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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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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언어와 고통이 낳은 시의 불완전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는 최규승 시인의 육필시집.
    표제시 <시간 도둑>을 비롯한 38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습니다.
    글씨 한 자 글획 한 획에 시인의 숨결과 영혼이 담겼습니다.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연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을 출간합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이 자신의 대표작을 엄선해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과 독자가 시심을 주고받으며 공유하는 시집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현재 한국 시단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들이 자신의 대표시를 손수 골라 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눌러 쓴 시집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이미 작고하셔서 유필이 된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시인의 시집도 있습니다.

    시인들조차 대부분이 원고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현실에서 시인들의 글씨를 통해 시를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시인들의 영혼이 담긴 글씨에서 시를 쓰는 과정에서의 시인의 고뇌, 땀과 노력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시의 시대는 갔다"는 비관론을 떨치고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시인이 직접 골라 손으로 쓴 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들이 지금까지 쓴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라 A4용지에 손으로 직접 썼습니다. 말하자면 시인의 시선집입니다. 어떤 시인은 만년필로, 어떤 시인은 볼펜으로, 어떤 시인은 붓으로, 또 어떤 시인은 연필로 썼습니다. 시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시인들의 글씨는 천차만별입니다. 또박또박한 글씨, 삐뚤빼뚤한 글씨, 기러기가 날아가듯 흘린 글씨, 동글동글한 글씨, 길쭉길쭉한 글씨, 깨알 같은 글씨... 온갖 글씨들이 다 있습니다. 그 글씨에는 멋있고 잘 쓴 글씨, 못나고 보기 싫은 글씨라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인들의 혼이고 마음이고 시심이고 일생입니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를 책머리에 역시 육필로 적었습니다. 육필시집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쓴 육필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을 디자인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시인의 육필 이외에 그 어떤 장식도 없습니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씨들이 있는데, 독자들이 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 목록

    1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 모음집 [시인이 시를 쓰다]
    2 정현종 [환합니다]
    3 문충성 [마지막 눈이 내릴 때]
    4 이성부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5 박명용 [하향성]
    6 이운룡 [새벽의 하산]
    7 민 영 [해가]
    8 신경림 [목계장터]
    9 김형영 [무엇을 보려고]
    10 이생진 [기다림]
    11 김춘수 [꽃]
    12 강은교 [봄 무사]
    13 문병란 [법성포 여자]
    14 김영태 [과꽃]
    15 정공채 [배 처음 띄우는 날]
    16 정진규 [淸洌集]
    17 송수권 [초록의 감옥]
    18 나태주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19 황학주 [카지아도 정거장]
    20 장경린 [간접 프리킥]
    21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22 고재종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23 이동순 [쇠기러기의 깃털]
    24 고진하 [호랑나비 돛배]
    25 김철 [청노새 우는 언덕]
    26 백무산 [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27 윤후명 [먼지 같은 사랑]
    28 이기철 [별까지는 가야 한다]
    29 오탁번 [밥 냄새]
    30 박제천 [도깨비가 그리운 날]
    31 이하석 [부서진 활주로]
    32 마광수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33 김준태 [형제]
    34 정일근 [사과야 미안하다]
    35 이정록 [가슴이 시리다]
    36 이승훈 [서울에서의 이승훈 씨]
    37 천양희 [벌새가 사는 법]
    38 이준관 [저녁별]
    39 감태준 [사람의 집]
    40 조정권 [산정묘지]
    41 장석주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42 최영철 [엉겅퀴]
    43 이태수 [유등 연지]
    44 오봉옥 [나를 던지는 동안]
    45 차옥혜 [햇빛의 몸을 보았다]
    46 배창환 [소례리 길]
    47 최종천 [용접의 시]
    48 김용범 [마음의 빈터]
    49 김형수 [아침 이슬 두 말]
    50 김주대 [살며-시]
    51 김태형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52 박상률 [꽃동냥치]
    53 황규관 [삼례 배차장]
    54 나해철 [위로]
    55 윤제림 [강가에서]
    56 이재무 [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
    57 최규승 [시간 도둑]
    58 박 철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59 이승철 [오월]

    목차

    시인의 말

    걸어간다
    고통
    공사 중
    귀향
    그림자놀이
    노을의 시간
    데칼코마니
    멸치
    몰라
    무중력 스웨터
    바라본다
    반지를 잃다?
    벗는다
    분갈이하다
    사이시옷
    소실점
    소염 진통제
    시간 도둑
    아방가르드
    아지랑이
    에스 라인
    여행
    연두부
    오후 3시, 벽의 발라드
    왈츠
    6인용 병실
    은유
    이상한상이
    자화상
    조사
    지렁이

    처럼처럼
    치매
    커튼
    태풍주의보
    하루
    호텔 블루스

    최규승은

    본문중에서

    밤의 색깔이 걷히지 않았으면
    이불의 구김과 티셔츠의 목선이 서로 감겼으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이 천천히 떠올랐으면
    시집에 밑줄이 죽죽 그어져 이어졌으면
    헝클어진 신발들이 가지런해지지 않았으면
    선풍기 날개가 멈추지 않았으면
    창을 넘어 들이닥친 바람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으면
    꽃들이 뚝뚝 목이 꺾여 화단 모퉁이에 쌓였으면
    테니스코트 녹색 천막에 형광색 공들이 퍽퍽 박혔으면
    거기에 거꾸로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으면
    시곗바늘은 그대로인 채 시계만 빙빙 돌았으면
    가끔 꽥꽥 소리 지를 때 현관문이 덜컹 열렸으면
    화분의 물기가 영원히 마르지 않았으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3분 25초에서 바늘이 계속 튀었으면
    체중계의 눈금이 멈추지 않았으면
    수술대 위의 열린 가슴이 닫히지 않았으면
    그 속의 심장이 영원히 멈추지 않았으면
    (/ '시간 도둑' 중에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 대서소가 꽤 많았다. 관공서가 모여 있는 도심과 학교 근처뿐만 아니라 동네에도 하나 정도는 지금의 문방구처럼 대서소가 있었다. 큰 대서소에는 젊은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대서는 대개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이른 이의 일이었다. 이들은 오른팔에 토시를 끼고, 매우 진지하고 긴장된 자세로 손목을 신중히 움직여 글씨를 써 나갔다. 아직 글자도 배우지 못한 어린 내게도 그이들의 하얀 손목이 여간 멋있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대서소에 한 번도 일을 맡겨 보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했다. 서류뿐만 아니라 관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문서, 심지어는 가정 통신문의 회신도 모두 아버지의 차지였다. 그래서 종종 아버지 대신 내가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내가 쓴 것처럼 우쭐해져서 반 친구들을 자신만만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이미 나는 아버지의 필체를 따르고 있었다. 심지어는 아버지의 사인까지 그대로 따라할 수 있어서 아버지는 더 이상 가정 통신문의 회신을 작성할 수 없었다. 도장보다는 사인을 선호하는 아버지 덕분에 나는 성적이 떨어져도 걱정이 없었다. 성적표의 학부모 확인란은 이때부터 내 차지였다. 자신을 얻은 나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대필해 주고 있었다.
    어느새 내 글씨는 은밀한 편지를 벗어나 벽을 장식하게 외었다. 손이 붓고 어깨가 아파도 대서의 날은 계속되었다. 대자보판 앞에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 때는 아픈 어깨도 금세 낫는 듯했다. 가끔 공연 포스터에 쓰일 글씨를 부탁받을 때는 반듯함을 넘어서 한껏 멋을 부려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애써 써 붙인 대자보가 비에 젖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훼손됐을 때보다 더 의기소침해졌을 때는 사람들이 외면할 때였다. 그때의 가슴 아픔이란....
    다시 작은 글씨로 은밀한 글씨를 써 내려가게 되었다. 이때 나는 김수영, 이성복, 김혜순, 오규원 등의 시를 옮겨 적으며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필사를 해 나갔다. 이미 세상에서 대서소가 사라지고 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시(詩)도 자판으로 ‘치는’ 시대가 왔으므로 ‘대서의 시절’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몸으로 익히는 시가 머리로 익히는 시보다 훨씬 강렬했으므로 나는 필사를 멈추지 않았다.
    시인들의 시를 적은 대여섯 권의 다이어리를 그녀에게 선물하고 나는 시인(詩人)이 되었다. 이제 다시 내 시를 옮겨 적는다. 필경사의 마음으로 대서소의 그이들처럼, 그리고 아버지처럼.... 내 시이지만 내 것이 아닌 시(詩). 그런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 시는 ‘시(詩) 쓰기’라는 형식으로 ‘시(詩) 하기’의 내용을 채워 나간다. 아무리 자판을 두드려도 시는 쓰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시인(詩人)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3/ 경남 진주 출생
    2000/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
    2006/ [무중력 스웨터](천년의시작) 출간
    2012/ [처럼처럼](문학과지성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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