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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적막 - 창비시선 256]

    1984년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등을 통해 사회현실에 대한 단호한 인식과 섬세한 서정을 함께 거두어온 박남준의 신작시집. 시인의 나이 사십대에 펴내는 마지막 시집이라는 개인적 의미와 함께, 민중성과 서정성의 접점에서 긴장을 유지하며 생태적 상상력으로 시적 지평을 넓혀온 문학적 여정이 갈무리된 시집이다.

    1984년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등을 통해 사회현실에 대한 단호한 인식과 섬세한 서정을 함께 거두어온 박남준의 신작시집. 시인의 나이 사십대에 펴내는 마지막 시집이라는 개인적 의미와 함께, 민중성과 서정성의 접점에서 긴장을 유지하며 생태적 상상력으로 시적 지평을 넓혀온 문학적 여정이 갈무리되는 시집이다. 정제된 사유가 돋보이는 1부, 일상의 섬세한 결을 적어내는 2부, 가족 내력에 역사를 포개어 육화하는 3부, 맑고 그윽한 서정을 담은 4부로 ‘삶으로 밀고가는 시’의 전범을 보여준다.
    [적막]을 떠받치는 시적 사유의 큰 줄기 하나는 자연의 일부로서 스스로를 그 속에 놓는 생태적 상상력이다. "푸른 나무의 생애가, 그가 저 하늘을 향해 닦아가던/가지가지마다의 반짝이던 길들이/한번쯤은 보이지 않을까"([쓰러진 나무])에는 나무의 형상과 생태에서 연원하는 시인의 존재 상승의 선망이 잘 드러난다. 그것은 "죽은 나무 줄기를 타고 칡덩굴이 감고 오른다/그가 수직의 삶으로 밀어 올리던 물줄기처럼/(...)/머지않아 나무는 다시 살아나리라"([몸을 바꾼 나무])처럼 부활과 환생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풍란의 뿌리를 만지며 "어느 절벽의 바위를 건너왔을까/가끔 내 전생이 궁금해지기도 했다"라며 자연 속에서 윤회하는 생명의 궤적을 떠올리기도 한다.

    [적막]에는 또한 자연 속에 은거하는 시인의 생활체험이 진하게 묻어난다. 최근 지리산 자락으로 거처를 옮긴 시인의 생활은 때로는 탈속의 팽팽한 긴장으로, 때로는 세속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화살나무])에서 보듯, 시인은 탈속과 세속의 자의적인 가름보다는 그 어느 쪽에서든 합일하고픈 대상을 향한 그리움의 순도를 정제하는 데 주력한다.

    시인의 그리움의 대상은 여러 층위로 겹쳐져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혈육에 대한 세속적 부채감에서 출발하여, 나아가 가족사의 단편을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외삼촌 찾으러 갈 테다]에 인용된 쪽지(북송되는 장기수 편에 전달했다는)에는 대남 공작원이었던 외조부를 둔 탓에 신산스러웠던 가족의 진곡한 사연이 민족분단의 아픔으로 승화된다. 이와 함께 생명평화 탁발순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낭송 등 위협받는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시인이 지난 몇 년간 길 위에서 써내려간 고행일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나누는 연민과 동류의식이 민중적 상상력으로 확장된 시편들이다.
    고독 속에서 벼리어진 예리한 시정은 여전히 빛나지만, 생명과 평화를 중심으로 깊어진 사유와 이웃의 삶을 보듬는 따뜻한 애정이 더해진 시집이다.

    목차

    제1부
    왜가리
    낡은 집
    겨울 풍경
    따뜻한 얼음
    화살나무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그 딱새가 열어 보인
    이사, 악양
    적막
    몸을 바꾼 나무
    도끼자루의 생애
    쓰러진 나무
    페루에 가서 죽는다

    제2부

    쓰러질 수 없는 다리
    영도다리 금강산 철학관
    오늘도 도청 앞 찍쇠는 환하다
    첫날밤
    당신을 향해 피는 꽃
    동백
    꿈에서 깨어나니 왼쪽 무릎이 절뚝거리네
    나비가 날아간 자리
    겨울 편지를 쓰는 밤
    정리된 사람

    풍란

    제3부
    학생부군과의 밥상
    밀양에 가서 눈물짓다
    무덤 같은 집
    압록강에 배를 저어 나갔다
    나무, 폭포, 그리고 숲
    외삼촌 찾으러 갈 테다
    그 곱던 얼레지꽃
    따개비 일가붙이
    유리당할 현수막
    바람과 돌들이 노래 부를 때까지
    카피도키아 흰 돌산
    그 섬, 오름 속에 일어선다
    명사산을 오르다
    내 안에 있는 나무
    을숙도 그 옛날 영화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길

    제4부
    늙은 너도밤나무
    매미의 옛 몸
    전화
    쥐와 앵두가 묻기를
    이름 부르는 일
    깨끗한 빗자루
    별의 조문(弔問)
    가시나무의 기억
    새들이 떠난 후
    삼월 눈 속에 차를 마시다
    흰 노루귀꽃, 이미 나도 흘러왔으니

    단속사지 정당매
    먼 강물의 편지

    해설_이희중
    시인의 말

    본문중에서

    사십대에 내는 마지막 시집이다. 불혹의 얼굴이 궁금하던 날이 있었는데 어느새 반백의 머리칼, 오십을 지척에 두고 있다. 오십이 되면 내 시가 좀 변해지기는 할 것인가.
    어둡고 습한 모악산 외딴집에서 쓴 시들과 이곳 따뜻하고 환한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를 와서 씌어진 시들을 보태고 작년 생명평화 탁발순례 길에 쓴 시편 중 몇편을 덧붙여 엮었다.
    시를 찾아, 시에 갇혀, 결국 여기까지 왔다.

    2005년 겨울 지리산 자락 악양에서
    박남준
    (/ '시인의 말 '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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