 저녁
    여름 밤
    가을의 향기
    꽃가지
    꽃, 나무, 새
    활짝 핀 꽃
    음울한 겨울날
    깊은 밤 거리에서
    어머니께
    어머니의 정원에는
    아우에게
    때때로
    고독한 밤
    어린 시절
    귀향(歸鄕)

    3. 삶과 사색의 노래
    전쟁 4년째에
    내면으로의 길
    위안
    밤의 정감
    행복
    재회
    평화
    죽음은 형제
    기도
    운명
    향연이 끝난 후
    젊은이
    변화
    무상(無常)
    취소(取消)
    편지
    목표
    피에졸레

    예술가

    라벤나
    알프스 고개
    그는 어둠 속을 걸었다
    환희
    때늦게
    복된 시간
    비오는 나날
    순례자
    흑기사(黑騎士)
    비눗방울
    꽃에 물을 주며

    계단

    해설 - 헤르만 헤세의 생애와 시
    연보

    저자소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77.07.02~1962.08.09
    출생지 독일
    출간도서 348종
    판매수 126,203권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브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헤세는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기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했다. 그 후 서점의 견습사원이 되면서부터 독서에 몰두하며 문학수업을 쌓았다.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릴케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문단에서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1904년에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는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그 후 1906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수레바퀴 아래서 ]를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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