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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 문청으로 만나 파란만장한 격동기를 함께 보내면서 지금까지 시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 동갑내기 세 시인은 금번 신작 시집 『여울목, 장승, 촛불』을 한 권으로 묶어 상재하였다. 언어 감각의 다양성, 형상화 과정에서의 독창성이 두드러진 데다 꿈, 사랑, 희망을 모태로 한 서정을 본질 삼은 미려한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식지 않는 혼불 같은 갈망으로 고뇌, 번민이 가득 담긴 긴장 속에서도 호소력 있는 육성의 메아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권오견 시인의 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헝클어진 삶의 편린과 끊어진 숨소리를 가슴속으로 쓸어 담아 부조리와 모순덩어리를 걸러내고 폐허에 지워진 인간의 절절한 참모습을 구현하는 윤용순 시인의 시, 총체적인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감내하면서 치열한 내면정신으로 현실의 실상을 심도 있게 투영하여 아름다운 시적 공간을 구축한 이삼헌 시인의 시 등은 암울한 이 시대를 조명하는 구도자의 등불로 타오르리라(최광호, (사)한국문화예술연대 이사장·시인).

□시집을 내면서

권오견 편

1. 허공에다 중심을 내리고
반지
세입자
설죽
허공에다 중심을 내리고
등산
마지막 생을 다지는 파꽃 당신
그대의 길
고리가 되어
손
젖으면서 넘치는 봄밤

2. 절정의 순간
편지
난
간이식당 아줌마
외도일까 참사랑일까
틈 한 줄기
절정의 순간
신발
차를 마시면서
구멍에 대하여
단추와 함께

3. 어머니의 노을
겨울 한복판에서
변신
물무늬
인연
생전에 한번쯤
가을비로 오는 그대
일기예보
어머니의 노을
장롱에 대하여
누가 나를 열어 놓고 지나간다

윤용순 편

1. 시를 주제로 한 나비들
담벼락의 나비들
나비 자물쇠
안경 그 명암
나비 매듭
인간의 향수 냄새
봄꿈

2. 오히려 약이 되어
감나무에 남은 시상
유량천변 사람들
격세유전
낮달과 낮술
경칩을 기다리며
우수 경칩에 만난 꽃
연탄재 거기에는
오히려 약이 되어
벌에 대한 상념
한참 그 거리
자줏빛 칡꽃
집사람
술 한 잔 걸치는 날이면
인공 눈물과 혼

3. 꿈도 나이를 먹는가
순화동 성 밑 길
사금파리
봄이 오면, 저 들녘에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내 마음 몽당연필
잠꼬대 그 중얼거림
역전, 아픈 광장
내 마음의 우편함
꿈도 나이를 먹는가
노병에게 경례

이삼헌 편

1. 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하늘
예쁜 꽃
가을
네가 오는 날
녹음 공화국
목련꽃
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하늘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며
배를 매던 벚꽃나무 아래로
뜨거운 바람을 보낸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서면

2. 그 6월의 장미를 위하여
동백을 기다리며
민들레 카페로 가자
친구
실크로드 카페로 가자
엘리자를 위하여
가전리의 아침
그 6월의 장미를 위하여
절망이 희망에게
어느 매향제
백자골 가자

3. 임진강에서
임진강에서
풍경에 실어
호로고루에서
도선사 송
불멸의 잡초 왕국
이 봄의 기도
겨울 아야진 포구
천년으로 붐비는 장독대
그 겨울의 명동성당
새해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