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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태준
  • 출판사 : 범우사
  • 발행 : 2015년 07월 20일
  • 쪽수 : 15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0806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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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한국단편소설의 대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모음 - 패강랭 외
    농군, 밤길, 돌다리, 해방 전후 등 단편 수록!


    상허 이태준의 예술적 성취는 작가의 미적 기교가 완숙기에 접어든 1930년대 후반의 작품에서 그 진가를 한껏 발휘한다. 특히 1930년대 말에 발표된 [까마귀](1936), [복덕방](1937), [밤길](1940) 등의 작품들은 한국소설사를 찬란하게 수놓으며 우리 소설문학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를 한다. [밤길]에는 식민지 사회의 변두리에 존재하는 소외된 선량하고 성실한 성품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서울 수표교 다리 부근에서 행랑살이를 하고 있던 황 서방은 첫아들을 보게 되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가족을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인천으로 내려와 건축 공사판에서 막일을 한다. 이처럼 선량한 인간이 직면한 암울한 상황을 감정과 의식의 과잉 없이 형식적 정제를 거쳐 전달하면서 절망적 시대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을 드러내는 탁월한 수법은 가히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찬사가 허튼소리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밤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허 소설에서 사건은 밝은 대낮보다는 어슴푸레한 새벽과 저녁을 포함한 어두운 시각에 보다 많이 발생한다.

    상허의 중단편 소설을 공간적 배경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고향](1931), [서글픈 이야기](1932) 등과 같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두루 배경이 되고 있는 작품들, [농군]처럼 만주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 등 세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상허의 중단편 소설은 이렇게 예외 없이 일제 식민지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약간의 공간적 변주變奏를 거쳐 당대인의 초상과 슬픈 삶을 담아 내고 있다. 중단편 소설은 다시 작가의 체험과 신변담을 다룬 작품, 작가 자신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당대인들의 불우한 처지를 애정어린 눈길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 그리고 현실세계의 일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좌절과 패배 등 현실성이 농후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보아도 상허의 소설에는 사회성이 없다는 기존의 평가는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는 [패강랭](1938)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더듬어 보자. 주인공 현은 대동강 가 부벽루, 연광정 등지를 거닐며 “조선의 자연은 왜 이다지도 슬퍼 보이나” 하고 한탄한다. 현은 소설 제작상의 문제로 평소 평양에 오고 싶었으나 좀처럼 시간을 못 냈었는데 마침 이곳의 조선어 선생으로 있는 박이란 친구의 편지를 받고 내려오게 되었다. 점차 우리말 교육을 축소하고 물자절약이라는 이유로 평양 고유의 풍습을 제한하는 등, 음산한 일본 제국주의의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다. 현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평양이 마치 폐허처럼 느껴진다. 을밀대에 서 있는 병사를 보고 그냥 강가로 내려와 약속된 요정으로 온다. 박은 이곳 부회 의원이요 실업가인 김과 함께 와 있었다. 김은 현실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조선의 전통적 문물마저도 기꺼이 버려야 한다고 자신의 현실적 처세관을 피력한다. 이에 현은 김과 한바탕 언쟁을 벌이다 “이 자식? 되나 안 되나 우린 우린…… 이래 봬두 우리……”이라는 말로 울분을 토하면서 슬리퍼 차림으로 강가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즉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주역周易]의 말을 상기하며 전신에 엄습하는 냉기를 느낀다.

    이러한 작품 내용은 [패강랭]이 조선 고유의 혼을 말살시키려는 일제의 탄압과 그로 인한 고난의 엄습을 예감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생생하게 담아 내려 한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노력한 경향의 작품들 중에서는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 [농군]을 언급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더 이상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이주한 윤창권 일가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을 담아 내고 있다. [돌다리]는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소설로 땅에 대한 신구新舊 세대의 갈등과 물질주의에 물든 가치관에 대한 비판, 그리고 농토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해방 전후]는 작가가 해방 전후 상황변화에 따른 주인공의 의식변화 과정에 중점을 두고 묘사되었다. 당시 식민지 현실을 살아온 주인공의 자기반성과 성찰을 중심으로 지식인의 내면의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끝으로 해방 이듬해 여름, 작가는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서평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 예술성 짙은 작품을 창작하여 발표한 뛰어난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은 우리에게 상반되어 보이는 삶의 행적을 남겨 놓았다. 난과 서화 같은 고색古色 취미를 즐기고 이념적 문학에 반발해 예술성 짙은 작품을 창작한 뛰어난 소설가요, 친일을 한 문단의 지도적 인사이자 이념의 수렁에 빠져 파멸한 불운한 지식인이다. 언뜻 한 인물에게서 나온 것 같지 않은 상반된 삶의 궤적은 굴곡 많은 한국의 근대사가 개인에게 드리운 어떤 강한 영향력을 감지케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대립적인 삶의 발자취가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다가오기에 앞서 비극적 모순으로 느껴지는 데 한국사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상허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창하李昌夏와 모친 순흥 안씨順興安氏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의 이력 중 특이한 점은 부친이 철원공립보통학교 교관과 덕원감리서 주사를 지낸 개화파의 일원이었다는 것과 모친이 소실이었다는 점이다. 1909년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머나먼 이국 땅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로 이주하지만, 아버지가 급작스레 별세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가족들은 함북 배기미〔梨津〕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배기미에 이주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은 1912년, 이번에는 어머니 안씨마저 죽게 되는 불행이 닥친다. 이태준은 두 자매와 함께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는데, 이때 이태준이 9세, 손위 누이는 12세, 누이동생은 겨우 3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로 인한 고아의식이 상허의 소설에 짙은 흔적을 드리우게 된다. 이후 그는 낮에는 상점 점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나가 공부를 하는 등, 곤궁한 생활을 꿋꿋하게 견디면서 향학열을 불태운다. 1921년 4월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을 하는데, 이 당시 휘문에는 스승으로 가람 이병기, 같은 학예부원으로 상급반에 정지용, 김영랑, 박종화 등이 있었다. 상허는 곤궁한 생활 탓에 학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교장의 배려로 교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학비 면제의 혜택을 받는다. 이를 통해 다소간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된 그는 문학작품을 읽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태준은 학교의 비리를 규탄하는 동맹휴교 사건에 적극 가담하다가 주모자로 몰려 1924년에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 사건은 그의 해방 후의 행적과 관련해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이라 생각된다. 퇴학처분을 받은 상허는 휘문고보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을 받아 일본유학 길을 떠난다. 동경에서도 그는 나도향, 김진원 등과 함께 ‘우애학사’에 기거하면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된 고학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나 1927년 4월 동경 상지대 예비과정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같은 해 11월 끝내 상지대를 중퇴하고 귀국길에 오르고 만다. 그런 이태준이 문단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은 동경에 머물고 있던 1925년,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22세의 나이에 [조선문단]에 투고한 [오몽녀五夢女]라는 작품이 입선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치게 되는 것은 동경 상지대를 중퇴하고 귀국한 1927년 이후의 일이다. 그는 [개벽開闢]사에 입사하던 1929년 이후부터 1953년 무렵까지 소설은 물론 동화에서 수필, 그리고 희곡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태준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는 만주사변(1931년)에서 중일전쟁(1937년)을 거쳐 태평양전쟁(1941년)에 이르는, 계속 확대되는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온갖 수탈과 정치적 억압을 받았던 1930년대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활동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광복 이후를 거쳐 한국전쟁 무렵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이태준이 활발히 창작활동을 하던 시기와 암울하고 혼란스런 역사적 시기가 중첩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중첩을 통해 미적 자율성을 옹호하며 예술적 기법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 주고 있는 이태준의 작품이 단순히 개인적 취향의 소산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의 부단한 상호 관련 속에서 일구어진 결과물임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여러 가지 창작방법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숫자 면에서도 1920년대보다 3배나 많고 1940년대에 비해서도 2배에 이르는 작품이 창작되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혹독한 탄압과 민족말살 정책으로 이어지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솟아난 이 역설의 현상. 이태준은 그 역설적 현상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걸출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태준이 문학의 자율성을 주창했다고 해서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창작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개벽]사에 입사한 1929년부터 [학생學生]과 [신생新生]의 편집에 관여하였으며, 1931년에 [중외일보] 기자를 거쳐 이 신문의 폐간 후 그 후신으로 창간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 일을 맡기도 한다. 이때 대단한 파문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견에도 불구하고 호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니면서까지 이상의 <오감도烏瞰圖>를 게재한 사실은 지금도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이 시기에 상허는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얻고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여 훗날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여러 단편과 많은 수의 신문 연재 소설을 쓰게 된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사정이 점차 어려워지자 1938년에는 그 작품세계에서 심한 갈등을 보이며 새로운 문학적 변모를 도모한다. 그리하여 [농군農軍]과 같은 현실인식이 투철한 적극적인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가중되는 시대적 압력으로 말미암아 이 노력은 더 큰 결실을 맺지 못한다.

    1939년에는 갓 창간되어 [인문평론]과 함께 당대를 주도하던 대표적인 문예지 [문장文章]의 편집을 맡지만, 이 잡지도 2년여를 겨우 넘기고 끝내 일제日帝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의해 1941년 4월에 폐간되고 만다. 창간사에서 황도정신皇道精神을 외치며 일제의 구미를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폐간되고 만 이 잡지의 운명은 곧 이태준의 앞날이기도 했다. 그는 창작활동을 계속하다 일제의 탄압이 가열되자 별다른 저항의 자세를 보이지 않고 그들의 정책에 순응한다. 그리하여 황군위문작가단·조선문인협회 등의 단체활동에 관여하고 그들이 주는 ‘조선예술상’을 수상하면서 친일적 경향의 글을 몇 편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 활동이 소극적이고도 미온적이었으며 작품의 내용 또한 친일 성향이 그다지 강렬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이 자신의 양심에 용납되지 않은 듯, 그는 [왕자 호동]을 마지막으로 붓을 꺾고 낙향하여 낚시를 하는 등 유유자적한 생활로 소일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한편 광복 후 상허가 보여 준 행동은 표면적으로 보아 그동안 자신이 견지했던 문학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라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는 1939년에 결성된 예술성을 중시하는 ‘구인회九人會’ 모임을 주도하며 카프가 주도해 온 이념 편향의 예술에 반대하여 예술의 심미적 자율성을 옹호하는 순수문학 진영의 중추적 역할을 떠맡았었다. 그러던 그가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해방 전후解放前後]를 발표하면서 일대 사상적 전환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임화林和에 앞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와 함께 1946년 월북한 그는, 소련을 다녀와서 쓴 [소련기행]이라는 글을 통해 가뜩이나 팽배해 있던 좌경이념이 미군정美軍政 치하의 남한에서 급속도로 번지는 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사상적 변모를 가져온 원인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지만 우리에게 그 답변이 명확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사적 영웅심 때문에 문단의 헤게모니를 쥐려고 좌익으로 돌아섰다”는 비판적 증언도, “단순히 옛 친구의 구명운동을 위해서”라는 그를 옹호하려는 발언도 존재한다. 또 “남한 정부의 부패한 현실에 대해 작가적 순결성이 불만을 갖게 되어 월북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에서 “어느 섬세한 감성의 민족주의자가 해방과 더불어 자신의 철저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기 위해 사상을 선택했고, 결국 그 괴물에 짓밟혀 참혹하게 난도질당한 대표적 존재가 바로 이태준”이라는 설명에 이르기까지 좌익 행적의 원인을 설명하려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월북 후 남로당의 숙청과 함께 이태준은 한동안 북쪽의 문학사에서도 사라지고 남쪽에서도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불운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금기의 장벽도 여타의 월북작가와 더불어 이태준이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문학적 비중으로 말미암아 마냥 그를 이념의 장막 속에 가두어 놓지 못한다.

    ◎ 김동인이 주춧돌을 놓고 현진건이 갈고 닦은 현대단편소설을 완성한 단편문학의 대가
    그렇다면 이태준이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우선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단편문학의 대가’라는 말로 모아진다. 이제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공인된 사실이지만, 이태준은 김동인이 주춧돌을 놓고 현진건이 갈고 닦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을 완성한 단편문학의 대가이다.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문장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으려는 듯이 보이는 치밀하고 정확한 구성, 실감이 살아나는 선명한 인물의 창조 등, 그의 단편작품들이 발산하는 예술적 향취는 그것들을 단편소설의 한 전범으로 간주하게끔 만든다.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타고난 예술적 재능의 소산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그는 작품을 발표한 후 계속적으로 문장을 다듬고 개작하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완벽한 예술품으로 완성하려 했다. 휘문고교의 교지 [휘문]에 실린 6여 편의 습작기 작품은 그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이들 습작기 작품은 상허의 데뷔 작품이 나오기 불과 1년 전에 씌어진 것으로 상허의 문학청년 시절의 면모를 알려 줄 뿐만 아니라 상허 문학의 원형과 그 형성과정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습작기를 마친 상허는 1925년 [시대일보]에 [오몽녀]를 발표하면서 드디어 문단에 공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이후 그는 주옥같은 단편소설들을 써 내어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고 덮어두려 해도 덮을 수 없는 크나큰 자취를 남기게 된다. 그가 프로문학에 반기를 들고 결성된 ‘구인회’의 좌장을 맡고 여러 글을 통해 문학의 순수성을 드높이 주창한 탓인지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주로 문장의 묘미와 소설의 기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선입견을 집어던지고 보면 예상 밖으로 그의 작품이 당대의 역사적 현실과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녀작 [오몽녀]만 해도 그렇다. 이 작품의 배경은 함경북도 최북단 동해변에 위치한 항구인 서수라西水羅 인근의 궁핍한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에 오몽녀라는 젊은 여인이 늙고 가난한데다가 눈까지 먼 지 참봉池參奉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생선을 훔치러 바닷가에 나갔다가 배 주인인 총각 어부 금돌에게 발각되어 정을 통하기도 하고, 평소에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던 남 순사에게 사소한 일을 트집잡혀 몸을 허락하기도 한다. 김동인의 [감자]와 비교되기도 하는 이 작품에서 오몽녀는 자유분방한 애정행각과 불륜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한 여인이라기보다 어둡고 궁벽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밝은 삶을 지향하는 여인으로 형상화된다. 이때 궁핍한 식민지 시대를 틈타 그녀의 여색을 탐하는 주재소 남 순사의 횡포를 벗어나 사랑의 탈주행각을 벌이는 그녀의 능동적 행위는 현실의 모순과 가난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기교의 집합체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 세련된 문학적 기법과 잘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으로 거듭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패강랭
    농군
    밤길
    돌다리
    해방 전후―한 작가의 수기
    □ 연 보

    저자소개

    생년월일 1904.11.04~1970?
    출생지 강원도 철원
    출간도서 103종
    판매수 60,192권

    이태준(李泰俊)의 호는 상허(尙虛)이고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에서 부 이창하와 모 순흥 안씨 사이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다. 이태준은 1909년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지만,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해 함북 이진(梨津)에 정착한다. 1942년 모친이 별세해 고아가 되고, 외조모에 의해 고향 철원 용담으로 귀향해 친척집에 맡겨진다. 1915년 철원 사립봉명학교에 입학하고 1918년 3월에 우등으로 졸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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