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파티와 밍크를 읽으며 보낸 어린시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언니들이 읽는 어려운 만화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를 소개할 때 항상 나오는 이 문구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성인이 된 후 전자책으로 나온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처음으로 읽어보니

이 만화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는 한 문장은 정말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대한 스케일, 방대한 서사, 수많은 등장인물들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메시지는 바로 '사랑에 목숨걸면 인생을 망친다'였다.

주인공인 네 자매 중 두 명이나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생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그 예측불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생이란 원래 예측 가능한 뻔한 것인데,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예측불허의 드라마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도 인생도 이야기도, 예측할 수 없어서 재미있는 게 아닐까?

 

 

신일숙 작가님의 '파라오의 연인'을 재미있게 봐서 '아르미안의 네 딸들'도 읽어보게 되었다.

같은 작가님의 작품이라 그런지 역시 마지막 결말 부분이 '파라오의 연인'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파라오의 연인'에서는 페닉시오가 방부제(?)의 힘으로 계속 나이를 먹지 않다가

마지막권에서 오랜 젊음의 부작용으로 급 노화되어 죽고, 그의 연인이 그 죽음을 지켜보는 장면이 있는데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도 신의 도움으로 평생 늙지 않은 채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다가

그 남자가 노인이 되어서야 맺어진 후 갑자기 노화가 시작되는 아스파샤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신일숙 작가님이 재해석한 프쉬케와 에로스 신화 '프쉬케'에서도 사랑하는 두 연인은 바로 맺어지지 않는다.

에로스는 프쉬케를 사랑하고부터 갑자기 성장하여 어린아이에서 어엿한 성인 남성의 모습이 되었고,

프쉬케가 에로스를 사랑한다고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에로스가 사라진 뒤였으며

에로스가 준비한 시련을 이겨내서야 프쉬케는 비로소 에로스와 재회할 수 있었다.

이렇듯 두 연인의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다를 때 그 속도 차이를 극복하는 것,

즉 시간마저도 초월할 수 있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고 신일숙 작가님은 말씀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여성이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 아르미안.

이 만화를 처음 읽었을 때 아르미안이 실제로 있는 나라인 줄 알고 두근거렸는데 알고 보니 가상의 나라라고 한다.

비록 가상의 나라라고 해도, 이런 나라가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해야 한다는 게 내 의견이다.

실제 사회가 그런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남성이 왕위에 오르는 작품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어느새 왕이나 대통령 등 권력의 중심은 곧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당연해지고,

선거에서도 여성은 그냥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안 뽑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 사회이기에 여성이 왕으로 등장하는 작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만화가 나온 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다시 애장판이 발매될 정도로

인구에 회자되는 명작이 된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권력과 사랑,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마치 역사책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듯 언제 봐도 흥미롭다.