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봐도 아이의 상상이 담긴 듯 한 책 표지에 웃음이 났다. 나 역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항상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오늘 뭐 했어?”였고, 그 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그냥 놀았어요.”였기에 그랬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뭐하고 놀았는지, 점심은 잘 먹었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 엄마의 마음과 달리, 그냥 놀았다는 아이의 짧은 대답.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답답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궁금해 하는 만큼 아이 역시 이것저것 말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유치원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걸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아이 역시 답답하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면서 어떤 걸 느낄까 싶어 아이들에게도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장난끼 가득해 보이는 표지 속의 아이만 보고도 이 책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빨리 읽어달라고 보챘다. 글이 많지 않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아는지 아이들은 꽤나 집중해서 들었다. 어쩌면 평소에 엄마로부터 많이 듣는 말들이 책에 그대로 나오니, 어쩌면 그 익숙함에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글보다는 그림에 더 많은 표현이 담긴 이 책을 보면서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어했다. 글로 하나하나 풀어주지 않아도, 그림을 보면서 자신들의 유치원 생활이 떠오르는지 박장대소를 했다. 중간중간 “어때? 너희도 그래?”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역시나 “빨리 넘겨주세요.”라며 짧은 대답만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 7살, 8살인 우리 아이들인지라 시야가 조금은 넓어졌는지. “엄마도 참 궁금하겠지?”라는 말에는 웃으며 수긍을 해주었다.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이 책을 읽고 궁금해서 답답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었길 바래본다.

 

아이들만을 위한 책으로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아이도 아이지만 엄마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지 아이와 함께 보기 위해서는 책 속의 아이가 엄마에게 반말보다는 존댓말을 써주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집에서 존댓말을 쓰는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면서 책 속의 아이에게 엄마한테 반말을 한다며 지적을 했다. 나는 아이의 말에 “그러게.”라고 말하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주변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부모에게 반말을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나는 적어도 동화책에서 만큼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존댓말을 썼으면 싶다. 반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존댓말을 배워야지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가 담긴 존댓말을 먼저 가르쳐준다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부모이니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

표지만 보고서는 이 책이 동화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표지를 만질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조금은 거친 질감 또한 책을 만질 때 조심하게 만들었다. 책 제목이 <사막의 왕>인데 왕이 들어가면 좋은 거 아닌가, 하며 책을 펼쳤다. 책 속에 담긴 그림을 보다보니 이 책은 동화책이라기보다는 화보집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수록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끝이 어떻게 끝날지 불안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동화책을 읽으면서 이런 긴장감을 갖기란 처음인 듯했다. 나에게는 조금 낯선 소재인데다가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보니 더 그랬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 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의 내용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이 책의 표지를 만질 때 느꼈던 질감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여느 책과 똑같이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지만, 다른 일반적인 책과 달리 코팅이 되지 않은 재질의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책을 만지거나 다룰 때 다른 책보다는 좀 더 신경을 써야했고 조심해야 했다. 마치 이 책속에 담긴 아이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도 이혼 가정에서 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나 재혼 가정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 생활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당장 내 주변에 그런 상황에 있는 이들이 많지 않았고, 우리 아이들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부모가 헤어진다는 것이 엄마 집과 아빠 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염려가 되었다. 충격을 받거나 괜히 불안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주변에서 이런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그리 특별하지 않게 이 책을 보고 받아들였다. 일부러 이 책을 읽는 동안 내용에 대해 부가 설명을 하지 않고 그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며 읽었는데, 엄마 집과 아빠 집이 따로 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이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미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혼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확실히 아이들의 표정은 다른 때보다 진지했지만 내가 염려했던 것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 했다.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에게 읽어 준 뒤 다시 읽는 이 책에서 나는 그림을 더 자세히 보며 책장을 넘겼다. 다시 보는 그림에서는 처음 볼 때 못 봤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의 첫 장에서 의자 위에 놓여있던 선인장이나 항상 아이와 함께 하는 코끼리 인형, 그리고 엄마 집에서는 엄마랑만 찍은 가족사진이 아빠 집에서는 아빠랑만 찍은 가족사진이 뒤늦게 보였다.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나로서는 상상도 안 되고 가늠도 잘 안 되었다. 사실 굳이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이혼 가정의 아이가 겪어야 할 마음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안정감을 받지 못하는 아이로서는 어느 곳에 있어도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평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결혼을 깨고 헤어진 부모님이기에,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을 믿기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련지. 이 책을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가 읽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책에서 ‘너는 사막의 왕이야.’라고 할 때 공감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며 어느 곳에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혼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엄마 집에는 아빠가 없고,

아빠 집에는 엄마가 없지만,

난 사랑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어.

 

나는 더 이상 작고 슬픈 아이가 아니야.

<사막의 왕> 중에서 -

 

​- 연필과 지우개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설레임이 있는 로맨스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두 명의 아이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터울도 짧은 두 아이들이다 보니, 내 몸은 물론 마음도 낭만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가끔씩 ‘나는 누구, 나는 어디?’를 생각하며 멍하니 나를 돌아볼 뿐, 나를 위한 하루라든지 나를 위한 내일을 찾기 힘들었다. 사랑하기에 평생 함께 하고 싶어 결혼을 했는데, 오히려 결혼하기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듯한 기분은 왜인지. 분명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사랑을 할 때의 그 설레임은 어디로 가버리고 바쁜 일상만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드라마를 보시면서 그렇게 빠져들고 열광을 하시는 건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설레임을 찾고 싶어서.

 

어릴 때 학생들의 꿈, 사랑, 학업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학원물이 그렇게 재미있게 봤었다. 학생일 때는 물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학원물이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참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학생이나 아가씨가 아니라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되어 있는 학원물은 참 묘했다. 결혼 전 미혼일 때는 등장인물 중 여학생의 감정에 더 많은 이입이 되었다면, 결혼 후 엄마인 지금은 등장인물 중 남학생의 감정에 더 많은 이입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등장인물에 내가 아닌 내 아이들의 모습이 더 투영되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둘 다 남자아이들이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런 감정들을 갖게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기분이 정말 묘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진다고 하던데, 확실히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결혼은 나만의 사랑을 찾아 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기에 안정감을 느끼며 평온한 사랑에 접어들게 해준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아닌지 불안해 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설레이는 사랑에서는 확실히 멀어지게 된다.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고, 내 사람이기에 결혼을 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할 때의 그 설레이는 감정이 가끔 생각나기는 한다. 나도 이제 진짜 아줌마가 되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가끔 추억을 떠올리며 학원물의 소설을 읽기도 하지만 이미 확인된 사랑을 하고 있기에 학원물의 소설을 읽다보면 책 속에 담긴 사랑의 감정이 너무 얕고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사랑의 설레임이 전혀 가볍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빠져들어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게다가 이 책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사랑의 설레임에서 시작해 사랑을 확인하는 곳에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고 있지 않기에, 나는 이 책을 내려놓으며 내가 추억을 떠올리며 되짚고 싶었던 사랑의 설레임만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엄마 아빠의 사랑이 아닌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고, 나 혼자만의 사랑으로 가슴앓이 하던 때도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 느꼈던 사랑임에도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했던 때도 말이다. 지금은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그때는 세상 전부가 흔들린 듯 요동쳤던 마음도. 지금 생각하면 불확실함에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그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며 더 예쁘게 사랑하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 걸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참 기대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고 그 설레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왜 내가 더 기대가 되고 떨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