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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 황학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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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사랑과 상처의 아름다운 무늬, 고즈넉한 서정의 풍경

    1987년 시집 [사람] 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독특한 어법과 돌발적인 비유로 한국 서정시에 다채로움을 더한 개성적인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황학주 시인의 열번째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가 출간되었다. [某月某日의 별자리] (지혜 2012) 이후 2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랑과 슬픔과 고독이 뒤섞인 고즈넉한 서정의 풍경 속에 감성적이고 "차가운 육감의 세계"(이근화, 추천사)를 펼쳐 보인다. 더욱 원숙해진 시선으로 생(生)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직 우리 시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날것의 체험"(송재학, 발문)을 섬세하고 정갈한 언어로 갈무리한 시편들이 둔중한 울림 속에서 서늘한 감동을 자아낸다.

    한사람의 젖어가는 눈동자를|한사람이 어떻게 떠올리는지 모르지만|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한다|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파탄이 몸을 준다면 받을 수 있겠니||숨 가쁘게 사랑한 적은 있으나|사랑의 시는 써본 적 없고|사랑에 쫓겨 진눈깨비를 열고|얼음 결정 속으로 뛰어내린 적 없으니|날마다 알뿌리처럼 둥글게 부푸는 사랑을 위해|지옥에 끌려간 적은 더욱 없지||예쁘기만 한 청첩이여|목이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좀 아프면 어때|아픔은 피투성이 우리가 두려울 텐데
    (/ '얼어붙은 시' 중에서)

    ‘사랑과 상처의 시인’으로 불려온 황학주 시인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가장 소중한 삶의 방식으로 여긴다. "온몸으로 서로에게 저물어가"( [진학] )는 사랑은 타자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하여 "아직 한번도 못 본/한사람을 위해 유랑하고 있는|시"( [백야] )는 "빨랫방망이로 두드려놓은|맑은 물"( [우물터 돌] )처럼 순결한 생의 바탕으로서 시인의 순정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 "숨도 쉴 수 없는|행복하게 외로웠던 순간들"( [그렇게 협소한 세상이 한사람에게 있었다] )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시인은 사랑의 불가해한 현상 속에서 삶의 근원과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어느날 야윈 눈송이 날리고|그 눈송이에 밀리며 오래 걷다||눈송이마다 노란 무 싹처럼 돋은 외로움으로|주근깨 많은 별들이 생겨나|안으로 별빛 오므린 젖꼭지를 가만히 물고 있다||어둠이 그린 환한 그림 위를 걸으며 돌아보면|눈이 내려 만삭이 되는 발자국들이 따라온다||두고 온 것이 없는 그곳을 향해 마냥 걸으며|나는 비로소 나와 멀어질 수 있을 것 같다|너에게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사랑은 그렇게 걸어 사랑에서 깨어나고|눈송이에 섞여서 날아온 빛 꺼지다, 켜지다
    (/ '겨울 여행자' 전문)

    사랑은 으레 고통과 상처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심장을 싸맨 채 우는"( [짝] ) 고통 속에서도 시인은 사랑을 발견해내며 "한 사랑을 겪은 눈물이 두 사랑을 겪은 눈물이 될 때까지"( [받아적으면 소설이여, 그녀가 말했다] ) 사랑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한다.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은 일대일이다"( [올리브나무에 스미는 저녁 직전] )라고 말하는 시인에게 어쩌면 사랑의 완성은 곧 죽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했지만||누가 있다 방금 자리를 뜨자마자|누가 있다 깍지 속에서 풀려나와 눈보라 들판 속으로 들어가는||사랑이란|매번 고드름이 달리려는 순간이나 녹으려는 순간을 훔치던 마음이었다|또한 당신의 눈부처와 마주 보고 달려 있었다||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언젠가 빈집에선/일생 녹은 자국이 남긴 빛들만|열리고 닫힐 것이다||그때에도 겨울은 더 있어서|누가 또 팽팽하게 매달려 올 것이다|자유를 춥게 배우며|그 몸 얼음 난간이 되어
    (/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전문)

    시인은 이제 어느덧 "저절로 살구 떨어지는 시간"( [살구 떨어뜨린 살구처럼] )에 들어섰다.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노숙"( [망원] ) 같은 "생의 모든 간이역"( [망원] )에서 "날숨과 들숨의 행간 같은 삶과 죽음"( [아란을 돌아나와 아란에 닿다] )을 깊이 성찰하며 시인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하여 "한참씩 눈을 감아도 좋은|긴 노래의 뒤편 같은 올리브나무 환한 적막"( [올리브나무에 스미는 저녁 직전] ) 같은 시인의 고요한 삶의 한켠에 은은한 빛이 쏟아져내린다.

    조용한 동네 목욕탕 같은|하늘 귀퉁이로|목발에 몸을 기댄 저녁이 온다||만년은 갸륵한 곳|눈꺼풀 처진 등빛, 깨져간다|눈꺼풀이 맞닿을 때만 보이는 분별도 있다||저녁 가장자리에서|사랑의 중력 속으로 한번 더 시인이여,|외침조차 조용하여 기쁘다||하늘 귀퉁이 맥을 짚으며|물 흐르는 소리에 나는 웃음을 참는다||땅거미와 시간을 보내는|혼자만의 땅거미 무늬가 내게 있다
    (/ '만년[晩年]' 전문)

    추천사

    누구나 자연의 시간 위에 서 있지만 아무도 그 시간을 그대로 살지 않는다. 황학주 시인은 이제 "저절로 살구 떨어지는 시간"에 들어섰다. 그러나 영혼은 집이 필요없고 떠도는 영혼의 가장 친한 벗은 시인이어서 "혼자만의 땅거미 무늬"를 찾아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나와 당신이 ‘넘어진’ 시간이 그곳에 있어 문득 고개를 들고 잠깐씩 빛이 들기 때문일까. 사랑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새의 그림자를 키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란’의 해안 절벽이 그러하듯. 차가운 육감의 세계가 여기에 펼쳐진다. 고향과 타지, 여행지의 풍경들이 뜨겁게 살아난다. 그림자가 무럭무럭 자라 그에게 슬픔과 고독을 되돌려줄지라도 끝까지 가보기 위해 그는 조용하게 발걸음을 딛는다. 감자꽃이 "감자의 안쪽으로 가만히 옮겨"지듯이. 감자의 안쪽을 파는 일. 그래서 다시 허무와 정적을 건너는 시인의 어깨는 숭고하다. 희망이 최면에 불과하더라도 그는 매번 사랑과 죽음의 무늬를 생의 이쪽에 부려놓는다. 고드름은 처마가 아니라 허공에 매달리는 것. "자유를 춥게 배우며/그 몸 얼음 난간이 되어" 겨울을 또다른 겨울로 이어주는 것. 우리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허무와 정적을 깨고 미풍이 분다. 바람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나 언어에 새겨진 무늬가 차고 아름답다. 그 무늬를 더듬어가는 일은 ‘당신들’을 닮아가는 일일 것이다. 궁벽한 곳에서 외롭고 가난하게 서 있는 당신들에게 배운 것이 사랑이므로. 언젠가 나의 슬픔과 고독 역시 당신들의 그것에 잇대어 가만히 눈을 감을 것이므로.
    - 이근화 / 시인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
    출생지 전남 광주
    출간도서 9종
    판매수 352권

    1954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했다.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 [저녁의 연인들] 등의 시집과 시선집 [상처학교] 등을 냈다. 제1회 서울문학대상, 제3회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1992년 케냐 봉사활동을 갔다가 대자연과 가난하지만 순박한 그곳 사람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후 지인들과 뜻을 모아 2004년 아프리카민간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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