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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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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가슴을 파고드는 생명의 온기, 사랑의 숨결

    생동하는 시어와 발랄한 상상력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시세계를 보여준 김선우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가 출간되었다. 세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를 펴내면서 “당분간 시를 떠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시를 청탁받고 발표하는 관행으로부터 떠나 있는 일”이라고 밝혔던 시인은 그동안 두권의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하여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본업의 자리로 돌아와 5년 만에 펴내는 반가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인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비루한 삶 속에서도 생의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는 긍정의 마음을 펼쳐 보인다.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며 타자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애잔한 사랑의 시편들이 가슴 한켠을 촉촉이 적신다.

    목련꽃을 사랑하는 이에게/목련 열매를 마저 보여주어라//꿈지럭거리며 허물 벗는 무섬증 같은//여러개의 심방을 가진 심장,/분열하는 붉은 열매를 찢고//꽃이 사뿐 날아오를 때//꽃을 기억하는 사람의/꽃이 아니라//꽃이 기억하는 열매까지/보여주어라//꽃으로 보여주어라([목련 열매를 가진 오후] 전문)

    여린 듯하면서도 당찬 목소리로 가슴을 파고드는 김선우의 시는 생명의 온기와 사랑의 정념으로 충만하다. 삶의 방식은 달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시인은 “야산 오솔길 벤치”에 “사흘째 잠에서 깨지 않은 채 딱딱해진” 노인을 “나흘째 경찰이 와 마대자루에 담아”([눈많은그늘나비])가는 비정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사람이/사람 위에 사람 위에 사람 위에 살게 되었나”([잘 구워진 메아리가 접시 위에 앉아 있다]) 되묻는 시인은 “구겨져도 아픔을 모르는 착한 혼(魂)들”([구석, 구석기 홀릭])을 감싸안으며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하여 삶의 비극을 넘어서는 연대적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척박한 땅이어서 더욱 단단해진/비구상(非具象)의 슬픔,/할 말이 너무 많아 입을 꾹 닫은 심장 같다//꾸덕꾸덕한 심장 속에 자기도 모르는/여리고 따뜻한 누군가의 목숨줄이 생겨나/너는 좀 넓은 데서 숨쉬라고 가만히 뱉어놓은,//주먹만한 자줏빛 심장들이/그렇게 밭 하나를 이룬 것 같다//땅 밑 어둠속/옆에서 옆으로 번져간 뿌리줄기/자기 옆의 슬픔에 가만히 기댄 듯한,//꽃을 본 적 없는데 꽃의 향내를 품게 된/내 캄캄한 당신의 옆([옆] 전문)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제국 시대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시인은 전세계로 시야를 넓히며 “폭탄이 쏟아지는 건너편 땅을 바라보며 신(神)을 가진 사람들이 브라보! 외”([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무덤])치는 참혹한 역사의 현장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젊은 날 그 자신도 이 땅에서의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은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시인 마무드 다르위시([그림자의 키를 재다])의 숭고한 삶을 되새기고, 미군의 팔루자 학살과 이라크전쟁 이후 오폭과 학살로 숨진 민간인 희생자들을 “부수적 피해”로 치부하는 미국의 오만과 “죽은 사람들이 밀려드”는 묘지로 돌변한 축구장에서 “해골처럼 덜그럭거”리는 “해를 차며 아이들이 달”([축구장 묘지])리는 무참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현실을 한 꺼풀씩 드러낸다.

    이상하지 않니? 지구 곳곳 대도시의 거리엔 죽은 사람들이 걸어다녀. 죽은 지 너무 오래되어 죽은 걸 잊어버린 사람들. 묘지가 없어도 서운하지 않은 사람들.//이상하지 않니? 식량은 충분한데 한편에선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 죽어가는 아이들 옆에서 배불리 먹은 걸 토하다 죽어버린 사람들이 걸어다녀. 색색으로 물들인 죽음들을 쇼핑하는 누군가들―//묘지 속은 시끄러워./아무도 울어줄 사람이 없는데,/세상은 왜 이렇게 고요하지?([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무덤] 부분)

    에코페미니즘과 불교 사상에 닿아 있는 김선우 시인은 물질사회의 풍부함보다는 자연의 영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생태적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잿빛 도시의 검은 빌딩 숲을 벗어나 오랜 시간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온 시인은 “조그만 나뭇잎 한장 속에/일생의 나무 한그루와 비바람이 다 들어 있”([눈 그치고 잠깐 햇살])음을 꿰뚫어보는 예지의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시인은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난 이파리”에서도 “누군가에게 자기를 덜어 먹인”([허공의 내력]) 흔적을 보며 상생의 조화로운 삶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겨울 숲 새 둥지처럼 군데군데/한없이 여린 풀빛이 뭉쳐 있다/물세탁한 지폐처럼 보드라운 풀빛//인간의 사전은 그 풀빛을 ‘기생’이라 부르지만/참나무와 겨우살이의 공생은 그들의 사정/옹이가 더러 굵어지고 열매를 조금 덜 맺지만/조금 덜 가지고 함께 살 수 있어 참 재미난다고/쪼글한 입매로 웃는 참나무의 말을 들었다고 할까//(…)신비가 사라진 세상을 위로하는/풀빛 마법을 보았다고 할까//꼭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이것 하나,/산천초목의 마음이 모두 인간의 사전 같을라구!([겨우살이] 부분)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시인은 환경과 생태계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간간이 칼럼을 통해 4대강 사업과 후꾸시마 원전사고 등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을 해온 시인은 “진화가 가장 늦된 존재가 되어버린”([여전히 반대말놀이])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에 대한 폭력을 경고하고, 구제역 파동으로 인한 “살처분” 행위를 명백한 “집단 살해”([얼음놀이])로 규정하는가 하면, “상처입기 쉬운” 피부를 가진 “지구라는 구형(球形)의 짐승”이 인간에게 “신세지는 게 아니라” 인간이 “붙어사는 거”([달방 있음])라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종이 한장을 쓰더라도 나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인은 바다풀로 종이를 만든다는 소식을 접하자 희망의 불빛을 발견한다.

    바다풀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발명되었다,/소식을 듣자마자 이력서를 쓰고 있어요/바다풀 공장에 취직하고 싶어요//나무들의 유령에 쫓겨 발목이 자꾸 끊어지는/잊을 만하면 덜컥 나타나는 악몽이 지겨워요/청동구두 같은 종이구두가 무서워요/(저 좀 들여보내주세요)//나무들에 대한 진부한 속죄는 말고/바다풀 냄새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요/내가 만든 종이로 바다풀 시집을 엮고 싶어요([바다풀 시집] 부분)

    불혹의 나이를 넘긴 시인은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아직 그 모두를 사랑할 자신은 없어서/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마흔])고 고백한다.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불명예다”([아직])라고 말하는 시인은 “세상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인 사랑의 시간을 “행복한 생성의 기억”([사랑에 빠진 자전거 타고 너에게 가기])으로 소중하게 간직한다. “쓸쓸하다,를/동사로 여기는 부족을 찾아/평생을 유랑하”([쓸쓸하다])며 뭇 생명을 “만나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싶은,/서로의 몸을 깍지 낀 채 함께 머무는”([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시인의 “무한한 혁명”은 “아픈 곳에서 태어나는” 희망의 그물코를 엮으며 “불치의 것들과 함께 끝까지”([아직]) 가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수만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올려졌다/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무한 하늘 한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별들이 움직였다/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부분)

    추천사

    어떤 사랑은, 사랑이되, 자신을 버리고는 지속되지 못한다. 아니 모든 사랑이 그런 것이라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그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거꾸로 그대의 삶을 위해 나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준 것이 김선우의 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시가 보여준 ‘몸’의 생동감이, ‘편협한 사랑’의 정치가, 그래서 때로 ‘시체놀이’를 수반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제 시를 쓰는 일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갱생의 과정이 된다.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잠깐 죽은 척했던 게 분명한데/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느낀다. 적어도 시를 통해 “새로 태어나는 척”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잠시 죽은 사람의 마음으로, 그의 시를 읽는 것이다.
    - 이장욱 / 시인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0~
    출생지 강원도 강릉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8,536권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부상당한 천사에게], 장편소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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